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볼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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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냐
작품등록일 :
2024.07.30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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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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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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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화 배팅볼

DUMMY

"이민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얼떨결에 전국에서 가장 많은 월급을 받는 배팅볼 투수가 되었다.


민재의 역할은 다음날 팀이 상대할 선발투수의 투구폼을 분석해서 재현하는 것. 몸을 풀고 준비하면 전날 저녁 경기를 마친 선수들이 오후쯤 되어 훈련장으로 출근한다.


"오늘은 제가 처음이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신인이 6월까지 1군에 붙어 있는 것도 대단한 일. 민재를 형이라고 부르는 깍듯한 신인타자 윤희동이 출근했다.


스티브가 수입해 온 피칭머신, MK-01. 수현의 엔진이 구현해 낸 선수들의 투구 궤적을 분석해서 거의 비슷하게 날려주는 최신형 배팅볼 장비다.


이 장비의 단점은 무식하게 크고 못생긴 디자인. 실제 투수의 투구폼은 반영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는데 민재가 등장해 모든 단점을 극복하게 되었다.


귀로 이어폰을 끼고 버튼을 누르면,


"3, 2, 1."


카운트다운에 맞춰 투구폼을 잡는다.


-펑!


"어휴. 오늘도 쉽지는 않겠네요. 형이라면 어떻게 할 거예요?"


가장 일찍 나와서 가장 늦게 퇴근하는 연습벌레답게 향상심이 대단하다.


"나라면 슬라이더를 노리고 짧게 나갈 것 같아. 1,2루 쪽으로 강하게 밀어내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슬라이더 세 개만 더 해주세요."



선수들이 단체 훈련을 소화하는 동안에도 순차적으로 한 명씩 와서 공을 치고 간다.


"야, 나 와서 잘 치고 갔다고 해래이."


간혹 이렇게 자기 차례가 되면 훈련을 했다고 하라고 하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선수들도 있다. 선수마다 20분씩 주어지기 때문에 20분 간 휴식이다.


"여보세요?"


"어 민재! 무슨 일 있어?"


"아니, 잘 돼 가나 해서. 어제 목소리 안 좋길래."


"MK-2 개발 중인 거 있지? 거기 사장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서 짜증 좀 났는데 잘 해결했어."


1군 멤버들을 따라 전국으로 다니게 된 민재지만 수현과의 통화는 빼놓지 않고 하는 일과가 되었다.


"너 멀리 있다고 딴짓하고 다니면 안 된다?"


"나 알잖아."


"알지. 착하고 순해 빠진 이민재."


"나 그렇게 착하진 않아. 나쁜 생각 많이 해."


"무슨 생각?"


"비밀이야."


"쯧쯧. 난 다 알아."


"뭘... 아는데?"


"곧 미팅 시간이라 끊는다? 이따 통화해!"


알맹이 없는 대화에도 피로가 싹 풀리는 청춘남녀였다.



오늘은 지역 라이벌 창원 크로커다일즈와의 경기가 있는 날. 중위권 경쟁 팀이자 낙동강 더비 라이벌답게 관중들이 경기장에 가득 들어찼다. 크로커다일즈는 최수현의 아버지, 최회장의 구단이기도 했다.


"마, 쌔리라!"


"눈 똑바로 안 뜨나. 슬라이다 치지 말라꼬!"


"희동아 떨공만 참으면 3할 금방 간다!"


크로커다일즈의 2선발 찰리의 초구가 높게 형성됐다.


'슬라이더, 슬라이더.'


"2구, 갑니다. 이번에는 존에 걸쳤습니다. 148km의 빠른 볼. 1-1의 볼카운트입니다."


"윤희동 선수, 6월 들어 선구안이 무척 좋아졌어요. 수싸움에서도 지지 않는 모습 보여줍니다."


3구와 4구 모두 존에서 살짝 벗어나는 패스트볼.


"첫 타자에게 자신 있게 패스트볼로 승부하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볼넷 출루는 좋지 않습니다. 윤희동 선수가 발도 빠르고 주루 센스도 있기 때문에 루상에 내보내면 안 됩니다."


"올시즌 10개의 도루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5구!"


우타자 바깥쪽으로 흐르는 슬라이더. 민재와 함께 죽도록 연습했던 그 코스다.


"슬라이더, 타격! 1,2루 사이를 뚫어내는 깔끔한 안타입니다."


"신인이 대처하기 쉽지 않은 코스였는데 잘 밀어냈습니다."



-형, 안 자요?


6:5의 스코어로 워리어스가 승리한 후, 윤희동이 메신저를 보냈다.


-응. 내일 투수 분석 중이야.


답을 하기 무섭게, 똑똑똑.


민재의 방에 노크소리가 들렸다.


"네, 들어오세요."


자세를 고쳐 앉은 민재를 찾아온 것은 다름 아닌 윤희동.


오늘 인생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형 덕분이에요."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네가 잘 친 덕이지."


첫 타석 안타를 시작으로 2루타, 3루타, 홈런까지. 사이클링 히트를 순서대로 쳐냈다. 심지어 마지막 타석의 홈런이 끝내기 일만큼 영양가도 훌륭했다.


"오늘 수훈선수한테 주는 건데 형이 받았으면 좋겠어요."


제법 묵직한 봉투와 꽃다발. 오늘 사이클링 히트를 친 희동에게 특별한 선물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내가 받을 자격이 있나. 네가 잘한 거지. 그건 네 몫이야."


감정이 북받친 희동이 소리쳤다.


"아무도 형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모르잖아요. 매일 200개 넘게 던지고 있는데. 다른 선배들은 술 먹으러 다니고 잘 알려주지도 않는데 형이 조언해 줘서 내가 홈런 칠 수 있었어요."


"경기장에선 유니폼 입은 사람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게 맞아. 나는 지금도 만족해. 좋아하는 야구를 할 수 있으니까. 그 돈으로 부모님 맛있는 거 사드리고 남으면 나 치킨 한 번 사줘."


대중들은 언론의 이야기를 '진실'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는 '진실'보다 '진심'에 관심이 많다. 스포츠도 별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진실'에 관심이 없는 언론은 알아서 기사를 찍어내기 시작했다.


[워리어스의 약진, 청태오 효과는 어디까지인가!]


"윤희동 선수의 사이클링 히트 활약 뒷면에는 역시 간판타자 청태오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습니다. 홈런 전에 따로 불러 조언해 주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는데요, 어떤 이야기가 오갔던 것일까요?"


"너무 힘들이지 말고 가볍게 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홈런을 쳐버리더라고요. 하하. 선배 말 안 듣는 훌륭한 후배입니다."


"네, 유쾌하게 이야기해 주셨지만 고졸 신인의 활약이 정말 기특하실 것 같은데요?"


씨익. 청태오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좋은 후배들이 많이 올라와야 저희가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겠죠. 가을야구 기대하시는 여러분께 꼭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창원 크로커다일즈 파크였습니다."


'거짓말.'


이어폰으로 방송을 들으며 주차장에서 배트를 돌리는 윤희동은 이를 악물었다.


"병신아, 나 땀 흘리기 싫으니까 알아서 죽던지 해라."


청태오의 비릿한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맴돈다.


'프로라 하는 사람이 경기장을 가득 채운 팬들 앞에서 그렇게 해도 되나?'


입단 전부터 소문은 들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땀과 열정이 가득할 줄 알았던 프로 구단은 난잡한 사생활과 지저분한 소문으로 가득했다.


재능의 합으로는 어느 구단에도 밀리지 않는 워리어스가 하위권을 전전할 수밖에 없던 것은 고액 FA 선수들이 만든 카르텔 때문이다.


아무리 낮은 성적을 기록해도 개인 성적이 나쁘지 않으면 팬들의 원망 섞인 시선을 피해 갈 수 있다. 적당한 성적만 유지하면 주전이 보장되니 딱히 열심히 훈련을 할 필요가 없었다.


실력으로 주전 자리를 위협할만한 녀석들이 나타난다면 예외가 되겠지만, 그런 녀석들은 텃세 조금 부려주면 알아서 나가떨어지기 마련이다.




"이번 신인 중에 걔 좀 치더라?"


"희동이?" "그래."


크로커다일즈의 간판타자, 이준호.


리그 최고의 타자였던 적은 없지만 특유의 리더십으로 팀을 하나로 묶는 능력이 있는 선수다.


"말도 마라. 쪼만한게 벌써부터 눈깔이 살아서 덤벼."


포지션은 다르지만 살짝 거슬리는 청태오였다.


같은 포지션의 배테랑을 밴치로 주저앉히고 주전 자리를 꿰찼으니 말이다.


"뭐 이제 여름인데 지가 버티면 얼마나 버티겠어? 다른 애들도 아무 말 안 해주는데."


"경기 중에도?"


"어. 공이 어떤지 이런 거 아무도 말 안 해준다."


"너희 진짜 어지간하구나? 그런데 2할 후반 치는 거야?"


준호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이모, 쏘주 하나."


"야, 내일도 경기 있어."


"넌 먹지 말던가."


동갑내기 두 친구의 커리어는 같이 붙이기 민망할 정도.


리그 MVP와 홈런왕, 시즌 6관왕 등 한국 리그를 집어삼키고 일본과 미국을 거치고 돌아온 청태오와 평생 노력해도 타이틀 하나 차지할 수 없었던 준호의 격차는 상당했다.


하지만 준호에게도 팀을 대표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할 말 있으니까 듣고 마셔. 그 말만 하고 갈 테니까."


양 팀의 주장이 시리즈 중간에 식사 자리를 마련한 이유.


전날 있던 경기에서 생긴 오해를 풀기 위함이었다.


"찰리가 커브가 손에서 빠졌단다. 찰리가 경기 전에 따로 사과한다고 하고 너희가 우리 맞췄으니까 더 이상 보복구 던지지 말고 마무리하자."


그러든지 말든지 음료수잔에 소주를 따르는 청태오다.


"나 먼저 일어난다."


"그래, 계산은 하고 가고."


"연봉도 지가 더 받는 놈이. 이모 술값은 빼고 계산이요."


준호의 한숨이 깊어졌다.




워리어스와 크로커다일즈의 주말 시리즈 2차전.


"크로커다일즈의 선발투수는 사이드암 이양태입니다. 어떤 부분을 주의 깊게 봐야 할까요?"


"1회를 좋은 수비로 넘긴 워리어스 입장에서는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돌릴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좋은 수비 이후에 좋은 공격이 따라온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아랫입술을 깨물며 던진 초구는 크게 벗어났다.


"절마 저거 또 시작이고! 마! 니 어제 일찍 안 잤나!"


관중석에서 큰 호통소리가 들리자, 그쪽으로 눈길을 힐끗, 흘기고는 포수에게 공을 받았다.


"와, 지금 내를 야린기가? 와 진짜 팬질하기 힘드네."


마산에서 온 아저씨 팬이 허탈해하는 사이, 포수는 다시 싸인을 전달했다.


"이양태 선수 초반에 영점이 잡히지 않은 모습입니다."


2구도 다시 빠져나가는 볼.


"지금 관중석 쪽을 좀 둘러보는 듯한 모습이 보이거든요? 포수에게 집중했으면 좋겠습니다."


3구는 아예 포수 앞에 패대기 쳐졌다.


"오늘 워리어스 선발이 박웅 투수거든요? 이양태가 흔들리면 크로커다일즈는 오늘 경기도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4구는 아슬아슬한 볼. 첫 타자부터 스트레이트 볼넷이다.


"첫 타자 볼넷, 좋고."


관중석 어딘가. 그라운드가 아닌 핸드폰을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는 남자가 실시간으로 요동치는 정보들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겼다.




"이제 5회를 돌았습니다. 지금까지의 흐름, 어떻게 보십니까."


클리닝타임에 들어서자 캐스터와 해설이 오디오를 채우기 위해 대화를 이어갔다.


"제가 볼 때 이양태 선수가 1회에 크게 무너지지 않은 것이 경기를 팽팽하게 끌고 가는데 결정적이었다고 봅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워리어스 중심타선이 이양태 선수의 변화구를 공략하지 못한 부분이 아쉬웠습니다."


지지부진한 투수전이 이어지는 와중, 이준호의 홈런으로 1:0. 앞서 나가는 크로커다일즈였다.


"박웅 선수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이지만 홈런 한 개를 허용한 것 외에는 잘 버텨주고 있습니다. 시즌 초에 비해 패스트볼 구속이 5km 가까이 떨어졌거든요. 체력 문제든 부상이 있든 로테이션을 한 번 걸러줄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캐스터가 오늘 기록지를 뒤지며 말했다.


"이양태 선수가 5회까지 무실점으로 버텨준 경기는 참 오랜만입니다."


"맞습니다. 모든 크로커다일즈의 팬들이 정말 기대하셨을 장면인데요, 타석에서 볼 때 무브먼트가 상당한 지 많이 벗어나는 공에도 워리어스 타자들이 맥을 못 추고 방망이를 내고 있습니다."


인플레이 타구를 만들어낸 타자가 윤희동 밖에 없을 정도로 방망이가 맞지 않고 있는 워리어스였다.


"네, 실장님. 이제 슬슬 점수 내라고 하겠습니다. 예, 지금 상태로는 오늘도 꽤나 짭짤할 것 같습니다. 예, 연락드리겠습니다."


관중석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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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6화 이글아이 24.08.02 70 0 13쪽
6 5화 목격자 24.08.02 7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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