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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냐
작품등록일 :
2024.07.30 22:05
최근연재일 :
2024.08.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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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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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목격자

DUMMY

월요일. 일주일에 단 하루, 경기 없는 날. 크로커다일즈와의 시리즈 덕에 시골로 내려온 민재는 서둘러 요양원으로 향했다.


이제 곧 다가오는 올스타 브레이크 외에는 또다시 전국을 돌아다녀야 하니 할머니와 스승 박특급을 볼 기회가 많지 않다.


"그냥 여친 만나러 온 거 아니고?"


퉁명스런 박특급의 핀잔에 슬쩍 시선을 피한 민재에게 할머니가 손을 내밀었다.


"손주야.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남자가 어디 가서 얻어먹고 다니면 안 된다. 나가면 돈은 네가 써야 하는 게야."


'할머니...'


자식을 잃고 10살짜리 손주를 먹이고 입히기 위해 할머니가 얼마나 고생을 겪으셨는지 잘 안다. 그렇기에 할머니가 아끼고 아낀 쌈짓돈이 얼마나 귀한지 모를 리 없었다.


할머니가 손을 펴자, 민재의 손에 말랑말랑한 것이 떨어졌다.


'으아아.'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 민재의 손에서 폴짝. 청개구리 한 마리가 뛰어내려 수풀 속으로 달려갔다.


"할머니!"


하하하. 오랜만에 긴장이 풀리고 말았다. 전역하자마자 투구폼 구현 프로그램에 참여하질 않나, 반년 만에 프로구단에 배팅볼 투수로 입단하질 않나. 아무도 예상하지도 계획하지도 못할 특이한 테크트리였다.


투수들을 분석하고 준비하다 보면 시계가 훌쩍 달려 세네 시간이 저절로 가있곤 했다. 연습을 오는 타자들도 스타일이 달라서 맞춰주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민재야. 밥은 입에 잘 맞더냐."


"네. 구단 직원이라고 공짜로 줘서 삼시 세끼 다 잘 먹고 있어요."


옛날 사람인 할머니는 언제나 먹는 것이 걱정이다. 어릴 때 잘 먹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볼 때마다 과식을 유도하는 할머니였다.


"그래서 네 마누라는 언제 온다냐."


지겹다는 듯 어슬렁어슬렁 거리는 박특급을 보고 할머니가 쏘아붙였다.


"또 젊은 아가씨 온다고 그럴 거야!"


"에이, 내가 언제 그랬다고."


거울을 보며 머리카락을 정리하던 박특급이 황급히 모자를 눌러썼다.


"제자야. 언제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김근성 그 양반은 절대 널 포기하지 않을 거야. 지금 명분이 없어 그렇지, 명분만 생기면 널 아주 갈아 마시려고 할 거다."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하는 말과 다르게 손은 자연스럽게 예쁘게 담긴 참외를 향했다.


찰싹.


"아 먹으라고 깎은 걸 와 당신이 먹으려고 해. 당도 있는 양반이."


"아잇, 참. 손주만 그렇게 챙기고 그러면 내가 섭섭하지."


"당신이 젊은 가스나에 혹 하는 거 보는 내 속은 어떻겠어!"


깨갱.


약쟁이들을 상대로 불같은 패스트볼로 윽박지르던 박특급은 어디 가고 작은 체구의 여인 앞에서 호랑이 앞의 강아지처럼 되어버렸다.


딸랑.


"저 왔어요!"




"먹고 싶은 거 있어?"


택시를 타고 시내로 나온 소꿉친구 둘.


단 둘이 시내를 걷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거기 가볼까?"


'만두장수 신화'가 시작된 장소. 시장 안의 만두가게에 들어갔다.


"이게 누구야. 유명 인사 수현이 아냐. 완전 아가씨가 다 되었구나? 옆은 누구니? 남자친구? 얼굴은 낯이 익은데."


"안녕하세요 아줌마, 잘 지내셨어요?"


"설마, 민재니? 언제 이렇게 컸어! 둘이 너무 잘 어울린다 예."


아주머니의 인심으로 만두를 양손에 포장해서 나왔다.


"여기서 진짜 많이 놀았는데."


민재의 말에 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리고 넷이 많이 싸웠지."


늘 진심을 이야기하는 민재와 진실을 이야기하는 수현. 둘은 잘 맞을 때는 정말 잘 맞았지만 가끔 싸울 때는 무지막지하게 싸웠다.


"그렇게 순둥 한 애가 가끔씩은 왜 그렇게 고집을 부렸는지 몰라."


민재의 머리에 붙은 꽃잎을 떼어주자, 민재가 한 마디 했다.


"너는 너무 차가웠어. 대한이가 진지한데 좀 들어줄 수도 있지."


"그게 진실은 아니잖아? 장난감 총인데 죽으라고 한다고 죽을 순 없잖아."


언제나 약자라고 생각하는 편에 섰던 민재다. 하지만 이제 민재도 안다. 약자라고 전부 선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렇게 말이다. 만두 가게로 향할 때 본 구걸 하던 노인이 가죽재킷을 입고 골목에 세워둔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유유히 시장을 벗어났다.


"너는 언제나 옳은 말을 했던 것 같아."


민재의 말에 수현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모든 진실을 다 아는 사람은 없잖아. 나는 너한테 동전은 뒷면도 있다는 걸 배웠어."


주거니 받거니 하며 걷다 보니 길고양이 한 마리가 만두 냄새를 맡고 서성거렸다.


"귀엽네."


쪼그리고 앉아 고양이에게 손을 내민 민재를 보며 수현도 같은 생각이다.


"귀엽네."


'응?'이라는 표정으로 올려다보는 민재에게 말했다.


"고양이 말이야."


"하악!"


갑자기 하악질을 하더니 민재의 손을 할퀴고 골목으로 뛰어가버렸다.


"저 녀석이 귀엽다고 해줬더니. 괜찮아?"


"응. 쟤도 놀랐나 봐."


"기다려봐. 내가 혼내줄게."


혼내주겠다고 고양이가 사라진 골목으로 팔을 걷어붙이며 따라가는 수현이었다.


"귀엽네."


자신을 위해 대신 나서주는 수현을 보며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잠깐만."


골목으로 들어가던 수현이 갑자기 멈춰 섰다.


'아.'


서로 몸이 부딪힌 둘이 어색하게 눈을 한 번 맞추고, 골목 너머 도로가로 시선을 옮겼다.


"저 사람, 이양태 아니야?"


크로커다일즈의 선발 투수, 이양태. 그가 분명했다. 본인은 사복을 입고 있었지만 양복을 입은 무리에게 둘러싸여 이런 후미진 골목에서 현금을 다발로 주고받는 것이 일반적인 일은 아니었다.


"첫 타자 볼넷, 300. 5이닝 언더, 300."


"저거, 설마..."


"맞는 것 같아."


일단 사진 찍어놓고,


-야옹!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갑자기 고양이가 울기 시작했다.


"뭐야, 거기. 막내야."


"예, 형님."


갑자기 뛰어오는 빡빡이의 발소리에 비상이 걸렸다.


"여긴 내가 맡을 테니까 너는,"


"자기야! 이런 데서는 안된다니까."


"응...? 뭘...?"


"싫어. 여기선 안돼!"


"에이, 미친 년놈들아! 그런 건 집에 가서 해!"


퇘.


코 앞까지 다가온 빡빡이는 커플의 애정행각 소리에 침을 뱉으며 뒤로 돌아가버렸다. 그의 눈가가 촉촉해진 것은 기분 탓이리라.


두 배로 빠르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려고 안간힘을 쓰던 민재는 자신이 쓰고 있던 모자를 수현의 머리에 눌러 씌웠다.


"너 그런 거 어디서 배웠어. 그런 거 어디 가서 하지 마 진짜."


"왜? 이 편이 제일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선택이잖아."


"몰라. 아무튼 그거 하지 마 진짜."


이마부터 목까지 시뻘게진 민재가 모자챙으로 수현이 올려다보지 못하게 꾹 눌렀다.


"아 왜?"


"진심으로 착각한다고. 그런 거."


'착한 생각, 착한 생각.'


속으로 수 백 번 다짐하고 다짐하는 민재였다.



"한 번 보자."


근처의 카페로 대피한 둘은 몰래 찍은 증거사진을 확인했다.


"이건 고양이 사진이고, 이건 뭐야. 우리잖아..."


너무 급한 나머지 셀카모드로 해놓고 열심히 촬영을 눌렀나 보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둘의 표정이 생동감 넘쳤다.


"아 진짜..."


"아까 봤던 커플 맞죠?"


사진을 보고 있던 둘의 앞에 아래입술을 깨문 이양태가 나타났다.


"누구세요?"


일단 시침을 뚝 뗀 민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프로 선수라서 파파라치가 좀 있거든요. 그래서 조금 의심스러워서. 그쪽이 찍은 사진에 저 안 나오는 거 맞죠?"


꿀꺽. 마른침을 한 번 삼킨다.


"제가 보여드려야 할 의무는 없는 것 같은데요."


"제가 봐야겠다는데 이유가 필요할까요?"


조금 짜증이 난 이양태가 고개를 좌우로 까딱까딱 하니 카페 밖에 있던 남자들이 하나 둘, 들어왔다.


"무섭게, 왜 이래! 보여주면 되잖아요. 자 봐봐요."


순순히 폰을 넘겨가며 보여주는 수현. 다행히 아직 확인하지 못한 뒷 장 사진에도 두 사람의 적나라한 표정만 담겼을 뿐이었다.


피식. 오해가 풀린 이양태가 외투 안쪽으로 손을 넣어 지갑을 꺼냈다.


"실례를 했으니 사과를 해야겠죠?"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신사임당 열 장을 덥썩 수현의 손에 쥐어줬다.


"이걸 왜 줘요. 당신 사람 그렇게 돈으로 쉽게...!"


열받은 민재가 돌아서는 이양태의 어깨를 잡으려 하자 수현이 막았다.


"사진 10장 본 것치곤 괜찮은 대가네요. 유명인이신 것 같은데 몸 조심하세요."


이양태는 손을 흔들며 유유히 빠져나갔다.



"그 인간이 불손한 의도로 접근하면 어쩌려고 얼굴 다 나온 사진을 막 보여줘!"


"저쪽 입장 말도 사실이잖아. 자기 얼굴 나오면 기분 나쁘지."


"나중에라도 해코지할 수 있어. 돈도 함부로 막 받았다가 나중에 탈 나면 어쩌려고..."


"왜 화를 내?"


"어?"


자기도 모르게 흥분해서 마구 몰아치던 민재가 이성을 되찾았다.


"너한테 뭐라고 하려고 한 건 아니고..."


"그래. 남들은 솔직하길 원한다면서 너는 항상 솔직하지 못하지. 솔직하게 말해. 나 걱정됐다고. 위험한 일에 휘말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응 맞아."


눈시울이 살짝 붉어진 민재였다.


"괜찮아, 괜찮아. 나도 다음부터는 좀 더 조심할게. 날 위해 나서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네? 고마워. 개처럼 벌었으니까 정승처럼 쓰자."



알아선 안 되는 것을 알아버린 기분이다. 선악과를 먹은 인간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이양태가 분명 부당한 일에 연루된 것 같은 정황이다.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그가 흔들릴 때 공략하지 못한 워리어스 타선이다. 분명 이양태의 투구폼으로 던져줄 때는 다들 곧 잘 받아쳤다. 오히려 경기에서 안타를 하나 만들어낸 윤희동만 연습 때 애를 먹었을 뿐.


'연습 때 그렇게 잘 치던 공을 실전에 건드리지도 못하는 게 말이 되나?'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복합적으로 떠오른다. 조직적인 승부조작이라면 앞뒤가 딱딱 맞아떨어진다. 첫 타자 볼넷과 5이닝 무실점.


'설마. 워리어스 전체를 매수할 리는 없을 테니까.'


50만 원을 다 쓰기 전 까진 집에 보내주지 않겠다는 수현의 말에 카페, 떡볶이, 탕후루, 보드게임, 와플, 방탈출 카페, 저녁으로 치킨까지 먹고 남은 돈으로 어르신들 간식까지 사서 배달하고 숙소에 들어온 민재다.


이제 홈 연전을 마치면 올스타 브레이크. 여기에서 스윕을 한다면 가을야구 진출도 더 이상 꿈이 아니다.




"예 실장님."


"너 병신같이 돈 길거리에서 받다가 들킬 뻔했다며?"


"아닙니다. 그냥 골목에서 그거 하던 커플이 있어서 오해가 좀 생겼을 뿐입니다."


"닥치고 앞으로는 다른 곳으로 바꿔. 아무리 CCTV 없어도 넌 얼굴 다 알려진 놈이 길바닥에서 그러면 되냐."


"알겠습니다."


"새끼, 진작 그럴 것이지 혓바닥이 길어. 끊어라."


'시발. 누군 이러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아나.'


여친 앞에서 까부는 남자애 기 한 번 죽이겠다고 오십을 태워서 돈이 모자라다.


"그년 얼굴이 반반하긴 했지. 모자 때문에 실물은 잘 못 봤지만."


사진으로 본 그녀는 아주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있었다. 아래 입술을 하도 깨물어 피 맛이 느껴지는 이양태가 어두운 방에 앉아 모니터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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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7화 지배 24.08.19 17 0 12쪽
27 26화 돈 24.08.18 19 0 13쪽
26 25화 아버지 24.08.17 21 0 12쪽
25 24화 관조 24.08.16 19 0 12쪽
24 23화 생소함 24.08.15 21 0 13쪽
23 22화 김나박이, 최 24.08.14 19 0 12쪽
22 21화 개화 24.08.13 22 0 12쪽
21 20화 변신 24.08.12 23 0 12쪽
20 19화 야구 VS 축구 24.08.10 33 0 13쪽
19 18화 야성 24.08.09 28 0 13쪽
18 17화 균형 24.08.08 3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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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3화 물밑 작업 24.08.06 4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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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9화 승부조작(1) 24.08.04 5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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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화 목격자 24.08.02 71 0 11쪽
5 4화 배팅볼 24.08.01 9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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