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볼 마스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스포츠, 현대판타지

하나냐
작품등록일 :
2024.07.30 22:05
최근연재일 :
2024.08.22 21:00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2,021
추천수 :
17
글자수 :
167,915

작성
24.08.08 21:00
조회
32
추천
0
글자
13쪽

17화 균형

DUMMY

자신도 모르게 초록 유리가 인상적인 넥시엔슨 사옥 근처까지 온 민재였다.


"맞구나. 오늘 경기 잘 봤다."


전체 경기를 다 본 건 아니지만 구단들의 상황을 계속 팔로업 하다 보니 워리어스의 경기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둘 사이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배를 타기 전 인사한 이후 개인적으로는 처음 만난 자리다.


"죄송해요 아저씨. 제가 먼저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아니다. 내가 미안하지. 사실..."


하늘을 보며 넋두리를 하던 최회장은 멀리서 뛰어오는 폼을 보고 벌써 알았다.


'이민재.'


민재가 달려오는 30초 동안 고민, 또 고민했다.


하늘의 별이 된 친구들의 원한을 민재가 꼭 갚아야만 할까.


'겨우 잊고 살아가는 아이에게 내 죄책감 덜자고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 아닌가...'


민재에게 최회장은 양아버지 같은 사람. 아버지에게 배워야 할 훈육과 칭찬은 모두 최회장의 몫이었다.


민재가 성인이 되자마자 배를 타겠다는 민재를 말리지 못하면서 한편으로는 배를 타고 다 잊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자녀라면 내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왜 돌아가셨는지 알 권리가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민재를 위한다는 이유로 진실을 전하는 책무를 외면 해왔다.


균형. 그동안 아슬아슬하게 유지되어 오던 것이 무너질 위기다.


드디어 최회장은 아들이나 마찬가지인 아이에게 미움받을 용기를 냈다.


'이제 공을 넘기자.'


"일단 같이 걸을까?"


밤하늘의 별이 찬란하게 빛났다.


어릴 때 수현이와 문고, 대한과 같이 있었던 이야기,

시장에서 만두 먹은 이야기,

배 탄 이야기,

군대에서 매일 구보를 하게 된 이야기.


한 번 대화를 하다 보니 아빠와 아들처럼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대한이 이름이 왜 '대한'인 줄 알아?"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라고 그런 것 아닌가요?"


절레절레.


"그럼 능력을 최대한 키우라고..."


빵 터진 최회장이 호탕하게 웃자, 살짝 머쓱해진 민재가 물었다.


"그럼 왜 대한인데요?"


"네 큰 아빠 이름이다."


큰 아빠라니. 또 처음 듣는 이야기. 요 근래 몰랐던 집안 사정을 자꾸 알게 된다.


"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쌍둥이를 낳으셨다. 첫째는 이대한. 둘째는 네 아버지 이민국. 둘 다 내 친구지."


최회장이 산책로 난간을 붙잡고 몸을 기울였다.


"내가 스무 살 때. 대한이가 야구장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났어. 그때 우리 아버지도 그 현장에 있었고. 그런데 아버지는 야구 흥행에 미쳐있어서 사건을 덮어버렸지. 그래서 나는 호적에서 파이더라도 아버지 손에서 벗어나기로 결정했다."


사랑의 도피쯤으로 여겼던 아저씨의 결혼 이야기가 이런 뒷이야기가 있었다니.


"그 친구 이름을 따서 최대한이라고 지었어."


하늘의 별이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십 년 뒤에 네 아버지와 엄마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두 사건이 이어져있다고 보고 있어. 사건의 열쇠는 내 아버지인 최총재가 쥐고 있고."


후.


"미안하다. 너무 늦게 말해줘서. 아니, 이제 와서 내 맘 편하자고 너한테 털어놓는 것 같아서."


그간 못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 태워준다는 최회장의 호의를 극구 사양하고 다시 숙소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반짝이던 별 하나는 어디로 사라지고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와 하늘을 가렸다.


"앗 차가."


한 두 방울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시원하게 쏟아졌다.


"하하. 아하하."


실성한 듯 웃기 시작한 민재의 뺨에 빗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물이 흘러내렸다.


김근성 감독의 이야기와 최회장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할아버지와 큰아버지, 그리고 부모님을 해친 사람은 동일 인물일 것이다.


점점 하나의 그림으로 조각이 맞춰진다.


[실업야구의 전설, '김나박이'가 할머니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했다. 할머니를 차지한 이필승을 시기한 나이든이 이필승과 두 아들을 죽였다.]


아주 간단한 플롯.


최총재가 김근성에게 전해줬다는 쪽지.


[순자와 이필승 사이의 씨앗은 전부 짓밟아 없애겠다]


현재는 쪽지가 유일한 증거다. 쪽지가 사실이라 해도,

나이든이 실제로 살해한 범인이라 해도 민재가 나이든을 단죄할 방법이 없다.


그 나이든은 바로...


'미국 부통령이니까.'


세계 최고의 강대국 미국. 그들의 국방비는 1,000조. 천조국의 경호를 뚫고 부통령을 암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가운데 희미한 증거를 가지고 미국 부통령을 상대로 소송을 건다고 해도 한국의 공권력이 미국에 닿을 리 만무했다.


'하하...'


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다. 최초의 아시아계 부통령인 그에게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복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도대체 내가 뭘 어떻게 해야...'


도로에서 차가 비상등을 켜더니 멈춰 섰다.


"야! 이민재!" 한 사람이 우산을 펴고 차에서 내렸다.


'황금마티즈.'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황금마티즈를 보고 본능적으로 빌었다.


'신이 계시다면 악인의 악을 벌해주소서.'


"눈감고 뭐 해! 빨리 타!"


최수현과 최대한이었다.


"비 맞으면서 어떻게 걸어가려고 그랬어."


웬일인지 걸어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민재의 등짝을 때리고 차에 태운 수현은 애가 탔다.


"오늘 너 이상해. 너답지 않게 과하게..."


아니. 지금까지의 기억을 돌이켜보면 민재는 늘 과했다. 과하게 친절했고, 과하게 남을 배려했다.


손해 볼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항상 자신을 희생했다. 남들에게 과한 것이 민재에겐 당연한 것이었다.


"아니, 이게 너 다운거구나."


입술이 파래져서 덜덜 떠는 민재를 꼭 안아주는 수현. 그것을 룸미러로 바라보던 대한이 헛구역질을 했다.




민재가 눈을 뜬 것은 다음 날 새벽.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비 냄새에 마음이 조금 안정되었다.


눈을 붙이고 나니 생각이 정리되었다.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상체를 일으키기 위해 등에 힘을 주자,


'악!'


세포 세포마다 소리 없이 아우성이다.


고개를 들어보니 침대 발치에 엎드려 자고 있는 최수연이 보였다.


'으음.'


뭔가 먹는 꿈을 꾸는지 입을 오물거렸다. 맛있는지 씨익 웃는 얼굴에 짱구가 보였다.


"실망시키지 않을게. 너한테 자랑스러운 내가 될게."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고백한 민재.


살갗이 따갑도록 쏘아보는 맞은편 의자의 최회장이 보인다.


요상한 자세에서 숙면을 취한 최수현이 싱글벙글하자, 못마땅한지 최회장은 아침부터 온갖 걸 다 트집 잡았다.


"외간 남자를 말이야. 응? 방에 들여오고 말이야. 응? 물론 미국 가있어서 안 쓴 지 오래되긴 했지만..."


"뭐래."


한 마디로 아빠의 잔소리를 차단해 버린 수현이었다.


"이거 볼래? 우리 졸업앨범이야."


분위기를 탄 수현이 추억의 물건들을 꺼내오기 시작했다.


"어휴, 먼지가 좀 나네. 이건 같이 물놀이 갔을 때네?"


액자에 걸린 사진, 가지고 놀던 소꿉장난, 탑블레이드 팽이, 유X왕 카드. 소꿉놀이 사진에는 엄마 아빠 역할의 민재와 수현이 뽀뽀를 하는 장면이 빛바랜 사진으로 남아있었다.


"대한이 아빠~"


어릴 때를 흉내 내는 듯, 얼굴을 가까이하는 수현 때문에 얼굴이 토마토가 된 민재.


"대한이 애비는 나야!"


인내심을 시험당하는 최회장이 소리쳤다.


고함 소리에 최대한 빨리 달려온 최대한이 문을 열고 들이치자, 위엄 있는 회장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파자마 바지를 입고 딸을 붙들고 가지 말라고 징징거리는 팔불출 갱년기 남성이 보였다.


'내가 대한이 아빠야'라고 쩌렁쩌렁 울리게 소리치는 아빠에게 한마디 했다.


"창피하다 아빠."


'큼큼.'


인간미를 보여준 최회장이 분위기를 잡고 검은 슈트를 입었다.


집에서 참여하는 원격회의. 세계 각지에 흩어진 개발자들이 부스스한 모습으로 저마다 화면에 나타났다.


"개발 과정은 어떻게 되어가지?"


'플레이볼' 개발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시장.


"시장 자금이 아주 얼어붙었습니다. 도대체 녀석들 영향력이 어디까지인지..."


주가가 폭락한 것도 모자라 이젠 주거래 은행과 자금 투자자들까지 발을 뺐다.


"이틀 만에 이 정도 반응속도라."


'미국 대통령 정도 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렇게 전방위적인 압박을 할 수 있는 권력자가 있을까?'


한국을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압박할 정도라니. 거의 전범국가에 금융제재를 때리는 것처럼 살벌하다.


"얼마 정도 버티겠어?"


회계 담당자가 입맛을 다셨다.


"보수적으로 잡으면 3개월이요. 러프하게 잡으면 뭐, 한 6개월?"


용단이 섰다.


"여러분한테는 미안하게 생각해."


그 뒤에 올 말은 화면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다.


"끝까지 간다. 파산하면 실업급여 알아봐 줄게."


옆에 틀어둔 선풍기 바람에 파자마 바지가 펄럭인다.



두 번째 회의. 이번엔 크로커다일즈와의 회의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뭐부터 할까요?"


TF팀으로 배치된 대리가 훈장처럼 내려온 다크서클을 문지르며 물었다.


"언제나 좋은 소식부터."


최회장의 말에 대리가 사라지고 화면이 올라왔다.


"레이븐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내부 조사를 마쳤고 한 명이 자수했답니다."


"나쁜 소식은?"


"협회에서 자진 신고를 묵살했답니다."


'이렇게 나오시겠다는 겁니까, 아버지.'


최총재의 결정에 치를 떤 최회장이 물었다.


"그럼 레이븐스의 의중은 뭡니까."


"구단주께서 직접 방문하셔서 회장님과 상의하고 싶답니다."


대전 레이븐스의 구단주 김회장. 국내 굴지의 대기업 중 하나로 방산업이 주력이라 개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사설 경호나 뒷세계에도 다리를 많이 둔 것으로 유명한 기업이다.


"오늘 통으로 일정 비우세요. 김회장님 시간에 맞춥니다. 다음."


비서실이 움직였다.


"경찰 내부 소스로 들어왔습니다. 강효민과 정우준이 청태오의 자택에서 잡혔답니다. 경찰은 신중하게 조사하고 언론에는 빨라야 오늘 저녁에나 발표가 날 것 같습니다."


"청태오는?"


워리어스의 레전드. 이번 사건의 알파이자 오메가라 판단하고 있다.


"현장을 급습했을 때는 이미 도주하고 없었답니다. 아파트 단지 CCTV까지 싹 날린 걸 보면 분명 배후가 있어요."


"주차장 차량 블랙박스는 확보 안 했답니까?"


검사 출신 TF팀 고문이 날카롭게 물었다.


"경찰 쪽에도 우리 소스보다 윗선이 개입된 것 같습니다."




"그래, 박실장. 이의원님한테는 그렇게 전해주게."


흰 수염이 인상적인 남자, 최총재가 전화를 끊었다.


프로야구 설립 때부터 이어져온 삼각동맹. 정치-경제-스포츠로 이어지는 삼각편대는 완벽한 균형을 자랑했다.


이권 다툼 없이 삼권분립을 할 수 있었던 건 최총재의 헌신 덕분.


스포츠가 흥행하려면 자금이 필요하다.

경제계는 자금을 충당해 주고 홍보 효과를 누린다.

정치는 스포츠와 결탁해 대중의 지지를 얻는다.


정치에서 표는 곧 힘. 다수의 뜻이 곧 선이 되는 정치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표였다.


'청태오, 이 미련한 녀석.'


청태오가 '용돈벌이'에 손을 대고 나서 균형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정치계의 VIP는 부산 지역 표를 원했다. 청태오는 부산 지역의 대스타. 청태오가 VIP의 캠프에 합류한다면 부산 지역 승리는 따 놓은 당상. 격전지 부산을 가져간다면 대통령은 더 이상 꿈이 아니다.


청태오는 해외리그에 진출하면서 줄어든 영향력을 회복하길 원했다. 사법과 언론을 주무르는 VIP라면 청태오가 원하는 모든 걸 줄 수 있다.


여기저기 도와주시는 분들께 '용돈'을 드리는 건 당연한 일. 청태오는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용돈벌이'를 시작했다.


VIP가 소개해준 뒷세계의 큰손. 그들이 굴리는 판돈은 상상하기 힘든 액수였다.

청태오가 지시하면, 투수는 볼넷을 준다.

첫 볼넷을 맞춘 사람들은 돈을 딴다.

돈 따는 소식은 모두를 아군으로 만든다.

청태오는 수고한 투수에게 당근을 준다.


이 모든 걸 알아챈 최총재가 묵인할 수밖에 없는 이유. 조작된 판이 누구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만큼 극적이기 때문이다.


9회 말에 시작되는 네 타자 연속 볼넷. 말도 안 되는 공에 세 타자 연속 헛스윙 삼진. 각본 없는 드라마도 짜릿한데, 잘 짜인 각본은 오죽할까.


시즌 최고의 명경기로 회자되는 경기 중 다수는 청태오의 머릿속에서 나온 시나리오대로 굴러간 작품이었다. 청태오의 손길이 닿은 경기마다 시청률이 폭발하고, SNS를 도배하고, 세간의 주목받았다.


청태오의 무게감이 올라갈수록 그동안 유지하던 균형도 기울어졌다.


자식도, 마누라도, 돈도, 명예도. 자신의 건강과 가정마저 내팽계치고 키워 온 자식보다 더 귀한 시스템이 서서히 붕괴된다.


이제 최총재는 삼위일체의 무게중심에서 탈락했다.


'모든 걸 포기한 결과가 이거란 말이냐.'


쿨럭쿨럭.


입을 틀어막은 오른손에 검은 피가 새어 나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패스트볼 마스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1부 마감 및 휴재 공지 24.08.23 8 0 -
31 30화 미국 24.08.22 12 0 12쪽
30 29화 실업 24.08.21 14 0 13쪽
29 28화 기적 24.08.20 16 0 11쪽
28 27화 지배 24.08.19 18 0 12쪽
27 26화 돈 24.08.18 19 0 13쪽
26 25화 아버지 24.08.17 21 0 12쪽
25 24화 관조 24.08.16 20 0 12쪽
24 23화 생소함 24.08.15 21 0 13쪽
23 22화 김나박이, 최 24.08.14 20 0 12쪽
22 21화 개화 24.08.13 23 0 12쪽
21 20화 변신 24.08.12 24 0 12쪽
20 19화 야구 VS 축구 24.08.10 34 0 13쪽
19 18화 야성 24.08.09 29 0 13쪽
» 17화 균형 24.08.08 33 0 13쪽
17 16화 마무리 24.08.07 42 0 12쪽
16 15화 김나박이 24.08.07 42 0 12쪽
15 14화 리더 24.08.06 38 0 13쪽
14 13화 물밑 작업 24.08.06 43 0 12쪽
13 12화 카르텔 24.08.05 51 0 12쪽
12 11화 진실 24.08.05 54 0 12쪽
11 10화 승부조작(2) 24.08.04 60 0 12쪽
10 9화 승부조작(1) 24.08.04 58 0 12쪽
9 8화 구원투수, 배팅볼러 24.08.03 65 0 13쪽
8 7화 100마일짜리 배팅볼 24.08.03 68 0 12쪽
7 6화 이글아이 24.08.02 70 0 13쪽
6 5화 목격자 24.08.02 71 0 11쪽
5 4화 배팅볼 24.08.01 98 1 12쪽
4 3화 스카우트 24.08.01 143 1 12쪽
3 2화 유일한 수 24.07.31 189 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