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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냐
작품등록일 :
2024.07.30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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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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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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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실업

DUMMY

국내 최고의 의료진이 24시간 상주하는 건물.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은 일명 '생명의 탑'. VIP만 입원할 수 있는 경비 삼엄한 병원의 정문으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양복. 밤에도 선글라스를 쓰고 유유히 뒷골목으로 빠져나가는 그의 어깨 위로 두 마리의 까마귀가 내려앉았다


"OK. 시작해, 스콧."




[에이전트 협회, 긴급 기자회견]


이민재의 21K 퍼포먼스가 무색할 만큼 거대한 파도가 몸을 일으켰다.


스콧을 비롯한 메이저리그 최고의 에이전트와 함께 날아온 법조인들. 그들은 어디서 입수했는지 모를 한국 프로야구 규정집과 부산 워리어스 구단의 취업규칙을 꺼내 들었다.


"스콧 코퍼레이션 아시아 담당 존입니다."


멀끔한 남자가 마이크를 향해 몸을 약간 숙였다.


"오늘 9개 구단에 좋은 소식을 전합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괴물과 싸우지 않아도 됩니다."


그가 준비한 슬라이드가 화면에 나타났다.


"이민재 선수는 한국야구리그 규정에 맞지 않는 방식으로 워리어스에 입단했습니다."


웅성웅성. 장내가 소란해졌다.


"그건 협회에서 승인이 난 부분이기 때문에..."


워리어스 담당 기자가 손을 들었지만 앞에 앉은 스콧은 코웃음 쳤다.


"아뇨 아뇨. 만약 협회가 알고 그랬다면 일이 더 커집니다. 이건 명백한 규정 위반이거든요."


존의 기세는 더 맹렬해졌다.


"저희 스콧 코퍼레이션 75명의 직원들을 대표해서 감히 말씀드립니다만,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오만하기 이를 대 없는 모습. 자신만만하다 못해 한국 자체를 만만하게 보는 것 같은 행태다.


"그쪽이 선수 수급이 급한 건 알겠지만 어차피 8월 31일까지는 어림없습니다. 이의를 제기해도 처리하는데 최소 일주일은 걸릴 테니까요."


"걱정 마십시오. 그건 정식 결제를 받을 때의 이야기 아닙니까? 총재님이 직접 처리하시면, "


자신의 손목시계를 바라보고 3, 2, 1.


"짜잔. 이제 이민재 선수는 자유 계약 신분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알긴 뭘 안다고 그래? 지금 총재님 병상에 들어가신 지가 벌써 두 달..."


'헙.'


극비 중의 극비. 기밀 중의 기밀. 최총재가 칩거에 들어갔다는 것은 핵심 관계자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것이 건강 문제라는 것을 아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경제계와 정치계, 스포츠계를 동시에 컨트롤하는 최총재의 존재감이 많이 흐려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그는 상징적인 인물이고 한국 야구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무슨 말씀이시죠? 저희가 기자회견 하기 전에 통화를 했는데."


핸드폰을 들고 좌우로 흔들흔들 거리며 여유를 보이는 존의 모습에 황당하기 그지없다.


"하다 하다 너무하네 진짜. 당신들! 선수가 아무리 탐이 나도 그렇지! 총재님 이름까지 팔아서 그러고 싶소?"


나이가 지긋한 기자가 삿대질을 했다.


"뭐, 괜찮습니다. 곧 상황이 종료될 테니까요."


어깨를 으쓱, 시계를 힐끔 본 존이 외쳤다.


"다음 질문."


잠시 눈치를 살피던 기자들이 하나 둘 손을 들었다.


"이민재 선수 입단에 서류상 문제가 있으니 입단이 취소되고, 그러면 자유 계약 선수가 된다는 말입니까?"


"Yes. Next."


"그럼 이민재 선수가 다시 워리어스랑 계약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무슨 말씀인지? 9개 구단이 가만히 있을까요? 리그 최고 투수를 7시즌 더 보고 싶을 팀은 없을 겁니다."


각 구단 담당 기자들은 잠깐 기억을 더듬었다.


'지금 순위권 경쟁 중인 팀은 물론이고, 싹 다 같은 생각이겠군.'


'가질 수 없다면 보낸다.'


여러 사례가 있지만 협회는 항상 다수의 편에 섰다. 작은 불합리나 위법이 있어도 어물적 넘어갔다. 그것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도 같은 프로야구를 지키는 길이었기에.


항상 넓은 길, 편한 길, 안전한 길을 택했다. 그렇기에 한국 야구 시장이 유래 없이 빠른 속도로 안착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늘 안정을 택했기에 혁신은 없고 서서히 곪아가는지도 모른다. 고인물은 썩기 마련. 태풍이 불고 파도가 쳐야 썩지 않는 법이다.


"그럼 이민재 선수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협회 하기에 달렸죠. 협회에서 31일 전에 처리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민재의 전성기 1년을 통으로 날려버리고 싶지 않다면 말이죠?"


덜컹.


중후한 소리와 함께 회견장 문이 열렸다.


저벅저벅.


늘상 깔끔하게 정리되던 흰 수염이 지저분하게 자랐다.


늘 입던 검은 양복. 늘 하던 루틴.


최총재 그가 등장했다.


"총재님!"


"아니, 어떻게..."


내막을 아는 이들은 동요하고, 모르는 이들은 반가워한다.


이 작위적인 상황을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다 앉으시오."


오랫동안 멈춰있던 성대가 다시 마찰을 일으킨다. 폐에서 나온 공기가 성문을 넘어 공기를 진동시킨다.


그의 목소리는 전과 달라졌다.


그의 눈빛도 전과 달라졌다.


그의 생각도 전과 달라졌다.


"이민재의 부산 워리어스 입단을 취소한다."


그의 한마디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총재님, 이건 쉽게 결정할 사한이..."


"그만."


"이민재는 그동안 받은 급여를 모두 워리어스에 반환하도록 하고, 워리어스는 취업규칙 위반으로 벌금 500만 원. 하지만 그동안 뛴 기록은 전부 유지하고, 이민재가 한국 리그에서 계약할 때 우선권은 워리어스가 가진다."


총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협회 직원들이 관련 규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총재는 찾아볼 필요가 없었다. 모든 규정을 만든 장본인이었으므로.


"그리고 특별 규정 3조 1항 5호에 가목, 2번에 의거하여 지금부터 자유계약 선수로 전환하며, 국내 구단과는 이번 시즌이 끝나고 접촉할 수 있다. 이의 있나?"


이 상황에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대상은 단 한 명뿐.


최총재와 앙숙 관계인 워리어스 구단의 구단주, 구단주뿐이다.


긴급하게 전화로 연결된 그의 목소리가 전화를 넘어 장내에 울려 퍼졌다.


"보내라 고마."


심술쟁이. 욕심쟁이. 고집쟁이. 혹부리 영감. 놀부심보. 모두 그를 지칭하는 말이다.


워리어스의 구단주는 모두의 예상과 다른 말을 뱉었다.


"구단주님! 이건 말도 안 되는 억지입니다... 저희 쪽에서도 규정을 찾아보면..."


선수 계약을 담당하는 프런트 직원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아니. 내가 민재 영입하라꼬 한 거는 내가 최원동 팬이기 때문 아이가."


구단주의 머릿속에는 민재가 처음 테스트를 받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민재 선수. 커브 가꼬 무시해서 미안타. 이래 보석 같은 아 인 줄 알았으모 글케 안 했찌."


힘차게 코를 한 번 마신 구단주가 힘차게 외쳤다.


"내는 이제 최원동이 뿐만 아이라 이민재 팬도 됐는데 내가 우찌 앞 길을 막겠노. 안글나!"


최원동 또한 메이저리그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협회와의 불화만 아니었다면 그는 분명 메이저리그에서 역사를 새로 썼을 것이다.


"내가 최총재. 저 노마 보모 한 따까리 하고 싶지마는. 민재 얼굴 생각해 가 고마 정리할란다."


"아, 그리고 송부장. 니는 시말서 준비하고. 끊어라. 잘란다."




늦은 밤. 갑자기 실업자가 된 민재는 어안이 벙벙하다.


"너무 잘해서 잘렸나 봐요."


같이 호텔에서 보강운동을 하던 이민재와 윤희동은 구단 직원의 급한 연락을 받고 서둘러 짐을 정리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에이전트들이 이민재를 보러 오고 있다.


민재 입장에서는 좋고 싫음에 관계없이 실업자 신세. 누가 되었든 가장 좋은 에이전트를 만나 8월 31일 이내에 메이저 진출에 성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할머니...'


전역한 지 반년 조금 넘는 시간. 전역할 때는 할머니를 어떻게 봉양해야 할지 막막했다.


막상 반년 동안 박특급에게 훈련을 받으며 함께한 할머니의 모습은 행복해 보였다.


10살 이민재를 돌보느라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자식과 며느리 잃은 슬픔을 꾹꾹 눌러야 했던 그날의 슬픔은 모두 잊고, 당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어릴 때 모두의 첫사랑이었던 그녀는, 지금도 박특급과 김근성에게 애정 공세를 받으며 의기양양하게 노후를 즐기고 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메이저리그.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패스트볼 밖에 없는 민재가 그들의 방망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아가야 한다.


'할아버지와 엄마 아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라도.'


미국 부통령, 나이든. 그를 만날 방법은 월드시리즈 우승 후 초대되는 백악관 만찬뿐이다.


'반드시 메이저리그로 간다.'


"형, 저는 걱정하지 말고 꼭 성공하세요. 저도 빨리 따라갈게요. 저도 아쉽죠. 하지만 저 때문에 발목 잡힐 생각은 하지 마세요. 가끔 그냥 경기 보고 응원해 주시면 전 그걸로 만족할게요."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 민재를 본 윤희동은 오해를 하고 있었다.


"아, 그래. 잘 지내고."


"민줴~"


외국인 트리오와 임시 감독 스티브 권도 민재의 방에 찾아왔다.


"고생했다."


"갑작스럽게 떠나서 죄송합니다."


"네가 잘못한 게 있나. 구단에서 실수한 건데. 내가 미안하게 생각해. 너 같은 선수를 데리고 있을 수 있어 영광이었어."


손을 꽉 잡은 스티브와 민재는 다음을 기약했다.


"헤이, 농구 내기 마저 해야 하는데 아쉽네."


5:5로 3점 슛 내기에서 호각을 다투던 민재와 커리의 대결은 이대로 잠시 멈추게 되었다.


커리에게 배운 핸드셰이크를 하고 가볍게 인사했다.


"시즌 마치고 캘리포니아로 와. 내 요트 태워줄 테니."


"땡큐, 캡틴."


요트 운전이 취미인 탐슨도 인사를 건넸다.


"민줴! 나보다 먼저 미국을 가다니. 한 방 먹었군 그래. 다음 시즌에는 메이저에서 붙어보자고!"


그린도 터프한 인사를 하며 작별을 고했다.


"아, 그리고 에이전트 중에 스콧은 특별히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코인 하다 싹 날려서 돈독이 많이 올랐어. 네 목표가 우승이라면 그 녀석이랑은 손잡지 않는 편이 좋아. 널 제일 비싸게 살 팀으로 보내버릴 거거든."


그린의 귀띔을 들은 민재는 그린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가. 그라운드에서 만나면 조심하고. 그때는 담장 밖으로 날려버릴 테니까."


어떻게 알았는지 선수들이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포구 실수로 퍼펙트 게임을 날려버렸던 포수 장민호가 제일 앞에 서있었다.


"고마웠어."


"죄송합니다..."


"아냐. 덕분에 더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 내 공 받아줘서 고마웠어."


한 사람씩 가볍게 인사를 하고 복도를 빠져나온 민재는 이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덜컹.


호텔의 오피스룸.


긴급한 회의나 중요한 약속이 있는 VIP들이 사용하는 장소에 들어온 민재는 구단 직원에게 물었다.


"통역 형도 같이 들어가나요?"


"왜? 불편해? 빠져줄까?"


"아니. 가능하면 같이 가주면 좋죠."


이제 자유계약 신분이 된 민재에게 워리어스 구단이 통역을 붙여줄 이유는 없다. 순전히 워리어스 구단의 호의일 뿐. 그들의 호의에 감사하며 자리에 앉았다.


"오, 이민재 선수. 반갑습니다. 저는 스콧 코퍼레이션 아시아 담당 존이라고 합니다."


한껏 으스대며 한국어로 인사를 건넨 존.


"가서 너희 상사 데려와."


뱃사람의 영어로 받아치는 민재를 보고 움찔 한 존이 다시 한국어로 물었다.


"제가 아시아 담당입니다만, 저랑 이야기하시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은데요..."


존의 목소리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점점 쭈그러들었다.


"됐고. 너희 상사 올 거 아니면 다른 에이전트 먼저 보고 올 테니 기다리던가. FXXKER Man."


'이민재 원래 이런 선수였나? 성격이 왜 이래?'


그동안 한국어 인터뷰나 그의 행실을 추적해 온 존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늘 겸손과 배려가 몸에 밴 이민재였기에 인성에서도 최고점을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반말에 욕설이 난무하다니?


워리어스 통역도 놀라긴 마찬가지.


'아, 영어에는 원래 높임말이 없었지.'


반면 최대한 정중하게 발언하기 위해 그동안 배운 영어를 곱씹은 민재는 가장 중요한 상황에 들었던 어휘를 재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생선 대가리 같은 스콧. 그놈을 빨리 내 앞에 꿇리라고. 내 말 알아들어? 이 얼간아!"


선장이 구사하던 격식을 갖춘 언어를 기억해낸 민재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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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7화 지배 24.08.19 18 0 12쪽
27 26화 돈 24.08.18 19 0 13쪽
26 25화 아버지 24.08.17 21 0 12쪽
25 24화 관조 24.08.16 20 0 12쪽
24 23화 생소함 24.08.15 21 0 13쪽
23 22화 김나박이, 최 24.08.14 20 0 12쪽
22 21화 개화 24.08.13 23 0 12쪽
21 20화 변신 24.08.12 24 0 12쪽
20 19화 야구 VS 축구 24.08.10 34 0 13쪽
19 18화 야성 24.08.09 29 0 13쪽
18 17화 균형 24.08.08 32 0 13쪽
17 16화 마무리 24.08.07 42 0 12쪽
16 15화 김나박이 24.08.07 42 0 12쪽
15 14화 리더 24.08.06 38 0 13쪽
14 13화 물밑 작업 24.08.06 43 0 12쪽
13 12화 카르텔 24.08.05 51 0 12쪽
12 11화 진실 24.08.05 54 0 12쪽
11 10화 승부조작(2) 24.08.04 59 0 12쪽
10 9화 승부조작(1) 24.08.04 58 0 12쪽
9 8화 구원투수, 배팅볼러 24.08.03 65 0 13쪽
8 7화 100마일짜리 배팅볼 24.08.03 68 0 12쪽
7 6화 이글아이 24.08.02 70 0 13쪽
6 5화 목격자 24.08.02 71 0 11쪽
5 4화 배팅볼 24.08.01 9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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