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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냐
작품등록일 :
2024.07.30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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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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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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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승부조작(1)

DUMMY

"이거 어떻게 할 거야."


"실장님. 눈알 뒀다 뭐 하셔? 이게 내 잘못이야?"


청태오도 할 말은 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모든 변수를 통제하고 있다. 결정적인 순간 아웃 당하기, 첫 타자는 볼넷, 극적인 역전, 5회 이전에 대량 실점.


곳곳에 깊이 뿌리내린 그의 영향력은 뒷세계의 큰 손들이 굴리는 기업에 승리를 담보했다.


베팅이 적게 몰린 쪽으로 경기 방향을 뒤집어버리고, 때로는 짜릿한 역전승으로, 가끔은 이해할 수 없는 대량 실점으로 경기의 판도를 뒤집었다. 꼬리가 길면 잡히기에 작전은 매주 토요일과 간혹 오는 세이브 상황 위주로 교묘하게 벌어졌다.


그의 네트워크는 워리어스를 넘어 리그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작은 형님, 이번에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떻게 되긴. 위약금 토해내고 말았지."


혜성같이 등장한 파이어볼러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한 건 스파이더스만이 아니었다.


짜릿한 승리의 기쁨을 누리는 워리어스 팬들과 달리 웃어도 웃지 못하고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이들이 연습실 귀퉁이에 모여들었다.


"CC 돌려봐. 이놈이 여기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모두가 퇴근한 야심한 밤,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CCTV를 돌려보기 시작했다.


"얼씨구? 스티브 이놈이 주모자였나?"


어디서 괴물 같은 외국인 셋을 데려와 꼴찌 싸움을 해야 할 워리어스를 중위권으로 만들어놓더니. 어디서 주워온 배팅볼 투수가, 아니 실제로 던지지는 않았으니까 마네킹 투수가 더 괴물이었을 줄이야.


"스티브 권, 이 새끼 악마 아냐?"


악마가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 청태오는 생각 했다.


"왜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냐. 응?"


조금만 더 하면 은퇴하고 정계에 진출할 자금이 다 모인다. 선수로 쌓은 인지도와 예능에 출현해 얻은 좋은 이미지는 조만간 있을 지방선거에서 몰표를 쓸어 담을 초석이었다.



'악마는 너지, 청태오!'


연습벌레 윤희동은 오늘도 연습실에 남아 방망이를 휘둘렀다. 1:1 코치처럼 훈련을 도와주던 민재가 정식 투수로 전환되면서 던져줄 사람이 사라진 것은 아쉽지만, 민재가 모두에게 인정받기를 바라던 희동의 소원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졌다.


스티브 권의 제안으로 투구를 지켜본 감독, 김근성은 단서를 달았다.


"내가 던지라고 지시하는 폼으로만 던질 것. 그것이 내 조건이야."


민재는 이를 수용했고, 곧바로 구단에서 절차를 밟았다.


오늘 출루를 하지 못한 희동은 나머지 연습을 마치고 민재를 만나러 내려가려던 참이었다. 불을 끄자마자 들리는 발소리에 민재인가 싶어 커튼 뒤에 숨었더니 웬걸.


시커먼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와 연습실 CCTV를 돌려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청태오, 강효민, 정우준...'


팀의 핵심 선수들. 공통점은 고액 FA라는 것. 그 외에 처음 보는 사람도 있고, 익숙한 사람도 보였다.


'투수코치님?' 조금 아리송했다. 저들은 왜 연습실을 찾은 것일까. 민재의 기량을 확인하기 위해서? 아니면 무언가 문제를 삼기 위해?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청태오는 우리가 이기는 걸 원하지 않는 건 확실해. 가을야구 가기가 싫은 건가?'


가을야구를 가면 뛰어야 할 경기가 늘어나니까. 그런 단순한 생각을 할 때쯤.


'아차. CCTV에는 내가 여기 있는 게 그대로 나올 텐데...'


끼이이익.


연습실 문이 소름 끼치는 소리를 냈다.


"여기서 뭣들 하나?"


스티브 권. 육성군 총괄이었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스티브. 당신, 이 피칭머신 만든 것도 당신이잖아? 그런 대단한 양반이 우리나라는 왜 왔어? 엉? 여기서 뭐 하는 거냐고!"


벽에 세워진 방망이를 잡은 청태오가 성큼 다가가자 주변에 사람들이 말리기 시작했다.


"당신 때문에 내 계획이 다 틀어지게 생겼어!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할 거냐고?"


불 같이 화를 내는 그를 향해 평온한 얼굴의 스티브가 슬쩍 떠봤다.


"내가 뭘 망쳤는지 하나도 모르겠군. 뭐 오늘 경기는 강호정에게 쓰리런을 맞고 패배하기로 약속이라도 했나? 아니면 박호병에게 그랜드슬램?"


"죽어!"


누군가 말릴 새도 없이 손에 든 방망이가 스티브의 머리로 향했다.


텁.


어둠 속에서 손이 불쑥 나타나 스티브의 코 앞에서 방망이를 낚아챘다.


"이게 무슨 짓일까? 퍼킹 코리안 빅보이."




늦은 저녁. 첫 등판을 9회 말 노아웃 1, 2루 상황에서 치른 신인 투수 이민재가 거울 앞에 섰다.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나와 거울을 보니 떡 벌어진 어깨 하며 탄탄한 상체가 나름 봐줄 만했다. 유연성이 생명인 투수의 몸답게 너무 근육질도,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않은 이상적인 상태.


'할머니가 보셨으면 살 좀 찌라고 하시겠지?'


예기치 못한 첫 등판으로 아직 누구에게도 연락을 하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키워준 할머니, 투수가 되도록 이끌어준 스승 박특급, 복학해서 근근이 연락이 닿는 신문고와 금새 여자친구를 만들어 날아다니는 황금마티즈 최대한.


그래도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연인보단 멀고 우정보다는 가까운 소꿉친구 수현이었다.


'막상 만나도 하는 얘기가 특별한 게 없네.'


올스타 브레이크 때 골목에서 이양태의 뒷거래를 목격한 뒤로 곧장 미국에 보내서 못 본 지 일주일. 이번 일주일이 군대에서 보낸 시간보다 길게 느껴진 민재였다.


'잘 지내고 있을까. 마지막으로 했던 대화가...'


함께 했던 대화들을 곱씹다 보니 골목에서 일어났던 일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화끈 해졌다.


"어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나쁜 생각을 시속 170km로 날려버리고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군생활 중에도, 뜨거운 갑판 위에서도.


뜨거운 태양을 봐도,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빛을 봐도.


성난 파도를 만나 차오르는 물을 퍼낼 때도, 고된 그물질 후 시원한 물 한 사발 들이킬 때도.


인생 마지막 날인 것 같은 악천후나 인생 처음 보는 아름다운 석양에도.


코 끝까지 찡해지는 매콤한 매운탕이나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아 없어지는 횟감을 먹을 때도 생각나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너랑 함께하고 싶어.'


띠리리리.


갑자기 울리는 전화에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깜짝이야.'


이 시간에 전화 올 사람은 없는데. 설마 1만 km 너머의 그녀에게 텔레파시라도 통한 걸까? 설렘 반 걱정 반으로 핸드폰을 찾았다.


[윤희동]


아.


"음음, 여보세요?"


살짝 실망한 것이 목소리에 담길까 봐 헛기침으로 마음을 달랬다.


"형, 죄송한데 지금 올 수 있어요?"


윤희동의 전화를 받고 달려간 곳은 인근의 병원. 급한 마음으로 응급실에 들어가자 웃고 있는 초록이, 그린이 보였다.


"무슨 일이야?"


왼쪽 팔에 깁스를 한 그린이 오른손을 흔들, 반갑다고 인사를 했다.


"내가 설명하지."


간호사와 대화를 마친 스티브가 민재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렇군요, 희동이는 그럼..."


스티브의 핸드폰과 피칭머신은 24시간 연동되어 있다. 스티브는 피칭머신에 달린 카메라로 실시간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카메라에 열심히 연습하는 윤희동이 연습을 마치고, 불이 꺼지고, 윤희동이 아직 연습실에 있는 사이, 일당들이 연습실에 들이닥친 것이다.


심상치 않은 사태임을 직감한 스티브가 같이 맥주를 마시던 일행을 버려두고 연습실에 달려갔다.


"그래도 그렇지, 청태오를 도발하면 어떡해요."


"그럼 희동이가 있다는 걸 보여줄까? 내가 볼 땐 너도 나처럼 했을 것 같은데. 내기할까?"


"됐어요."


카메라가 있다는 것은 스티브가 지금까지 6개월 동안 민재와 희동의 땀과 눈물을 모두 함께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스티브가 희동을 위해 무리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됐다.


"눈치 빠른 녀석들이라 아마 우리의 연결고리를 금방 눈치챌 거야. 아마 희동이도 정치에 휘말리겠지."


스티브가 상대의 역린을 건드린 이상, 청태오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 들키지 않도록 몸을 웅크리거나,


"증거를 인멸하려고 하겠네요."


일이 어쩌다 이렇게 꼬이게 된 건지. 그럼에도 한편, 안도할 수 있는 이유는 수현이 안전한 미국에 있다는 것이다.


수현까지 한국에 있었다면 민재의 머리는 아마 반으로...


"너 왜 여기 있어?"


쪼개졌을 것이다.



"내가 할 말인데..."


어안이 벙벙한 민재다. 아무리 보고 싶다고 거울 앞에서 텔레파시니 뭐니 신파를 찍었지만 눈앞에 나타난 수현이 반갑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다.


"너는 항상 나를 곤란하게 해."


"아이, 참. 미녀는 피곤하다니까."


서로 다른 말을 하는 상황을 지켜보는 스티브만 입이 귀에 걸렸다.


"고마워, 스티브. 몸은 괜찮고?"


카메라는 스티브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핵심 소프트웨어인 엔진은 모두 수현이 설계한 것. 당연하게도 수현도 모든 상황을 모니터링할 수 있었다.


"왜 온 거야? 상황을 알았으면 돌아가야지. 지금 저 덩어리도 녀석들한테 당해서 저 꼴인데."


"헤이, 민줴. 나 당한 거 아니다. 맥주 먹고 혼자 좌빠진 거다."


방망이를 낚아챈 후, 기세에 밀린 청태오 일당은 조용히 물러났지만 혼자 흥분한 그린이 이리저리 날뛰다가 넘어져 팔에 금이 간 것이었다.


"네가 걱정하는 것도 이해해. 하지만 잊었어? 나 최수현이야. 알잖아? 난 지는 싸움에 배팅 안 해."




사건은 신속하게 흘러갔다. 이양태를 확보해 둔 크로커다일즈 구단 덕에 일이 수월해졌다.


"너... 그때 골목에서 본 변태 커플?"


"미쳤어? 따라 해라. 구단주님!"


"구... 구단주? 이 여자애가?"


"미쳤구나. 여자애가 아니라 회장님 따님이시다!"


"회장 딸이라고? 얘가?" "괜찮아요."


경호원들이 이양태의 언행에 격분해서 거의 반 죽일 듯 어깨를 잡고 찍어 누르자, 수현이 중재에 나섰다.


"이양태 선수. 이 사건은 법원까지 갑니다. 당신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자수뿐이에요. 이미 자수는 아니지만."


미국에 갔던 수현이 돌아온 이유. 여러 영상을 분석한 결과, 이양태의 좋은 날과 좋지 않은 날은 차이가 명확했다. 그리고 좋지 않은 날은 항상 토요일이었다.


"언제부터 그런 거예요?"


"전 모르는 일..."


"첫 타자 볼넷 300. 5이닝 언더 300. 5이닝 오버로 가면 1,000."


"아아..."


업계에서 통용되는 말이 있다.


'신뢰를 잃는 자는 전부를 잃는다. 하나를 얻는 자는 모든 것을 얻고, 하나를 잃는 자는 모든 것을 잃는다.'


거래 장소까지 정확하게 표시된 지도를 보자 이양태가 투항했다.


"지금부터 이 자료는 이양태 선수가 법원에 제출한 증거 자료가 되는 겁니다. 협박을 당해 억지로 했지만 양심에 가책을 느껴 자수하는 걸로요. 야구 판에서는 퇴출되겠지만 구속은 그리 오래 들어가진 않을 겁니다. 한 1년만 살고 나오면 되지 않을까요?"


구단 변호사가 친절하게 설명했다. 너구리 사냥이 시작되었다.




"태오야. 어떻게 할 거냐."


하관에 빛이 비치자 흰 수염이 드러난 노인. 그의 소식통에 의하면 크로커다일즈가 워리어스에게 공조를 요청했다.


"얼굴 다 봐뒀으니까 어떻게든 입막음을 하면..."


와장창! 방망이가 날아가 책장에 처박혔다.


"태오야. 어떻게 할 거냐."


"스티브! 스티브 권 그놈만 잡아 족치면 됩니다. 그놈만..."


"태오야!"


쾅. 이번엔 커다란 책상이 엎어졌다. 그의 이름이 쓰인 자개 명패도 바닥에 나뒹군다.


"총재님. 제가 다 수습하겠습니다. 한국 야구에 피해 가는 일 없게 하겠습니다."


후우우.


터벅터벅 창가로 가 두툼한 담배를 물자, 어둠 속에 서있던 비서가 나타나 지프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래. 내가 듣고 싶은 말 잘 알면서 왜 그 말이 나오는 게 이렇게 어려울까?"


톡톡톡. 오른발 앞꿈치가 바닥을 두드린다. 카펫을 통해 흘러오는 진동은 미세하지만 청태오의 심장 박동과 묘하게 엇박자로 뛴다. 심장의 박동은 엇박으로 떨려오는 진동에 서서히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었다.


'커헉...'


갑작스러운 과호흡에 가쁘게 숨을 토해내자, 총재가 최후통첩을 날렸다.


"정리해. 오늘 안으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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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1화 개화 24.08.13 2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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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3화 물밑 작업 24.08.06 43 0 12쪽
13 12화 카르텔 24.08.05 5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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