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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냐
작품등록일 :
2024.07.30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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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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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스카우트

DUMMY

시골의 한적한 요양원. 보수가 잘 되지 않아 도로 여기저기 생긴 구덩이를 피해 검은 차량 다섯 대가 줄지어 도착했다.


구단주의 성화에 프런트 간부들, 현장의 감독, 수석코치와 1군 2군 투수코치까지. 10명이 넘는 인원이 한 사람을 만나러 왔다.


이미 푹 빠진 구단주가 삼고초려해서 겨우 잡은 일정이다. 헬렐레 한 구단주의 표정이 떠올라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실패하면 죽는다.'


필사의 각오로 각자 결의를 다졌다. 회장님이 트렁크에서 꺼내 준 검은 가방 안에는 빳빳한 신권 신사임당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6월까지 중위권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부산 워리어스. 워리어스에는 전설이 있다. 금테안경을 한 우완 투수가 나타나 우승을 가져다준다는 이야기.


시연회 화면에 나타난 안경 에이스 최원동의 투구. 그것은 기억에 남아있는 것 보다도 더 역동적이고 위력적이었다. 예쁘게 다듬어진 현대의 투수들을 보다가 야성이 살아있는 폼을 보니 그동안 거세된 줄 알았던 야성이 꿈틀거렸다. 정말 그렇게 던지는 투수가 합류한다면 길고 긴 비밀번호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이다.


"저는 솔직히 이렇게까지 하는 게 이해가 안 됩니다. 폼도 보면 올드스쿨 그 자체예요. 회전 효율도 떨어지고요. 괜히 현대 야구의 폼이 이렇게 바뀐 게 아닌데 너무 트렌드에 역행하는 투수 아닌지... 본인이 직접 와서 테스트받는 것도 아니고 이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굽신거리는 건 납득이 안된다고요."


2군 투수코치가 살짝 뒤처져 걷는 1군 투수코치에게 볼멘소리를 했다.


"구단주님 지시인데 별 수 있겠냐. 그리고 사실 지금 웅이도 팔꿈치가 안 좋아서 걱정이다. 주사 맞으면서 던지고 있어. 올스타 브레이크까진 버텨주면 좋겠는데 얼마나 버텨줄 수 있을지... 너도 알다시피 감독님도 쓰는 선수만 쓰시다 보니 지금 1군에서 던질 투수가 없다. 순순히 입단해 주길 빌어야 할 지경이야."


눈에 들면 끝까지 밀어주지만 성에 차지 않으면 곧 죽어도 쓰지 않는 독불장군.


비룡 군단에서 벌떼 야구로 왕조를 이루었지만 프런트와의 마찰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경질.


이후 가는 구단마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떠나야만 했던 두 얼굴의 남자, 김근성 감독.


원석을 발견해 최고의 보석으로 만든다는 호평과 보석을 닳아 없어질 때까지 혹사시킨다는 논란이 공존하는 인물이다.


"여기 재미있는 피쳐가 있다고 해서 왔는데."


노장의 눈에 생기가 감돌았다.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와! 너도 요양하러 왔어?"


요양원 옆 스튜디오 입구에 전설이 된 투수, 박특급이 등장했다.



고교 때까지만 해도 지역 라이벌로 통했던 두 선수는 이후 사뭇 다른 길을 걸었다.


부상으로 일찍 현역 생활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김근성은 지도자로 커리어를 이어나갔고,

대학 야구를 거쳐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박특급은 이름에 걸맞은 특급 활약을 펼치며 국민들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반세기가 지나고 보니 개미보다 작게 보일 만큼 저 멀리 앞서나갔던 박특급은 서서히 잊히고 성한 곳 없는 몸으로 요양원 신세를 지고 있지만,

뚜벅뚜벅 주어진 길을 걸어가던 김근성은 여전히 유니폼을 입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라운드 위에서 젊은 청춘들과 호흡을 같이하고 있었다.


저마다에게 주어진 길을 끝가지 걸어가는 것이었다.


"너는 오지 마. 내 구역이니까. 한 10년만 더 공놀이하다가 벽에 똥칠할 때쯤 와."


"너 보러 온 거 아냐. 아이들이 기다려서 오래는 못 있어. 나중에 따로 보러 오던지 말던지."


멋모르고 모래밭에서 타이어를 끌던 두 소년이 이제 낡은 육신을 이끌고 요양원 앞에서 옥신각신 한다. 저만치 앞서 갔다가도 하나가 넘어지면 그만치 되돌아와 손 내밀어주던 기억이 생생하다.


"새가 있어야 할 곳은 새장이 아니라 푸른 하늘이고, 말이 있어야 할 곳은 푸른 초원이야. 어항 안의 물고기가 어항보다 더 커질 수는 없는 법이지."


김근성의 말에 박특급은 코웃음 쳤다.


"어항? 세상에 미국만 한 어항이 있다면 또 모르지. 나 메이저리그 124승 투수 박특급이야."


하지만 김근성의 눈은 소리치는 박특급도, 민재의 뒷모습도 아닌 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전설이 으르렁거리는 사이,

프런트와 코치들에게 둘러싸인 민재는 프런트가 내미는 서류를 급구 사양하느라 홍역을 치렀다.


"여기까지 찾아와 주신 건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해야 할 일도 있고 스승님도 계셔서 정식 선수 계약을 하긴..."


"프로 가서 털릴까 봐 스승 팔아먹는 못난 제자야, 특급 스승이 내리는 가르침이다. 이제 흉내 내지 말고 요령껏 네 것으로 던져라."


점퍼 안에 있던 야구공을 김근성에게 휙 건네고 건물로 들어가 버리는 박특급이었다.


"저 지랄 맞은 성격은 반백 년이 지나도 여전하구나."


박특급이 건넨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투수 치고는 약간 작은 키와 체형.

-팀 린스컴이 연상됨.

-체력이 좋고 성실함.

-이해력과 몸의 감각이 좋아서 누구의 폼이든 디테일하게 설명해 주면 금방 자기 것으로 만들고 언제든 일관성 있게 재현해 낼 수 있음.

-존을 9개로 분할해서 구석구석을 모두 활용할 수 있는 뛰어난 제구력.

-하지만 바보임. 아무튼 바보임.


알쏭달쏭한 스카우팅 리포트를 읽고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너는 예전부터 그랬지. 장난감 뺏기기 싫은 애처럼. 로봇, 공깃돌, 고무신, 글러브, 그리고 그녀까지. 아끼는 걸 억지로 포기하고 양보할 때 쪽지 남기는 버릇은 옛날하고 똑같구나."



"자, 빨리 이동합시다."


구단 직원들은 정확하게 테스트해볼 수 있는 육성군 훈련장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스승님, 저 진짜 가도..."


"언제부터 내 허락받았다고 그러냐."


투덜투덜하면서도 배웅을 하러 나온 박특급의 마음을 잘 아는 민재였다.


"됐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내 제자라는 걸 온 세상에 알려라. 나 박특급이 아직도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있다는 것을 말이다!"


콜록콜록.


큰 소리로 말하려다 보니 침이 기도로 흡인되어 기침이 절로 나온다.


"할아버지랑 할머니는 내가 매일 찾아뵐 테니까 걱정하지 마."


한 달에 절반은 해외에 있는 수현이 무슨 수로 매일 찾아뵌다는 말인가. 마음의 짐을 덜어주려는 수현의 위로에 고마움과 미안함이 심장을 양쪽으로 잡아당기는 것 같다.


"신경 써줘서 고마워."


"아니, 진짜 매일 찾아뵐 건데?"


아직 남은 찜찜함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으려는 듯, 수현이 당당히 외쳤다.


"너 내일 미국 간다면서."


"내 사무실이 여기인데 뭐 하러 미국에 가."


"진짜야...? 회장님이 난리 나셔도 난 몰라."


눈동자가 휘둥그레진 민재의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인사했다.


"좋으면서."


"그래. 너밖에 없다."


이제 민재가 앞으로 나아갈 차례였다.



워리어스의 구단주, 구단주는 타는 속을 주체할 수 없어 물을 패트 째 들고 마셨다.


한심한 코치들은 서로 우왕좌왕 난리가 났다.


"야 박코치. 지금 시내 나가서 금테 안경 좀 구해와 봐."


"선배. 그거 쓴다고 되겠어요?"


"야, 지금 새벽기도라도 나가서 빌어야 할 판이야. 구단주님 분위기 살발한 거 안 보이냐? 인상 쓰니까 면상 진짜 더러워."


육성군 실내 연습장. 여러 가지 전문 장비들을 세워두고 구단 관계자 10여 명이 둘러섰다.


상의 없이 구단주가 직접 부른 시커먼 양복 입은 지역 신문 기자들이 툭 튀어나온 카메라를 들고 노려본다. 이들 모두 워리어스의 극성팬으로 유명한 기자들. 나이가 나이인 만큼 최원동의 실업 야구 시절부터 따라다니던 사람들이다.


"야, 폼은 진퉁 아니가?"


"예. 제가 볼 때도 이만치 똑같기는 힘들지요."


"일마 제구만 좋으면 당장 안 쓸 이유가 없겠는데요."


"그게~ 문제가 아이다."


기자들이 저마다 소회를 나누고 있는 사이, 구단주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커브 함 던 지 보라고! 그게 그리 애렵나! 이? 최원동 하면 커브 아이가 커브! 일마 최원동이랑 똑같다 한 아 누고!"


10살 때 아빠와 캐치볼을 한 이후 14년 만에 처음 제대로 야구공을 잡았다. 6개월 동안 박특급과 함께 한 훈련은 기초 체력과 밸런스를 잡는 훈련이었지 공을 던지는 훈련이 아니었다.


민재가 갑자기 최원동처럼 탑스핀을 잔뜩 먹인 폭포수 커브를 던지는 건 일반인이 눈 감고 휘두른 방망이에 맞은 공이 관중석의 아이가 먹고 있는 소프트콘 위에 정확히 떨어지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이 사실을 알 수 있을 리 없는 구단 관계자들과 코칭스태프들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커브 때문이 아니라 황금 같은 휴식일을 빼앗기고 지방까지 불려 갔다는 것에 더 화가 났다.


"더 볼 것도 없는데 차비 주고 돌려보내시죠."


성이 난 구단주와 아무 말이 없는 감독을 대신해 수석코치가 나섰다.


'아, 바보라는 것이 이런 의미였나.'


70 평생을 야구에 바친 김근성의 눈에는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 보였다.


몸의 감각은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그것도 사실은 24시간 내내 흔들리는 배 위에서 균형을 잡으면서 터득한 노력의 부산물 같은 것이겠지.


하지만 공의 맛을 살리는 것은 손이다. 끊임없이 그물을 잡아당기고, 무거운 바께스를 나르고, 밧줄을 당기고. 배 위의 막내에게 섬세한 작업 따위는 사치. 끊임없는 충격과 쓸림에 저항하던 손은 점점 무뎌지고 단단해지고 굳어졌다.


누구보다 강한 힘을 낼 수는 있었지만 누구보다 무감각해진 손. 스물넷의 손에는 그만한 세월의 무게가 쥐어져 있었다.


프런트에서도 이미 작성한 계약서의 책임 소재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혹시 괜찮으시면 제가 한 말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워리어스 육성군 총괄인 스티브 권.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올해 워리어스에 스카우트되어 육성군 총괄을 맡은 세이버 메트릭스 전문가이자 야구 훈련 장치 개발자다.


"혹시 최원동 선수 말고도 다른 선수들 폼으로도 던질 수 있나요?"


"네."


그의 질문에 의기소침한 민재가 짧게 대답했다.


"박코치님, 저희 내일 상대 선발이 누구죠?"


"지금 1위 하고 있는 대전 레이븐스 1선발 류진현이요."


물 흐르듯 부드러운 폼에서 나오는 8개의 구종. 완벽하게 보더라인을 노리는 날카로운 제구력. 곰의 몸과 여우의 머리를 가진 그야말로 괴물이다.


"혹시 류진현 선수 폼도 따라 할 수 있나요?"


"네."


민재는 왼손에 글러브를 오른손으로 옮겼다. 양손 모두 던질 수 있는 민재를 위해 특수제작한 글러브. 수현이 생일에 준 선물이었다.


갑작스러운 스티브의 제안에 얼떨결에 다시 피칭존 주위로 집결한 코치들. 그들의 눈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덩치만 작지 진짜 딱 진현이 어릴 때 같지 않아?"


이제 40을 바라보는 베테랑이 되어 미국 야구를 평정하고 돌아온 류진현의 신인 시절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았지만,

그때 타자로 배터박스 안에서 그 공을 봤던 사람들에게는 잊히지 않는 각인 효과가 있었다.


"저, 한 번 서봐도 되나?"


"예."


현역 시절 류진현의 공을 가장 잘 친다고 평가받던 최코치가 타석에 들어섰다.


날카로운 제구. 묵직한 힘. 힘 들이지 않고 부드럽게 넘어오는 상체.


"딱 스무 살 때 진현이 공 같습니다."


괴물의 편린을 재현한 민재에 대한 평가는 순식간에 호의적으로 바뀌어있었다. 기자들의 손도 바쁘게 돌아갔다.


"그럼 제가 하나 제안해 드릴까요?"


스티브 권의 혀가 미끄럽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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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5화 목격자 24.08.02 71 0 11쪽
5 4화 배팅볼 24.08.01 9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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