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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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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30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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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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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리더

DUMMY


"굉장히 뒤숭숭한 하루입니다. 오늘 아침에 굉장히 큰 소식이 터졌는데요, 사실이라면 한국 야구 리그 최대의 스캔들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오전 내내 줄을 타던 메이저 언론사 중 하나가 청태오 라인을 손절하기로 했다.


"여러분이 기대하셨을 분을 모셨습니다. 지난 20년 한국의 저널리즘을 의인화한 분이죠. 대기자 기자님 모셨습니다."


펜과 잉크로 세상의 악에 맞서던 기자가 오늘은 목소리와 얼굴(...?)로 승부를 걸었다.


"저는 워낙 자주 뵈었던 분이라 익숙한 얼굴과 표정인데요."


가벼운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고, 본격적인 주제로 들어갔다.


"이양태 선수 관련 소식입니다. 후반기에 갑자기 2군으로 내려가서 부상이 아닌가 했는데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나운서의 질문에 카메라가 대기자를 클로즈업했다.


"지금부터 저는 공익제보자의 신분으로 전환됩니다."


공익제보라는 것은 내부고발과 같은 말. 20년 동안 언론의 거목으로 자란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모두가 숨을 죽였다.


"제가 말씀드릴 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현재 프로야구 내에 승부조작은 특정 구단의 문제가 아니라 전구단 모두 해당된다.]

[둘째, 한국 야구 협회는 선수와 구단의 자진신고를 묵살하고 공론화되는 것을 막았다.]

[셋째, 구단과 언론사가 담합하여 이의제기와 내용증명을 외면했다.]


대기자의 입이 떨어질수록 충격은 경악으로, 경악은 분노로, 분노는 절망으로 바뀌어갔다.


"이제 공을 법조계로 넘기겠습니다. 야구계는 자정작용을 포기했고, 언론은 타락했습니다. 사법이 올바로 판단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대기자가 들고 나온 서류봉투는 딱 봐도 묵직해 보였다. 두 손으로 들어 올린 서류 봉투 겉에 붙은 '고소장'이라는 글씨는 사태의 무게감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경기 시작 3시간 전.


"감독님. 내가 모시고 올 때 임기 보장한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다 아입니까. 이카모 내 가오가 죽어서라도 안됩니다."


워리어스 구단주, 구단주. 그의 철칙은 하나다.


'뭐든지 사나이답게.'


사나이 하면 의리. 약속은 지키는 남자다.


하지만 그의 사전에 적힌 사나이라는 정의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쪽팔리지마는 저는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사람은 사나이가 아이라고 캤습니다."


그의 말은 고해성사와도 같은 것이었다.


"근데 쪼매 더 나이가 드니까 알겠습니다. 진짜 사나이는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거요."


고개를 끄덕인 감독이 말했다.


"구단주님이 말하는 사나이가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제가 아는 리더는 책임질 줄 아는 사람입니다."


김근성 감독은 이미 결심을 굳혔다.


"4시에 기자회견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지휘봉을 잡고 시리즈를 마치고 나는 책임을 지고 사퇴합니다."


책임을 지는 사람. 그것이 김감독이 이해한 리더였다. 감독의 지고한 뜻을 읽어낸 구단주가 외쳤다.


"그럼, 저도 사퇴합니다. 리더가 그런 자리라면 저도 책임 질랍니다."


꽉 쥔 주먹이 그의 결의를 나타냈다.


"아뇨. 리더라면 그러면 안 됩니다."


감독이 바라보는 바는 명확했다.


"이제 그토록 원하던 프런트 야구, 하십시오. 누군가는 강한 카리스마로 끌고 나아가야 해요. 사람은 본디 악한 존재. 누군가의 다스림이 없다면 한없이 나태해지고 나약해지는 존재니까."




경기 시작 2시간 전.


'열도의 소리'가 던진 떡밥을 물지 않은 언론사들도 김근성 감독의 기자회견을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50년 간 언론과 싸워오면서 뿌리내린 거대한 연결망. 이것은 재아무리 슈퍼스타인 청태오도 당해낼 수 없는 규모였다.


"우리 기자님들 많이 바쁘신데 모이라고 해서 죄송스럽습니다."


항상 고독한 맹수처럼 홀로 무리를 이끌던 김감독. 그는 늘 적이 많았다. 그의 무리가 높은 자리에 있으면 높은 대로, 낮은 자리에 있다면 낮은 대로 비난거리가 되었다.


늘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혹사' 논란 또한 그중 하나.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선수를 혹사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착착착착! 사방에서 셔터음이 울렸다.


'이 말하려고 부른 거야?'


기자들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평생을 따라붙던 논쟁을 지금 이 상황에 하려는 것인가?


"그보다 더 깊은 생각에 나는 내가 전권을 쥐면 내 손안에 야구공처럼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부상을 당하기 전, 그는 한국의 톰 글래빈이라 불리는 좋은 제구력을 가졌었다.


"70 평생 야구를 사랑하다 보니 깨닫는 것은, 피처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은 공이 내 손을 떠날 때 까지라는 겁니다."


야구공을 잡고 왼손으로 실밥을 채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나는 항상 보고 있었습니다. 손에서 공이 떠난 피처가 할 수 있는 건 베이스커버와 기도뿐이라는 걸."


얼굴을 손을 쓸어내린 그가 말을 이었다.


"나의 오만한 판단으로 내 손을 떠난 상황에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사과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모자를 벗고 사과하는 그의 모습에 기자들은 요지를 잡지 못했다.


"그리고 내 손안에 공이 말썽을 일으킨 것에 책임을 지려합니다."


본론은 이제 시작이었다.


'세이코 상...'


기자들 사이에 홀로 외국에서 날아온 한 사람. '열도의 소리' 사장이자 여전히 집필 활동을 이어가는 카이바가 감정을 억눌렀다.


그가 보기에 김근성 감독은 잘못이 없었다. 노령인 감독의 귀를 막고 조종한 주변인들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감독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들을 컨트롤하지 못한 내 책임이 큽니다. 우리 팀에 승부조작에 가담한 정도가 아니라 승부조작을 주도한 인물이 있습니다."


김근성 감독의 폭탄 발언에 기자들이 술렁였다.


"저는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을 통감하고 감독으로서, 리더로서 선수단의 일탈을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오늘 경기를 끝으로 물러납니다."


그가 모자를 벗어 책상 위에 올렸다.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조사에 성실히 임할 것입니다."


이번에는 양복을 벗었다. 양복 안에는 워리어스의 유니폼이 있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야구인으로서..."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던 냉혈한이라 불리던 그가,


"신성한 그라운드를 더럽힌 자들을 반드시 도려낼 겁니다."


눈가의 습기를 닦았다.




언제나 한국 야구의 발전과 흥행만이 인생의 목적인 최총재.


그의 소원은 옛날 실업야구 선수들, 그들이 누려야 했던 영광을 재현하는 것.


프로 무대가 없을 때도 미국과 비등하게 싸웠던 네 명의 투수들. 그리고 그들의 친구이자 매니저였던 최총재.


네 명의 선수들이 활약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로 사방팔방 뛰어다니고 그야말로 살신성인했지만 너무 늦어버렸다.


한 명은 부상으로 은퇴, 한 명은 대학 무대를 거쳐 메이저리그에 진출. 한 명은 혼혈이라 본국으로 돌아가버렸고, 마지막 한 명은 미국까지 진출했지만 사고로 세상을 떴다.


야구라는 스포츠를 제도권으로 들여보내는 것은 개인의 힘으로는 불가능했다.


정치계 거물의 후광을 입고 경제계 재벌들에게 자존심 싸움을 부추긴다. 정책으로 스포츠를 권장하고, 기업들은 돈을 뿌린다.


인프라가 형성되고 자금이 흐르자 좋은 선수들이 유입되고, 리그 경쟁력은 상승한다.


좋은 경기력에 관중들이 찾아오고, 관중은 돈을 부른다.


돈 냄새를 맡은 기업들은 광고료를 지불하고, 리그는 자생력을 갖추어간다.


좋은 선수들은 연예인 못지않은 돈과 명예를 얻고, 그들을 보고 자란 꿈나무들이 다시 생태계로 발을 들인다.


성장하는 동안 생긴 잡음과 여러 가지 더러운 이야기는 모두 혼자 책임지기로 했던 최총재다.


그 과정에서 아들과의 사이도 틀어지고 친구들과도 멀어졌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친구들을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어느 순간 일을 위해 일을 하고 있었다.


'이제 멈출 수 없어.'




"이게 무슨 일이여."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어르신의 템포에 숨이 넘어갈 뻔한 경상도 어르신들이 속사포를 뱉었다.


"부산 아들이 짜고 치는 고스톱을 했다 안카나."


시골 요양원. LA 모자를 쓴 할아버지 박특급은 이 사태를 멀리서나마 지켜보고 있었다.


한 시대에는 함께 경쟁했고, 다음 시대에는 자신이 밝게 빛났다. 그다음 시대, 자신의 힘이 다해 사그라들어 갈 때쯤, 그는 점점 더 밝게 타오르더니 이제 야구계 전체의 목소리가 되어있었다.


그의 작전은 바이블이 되고, 그의 발언은 책이 되었으며, 그와 함께했던 시간들은 선수들에게 자랑거리가 되었다.


"너도 이제 끝이구나. 질긴 녀석."


기자회견을 하는 김근성의 모습을 보며 또 다른 시대가 저물어가는 것을 목도한 박특급은 김근성이 모자를 벗자, 함께 모자를 벗었다.


저물어가는 한 시대의 전설에 대한 예우였다.


"우리 어르신이 왜 또 센치해지셨데? 식사하러 갑시다."


모자를 벗고 감상에 잠길 새도 없이 알차게 차려진 식탁으로 향하며 요양보호사에게 말했다.


"저 영감 잘 봐둬. 조만간 내 옆방으로 올 거야."




"스파이더스와 워리어스. 워리어스와 스파이더스의 3차전 함께하시겠습니다."


일이 너무 심각하면 체감이 잘 되지 않는다. 스티브 권도 마찬가지.


'난 그냥 내 장비 테스트하러 온 건데...'


사건에 휘말려 그린은 팔 깁스를 하고, 감독은 사퇴했다.


제대로 굴러간 스노우 볼에 어안이 벙벙하지만, 경기는 경기.


김근성 감독의 감독 대행으로 지목된 스티브는 일말의 책임감으로 이번 시즌까지만 함께하고 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다.


주전 멤버 절반이 고의로 타격을 하지 않은 여부를 조사받기 위해 소환당했고, 빈 로스터를 채우기 위해 2군과 육성군 선수들을 끌어올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선수를 적재적소에 기용할 수 있는 사람은? 스티브 권이 적임자였다.


불려 가지 않은 선수 중 가장 가슴 졸일 선수는 다름 아닌 김작가였다. 그가 소환되지 않은 이유는 단순하다. 경제적 이익을 취한 흔적이 없기 때문.


다른 선수들은 일명 '기여금'을 청태오에게 지급받은 증거가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차명 계좌, 상품권, 현금, 현물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었지만 이양태의 구체적인 증언이 수사망을 확 좁혀줬다.


드디어 반년 동안 수집하고 연구한 데이터와 선수들의 플레이를 눈으로 확인할 때가 왔다.


"오늘 워리어스의 선발, 박웅의 어깨가 무거울 것 같습니다."


김작가는 간절히 빌었다. 제발 자신이 등판할 상황이 오지 않기를. 평범한 기량으로 마무리 자리에 오르게 만든 원흉인 투수코치는 청태오와 함께 잠적했다.


투수코치 자리에 서있는 스티브가 차기 감독이 되면 본인은 이대로 프로에서 조용히 은퇴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조용히 은퇴하모 기적이제.'


곧 청태오와 투수코치는 경찰에 잡힐 것이고 조사가 진행되면 청태오의 사주를 받고 고의로 경기를 날려버린 김작가가 가장 큰 화젯거리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일부러 지러 마운드에 오르는 것보다는 괜찮았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야구를 자신의 손으로 뭉개버려야 했던 지난날이 훨씬 괴로웠다.


'그래. 오늘 떤질 기회가 오모 후회 없이 던지고 죗값을 받자.'


그렇게 다짐하는 김작가였다.



"우려와 달리 팽팽한 경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4회 말. 주전이 대거 빠져 일방적인 경기가 될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양 팀 모두 집중력 있는 모습을 보이며 2:2 스코어, 접전의 양상으로 가고 있다.


"아무래도 국내 선발진이 약한 스파이더스와 타선이 대거 이탈한 워리어스의 상황을 고려하면 스파이더스의 타선이 살아나줘야죠."


정석적인 투구폼 때문에 패스트볼이 맞아나가기 시작하면 변화구 비중을 높인다. 변화구를 코너로 던지다 보니 투구 수가 늘어나고, 체력이 떨어져 무너지는 경기가 패턴화 되었다.


전날 탐슨의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조합에 유린당했던 스파이더스 타선의 눈에 박웅의 패스트볼은 손쉬운 먹잇감.


하지만 큰 점수가 나지 않은 것은 육성군에서 올라온 수비진의 절박함 덕분이었다.


"오늘 워리어스의 수비는 그야말로 환상입니다."


강호정의 강한 타구가 3루수의 몸을 던진 호수비에 걸렸다.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걷어냅니다!"


원정팬들이 돔구장을 환호성으로 가득 채웠다.


"그래! 이맛이지! 느덜이 주전해라!"


팬들이 원하는 절박함, 열정, 포기하지 않는 투지.


그토록 원하던 근성 있는 플레이를 김근성 감독의 마지막 경기에서 볼 수 있었다.


'기자 회견 미리 안 했으면 미련을 놓지 못했겠구나.'


반갑고도 아쉬운 건 김근성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불행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아, 박웅 선수가 마운드에 주저앉았습니다!"


캐스터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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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8화 기적 24.08.20 16 0 11쪽
28 27화 지배 24.08.19 18 0 12쪽
27 26화 돈 24.08.18 19 0 13쪽
26 25화 아버지 24.08.17 21 0 12쪽
25 24화 관조 24.08.16 20 0 12쪽
24 23화 생소함 24.08.15 21 0 13쪽
23 22화 김나박이, 최 24.08.14 20 0 12쪽
22 21화 개화 24.08.13 23 0 12쪽
21 20화 변신 24.08.12 24 0 12쪽
20 19화 야구 VS 축구 24.08.10 34 0 13쪽
19 18화 야성 24.08.09 29 0 13쪽
18 17화 균형 24.08.08 32 0 13쪽
17 16화 마무리 24.08.07 42 0 12쪽
16 15화 김나박이 24.08.07 42 0 12쪽
» 14화 리더 24.08.06 38 0 13쪽
14 13화 물밑 작업 24.08.06 43 0 12쪽
13 12화 카르텔 24.08.05 51 0 12쪽
12 11화 진실 24.08.05 54 0 12쪽
11 10화 승부조작(2) 24.08.04 59 0 12쪽
10 9화 승부조작(1) 24.08.04 58 0 12쪽
9 8화 구원투수, 배팅볼러 24.08.03 65 0 13쪽
8 7화 100마일짜리 배팅볼 24.08.03 68 0 12쪽
7 6화 이글아이 24.08.02 70 0 13쪽
6 5화 목격자 24.08.02 7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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