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볼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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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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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30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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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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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100마일짜리 배팅볼

DUMMY

올스타 브레이크 마지막 날. 외국인 선수 셋과 육성군 총괄 스티브 권이 한 자리에 모였다.


"스티브. 우리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수 있을까?"


커리의 눈에는 호기가 가득했다. 어떻게든 더 높은 곳으로 가고 싶은 열망. 그것이 그를 최고의 강속구 투수가 되도록 만들었다.


"너희 둘이 하기에 달렸지."


스티브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지금 팀의 피타고리안 성적으로는 3,4위권을 형성하고 있어야 했다.


커리와 탐슨으로 이어지는 원투펀치는 당장 메이저리그에 가져다 놔도 손색이 없는 경쟁력 있는 조합. 열정의 커리와 냉정의 탐슨. 둘의 상반되는 스타일은 캐릭터성까지 갖춘 최고의 조합이 분명하다.


스티브 권 자신이 개발한 장비의 테스트를 위해 한국 시장을 검토하던 도중 그린이 사고를 치는 바람에 셋이 같이 한국에 온 것이었다. 그만큼 셋의 우정은 끈끈했다.


"탐슨, 어때. 자신 있지?"


"Yes."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끝. 기계라는 별명에 걸맞게 표정변화가 적었지만 오랫동안 마이너리그 밑바닥에서부터 굴러온 트리오는 서로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 많았다.


"Let's go brothers! 그래. 가보자고! 우리 셋의 힘으로 팀을 챔피언으로 만드는 거야!"


열정 넘치는 커리와 달리 그린은 수심에 잠겼다. 커리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이 팀을 변화시키려면 강한 동기가 필요하다.


청태오를 비롯한 고액 FA 계약자들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다. 자신들의 개인 성적만 일정 부분 유지하면 아무도 그들에게 제재를 가할 수 없었다. 심지어 그 악명 높은 김근성 감독이라도.


수차례 맞부딪혀 잡음이 일어났지만 프런트는 프랜차이즈 스타의 손을 들어줬다. 감독 커리어 내내 프런트와의 마찰로 팀을 떠나야 했던 김근성 감독의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XX! 크랙을 만들 트리거가 필요해. 트리거. 아?"


답답한 현실에 짜증을 내던 그린의 머릿속에 초록불이 들어왔다.


"Lee! 그 녀석이라면 뭔가 답을 알고 있을 거야."


"Lee? 그게 누구지?"


호기심을 보이는 커리에게 그린이 답했다.


"있어. 너한테 인유어페이스 덩크를 먹일만한 남자."




"형, 오늘 기계 점검한다던데요."


"그래도 푹 쉬었으면 이제 슬슬 감 잡아야지."


사실 며칠 쉬었더니 공을 던지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한 쪽은 민재였다. 하루에 200개 넘는 공을 쉴 새 없이 던지다가 일이 뚝 끊기니 머릿속에 잡념만 가득하다.


'이양태 문제는 수현이가 알아보고 있으니까 일단 보류하고.'


당장은 희동의 성장을 돕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내가 던져주면 되지."


"형 변화구 못 던진다면서요."


아차. 소문이 벌써 거기까지 퍼졌나. 테스트를 받던 그날, 지역 신문 기자들은 구단에 돌리는 잡지에 이렇게 썼다.


[변화구가 아닌 투구폼으로 타이밍을 빼앗는 이 시대의 패스트볼 마스터.]


'변화구 못 던진다는 소문이 이렇게 나버리면 프로 데뷔는 물 건너갔네.'


투수는 제구력이 가장 중요하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의 구속과 상대를 속일 위닝샷이 있어야 가능한 전제.


타격은 타이밍이다. 투수는 타자가 타이밍을 잡기 힘들게 더 빠른 공을 던지려고 노력한다. 구속은 무한하게 빨라지지 않고 저마다 한계에 다다른다.


그러면 투수는 타자가 빠른 공에 타이밍을 맞출 때 그들을 속일 무기를 준비한다. 직구와 같이 오다가 느려지거나, 휘어져나가는 공들. 우리는 그것을 변화구라고 부른다.


코스가 좋고 구속이 빨라도 타자의 눈에 익으면 먹기 좋은 먹잇감이 되고 만다.


펑!


"형... 치라고 주는 거 맞죠?"


우타자인 희동의 무릎 높이, 완벽하게 몸 쪽 존 모서리에 패스트볼이 꽂혔다.


"응. 좀 낮았나?"


'높낮이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움찔한 희동이 외쳤다.


"형, 구속 얼마나 나와요?"


"글세? 테스트할 때도 구속은 안 재봐서 잘 모르겠는데?"


각종 첨단 장비들이 널려있던 장소에서 정작 구속은 측정하지 않고 커브를 던질 수 있니, 마니 실랑이를 벌이다가 끝났었다.


"형. 당장 재봐요."


희동을 위해 마운드에 섰던 민재는 느닷없이 희동에게 구속을 측정받고 있었다.


"지금 몇 퍼센트로 던지는 거예요?"


"한, 80프로?"


희동의 눈이 점점 더 희둥그레 졌다.


"왼 손으로도 던질 수 있어요?"


"가능할 것 같은데?"


철썩. 철썩.


그물망을 향해 뻗어나간 공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망을 흔들었다.


"몇 킬로 나올 것 같아요?"


"그래도 운동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140은 나오지 않을까?"


"형. 이거 봐요."


스피드건의 LCD 화면에는 큼지막하게 숫자가 나왔다.


[100]


"와, 100킬로 밖에 안 나온다고?" 프로의 벽을 실감하는 순간,


"100킬로가 아니에요."


희동이 소리쳤다.


"100마일이라고요!"


오른손 사이드암.


왼손 오버핸드.


오른손 스리쿼터에 퀵모션.


왼손으로 디셉션 좋은 사이드암과 스리쿼터의 사이 낮은 팔각도.


각기 떠오르는 선수 이름이 있는 투구폼으로 바꿔가면서 던져도 구속은 94~100마일을 왔다갔다 했다.


"형 진짜 미쳤는데요? 지금까지 제가 본 투수 중에 제일 까다로워요. 진짜로."


"에이, 스피드건이 살짝 더위 먹었나보지. 100마일이 이렇게 쉽게 될 것 같으면."


흡.


자신감 넘치는 와인드업, 박력있게 차올리는 레그 킥. 좋은 딜리버리와 끝까지 체중을 실어 놓는 릴리스. 안정적인 팔로우스루까지.


쾅!


[102.5마일]


165km짜리 패스트볼이 하이존 모서리를 찢어놓았다.


"저한테 악감정 있는 거 아니죠?"


"설마."


"제가 더 잘할게요."


희동의 성화에 못이겨 급하게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어 수현에게 보냈다.


"이거 설마 너야?" 미국은 지금 새벽일텐데.


민재의 연락을 보자마자 답장이 왔다.


-미쳤네 진짜. 뭘 먹고 이렇게 컸니.



똑똑.


"민줴~ 여기 있을 줄 알았어. 코리안 리틀보이랑 같이 있지?"


휴일 마지막 날 이 시간까지 불이 켜져 있다면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커리와 탐슨에게 민재를 소개해주기로 한 그린이 연습실에 들이닥쳤다.


"오우 쓋. 둘이 뭐 하는 거야? 설마..."


"아냐 아냐! 이상한 생각 하지 마!"


공에 맞은 희동의 등을 살펴보려고 옷을 벗기던 민재가 기겁하고 해명에 나섰다.


"그래서, 이게 너라고, 민줴?"


'재' 발음이 어려운지 자꾸만 발음이 길게 끌리는 그린이었다.


"탐슨, 어때?"


"너보다 낫다."


커리의 물음에 한 마디로 정리하는 탐슨.


커리는 승부사다. 승부욕에 불탄 커리가 외쳤다.


"헤이, Lee! 마운드에 올라와. 내기하자."


"내기는 다음 기회에 해, 커리."


어느새 문 앞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스티브권이 연습실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정체가 뭐냐. 이민재."


"전 여자친구 있어요."


"아니. 그런 건 하나도 안 궁금하고."


동문서답하는 민재를 사이에 두고 저마다 하고 싶은 말을 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제일 정신없는 것은 영어를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막내 희동이었다.


"저 집에 가고 싶어요!"


커리는 공 맞은 부위에 아이싱을 하고 있는 희동을 구석에 밀어 넣었다.


커리는 승부욕에 불타 공을 마구 던지고, 탐슨은 기계적으로 구속을 읊었다.


"98."


"97."


"99."


아무리 던져도 160km/h를 넘지 못하자 커리는 더 용을 쓰고 던졌다.


"커리 구속을 보니 스피드건 문제도 아니군."


냉철한 그린의 분석에 더 불타오르는 커리를 두고 그린이 말했다.


"커리는 지금까지 공식 경기에서 100마일을 던져본 적이 없거든. 만약 저 스피드건이 더 높게 찍히는 거였다면 커리는 지금쯤 100마일을 3번은 봤을 거야."


"왜 프로 데뷔를 하지 않은 거냐. 이 구속이라면 한국 리그는 물론이고 마이너리그에서도 꾸준히 오퍼가 있었을 텐데."


스티브 권이 의문을 제기했다.


"제가 구속이 이렇게 나올 거라고 생각해보지도 않았고요,"


뒤의 말은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변화구가 없어도 그건 프로에 와서 만들면 될 일이야. 너처럼 솔리드 하게 커맨드가 되는 100마일을 던질 수 있는 투수는 메이저리그에도 흔치 않아."


"아뇨. 전 변화구는 안될 거예요."


수년 간의 강도 높은 노동으로 이미 손가락과 관절이 굳어가고 있었다.


"사실 손가락에 감각이 잘 없어요. 그래서 그런지 아무리 해도 변화구는 안되더라고요."


"뭐? 진짜야?"


구속에만 신경 쓴다고 공이 사방으로 날리던 커리가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자. 이게 내가 리틀야구 할 때 처음 배운 구종이야."


리틀리그 체인지업이라고도 불리는 구종.


"직구랑 방법은 똑같아. 일종의 속임수지."


"Go."


커리와 탐슨의 등쌀에 못 이겨 억지로 마운드에 올랐지만,


퍽, 퍽.


잘 되지 않는 것은 여전했다.


"체인지업 치고는 구속이 너무 빠른데."


"홈런더비에 나가면 딱이군."


"무브먼트도 떨어지질 않네. 저런 식이면 그냥 평범한 패스트볼이 되어버렸어."


150km 언저리에 형성되는 공.


패스트볼에서 보였던 엄청난 아우라와 무브먼트는 사라지고 치기 딱 좋은 공이다.


커리, 탐슨, 그린이 저마다 악평을 보태자 민재의 자신감은 더 땅을 파고 들어갔다.


"안된다고 했잖아."


그때 아이싱을 하던 희동이 한 마디 했다.


"형, 오늘 한국인 신기록 쓴 거라고요. 알아요? 그런 사람이 지금 쪽팔리게 뭐예요 그게."


희동의 따끔한 질책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쪽팔리면 안 되지. 너한테 어울리는 사람이 될 거야.'


촬영되고 있는 핸드폰을 바라보며 결의를 다졌다.


"그럼 넌 어떻게 하고 싶지?"


시끌벅적하게 떠들어대던 커리, 탐슨, 그린 트리오와 쫑알쫑알 잔소리가 많아진 희동을 모두 돌려보내고 단 둘이 남은 스티브와 민재.


둘은 같이 민재의 투구 영상을 돌려보고 있었다.


"아직, 잘 모르겠어요."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이양태와 워리어스 타자들의 석연찮은 부분 때문에 신경 쓰이는데 느닷없이 100마일이니 뭐니.


"제가 뭘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고... 하고 싶은 걸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왜 이양태의 뒤를 캐내고 있었지? 캐내서 배후를 밝힌 들, 뭘 할 수 있을까?'


워리어스와 어떤 조직이 유착관계로 이득을 취하고 있다면 바꿔 말해 도려내야 할 부분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그게 정말 팬들이 원하는 결과일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내가 기준이 되면 길을 잃고 말지."


스티브가 실내에서 담배를 꺼냈다.


"실내에서 담배 피우면 안 되죠."


손을 내밀어 막는 민재에게 스티브가 웃으면서 말했다.


"내 판단이 내 기준이라면 네가 막아서는 근거는 뭐지?"


그랬다. 상대주의란 답이 나올 수 없는 구조에서 끊임없이 공회전하는 것. 내부에선 답을 찾을 수 없다. 끊임없이 번민하고 허무해질 뿐. 집은 퍼석한 모래가 아니라 단단한 반석 위에 지어야 하는 법이다.


"기준은 밖에서 안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담배는 해로우니 피지 마라. 그게 기준인 것이지. 그걸 따를지 말지는 네 선택인 것이고."


스티브가 담배를 뭉그러뜨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시대가 널 부른다. 영웅은 대단한 사람들이 아냐. 그저 시대의 부름에 응답한 사람들이지."


일본은 여러 젊은 신성들이 메이저리그에서도 두곽을 나타내며 국제대회에서도 최고 전력으로 나온 미국을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반면 한국 야구는 황금세대를 거쳐 점점 경기력이 떨어지더니 이제 졸전 끝에 메달을 걸지 못하고 '목메달'이라는 조롱을 들어야 했다. 일본에 7회 콜드게임을 당한 대표팀은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였다.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너를 부르는 시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나?"


"그럼 전 어떻게 해야 하죠?"


"간단해. 패스트볼 마스터가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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