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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냐
작품등록일 :
2024.07.30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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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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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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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야구 VS 축구

DUMMY

"와... 너희 팀 외국인 선수, 장난 아니다..."


여기까지 와서 꼭 야구를 봐야 하나 싶은 표정의 수현이 살짝 퉁명스럽게 말을 던졌다.


"응. 그린은 열정이 장난 아니지. 농구할 때도 그렇고."


아직 의중을 눈치채지 못한 민재가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자, 잠깐 상상에 빠진 수현이다.


'민재가 저렇게 되면 어떡하지?'


곁에 있는 사람을 닮는다고 하지 않던가. 민재가 외국인 트리오와 희동 외에 친한 사람이 없다는 걸 떠올린 수현은 괜히 걱정이 됐다.


'그래도 내가 얘 하나 못 이길까.'


180cm에 한 80kg 나갈까? 남자의 체중을 잘 가늠하지 못한 수현은 잠깐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다.


민재의 무해한 천성을 생각할 때 지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내가 꽉 잡고 살지 뭐.'


저 멀리 갔던 생각이 돌아오자,


"여기."


경기장 좌석에 도착했다.


휘이이익!!


푸른 잔디가 펼쳐진 경기장.


휘슬과 함께 울산에서 열리는 울산과 제주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호동신은 어디 있나~"




경위는 이렇다. 야구 외에는 모르던 민재.


"학교에서 축구하지 않았나?"


"난 항상 피구만 해서."


'아, 그렇구나.'


초등학교 때 축구 반 대항전. 민재가 상대팀 수비와 몸싸움을 하다가 신문고를 날려버렸다.


넘어지면서 다리를 갈린 신문고의 피를 본 순간 전의를 상실한 민재는 그날 이후 더 이상 축구를 하지 않았다.


"그럼 호동신도 모르겠네?"


"호동신?"


"있어. 막을 수 없는 선수. 기분 전환 한 번 하자."


그렇게 해서 민재와 수현은 할머니를 보러 가는 길에 울산에 들렀다.


주차장에 자리가 없어 뱅글뱅글 돌고 있는 대한을 버리고 단 둘이 앉아 탁 트인 시야를 자랑하는 2층 자리에 앉았다.


'와.'


항상 마름모꼴 다이아몬드의 그라운드만 보다가 탁 트인 직사각형 잔디밭을 보니 한 번 저 위에서 뛰어보고 싶은 마음이 튀어 올랐다.


'그러고 보니 군대에서도 축구는 항상 빠졌구나.'


축구하다 부상당해서 구보 못하면 안 된다고 딱 잘라버린 주임원사 덕분에 오각형과 육각형이 조화롭게 자리 잡은 축구공은 발 끝도 대보지 못했다.


당시에는 정말 다행으로 여겼었는데.


'한 번쯤은 경험해 봐도 괜찮을 뻔했어.'


조금은 후회가 생긴 민재였다.




민재와 수현이 축구를 보기 위해 중계 화면을 닫아도, 경기는 계속된다.


그린의 강력한 어필이 받아들여져 출루에 성공했지만 후속타의 불발로 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물러났다.


"1회 초 윤희동의 선제 솔로 홈런으로 워리어스가 스코어 1:0, 앞서나갑니다."


워리어스 마운드는 4선발, 박희동이 등판했다.


최고구속 150 초반의 패스트볼이 매력적이지만, 기복이 심한 투수.


"박희동 선수 경기는 1회 공 10개만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죠~ 팬들 사이에서요."


"그만큼 경기마다 기복 있는 모습을 보인다는 건데요."


윤희동과 성만 다르고 이름은 같은 투수.


27살까지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잘하는 경기와 안 되는 경기의 편차가 너무 커서 잘하는 날은 큰희동, 못하는 날은 짭희동으로 불렸다.


"오늘은 찐희동이냐? 짭희동이냐?"


머리가 벗겨진 중년 팬이 외치자, 그 방향으로 손을 흔들어줬다.


"이노마 오늘 멘탈 딱 잡았는데? 불펜에서 재미 좀 봤나 부지?"


"오늘 경기의 1구, 갑니다~ 아."


캐스터의 말이 뚝. 포수와 사인이 맞지 않았는지 빠른 공이 심판의 마스크를 맞췄다.


"아, 심판이 정통으로 맞았어요. 일단 이상은 없다고 사인을 보냅니다."


포수에게 공을 건네주는 심판의 표정이 좋지 않다.


"2구, 갑니다~ 볼이네요."


좌타자 몸 쪽으로 파고 들어가는 슬라이더. 심판에 따라잡아줄 수도 있는 공이다.


"2볼로 몰립니다."


머쓱한지 땅을 한 번 고르고 스파이크를 털어냈다.


3루 쪽 투구판을 밟고 던지는 좌타자 몸 쪽 공. 이번에도 좋은 코스다.


"또 볼입니다. 3구 연속 볼~ 역시 홍기창 선수 눈이 좋네요."


상태를 직감한 워리어스 팬들이 머리를 감쌌다.


"아빠. 우야노, 오늘 안 되는 날인갑다."


소년 팬은 애써 아빠를 위로했지만 본인이 더 실망한 티가 역력하다. 등에 적힌 박. 희. 동. 세 글자가 소년 팬의 마음을 대변했다.


"우야겠노. 엄마한테 잘 부탁해 가, '박' 자를 '윤' 자로 좀 고치봐라."


4구는 복판에 욱여넣는 150km 직구. 타자가 하나 지켜봤다.


"어이이이!"


드디어 심판의 손이 올라갔다.


"오늘 심판의 좌우 존이 조금 좁은 것 같죠~?"


캐스터가 넌지시 언급하자,


"경기의 일부입니다. 적응해야죠."


분쟁의 소지를 차단하는 나해설이었다.


로봇 심판, ABS(자동투구판정) 시스템의 도입에 대해서도 여론이 짙게 형성되고 있다. 야구계 관계자인 만큼 이런 발언 하나하나가 나중에 있을 후폭풍의 땔감이 된다.


인간 불신이 사회의 메가트렌드가 되어버린 지금, 먼저 베푸는 선의와 호의, 신뢰는 때로는 미련해 보이고 손해 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저희가 집중해서 봐야 할 점은 얼마나 일관성이 있느냐겠죠."


나해설이 단서를 달았다.


"그렇습니다. 심판마다 고유의 존이 있고, 그것을 찾아가고 적응하는 것은 투수와 타자 모두에게 중요한 능력 중 하나입니다."


"또 포수의 능력이기도 하죠. 볼을 스트라이크로 만들기도 하고 스트라이트를 볼로 만들기도 하는 아주 중요한 능력입니다."


포수의 사인이 전달되었다.


'커브란 말이지?'


커브 그립을 잡은 박희동이 힘차게 공을 던졌다.


"뒤로 빠졌습니다! 와일드피치! 타자는 어디까지 갈 것이냐! 달립니다! 계속 달립니다! 타자 2루, 2루에서 세잎! 홍기창이 2루에 안착합니다!"


때로는 내 능력과 상관없이 주어지는 기회들이 있다.


"무사 주자는 2루입니다. 여기서는 포일로 기록이 되는군요."


팬들이 아쉬움을 삼켰다.


"엔젤스의 2번타자 박택용 타석입니다. 콧수염이 더 진해졌네요?"


콧수염이 인상적인 좌타자 박택용이 타석에 섰다. 최근 방망이가 잘 맞지 않아 부담이 있는 박택용이 흐름을 읽는다.


'3연속 볼에, 가운데 하나. 커브는 알까기. 변화구는 버리고.'


"지금 제가 박택용 선수라면 무조건 패스트볼만 노립니다. 제구가 잘 안 되니까 초구는 무조건 집어넣을 거라고 판단할 것 같습니다. 보시죠."


자신 있게 예측한 나해설의 말은 적중했다.


"몸 쪽 휘어져 들어오는 슬라이더에 크게 헛칩니다."


다만 구종을 틀렸을 뿐.


"패스트볼이 올 것이라 봤는데 역으로 갔군요. 배터리의 수싸움이 좋습니다."


최근 컨디션이 안 좋아도, 썩어도 준치라고 1루를 채우는 한이 있더라도 어렵게 가겠다는 계산이다.


'변화구 한 개 더? 아이씨, 또 놓치면 안 되는데.'


밴치의 지시를 받은 포수, 장민호의 속이 덜컹했다.


주전 강효민이 있을 때는 간간히 대타로 나오기만 했던 자원. 그만큼 힘 하나는 진퉁이지만 나머지는 다듬을 것이 너무 많은 원석에 불과했다.


모든 어린것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군대에 다녀온 23살 거포에게는 아직 긁지 않은 복권처럼 기대감이 있다. 기대를 환호로 바꾸느냐 실망으로 바꾸느냐는 본인의 땀이 방향을 잡아갈 것이다.


'커브? 점마 또 알 까는 거 아이가?'


누군가는 의심한다.


'이번에야말로 직구다.'


누군가는 확신한다.


"투수, 던집니다. 바운드볼! 이번에는 블로킹~ 앞에 떨궈 놓습니다. 2루 주자는? 움직이지 못합니다!"


원 볼 원 스트라이크. 박택용에게 작전이 내려온다.


'런 앤 히트? 존에 들어오지도 않는 공을 치라고?'


누군가는 의심한다.


'드디어 직구다. 빠른 공이 낫지.'


누군가는 안심한다.


"바깥쪽, 잡아당겼습니다! 높게 바운드된 공, 투수 잡아서 1루~ 아웃~~ 그 사이 2루 주자는 3루까지!"


"투수가 잡았을 때는 3루 쪽은 등지고 있어서 어려웠어요. 차라리 안전하게 1루 선택한 것이 좋았습니다."


'팀배팅, 팀배팅.'


안도의 한숨을 내쉰 박택용이 조용히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90분. 세 번의 휘슬이 울리고 경기가 끝났다.


"어때? 재미있었지?"


경기는 호동신의 헤트트릭을 앞세운 울산이 4:0으로 가볍게 승리했다.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인 그는 슈팅, 위치 선정, 스피드, 몸싸움, 볼 컨트롤, 드리블 등 모든 기술을 하나의 단어로 담아냈다.


'스트라이커.'


홀로 6명의 선수를 제치고 유유히 그물망을 흔드는 장면은 민재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고속 드리블에 곁들이는 헛다리 짚기는 수비를 풍선인형처럼 춤추게 만들고, 몸싸움 한 번이면 저 멀리 날아가는 선수들이 하이라이트 필름을 만들었다.


개인 돌파 후 골키퍼를 따돌린 골, 중거리 슈팅으로 마무리한 골, 크로스에 이은 발리슛 마무리까지.


큰 부상을 입고 갱생해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한 시즌씩 세계의 여러 리그를 순회 중인 그를 한국 리그에서 보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어때. 축구랑 야구의 차이가 좀 느껴져?"


"일단 경기 시간."


축구는 전반과 후반 45분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서 플레이한다.


"야구는 27개 아웃카운트가 다 잡힐 때까지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잖아."


"또?"


"인원수도 다르지."


11명의 축구와 9명의 야구.


"그런 거 말고."


잠깐 고민한 민재가 말했다.


"야구는 감독님도 유니폼을 입는데 축구는 양복을 입더라."


'음.'


예상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감독도 트레이닝 복 입기도 해."


"음, 야구는 수비랑 타자의 일대다 승부인데 축구는 팀 대 팀 경기인 것 같아. 물론 오늘은 한 사람이 팀을 이겼지만."


"또또,"


"야구는 자기를 희생할 수 있지."


"어?"


경기장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가던 수현이 멈칫, 인파에 밀려 앞서가는 민재의 뒤통수를 바라봤다.


덥석. 멀어지는 수현을 인지한 민재가 팔을 뻗어 수현의 손을 잡았다.


"같이 가자."


계단을 다 내려올 때까지 손을 꼭 잡은 둘은 평지로 오자마자 서로 손을 놓았다.


'따뜻하다.'


민재의 손을 잡은 적이 처음은 아니다. 어릴 때는 항상 같이 손을 잡고 다니고, 오히려 손 안 잡는다고 싸우기도 했다.


따뜻하고 단단한 민재의 손을 잡은 수현은 비가 오던 그날과는 또 다른 감정을 느꼈다.


"희생 번트나 희생 플라이 말이야."


'아하.'


아직 축구와 야구의 차이점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구나.


"야구에서 제일 멋진 부분이라고 생각해. 희생을 기억한다는 거."


자신의 생명과 팀의 이익을 맞바꾸는 것. 어쩌면 민재를 가장 닮아 있는 기록이기도 했다.


'넌 언제나 희생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구나.'


충분한 대답을 들은 수현이 웃으며 말했다.


"난 야구의 득점 방식이 마음에 들어."


'득점?'


포지션이 투수라서 득점보다는 실점에 더 민감한 민재였다.


"야구는 한 방에 4점도 얻을 수 있잖아. 축구는 아무리 잘해도 1점이지만."


극적인 반전. 큰 점수차라도 이것 한 방이면 역전할 수 있다는 기대감. 그것이 인간 삶의 동력이었다.


"축구는 공을 골대에 넣어서 득점하지만 야구는 집 나간 사람들이 개고생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잖아?"


과연 그랬다. 윤희동처럼 홈런 한 방으로 금방 돌아올 수도 있고, 그린처럼 1루에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그대로 끝나기도 한다.


홍기창처럼 운 좋게 2루까지 가기도 하고, 박택용처럼 희생하기도 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출루에 성공한 타자는 이제 주자가 되어 다양한 시련에 직면한다.


주자는 공을 던질 수도, 칠 수도 없다. 주어지는 상황을 읽고 1루, 2루, 3루. 여러 관문을 지나고 난관을 돌파하다 보면 저 멀리, 90피트 앞에 내가 그리던 집이 기다리고 있다.


그 집(홈)에 들어가면 먼저 집(더그아웃)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료들이 손뼉을 맞부딪히며 환영해 준다.


"그런데 그거 알아? 그 집(홈)은 사실 내가 처음 서 있던 자리라는 거. 그리고 꼭 홈런을 치지 않아도, 죽어도 돌아갈 수 있다는 거."


알쏭달쏭. 알듯 말 듯. 수현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그걸 알아채기도 전에 민재의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나왔다.


'돌아갈 곳. 내 뿌리.'


"언제나 기다리고 있을게. 홈런을 치든, 아웃이 되든."


한참 큰 민재의 머릴 쓰다듬으며 조용히 기다려줬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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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1화 개화 24.08.13 23 0 12쪽
21 20화 변신 24.08.12 24 0 12쪽
» 19화 야구 VS 축구 24.08.10 34 0 13쪽
19 18화 야성 24.08.09 29 0 13쪽
18 17화 균형 24.08.08 32 0 13쪽
17 16화 마무리 24.08.07 42 0 12쪽
16 15화 김나박이 24.08.07 4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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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3화 물밑 작업 24.08.06 43 0 12쪽
13 12화 카르텔 24.08.05 5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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