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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냐
작품등록일 :
2024.07.30 22:05
최근연재일 :
2024.08.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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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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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미국

DUMMY

공항에 작은 무리가 모였다.


할머니와 두 명의 스승, 박특급과 김근성.


의리를 지킨 워리어스 구단주의 배려로 공항에서 만나 작별인사를 하고 떠날 수 있었다.


"건강해라. 늘 몸 조심하고."


"절대 훈련을 게을리하지 말아라. 내가 시킨 훈련들은 하루도 빠지지 말고 해야 해. 내가 처음 마이너리그에 갔을 때..."


"힘들면 돌아와도 되지 않나 시포."


각자의 배려와 사랑이 담긴 응원에 마음을 다잡은 민재가 결의를 다졌다.


갑자기 일어난 최총재와는 길게 대화하진 못했지만,


'조만간 미국에서 만나기로 했지.'


할아버지 이필승과 나이든의 관계.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고.


그 모든 사건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것은 최총재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


복잡한 일은 모두 한국 땅에 남겨두고 오로지 승리를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야 이민재!"


처음 타본 비행기는 배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배에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자연의 위대함을 경험했던 민재는 개미만큼 작아지는 고층빌딩을 바라보며 인생의 덧없음을 느꼈다.


"안녕."


매일 전화를 붙잡고 떠들었지만 몇 달 만에 다시 얼굴을 보니 반갑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다.


"보고 싶었어."


하고 싶은 말도 많고 전해야 할 이야기가 많지만.


민재의 마음을 한 마디로 대변할 수 있는 말이었다.


"미국 왔다고 벌써 버터 칠 좀 했나 보다? 좀 느끼해졌는데?"


민재의 틈을 놓치지 않고 놀려준 수현이 가볍게 민재를 감싸 안아줬다.


"이제 함께니까 다 잘될 거야. 어떤 일이 있어도 같이 있어줄게."


수현의 위로와는 별개로 검은 양복 입은 직원들이 여기저기서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하하, 어떻게 절 따돌리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미국까지 왔으니 빨리 도장부터 찍으시죠."


스콧 코퍼레이션 아시아 담당 존이 사원증을 휘날리며 달려왔다.




공항의 비즈니스 라운지.


영어로 대화가 된다는 것을 들은 스콧은 당장에 라운지로 쫓아왔다.


"이민재 선수. 당신을 한국 리그에서 빼준 건 순전히 우리의 공로야. 우리의 몫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군."


"난 우승을 원한다."


"널 원하는 팀은 메이저리그 30개 팀 중 전부 다라고 할 수 있어. 왜냐면 넌 아직 전력분석이 되지 않은 미스터리 한 유망주니까. 니 X대로 투구폼 바꿔가면서 100마일을 던지는데 누가 싫어할까. 인간은 뭐든 좋은 쪽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헛된 기대를 안고 살아니까 아마 다들 유니콘을 그리고 있을거야."


그의 건강한 치아가 번들거린다.


스콧이 손을 까딱하자, 존이 와인을 가져왔다.


"이게 뭔 줄 아나?"


아무 라벨도 붙지 않은 평범한 와인 병. 원산지가 어디인지, 어떤 품종인지, 몇 년 숙성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모르겠지. 당연해. 여기에 라벨을 붙이는 게 우리 일이니까."


스콧이 손을 어깨 위로 들어 올리자, 존이 익숙하게 오프너로 코르크 마개를 열었다.


달콤한 향기가 방 안을 가득 채운다. 존이 능숙하게 잔에 와인을 따랐다. 존의 모습은 에이전트보다는 능숙한 바텐더에 가까웠다.


"와인은 귀로 한 번, 눈으로 한 번, 코로 한 번, 입으로 한 번 맛볼 수 있는 종합 예술이지. 우리는 이걸 맛보고 라벨을 붙여."


와인 한 잔에 오감을 흠뻑 적신 스콧이 잔을 기울여 건배를 제안했다.


"술은 판단력을 흐리게 해."


민재의 입에서는 평생을 바다 위에서 파도와 싸워온 선장의 관록이 담긴 말투가 튀어나왔다.


참고로 선장은 알코올중독이었지만.


"하하. 23살? 24살? 이제 2회 초 경기 뛰는 녀석이 9회 말 2 아웃을 살고 있는 투로 말하는구나."


너털웃음을 터뜨린 스콧이 빈 종이에 숫자를 적어 병의 목에 달았다.


[5억 달러]


"이게 우리가 생각하는 자네 몸값이야. 난 하루 만에 네 몸값을 이만큼 뛰게 만들 수 있어. 한국에서는 얼마나 받았지? 2만 불? 운이 좋으면 내년에는 20만 불을 받을지도 모르겠군 그래."


그의 입가를 타고 흐르는 붉은 와인은 흡사 만족할 만큼 피를 빨아 마신 흡혈귀의 그것과 같았다.


"1주일에 100만 불을 벌게 해 주지. 10년 내내. 자네는 이 서류에 사인만 하면 돼."


혀의 미각세포를 하나하나 자극하는 와인이 연하게 식도를 타고 흘러 들어갔다.


심장의 박동과 함께 혈관으로 퍼져나간 달콤한 와인향이 온몸에 열기를 더한다.


황홀한 붉은빛은 스콧을 기쁨의 나라로 데려다주는 듯했다.


"난 우승을 원한다고."


하지만 좋은 와인이 주는 기쁨은 잠시일 뿐.


차가운 심해와 같은 목소리는 포도주의 열기를 앗아갔다.


"그래? 그럼 세 시즌 안에 우승할 수 있는 유망주 뎁스가 좋은 팀으로 보내주지. 총액에서 조금 디스카운트를 감안해야겠지만..."


"아니. 올해 우승을 원해."


"반지 때문인가? 우승 반지로 프러포즈라도 하게? 망할 놈의 반지라면 내 트렁크에 얼마든지 있으니 열 손가락에 다 껴도 돼. 아니, 모자라면 발가락까지 끼우던가!"


스콧의 성난 송곳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난 내 계획이 틀어지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어! 알아? 난 너를 세계 최고의 투수로 만들어줄 거야. 닥치고 사인이나 해!"


"돌려주지, 문어 대가리. 나야말로 내 계획이 틀어지는 게 우주에서 제일 싫다. 한 번 참았다."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으로 멍하니 앉아있던 스콧이 중얼거렸다.


"이건 무슨 우리 할아버지랑 대화하는 것 같군. 내 할아버지가 꼭 저런 말투였지. 바다에서 뒤졌지만."


뱃사람인 할아버지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이었다. 큰 놈을 잡으면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온 동네 사람을 불러 모으고 잔치를 벌였다.


정어리 한 마리 잡지 못하는 날에는 쟁여둔 술로 허기를 달래고 다시 바다로 나갔다.


그래서 스콧의 아버지와 어린 스콧은 항상 배를 곯아야 했다.


스콧이 병적으로 수집과 저축에 빠지게 된 동기이기도 했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스콧에게 큰 전환점이었다. 할아버지와 정반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스콧이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할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술이 웬수지.'


할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스콧은 그 역시 할아버지와 같은 선택을 하고 싶어졌다.


"그럼 네 플랜은 뭐냐. 애송아."




LA의 명문 구단.


최고의 타자들을 돈으로 긁어모아 역대 최고의 타선을 만들어낸 그들은 시즌 134번째 경기를 맞이했다.


서부 1등을 달리는 그들의 승률은 0.597.


134경기 80승으로 가장 먼저 80승 클럽에 이름을 새겼다.


시즌 50 홈런을 눈앞에 둔 거포, 시즌 60개의 2루타를 기록한 중장거리 타자, 30-30을 기록한 호타준족.


각자의 포지션에서 실버슬러거는 당연하고, 리그 MVP 후보로도 손꼽히는 그들 사이에서도 단연 빛나는 존재가 타석에 들어섰다.


시즌 100 도루를 넘긴 괴도.


1941년 이후 단 한 번도 기록되지 못한 꿈의 영역인 4할에 도전하는 남자.


이치로 쇼헤이가 방망이를 빙글빙글 돌렸다.


"오늘도 4할을 유지하면 테드 이후로 1980년 브랫이 기록했던 최장경기 4할인 134경기와 타이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오늘 경기 전에 LA의 단장이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그가 저 선수에게 이번 시즌 4할을 기록하고 선물을 받는다면 뭘 받고 싶냐고 물었더니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뭐라고 했나요."


"구단주의 차를 가지고 싶다고 하더랍니다."


"오우~ 메르세데스? 그 모델은 구하기도 어려울 텐데요."


"단장도 같은 말을 했죠. 요즘에는 구하기 어렵다고. 그랬더니 하는 말이 구단주랑 같은 모델의 차가 아니라 구단주가 타고 있는 그 차를 원한다고 했답니다."


"와우! 요즘 선수들은 대단하네요."


"그래서 오늘 구단주가 걸어서 출근했다는 거 아닙니까. 하하하."


지역 해설이 유쾌하게 떠드는 사이, 타석에 선 그가 스파이크로 바닥을 파해쳤다.


스물넷. 민재와 동갑인 그는 18살에 일본 리그에 데뷔했다.


천부적인 감각과 정밀한 기술, 금강불괴의 신체. 일본 리그를 초토화시키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첫 해에는 3할.


둘째 해에는 30 홈런.


셋째 해에는 40 홈런-40 도루.


넷째 해에는 50 홈런-120타점.


다섯째 해에는 3할 5푼-60 홈런.


여섯째 해에는 70 홈런을 넘겼다.


열도를 폭격하던 거포가 메이저리그에 오자마자 타격폼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버렸다.


"시대를 역행하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렇죠. 모두 홈런과 타구속도에 미쳐있는 리그에서 누구도 가지 않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뜬 공의 시대.


과학의 발전과 함께 현란한 무브먼트와 압도적인 구속을 가진 투수들이 대거 등장한 메이저리그.


인간의 신체로 버틸 수 있는 극한까지 몰아붙여 끌어내는 투수들의 강속구는 타자들의 연속 안타를 억제해 내기 충분했다.


타율은 점차 내려가고, 타자들은 기왕 타율이 낮아진다면 볼넷과 장타로 승부를 보기로 했다.


수비와 무관하게 점수를 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 홈런.


홈런이 많이 나오기 위해서는 더 많은 플라이볼을 생산해내야 한다.


타자들의 메커니즘은 공을 띄우고 강한 타구를 생산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이치로 쇼헤이의 타격은 전혀 달랐다.


"보세요."


우투수의 101마일 투심.


좌타자의 몸에 바짝 붙어오다가 존 안으로 파고드는 마구에 가까운 공.


하지만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 스르륵 방망이를 내렸다.


툭.


빗맞은 것 같은 공이 힘 없이 내야를 건너간다.


열심히 뒷걸음질 친 2루수가 끝까지 팔을 뻗어보지만 절묘하게 키를 넘긴 안타.


성의 없는 타격과 다르게 1루를 밟은 그의 눈은 쥐를 발견한 고양이처럼 호기심이 넘쳤다.


어느 날인가 6타수 6안타를 친 그가 인터뷰를 했다.


"메이저리그랑 일본 리그의 차이점이요? 메이저는 구속이 빨라서 맞추기만 해도 안타가 되던데요?"


투수들 사이에서는 이상한 괴담이 돌았다. 3루에 있는 이치로 쇼헤이보다 1루에 있는 이치로 쇼헤이가 더 무섭다는 이야기.


투수는 거의 1루와 2루 가운데에 서서 배터리와 내야의 혼을 쏙 빼놓자 제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때. 이게 같은 아시아에서 건너온 녀석의 퍼포먼스다. 그러고 보니 너랑 닮았군, 캐논 리?"


민재에게 멋대로 '캐논'이라는 별명을 붙인 스콧은 LA의 홈구장에서도 카메라에 가장 잘 잡히는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민재와 단 둘이 자리에 앉은 스콧은 끊임없이 연락을 받는 척 전화를 들었다 놨다 했다.


걸리지도 않은 전화를 붙들고 심각한 듯 연기를 하는 스콧을 바라본 민재가 한마디 했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나?"


"당근. 이것도 다 비즈니스의 일환이야. 물론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지. 네가 우승할 팀으로만 가겠다고 고집부리지 않았으면 말이다."


서부의 LA와 동부의 뉴욕.


양대 리그의 양대 산맥 중 하나. 그것이 스콧이 찍은 먹잇감이다.


"날 LA로 보낼 건가?"


"그럼 여기 있지도 않았지."


청새치를 낚으려는 어부처럼 낚시를 던진 스콧이 빙긋 웃었다.


"조만간 뉴욕 마무리가 수술할 거야. 그 녀석 팔꿈치는 이제 한계거든. 아직 걔네 감독도 모르는 이야기지만."


구단들과 연결된 병원의 소스까지 쪽쪽 빨아먹는 스콧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내가 여기 있으니 아주 환장할 노릇일 거야. 뉴욕 놈들."


자기들이 가장 필요한 매물을 숙명의 라이벌네 집에 떡하니 전시해 뒀으니.


전화를 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면서도 뉴욕의 전화는 일부러 피하는 스콧.


그의 악랄한 모습은 당연히 전국 중계 화면에 끊임없이 생중계되고 있다.


"이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뛰어올걸? 엉덩이 크고 무거운 줄무늬들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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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화 미국 24.08.22 12 0 12쪽
30 29화 실업 24.08.21 13 0 13쪽
29 28화 기적 24.08.20 16 0 11쪽
28 27화 지배 24.08.19 18 0 12쪽
27 26화 돈 24.08.18 19 0 13쪽
26 25화 아버지 24.08.17 21 0 12쪽
25 24화 관조 24.08.16 20 0 12쪽
24 23화 생소함 24.08.15 21 0 13쪽
23 22화 김나박이, 최 24.08.14 20 0 12쪽
22 21화 개화 24.08.13 23 0 12쪽
21 20화 변신 24.08.12 24 0 12쪽
20 19화 야구 VS 축구 24.08.10 34 0 13쪽
19 18화 야성 24.08.09 29 0 13쪽
18 17화 균형 24.08.08 32 0 13쪽
17 16화 마무리 24.08.07 42 0 12쪽
16 15화 김나박이 24.08.07 42 0 12쪽
15 14화 리더 24.08.06 37 0 13쪽
14 13화 물밑 작업 24.08.06 43 0 12쪽
13 12화 카르텔 24.08.05 51 0 12쪽
12 11화 진실 24.08.05 53 0 12쪽
11 10화 승부조작(2) 24.08.04 59 0 12쪽
10 9화 승부조작(1) 24.08.04 58 0 12쪽
9 8화 구원투수, 배팅볼러 24.08.03 64 0 13쪽
8 7화 100마일짜리 배팅볼 24.08.03 68 0 12쪽
7 6화 이글아이 24.08.02 70 0 13쪽
6 5화 목격자 24.08.02 7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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