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볼 마스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스포츠, 현대판타지

하나냐
작품등록일 :
2024.07.30 22:05
최근연재일 :
2024.08.22 21:00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2,022
추천수 :
17
글자수 :
167,915

작성
24.08.18 21:00
조회
19
추천
0
글자
13쪽

26화 돈

DUMMY

여기는 일본. 또또 헤어진 최대한이 이별의 아픔을 잊기 위해 최대한 고민한 결과다.


'여행 가서 다 잊자. 외국 친구도 사귀고.'


이번 이별 사유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


그동안 여러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더러는 최대한이 찬 시계나 옷을 보고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평범하게 입고 올 때는 잘 지내던 사람들이 비싼 액세서리를 차고 오면 그다음부터 계산적으로 변한다.


​그리고 슬그머니 묻는다.


​"우리 무슨 사이야? 혹시 나한테 줄 선물 없어?"


최회장과 언론이 인터뷰를 할 때 같이 나온 적이 있었기에 이름이 특이한 최대한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그가 최회장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돈... 그놈의 돈이 뭐길래...'


​그놈의 돈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꿈을 포기한다.


​그놈의 돈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가정을 포기한다.


​​그놈의 돈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포기한다.


​​돈으로 범죄자가 풀려나기도 하고, 돈으로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만약 평범한 부모님 밑에 태어났다면 할아버지도 만나고, 주말이면 가족끼리 평범하게 놀러 가거나 외식을 하며 즐겁게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아빠를 만두가게에 빼앗겼던 때에는 4인방이 함께 놀아서 그 빈자리를 잘 몰랐지만 대기업 회장이 된 이후 아빠를 보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정신적으로는 더 가난해져 갔다.




​공항에서 가까운 라멘집.


조용히 혼자 가기 딱 좋은 곳이다.


​느지막한 시간, 주인장은 아직 퇴근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당신 같이 사연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려고 말이야."


라멘 하나를 주문하고 앉은 최대한에게 넌지시 낚시를 던졌다.


​"뭐요?"


​"아, 한국 사람인가? 억양이 그렇군."


​​"한국말도 아세요?"


​​갑자기 한국어를 구사하는 라멘집 사장을 보고 눈이 동그래졌다.


​"친한 친구 아버지가 한국 사람이거든. 그, 무슨 단어가 있는데. 재일교포라고 하나?"


​​무슨 일본인이 저런 단어를 쓰나. 긴가 민가 하는 최대한의 표정을 읽었는지 피식 웃은 라멘집 사장님이 툭, 말을 뱉었다.


​​"어디 가서 소문내지 않을 테니 한 번 떠들어봐. 여기 한국말할 줄 아는 건 나랑 너뿐이지 않은가?"


​오늘 밤이 길어질 것 같다.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음료수처럼 마셔대서일까.


​​머리가 깨질 듯 아픈 최대한이 근처 숙소로 향했다.


​직원들 복지로 마련해 둔 민박.


​최대한의 얼굴을 알아본 관리인이 얼른 일어나 부축해 침실로 이동했다.


​'팔자 좋은 소리구나. 기분전환한다고 일본 와서 돈 걱정 없이 먹고 자고 하면서 불평하는 건.'


​​씻지도 않고 그대로 누워서 TV를 켜니, 일본의 야구 스타 '이치로 쇼헤이'가 나왔다. 메이저리그에서 꿈의 4할과 100 도루를 도전하고 있는 그는 벌써 70개의 도루를 기록하고 있다.


국제대회에서 그의 활약을 지켜본 한국의 국민들에게 깊은 좌절을 안겨주기도 했던 그는 올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그야말로 리그를 폭격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 사람도 민재형이랑 동갑인가?'


마음이 편안해진 대한은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 시각.


"예. 최회장 아들이 일본에 왔습니다."


"목적은?"


"여자친구한테 차여서 쉬러 왔답니다."


​"배부른 소리 군."


​"동감합니다."


​"그래, 주의해야 할 점은 있나?"


​​"그냥 철부지 어린애일 뿐입니다. 그냥 두시죠."


​"아니. 혹시 모르니 그놈을 저녁에 네 가게로 불러라. 나도 큰 놈을 보내겠다. 둘이 만나는 걸 보면 견적 나오겠지."


​"하잇."


​드디어 라멘집에 불이 꺼졌다.


​​


​[속보. 워리어스 투수코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


​[유서 발견. 모든 승부조작 사건의 배후는 자신이며, 팬들에게 죄송하다.]


​[사건의 동기는 유학 간 자녀들의 학비와 생활비 마련을 위한 것으로 추정.]


"말도 안 돼! 지금 선수들 증언이 있는데 이렇게 덮어버릴 수 있는 건가요?"


비밀리에 모인 세 개 구단 창원 크로커다일즈, 부산 워리어스, 대전 레이븐스의 간부들.


승부조작 사건을 추적하고 모은 자료를 공유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 직원이 뛰어들어왔다.


​"놀랍지만 사실입니다. 야구계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파악하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야구계에 잔뼈가 굵은 프런트 직원조차 파악되지 않는 경로.


그렇게 승부조작 사건은 투수코치의 사주를 받은 일부 선수들의 일탈로 인해 벌어진 해프닝으로 종결되었다.


​​"미친 거 아이가? 딱 기다리봐라. 내 아는 동생이 갱찰 간부 아이가?"


​워리어스 구단주가 당장 전화통을 붙들었다.


​"뭐라꼬? 니도 몬한다고? 그럼 니 위는 하나뿐이 없다 아이가. 글마도 아이라꼬? 그럼 눈데."


​검찰과 경찰에게 오더를 내릴 수 있는 존재.


​회사의 주식을 끌어내리고 광고를 끊게 만드는 존재.


​언론을 통제하고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존재.​


경제, 언론, 정치를 주름잡는 그곳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인물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해 보였다.


​​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음식 맛있게 먹어주는 게 감사하지. 오늘은 내가 대접하는 거니까 마음껏 먹어."


​일본의 라멘집.


사장님이 ​어떻게 연락처를 알았는지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흔쾌히 초대에 응한 최대한은 어제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사장님, 야구 좋아하나 봐요?"


​"야구? 좋지. 우리 집에 야구 선수들도 많이 와. 그 친구들이 매출을 이빠이 올려주니까 사랑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


​그의 가게 이곳저곳에 선수들의 유니폼이나 사인볼, 사진이 걸려있었다.


​'내가 어제 왜 못 봤지?'


​그중에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청태오.


​그가 일본 시절 뛰었던 사진이 걸려있다.


​"저거 보는 거지? 일본 시리즈 끝내기 홈런 장면이야. 내가 직접 찍은 사진이지."


​손으로 사진 찍는 자세를 취한 가게 주인이 타이머 소리를 듣고 주방으로 몸을 돌렸다.


​'청태오. 저 대단한 선수가 왜...'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미국에서도.


​큰 활약을 하며 팬들의 우상이었던 그가 한국에 돌아와 저지른 사건은 도무지 믿기 어려웠다.


​크로커다일즈가 창단되기 전에는 온 가족이 워리어스의 팬이었기에 그에 대한 마음도 남달랐다.


​지금은 엔젤스 팬으로 갈아탔지만, 옛날에는 주황색 봉다리를 뒤집어쓰고 '태~오~~'를 외치던 기억이 선명하다.


​​"청태오 이 개자식..."


​​기분 좋게 알딸딸 해진 최대한이 나지막이 욕을 내뱉는 사이, 문이 드르륵 열렸다.


​​'청태오가 딱 저만하겠네.'


​​라멘집 문을 열고 들어오는 거구의 사내. 저만한 덩치는 흔치 않다. 얼핏 보면 진짜...


​'청태오?'


195cm, 130kg의 거구에 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쓴 사내. 불룩한 야구주머니는 누가 봐도 청태오다.


"이랏샤이마세!"


주인장의 구령과 함께 사내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목소리를 죽인 둘이 대화를 마치고.


한 칸을 띄고 대한의 옆자리에 앉은 청태오.


주인장이 청태오와 최대한의 앞에 라멘을 한 그릇씩 내려놓았다.


"맛있게들 드세요!"


힐끗.


서로를 곁눈질하다가 딱 눈이 마주쳤다.


"너, 나 알지."


거구의 몸답게 좋은 울림통이 묵직한 소리를 낸다.


"알죠. 청태오 선수."


자기도 모르게 사실대로 말해버린 최대한이 딸꾹 거리는 사이, 주인장이 주방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청태오가 라멘을 바꿔치기했다.


"나도 너 알아. 15년 전에 싸인 받으러 왔던 꼬맹이."


"어떻게 알았어요?"


지금도 최대한의 방에는 청태오의 사인볼이 진열되어 있다.


"난 내가 사인해준 사람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아."


딱.


물을 벌컥 들이켠 청태오가 물컵을 내려놨다.


"나는 팬들을 사랑해. 내 구단을 사랑하고 야구를 사랑해. 하지만 나는 이제 늦었어."


​그의 이야기는 고해성사와 같은 것.


​"인기는 촛불과 같아서 잘 타오르는 것 같다가 작은 바람이 불면 흔들리지.

아무리 타오르며 빛을 뿜어도 좁은 방조차 가득 채우지 못해.

시간이 흐르면 서서히 눈물을 흘리다가 결국 그을음만 남긴 채 사라지는 거야."


​"나는 팬들의 응원을 먹고 컸다. 어릴 때 찾아온 너 같은 사람들 말이야."


​그가 6관왕에 오를 때, 9경기 연속으로 홈런을 때려냈을 때, 국제대회에서 나라를 구해내는 홈런을 때려냈을 때. 그는 언제나 최고의 사랑을 받았다.


​"근데 사람들은 쉽게 변하더라. 외국에서 이방인 취급받으면서 꾸역꾸역 버티다가 돌아와 보니까 알겠더라."​


​커다란 손에 들린 잔은 유독 작아 보였다.​


​"날 모르는 사람들이 많더라. 세대교체가 된 거지. 나름 괜찮더라고?"​


​"근데 얼굴 아는 팬들이 돌아서는 건 못 참겠더라."​


암흑기를 함께 견디던 팬들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그리고 그 화살은 최대 연봉을 받으며 돌아온 청태오에게 향했다.


"그분은 평소에 굉장히 신사적인 분이었어. 경기장에 매번 찾아오시고 내 이름 박힌 유니폼에 사인도 받으시던 분이었지."


지역 라이벌로 떠오른 신생 구단, 크로커다일즈. 그들과의 경기에서 9회에 5점을 주며 10:5로 대패한 날.​


​"나도 기분이 안 좋았지. 졌으니까. 그런데 그분이 나한테 먹다 남은 치킨 박스를 던지더라고. 그거 알아? 다른 사람이 욕하는 건 견딜 수 있어도 내 사람이 날 욕하는 건 견딜 수 없는 거?"


뚜두둑.​


​그동안 청태오를 팽팽하게 지탱하던 무언가가 끊어졌다.


​구단 버스 유리가 깨지고, 인터넷에는 그의 가족까지 모욕하는 글들이 수 없이 올라왔다.


​구단 담벼락에는 청태오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낙서가 새겨지고, 언론에서도 그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힘.'


​청태오는 힘을 갈구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것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우연한 기회에 사람을 만났어. 밤에도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는 이상한 놈. 그 인간이 사람을 소개해주더라고. 나는 그런 세상이 있는 줄 몰랐어."


​돈. 명예. 권력.


​언론도, 구단도, 협회도.


​그의 한 마디면 평정되었다.


​그리고 그가 청태오를 러닝메이트로 삼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을 때는 꿈만 같았다.


​그의 모든 것이 곧 청태오의 것이 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기에.


​​"그 세상은 한 마디로 하면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었어. 감옥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버젓이 여자들을 끼고 놀고 있고. 거기서 찍은 사람은 다음 날 언론에서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고."


​"내가 보기에 그 사람은 신이었다.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니까."


​​청태오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돈. 나는 돈이 필요했어. 도움을 받으면 성의를 표현해야 하는데 선수 연봉으로는 어림도 없더라고?"


청태오의 목소리는 덩치와 맞지 않게 거의 개미 소리였다.​


​​"그래서 그분이 소개해준 사람들하고 같이 용돈벌이, 아니, 승부조작 불법 도박을 운영했어."


​"처음에는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더라고. 그럴 때마다 청심환 같은 걸 주더라고? 그걸 먹으면 기분이 상쾌해졌지. 근데 그게 사실..."​


​눈의 실핏줄이 터져 벌겋게 충혈되기 시작했다.​


​"중독성이 있더라고... 그걸 먹으면 성격도 바뀌고 겁도 없어지고... 충동적이게 변해서..."


​손을 모으고 있어도 덜덜덜 떨리는 손을 주체하기 힘들어지자, 떨리는 손으로 라멘 사발을 들고 국물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푸후.


​눈을 두 번 끔뻑 끔뻑하더니, 크게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난 이제 가망이 없어. 내 아내와 딸에겐 정말 미안하지만..."


"도망치지 마요."


기분 좋게 취해있는 최대한의 기분은 최대한으로 좋았다.


​"뒤져버리려고 그러는 거죠? 이야, 이걸 그렇게 도망치네?"


최대한은 청태오의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그거 알아요? 누구나 한 번은 죽는다는 거. 근데 당신처럼 쓰레기로 살면 한 번 더 죽는대요. go to hell~"


엄지를 바닥으로 떨군 최대한이 우스꽝스럽게 혓바닥을 쭉 내밀었다.


"도망치지 마요. 죽음으로 도망치면 끝일 것 같아요? 살아요. 속죄하면서. 그을음을 남기더라도 죗값을 치루라고요, "


실컷 훈수를 두던 최대한의 고개가 떨궈졌다.


여전히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패스트볼 마스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1부 마감 및 휴재 공지 24.08.23 8 0 -
31 30화 미국 24.08.22 12 0 12쪽
30 29화 실업 24.08.21 14 0 13쪽
29 28화 기적 24.08.20 16 0 11쪽
28 27화 지배 24.08.19 18 0 12쪽
» 26화 돈 24.08.18 20 0 13쪽
26 25화 아버지 24.08.17 21 0 12쪽
25 24화 관조 24.08.16 20 0 12쪽
24 23화 생소함 24.08.15 21 0 13쪽
23 22화 김나박이, 최 24.08.14 20 0 12쪽
22 21화 개화 24.08.13 23 0 12쪽
21 20화 변신 24.08.12 24 0 12쪽
20 19화 야구 VS 축구 24.08.10 34 0 13쪽
19 18화 야성 24.08.09 29 0 13쪽
18 17화 균형 24.08.08 33 0 13쪽
17 16화 마무리 24.08.07 42 0 12쪽
16 15화 김나박이 24.08.07 42 0 12쪽
15 14화 리더 24.08.06 38 0 13쪽
14 13화 물밑 작업 24.08.06 43 0 12쪽
13 12화 카르텔 24.08.05 51 0 12쪽
12 11화 진실 24.08.05 54 0 12쪽
11 10화 승부조작(2) 24.08.04 60 0 12쪽
10 9화 승부조작(1) 24.08.04 58 0 12쪽
9 8화 구원투수, 배팅볼러 24.08.03 65 0 13쪽
8 7화 100마일짜리 배팅볼 24.08.03 68 0 12쪽
7 6화 이글아이 24.08.02 70 0 13쪽
6 5화 목격자 24.08.02 71 0 11쪽
5 4화 배팅볼 24.08.01 98 1 12쪽
4 3화 스카우트 24.08.01 143 1 12쪽
3 2화 유일한 수 24.07.31 189 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