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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냐
작품등록일 :
2024.07.30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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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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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김나박이, 최

DUMMY

"시리즈 1차전, 7:6으로 워리어스가 가져가며 후반기 4연승을 이어가게 되었다는 소식 전해드리며 오늘 중계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저는 캐스터 대명제,"


"저는 해설 나해설입니다. 감사합니다."


비밀 엔젤스 팬 최대한의 마음이 착잡하다.


조용히 차 문을 열자 여전히 사이좋게 기대어 잠이 든 두 사람. 깨울까 하다가 포기하고 조수석에 발을 뻗고 잠을 청했다.



차 창으로 들어오는 은은한 꽃향기와 따스한 아침햇살.


지저귀는 새들의 노랫소리는 시골 냄새를 팍팍 풍겼다.


화려한 도시의 네온사인과 경기장 조명탑의 강렬한 빛 보다 꾸밈없이 비춰오는 자연광을 받아 흔들리는 꽃들이 더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이제 꺼낼 이야기는 그렇게 유쾌하지 않았다.


"못난 제자야. 몸을 그렇게 굴리면 1년도 못쓴다. 네 아담한 체구로는 버틸 수가 없어. 내가 마이너리그에 있을 때..."


만나자마자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한 박특급. LA특급답게 LA모자를 쓰고 쏟아내는 속사포는 흡사 LA에 유명한 갱스터 레퍼들을 방불케 했다.


"그만해 그만해. 아이야. 네 뒤에 나온 피쳐를 보고 느낀 거 없었느냐."


갑자기 스승이 둘이 됐다.


스파이더스와의 3차전. 모두가 예상한 것과는 다르게 김작가는 공 3개로 간단하게 경기를 마무리했다.


"더 강한 공을 던지려고 했던 저랑은 다르게 힘들이지 않고 효율적으로 상대한 것 같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김근성 전 감독은 옛 친구의 손자이자 가능성 넘치는 원석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이야, 너도 이필승 같은 능력이 있어. 존 구석구석 넣을 수 있는 커맨드, 배짱. 무한한 스태미너. 구속에 집착하지 않으면 넌 최고가 될 수 있지 않나 싶어."


50년대생 전설의 대투수, 김나박이.

[제구의 정석 좌완 정통파 김근성]

[강속구와 기교를 갖춘 좌완 스리쿼터 나이든]

[압도적 구위의 우투 오버핸드 박특급]

[피지컬의 옆구리 투수 이필승]

네 명의 전설들이 하나 둘 민재의 곁에 모였다.


"아니! 너 야알못이냐? 이필승은 몸뚱이 자체가 결전병기였지. 그거에 비하면 얘는 그냥 요즘 유행하는 그 돌아이인가 뭔가 해야 해.

투수할 거면 패스트볼. 패스트볼이야 말로 최고의 공이니까. 이 녀석이 가진 직구를 더 강하고 빠르게 하는 게 최고다. 알지도 못하면서."


"뭐야? 현장 떠난 지 30년은 된 놈이 알기는 얼마나 안다고? 그리고 돌아이가 아니고 아이돌이야, 이 돌머리야."


70대 노인들이 갑자기 초딩 싸움을 하는 것을 보고 당황한 민재가 눈치를 살폈다.


엄청난 카리스마로 시대를 호령하던 두 전설이 만나기만 하면 초딩 싸움하듯 으르렁 거리다니.


이 광경을 신문고가 봤다면 특종 기사를 쓰겠다고 녹음기부터 켰을 것이다.


'신문고 생각하니까 긴장이 좀 풀리네. 잘 지내고 있을까?'




신문고는 잘(못) 지내고 있다.


롤모델 대기자를 만나 신나게 인터뷰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백수가 된 대기자와 대학생 신문고 둘이서 사적인 이야기는 한 마디도 못하고 언론 동향을 스크랩하고, 논조를 정리하고 비판할 요소들을 정리하느라 밥도 제때 먹지 못했다.


차를 타고 가다가 보이는 가게로 들어가 가장 빨리 나오는 메뉴를 입에 들이붓고 다시 출발.


'이것이 세상을 일깨우는 참된 언론인의 삶...!'


신문고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대기자는 끊임없이 걸려오는 전화에 아예 전원을 꺼버리고 새 폰을 하나 샀다.


-삐리리리리.


차 안에서 대기자와 함께 접선 장소로 이동하던 신문고의 속이 두근두근했다.


'이번엔 또 누굴까.'


대기자가 고소장을 접수한 지 사흘.


[첫째, 현재 프로야구 내에 승부조작은 특정 구단의 문제가 아니라 전구단 모두 해당된다.]

[둘째, 한국 야구 협회는 선수와 구단의 자진신고를 묵살하고 공론화되는 것을 막았다.]

[셋째, 구단과 언론사가 담합하여 이의제기와 내용증명을 외면했다.]


종교개혁을 위해 교황청에 맞서 대자보를 붙였던 마틴 루터처럼 협회와 구단, 언론을 적으로 돌린 대기자에게 평범한 협박 전화는 단순한 애들 장난에 불과했다.


어제부터 대기자가 탄 차의 뒤를 계속 쫓는 검은 세단 한 대.

중앙선을 침범해 들어오는 화물차.

골목에서 차 위로 떨어지는 화분.

밥을 먹고 나오면 펑크가 나는 타이어.


모든 것이 대기자의 목을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기자는 태연했다.


"신프로는 이런 거 처음이지?"


"네!"


오랜만에 사적인 대화. 문고의 맥박이 빨라진다.


"나는 20년 동안 자주 겪었어. 사이비를 파고들어서 조사할 때도, 거물 정치인을 건드릴 때도. 난 적이 많은 사람이야. 이제 날 서포트해 주는 회사도 마땅찮고. 날 지켜줄 존재는 신 밖에 없다는 거지."


대기자의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후회할 것 같으면 지금 내려. 난 절대 말리지 않아. 떠나도 상관없어.

평범한 삶을 누리는 것도 축복이야. 얼마든지 보내줄 의향이 있으니까 괜찮아.

난 하나도 안 무서워. 혼자돼도 괜찮으니까 말만 해. 문 열어줄까?"


'지금 100km인데요...'


다리 위를 100km로 달리는 차 안에서 내릴 배짱은 없다.


"절대 내리지 않겠습니다!"


"좋아. 그럼 끝까지 가보자고."


신문고가 정말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꽉 잡아라."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리의 끝 부분에 다다르자 기어를 바꾸고 핸들을 잡아 돌린 대기자가 다리 옆으로 치고 들어가 강변도로로 빠져나갔다.


반대편 사거리에 대기하던 검은 세단이 무전을 받고 머리를 틀었다.



"네, 기자님. 잘 알겠습니다. 저희 쪽도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상황을 보고받은 최회장의 표정이 어둡다. 여전히 파자마 바지 차림이지만.


그는 지금 최고의 집중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승부조작 카드도 안 먹힌다 이거지?'


승부조작은 공정한 경쟁의 문제. 반대로 이야기하면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굳이 반응할 동기가 없는 것이었다.


'승부조작을 하면 누가 이익을 얻지?'


범인을 찾을 때 가장 일차적인 접근법.


해당 사건을 통해 누가 가장 큰 이익을 얻느냐.


'불법 도박이겠지.'


이쪽을 건드리면 이제 판은 사회면으로 넘어간다. 법조계로 돌린 승부조작 건은 개인을 처벌하는 쪽으로 흐지부지 넘어갈 가능성이 높은 상황.


아무리 문제가 밝혀지더라도 주모자로 지목되어 추적당하는 청태오 선에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


'분명 그 뒤에 더 큰 거물이 있다.'


양복을 입고 창 밖을 바라보는 최회장의 뒷모습은 리더의 고뇌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파자마만 빼면.



"회장님."


실시간으로 보고를 받는 채널을 통해 연락이 왔다.


"네, 말씀하세요."


"청태오가 일본으로 밀항한 것 같습니다. 어제 일본 프로야구 경기 관중석에서 그와 비슷한 사람을 봤다는 제보가 있습니다."


보통 체격이 아니기에 그와 비슷한 사람은 흔치 않다.


"팔로업하고 계속 추적해 보세요."


"예!"


최회장이 다음 카드를 준비했다.




여의도. 경제, 언론, 정치를 주름잡는 그곳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인물, 이대장.


그가 숨죽이고 있는 박실장을 호출했다.


"예, 대표님."


"그 경기에 이민재 볼 수 있나?"


"알아보고 보고 드리겠습니다."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박실장을 흘기고 나서 뚜벅뚜벅 방 안을 돌던 이대표가 찬장에 진열된 야구공을 하나 꺼냈다.


[미군 친선전 기념구, 이필승]


4명의 전설, 김근성-나이든-박특급-이필승 라인의 하나인 이필승의 사인이 담긴 기념구.


유리로 된 케이스를 열자 세월의 깊음이 묻어났다.


전설의 손때가 묻은 공은 찬란했던 그들의 역사를 간접적으로나마 드러내보였다.


이대장은 커다란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며 공을 던지는 시늉을 했다.




습한 마룻바닥.


휘황찬란한 강남 한복판의 한국 야구 협회에서 양복을 입고 모두의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어르신과 서울 외곽의 허름한 원룸에서 목이 다 늘어진 메리야스를 입고 바닥에 누워 끙끙 앓아가는 노인.


지킬과 하이드처럼 상반된 모습의 최총재는 산송장처럼 누워있었다.


벽지는 습기를 먹다 못해 벽에서 떨어져 나와 여기저기 축 늘어졌고, 벽지 뒤에는 검은곰팡이가 영역을 확장해 갔다.


어제 겨우 끼니를 때우고 남아 불어 터진 양은냄비 속 면발이 상황을 대변했다.


세력 간의 중력을 홀로 버텨가며 무게 중심을 유지해 내던 한국 야구 협회의 총재인 최총재.


기나긴 꿈에서 깨어난 노인이 서서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꿈이었구나.'


이대로 눈을 뜨지 않았다면 좋으련만.


네 명의 선수와 함께 웃고 울며 동네 야구를 재패하던 어린 시절. 그날의 찬란함을 아직도 잊지 못했다.


유독 몸이 약했던 최총재는 어릴 때부터 자신을 알았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할 수 없는지.


김근성처럼 정교한 제구력도,

나이든처럼 화려한 속구와 기교도,

박특급처럼 압도적인 구위도,

이필승처럼 무한한 체력도 없는 최총재.


하지만 그런 그도 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티격대는 김근성과 박특급을 화해시키고, 따로 노는 나이든이 들어올 공간을 마련해 주고, 과묵한 이필승이 웃게 만드는 것.


그 넷을 모아 하나의 팀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최총재의 능력이었다.


모래알 같은 조직력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물 같은 존재.


있을 때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없을 때는 갈증과 찝찝함으로 견딜 수 없게 만드는 물.


그것이 바로 최총재의 존재 의의였다.


물은 아래로 흐른다. 위로 솟을 수 없다.


최총재는 생각했다.


'아래로 향하자.'


남들이 하지 않는 일. 남들이 꺼리는 일. 더 더 낮은 곳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장애물을 만나면 빙 둘러가고, 낭떠러지가 있다면 몸을 던졌다.


구장을 찾아가서 경기장 사용을 부탁하고, 학교에 야구단 창단을 제안하고, 학생들을 찾아다니며 부원을 모집하고.


시장에서 야구 경기 전단을 돌리고, 밤늦게까지 남아 텅 빈 경기장에서 쓰레기를 줍고 의자를 손걸레로 닦아내는 일.


그 모든 것이 최총재의 존재 의의였다.


낮게, 더 낮게. 더욱더 낮은 곳으로.


야간 연습이 시끄럽다고 취객에게 얻어맞기도 하고, 구장에 낼 전기요금을 벌기 위해 빈 병을 주우러 다니고.


한바탕 싸운 부원들에게 아이스깨끼를 사주며 화해시키는 그 모든 것이 최총재의 몫이었다.


누군가 물었다.


'누가 칼 들고 협박했어? 왜 그렇게 살아?'


최총재는 대답했다.


'이것이 나의 길이니까.'


끝을 알 수 없이 내려가다 보니 물이 점점 차올랐다.


발가락을 간질이고 발목까지 적셨다.


물이 점점 차올라 수위가 높아지니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물놀이를 하는 사람, 빨래를 하는 사람, 낚시를 던지는 사람.


경기장을 공짜로 사용하게 해주는 사람, 관람료를 내겠다고 하는 사람, 광고를 걸고 싶다고 하는 사람.


하지만 지대가 너무 낮게 내려간 탓일까. 비가 한 번 쏟아지면 온갖 것들이 쓸려 들어온다.


술주정뱅이, 거지, 깡패, 도박꾼.


표 냄새를 맡은 정치꾼이 (경기)표와 (투)표를 바꾸려고 손을 내밀었다.


돈 냄새를 맡은 장사꾼이 임대료를 내밀었다.


그렇게 프로리그가 만들어졌다.


더러운 이야기는 모두 혼자 책임지기로 했던 최총재다.


더는 멈출 수 없다고 끊임없이 되뇌었던 최총재의 이마에 떨어지는 물방울. 천장에서 새는 빗물을 맞으며 깨달았다.


'내 손을 벗어나고 있구나.'


전에 한 번 느껴본 것이다.


소중한 친구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일.


내 손으로 일군 모든 것이 바닷가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려가는 일.


아무리 욕심을 부려도 다섯 손가락이 하나로 모이지 않자 손틈 사이로 고스란히 흘러내려버렸다.


'아아. 허망하구나.'


떨어진 빗물이 최총재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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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5화 아버지 24.08.17 21 0 12쪽
25 24화 관조 24.08.16 19 0 12쪽
24 23화 생소함 24.08.15 21 0 13쪽
» 22화 김나박이, 최 24.08.14 20 0 12쪽
22 21화 개화 24.08.13 23 0 12쪽
21 20화 변신 24.08.12 23 0 12쪽
20 19화 야구 VS 축구 24.08.10 33 0 13쪽
19 18화 야성 24.08.09 29 0 13쪽
18 17화 균형 24.08.08 32 0 13쪽
17 16화 마무리 24.08.07 42 0 12쪽
16 15화 김나박이 24.08.07 42 0 12쪽
15 14화 리더 24.08.06 37 0 13쪽
14 13화 물밑 작업 24.08.06 43 0 12쪽
13 12화 카르텔 24.08.05 50 0 12쪽
12 11화 진실 24.08.05 53 0 12쪽
11 10화 승부조작(2) 24.08.04 59 0 12쪽
10 9화 승부조작(1) 24.08.04 58 0 12쪽
9 8화 구원투수, 배팅볼러 24.08.03 64 0 13쪽
8 7화 100마일짜리 배팅볼 24.08.03 6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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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5화 목격자 24.08.02 7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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