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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냐
작품등록일 :
2024.07.30 22:05
최근연재일 :
2024.08.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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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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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카르텔

DUMMY


'내가 말 걸어도 될까.'


한 달간 함께 연습하면서 본 희동은 여리지만 강한 사람. 선배들의 텃새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다시 방망이를 잡을 연료로 삼았다.


겨우 신임을 얻어가는 희동에게 갑자기 들어온 민재가 친분을 표현한다면 텃세가 더 심해지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더그아웃에서 들리는 '파이팅' 소리를 들으며 확신으로 바뀌었다.


'응원받는 걸 보니 잘 적응했구나. 희동이도 거리 두는 걸 봐서는 내가 가까이하면 역효과만 날 거야.'


경기에 집중하기로 한 민재가 탄식했다.


'아.'


흔들리던 밤이 꺼내든 카드는 결국 싱커. 대처가 안 되는 몸 쪽 싱커만 연속으로 구사하기 시작했다.


'바깥쪽 슬라이더 하나 보여주고 싱커로 승부 보겠구나.'


"바깥쪽 슬라이더, 헛스윙, 삼진! 파울 홈런이 아쉽네요."


고개를 숙이고 발걸음을 돌리는 희동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하지만 여기는 연습장이 아닌 더그아웃. 코칭스태프와 감독의 권한이 절대적인 공간. 타자에게 민재의 발언권은 없다.


'경기 마치고 살짝 귀띔이라도 해줘야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는 민재의 앞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형. 저 좀 도와주세요."


"점마, 미친 거 아이가?"


"저건 좀..."


아무리 실세라지만. 타격코치와 감독님이 보는 앞에서 바로 옆에 있는 타자 선배들을 패싱하고 이틀 전까지 배팅볼 투수였던 사람에게 쪼르르 가서 도와달라 하는 모습이 좋게 보일리 만무했다.


타격코치는 힐끗, 감독은 무관심.


묘한 기류가 흐르는 가운데 결심이 선 희동이 민재 앞에 섰다.


"저 왕따 당해도 괜찮으니까 저 좀 도와주세요."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고참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왕따라니. 희동아, 우리가 언제 널 왕따 시켰다고..."


"그래, 넌 우리 1번 타자 아니냐. 우리가 남이가."


"뭐가 궁금하다고 했지? 저번에 내가 한 번 설명해 줬던 것 같은데, 하하하..."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그동안 대놓고 눈치 주고 뒷담 하던 인물들이 가장 먼저 엉덩이를 떼었다.


"재미있는 광경입니다."


카메라는 선명하게 더그아웃을 핥고 있었다.


"삼진을 당한 후 어제 등판했던 이민재 선수에게 가서 조언을 구하는 장면입니다."


"가끔 타자들이 투수에게 가서 물어보기도 하거든요. 그래도 저 장면은 인상 깊긴 합니다. 팀의 주축 타자들이 빠진 지금, 이민재 선수를 중심으로 레귤러 멤버들이 쭉 모여서 이야기를 듣고 있거든요?"


"예. 제가 이민재 선수가 등판하면 이야기하려고 아껴뒀던 소식인데, 어제 이민재 선수가 배팅볼 선수로 입단했다는 소스를 전해드렸었죠, 구체적인 기간과 내용을 들었습니다. 입단이 6월 달이고, 한 달 동안 레귤러 멤버들만 따로 경기 전에 개인적으로 불러 한 사람 당 2~30분씩 공을 던져줬다고 해요."


"아, 그러면 단순한 배팅볼 투수가 아니라 맨투맨 코칭을 가미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인가요?"


"거기 까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이민재 선수를 중심으로 모인 타자들이 레귤러 멤버인 것으로 봐서는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워리어스가 상대 선발들에 대한 대처가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이 설명이 되는군요."


뒷걸음질을 쳐 쥐를 잡아내는 해설진이었다.




"덜떨어진 새끼들. 내가 비운 지 하루도 안 됐는데 다 빠져가지고."


집에서 치킨에 맥주를 마시며 TV로 야구를 보던 청태오가 혀를 끌끌 찼다.


"태오야, 우리 진짜 복귀할 수 있는 거 맞지?"


고액 FA 트리오 정우준과 강효민도 청태오의 집에 모였다.


"니는 진짜 불X이 콩알만 하나 와 가스나처럼 구노? 족발이나 하나 더 시키라."


오늘 청태오의 집으로 달려올 다섯 번째 라이더는 족발집 사장님이다.


"7회 초, 2아웃까지 잘 막아줬지만 연속 볼넷은 좋지 않죠."


기계신, 탐슨은 오늘도 트레이드 마크인 무표정과 정교한 컴퓨터 제구력으로 6이닝을 퍼펙트로 지웠다.


하지만 체력이 떨어지면 드러나는 기복이 최대의 약점. 2아웃까지 잡아놓고 연속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좋지 않은 흐름이다.


"2:0으로 리드하고 있지만 동점 주자가 나갔습니다. 뒷문이 불안한 워리어스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요?"


"제 생각에는 어제 압도적인 피칭을 보여준 이민재를 마무리로 돌리고 불안한 김작가에게 8회를 맡기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면 남은 아웃카운트 1개는 누구에게 맡길까요?"


"탐슨을 믿어보는 것이 정석이겠지만 2아웃을 잡고 급격히 흔들리기 때문에 원포인트 릴리프로 진수소 선수를 기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카메라는 불펜을 비췄다.


"하지만 불펜은 아직 가동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뒷문이 불안하기 때문에 본인의 벌떼야구 스타일을 조금 내려놓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김근성 감독의 믿음의 야구를 보는 날이 오는군요."


"하하하."


하지만 중계진의 예상과는 다르게 더그아웃에서 사람이 올라왔다.


"아, 더그아웃에서 올라옵니다. 불펜에서 몸을 풀 시간을 벌어줘야겠죠?"


하지만 올라가는 사람은 통역까지 세 사람.


"감독과 통역이 올라가고, 한 명이 더 올라갑니다. 아!"


전반기 내내 탐슨이 순순히 공을 넘긴 적이 없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공을 감독에게 넘기고 가뿐히 마운드를 내려왔다.


"아, 역시 명장은 명장인가 봅니다. 제 생각과 달랐군요."


"김근성 감독이 선택한 투수는 이민재. 이민재입니다!"


"저 노마가 와 지금 올라오노."


다섯 번째 배달 기사가 도착하니 투수가 바뀌었다.


"야, 좌타자인데 암만 그래도 수소가 나와야 대는 거 아이가."


"사이드암이 좌타자를 공략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물론 구속이 워낙 빠르고 투구폼이 생소한 만큼 타자가 불리한 싸움은 맞습니다."


주자 두 명을 두고 등판한 이민재.


"절마 저거 옆구리 투수라서 잘몬하면 더블스틸 당한다."


모든 관중과 시청자들의 시선이 한 점으로 모였다. 오늘은 어떤 놀라운 모습을 보여줄까.


단 하루, 한 이닝 만에 워리어스 팬을 넘어서 한국의 팬들을 매료시켰다.


"내가 볼 때 다 뽀록이야 저거. 내가 프로 생활만 16년이야. 저런 놈 한 둘 본 줄 알아? 저런 놈들 마이너에 천지 빼까리야. 제구가 돼야..."


"스트라이크!"


탐슨. 탐슨이다.


전광판에 찍힌 구속은,


[156km]


"와 점마, 오바핸드로..."


중계진도 난리법석을 떨었다.


"탐슨이 내려가고 탐슨이 올라왔습니다!"


오늘 탐슨에게 꽁꽁 묶였던 타자라 희비가 엇갈렸다.


"영사기로 탐슨의 투구를 고~대로 재생시키는 것 같습니다."


"요즘 젊은 팬들이 영사기라는 단어를 알까요?"


"제가 어휘 수준을 조금 더 넓혀보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머시, 이 딴 게 다 있노. 이? 태오야 안글나!"


전 타석에서 탐슨이 보여줬던 투구 위치. 컴퓨터로 찍은 것 같은 핀포인트 제구를 그대로 복사해서 같은 자리에 같은 순서로 던져 마무리하고 내려가는 민재였다.


내려가는 민재를 보며 축 늘어지는 따끈따끈한 치즈피자였다.




언론과 뉴미디어와 한국 야구 리그의 삼각편대 연합군.


그들의 비호를 받는 청태오와 승부조작 가담자들.


그리고 그들의 배후에서 이득을 취하던 검은 카르텔.


이권으로 똘똘 뭉친 그들에 맞서 싸우는 것은 창원 크로커다일즈와 모회사 넥시엔슨. 그리고 백수가 된 대기자뿐.


다윗과 골리앗, 골리앗과 다윗의 빅매치가 서서히 판을 키워간다.


-오늘의 뉴스입니다. 넥시엔슨의 주가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폭락함에 따라 투자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넥시엔슨이 조만간 세무조사를 받을 것이라는 루머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넥시엔슨 회장, 최회장이 과거에 운영하던 만두 가게에서 위생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자료 화면에는 급조한 것 같은 엉성한 영상이 재생됐다.


-주변 상인들이 모두 문을 닫은 시간. 최회장이 운영하던 만두 가게는 늦게까지 간판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간판에 붙은 하루살이가 가게의 위생을 저해하고 있습니다. 찜기에서 피어올라오는 수증기에 지나가던 행인이 눈을 찌푸립니다.


-제가 이 길을 자주 지나가는데요, 냄새 때문에 못살겠어요. 아주 망쳐놓고 있다니까요? 제 몸뚱이가 여기 때문에...


중간에 뚝 뚝 끊기는 장면들이 조악한 편집이 들어갔음을 시인하고 있었다.


"저게 무슨 소릴까?"


"'아주 제 다이어트를 망쳐놓고 있다니까요' 아닐까요. 아줌마 손맛이 죽이긴 하니까."


늦게까지 언론의 동향을 체크하느라 야근의 수렁에 빠진 미디어 대응팀과 인턴 신문고는 화면을 보며 자료를 취합하고 있었다.


-스포츠 뉴스입니다. 오늘 대전레이븐즈가 최하위 수원 아쳐스를 상대로 16:1 대승을 거뒀습니다. 고척스파이더스는 부활한 에이스 밤이 6이닝 2실점으로 버텨줬지만 선발 탐슨이 제구 난조로 흔들린 7회 등판한 신인 이민재의 위력투를 앞세운 워리어스가 2:0, 진땀승을 거뒀습니다. 창원 크로커다일즈는...


"그렇지!"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 없는 환호성을 외친 신문고는 이내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창원 크로커다일즈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12:0 대패를 기록했습니다.


"하하... 이게 다 예방주사라고 생각하고..."


가라앉은 분위기를 살리는 것은 역시나,


"간식 먹고 합시다."


만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육즙 가득한 만두.

떡볶이, 각종 튀김과 함께 먹는 매콤달콤 떡볶이.

양념치킨, 찐득한 양념에 야들야들한 닭다리 양념치킨.

피자, 한 입 물면 놓지 않는 끊임없이 늘어지는 치즈 피자.

짬뽕, 답답해진 속을 한 방에 씻어내려 가는 개운한 국물의 짬뽕.

탕수육, 겉은 바삭 속은 촉촉 달콤한 소스...를 부어버린 신문고에게 비난의 화살이 쏘아졌다.


"죄, 죄송합니다 아...!"


아직 사회생활이 부족한 신문고였다.




뜨거웠던 열기가 빠지고 관중석을 가득 메운 관중들이 빠져나가면 갑작스레 어둠이 찾아온다.


텅 빈 경기장에 남아 방망이를 돌리던 윤희동이 넌지시 말했다.


"형. 진짜 일부러 같이 안 있어도 돼요."


경기가 끝나고 모든 오해를 푼 두 사람은 한바탕 웃었다.


"우리 서로 왕따라고 생각한 거지?"


"피해 의식 버리자! 아자 아자!"


다른 선수단은 오해가 쌓인 것 같지만, 아무래도 좋은 희동이다.


"형 진짜 미안한데 호텔 가서 한 번만 더 봐주면 안 돼요?"


자신을 손절한 것이 아님을 깨달은 희동은 더 적극적으로 들이대기로 했다. 이미 손절당했다고 생각하고 포기 직전까지 가 본 만큼, 손절당하더라도 기량을 향상시킬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만큼 희동은 야구에 진심이었다.


"너 이렇게 질척거리면 여자친구 못 사귄다?"


희동을 놀리는 민재는 무거운 짐을 벗은 듯 여유가 생겼다.


"여자친구 없어도 괜찮아요. 형만 있으면..."


소름 끼친다는 표정으로 온몸에 돋은 닭살을 털어낸 민재가 심각한 눈빛을 보내자 빵 터진 희동이 해명했다.


"아니이! 그만큼 저는 지금 야구가 중요하다는 뜻이죠! 형! 내 말 좀 들어봐요! 형!"


슬금슬금 뒷걸음질 쳐 뒷문으로 도망치는 민재를 따라 뛰어나가는 희동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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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1화 개화 24.08.13 2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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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4화 리더 24.08.06 37 0 13쪽
14 13화 물밑 작업 24.08.06 4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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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5화 목격자 24.08.02 71 0 11쪽
5 4화 배팅볼 24.08.01 9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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