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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냐
작품등록일 :
2024.07.30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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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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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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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5화 아버지

DUMMY

[부재중 66건]


낡은 구형 핸드폰에 찍힌 부재중 전화.


천장을 바라보니 전등이 끔뻑 끔뻑. 빛을 잃었다, 다시 붙었다를 반복한다.



"너도 그렇구나! 나처럼. 하하..."


얼마나 누워있었을까. 가뭄에 논이 갈라지듯 목구멍이 갈라지는 듯한 통증. 호흡을 뱉어낸 최총재다.


시계 하나 없는 그의 방은 참 공허했다.


강남 위에 우뚝 솟은 사무실에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잠깐잠깐 쪽잠을 자면서 생활한 지도 수 십 년. 짐이 있는 것이 더 이상했다.


처자식 모두 떠나간 지도 30년. 30년 동안 홀로 살다 보니 집에 냄비 하나, 수저 한 벌, 덮고 누울 이부자리. 입고 나갈 양복 한 벌과 신 한 켤레. 그것이 그의 전부였다.


벽에 걸린 가족사진에 담긴 어린 최회장과 젊은 최총재. 그리고 그의 부인. 사진 속 셋은 활짝 웃고 있었다.


간 밤에 비가 왔는지 집구석 여기저기 물이 흥건하다.


"이사를 가든지 해야겠구만."


노구를 일으켜 화장실 문을 열자, 끼이이익. 귀신의 집처럼 으시시한 소리가 났다.


화장실 전구도 말을 듣지 않았다.


"너는 아예 맛탱이가 갔구나! 그래. 갈 사람은 가야지."


한 바탕 고함을 친 최총재가 다시 기침을 했다.


콜록콜록.


검은 핏물을 씻어내려고 수도꼭지를 들어 올리자, 누런 녹물이 흘러나왔다.


"이런 빌어먹을 놈 같으니라고!"


세면대를 탕 하고 내려치자, 와장창. 세면대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염병하네."


사각 트렁크 속옷에 검은 피를 슥슥 문지르며 욕지거리를 하고 돌아 나오자, 깜빡거리던 방 등이 밝게 빛났다.


최총재의 머릿속에도 빛이 반짝 켜졌다.


'내가 한 말이 다...'


아버지에게 들었던 말이라는 것을 깨달은 최총재가 화장실 입구에 우두커니 섰다.



최총재의 어머니는 지적장애가 있었다. 온 식구가 온 동네를 한참을 헤매다가 밤늦게 가보면 집에 와서 곯아떨어져있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아버지는 늘 말했다.


'이사를 가든지 해야지.'


어느 날은 어머니가 동네 불량배들에게 붙잡혀 험한 꼴을 당할 뻔했다.


아버지는 그들에게 맞서 싸우다가 피가 떡이 되도록 얻어맞고 겨우 아내를 찾아왔다.


피투성이 남편을 본 엄마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내내 울기만 했다.


그런 아빠는 아내를 보고 말했다.


'아예 맛탱이가 갔구나.'


10대였던 최총재는 집이 싫었다. 정말 싫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야구부를 만들고 밖으로 돌았다.


그런 최총재를 본 아버지는 말했다.


'그래, 갈 사람은 가야지.'


최총재는 야구부를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 엄마를 꼬셔서 엄마 지갑에 있는 돈을 꺼내 친구의 야구부 회비를 대신 내줬다.


화가 난 아버지는 최총재를 쫓아내며 말했다.


'이런 빌어먹을 놈 같으니라고!'


큰 경기가 잡힌 날. 최총재는 구장을 채우는 것에 여념이 없었다.


이번 경기만 성황리에 마무리하면 기업들은 투자를 하고, 정부는 제도권으로 받아줄 것이다.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최총재는 아빠에게 엄마와 함께 야구장에 오라고 했다.


아버지의 대답은?


'염병하네.'


그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대답이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아버지 생각이 다 나고.


최총재의 아버지는 프로야구가 출범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젊은 시절의 최총재는 늘 생각했다. 나의 아버지는 무능한 아버지라고.


'이제 와서 돌아보니 아버지는 대단한 사람이었어.'


최총재처럼 위대한 업적은 남기지 못했지만 그는 남자답게 가정을 지켰다.


"아버지, 보고 싶소."


최총재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예, 회장님. 괜찮으시겠습니까?"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전에 갔던 사무실의 총재실을 밀고 들어가도 자리에 없다.


최회장의 아버지는 자기 자리를 비운 적이 없는 사람이다.


최회장의 입학식에도, 운동회에도, 시상식에도, 발표회에도, 졸업식에도.


최회장의 옆자리는 늘 비어있었다.


70 평생, 아니 80, 90, 100살이 되어도 최총재는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았다.


"네. 가봅시다."


힘들게 입수한 정보. 서울 외곽의 허름한 원룸촌.


그중에도 월세가 가장 싼 옥탑방. 좁고 이끼 낀 계단을 타고 입구에 섰다.


아직도 이런 문이 있나 싶은 낡고 여기저기 찌그러진 양철 문.


그 문을 열자 다 늘어지고 구멍 난 메리야스를 입고 쓰러진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 아버지!"




너무 좁은 골목. 119가 들어올 수 없어 길을 지나가는 경차를 붙들고 소리쳤다.


"아주머니. 이 차 제가 살게요. 얼마면 됩니까."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희 비서랑 이야기하시죠."


명함을 불쑥 내밀고 운전석에 탄 최회장이 큰 병원으로 향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이렇게 검은 피가 나오는 것은..."


의사의 말을 듣고 나온 최회장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잘 먹고 잘 사는 줄 알았던 아버지의 본모습은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아버지 곁을 떠나 아내와 함께 가난을 이겨내 보자고 허리띠를 졸라맬 때도 저 정도는 아니었다.


중간에 사업이 부도나서 도망자 신세가 되었을 때도 저런 집에 살지는 않았다.


호의호식하고 떵떵거리며 사는 줄 알았던 아버지는 총재보다는 독거노인에 가까웠다.


"회장님. 총재님 자택을 정리하다가 발견했습니다. 보셔야 할 것 같아서 가져왔습니다."


커다란 상자. 뚜껑에 큰 글씨로 이렇게 적혀있었다.


'내 아들 최회장'

'새아가'

'최수현'


최회장이 집을 나간 스무 살부터.


하루에 천 원, 오 천 원, 오만 원. 여러 가지 제목을 붙여 꼬박꼬박 저금하고 있는 통장이었다.


[199X년 입금: 10만 원 거래명: 아들신혼집]


[20XX년 입금: 20만 원 거래명: 손녀등록금]


'본인 건강이나 챙기지 왜 쓸데없는 짓을!'


분해서 눈물이 나왔다. 그놈의 돈이 뭐길래.


돈에 고팠던 아버지는 집 나간 자녀에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가장 소중하고 고팠던 것을 모으고 또 모았다.


언젠가는 꼭 전해주겠다며.


[201X년 입금 100만 원 거래명: 미안해]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미안해'라는 거래명은 10년 내내 이어졌다.


20년도 1월 달에 들어오자 내용이 바뀌었다.


[202X년 입금 1,000만 원 거래명: 사랑해]




"최총재님, 왜 연락을 피하십니까. 약속 잊지 않으셨겠죠?"


"너 누구야."


'음?'


들어본 목소리. 아니, 모를 수 없는 목소리.


'최회장이 왜?'


시나리오를 짜 맞춘 박실장이 선글라스 다리를 매만졌다.


"큼. 안녕하십니까 최회장님. 저는 이대장 의원님 산하 조직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실장이라고 합니다."


박실장의 목소리는 살짝 무미건조해졌다.


"설명해. 당장."


다그치는 최회장에게 반문했다.


"설명은 제가 들어야겠습니다만. 왜 총재님 전화를 회장님이 받으시죠? 같은 최씨시니까 무슨 친아들이라도 되십니까?"


"이 새끼가!"


최총재와 최회장은 연을 끊은 사이.


둘의 관계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니, 이제 없다. 죽은 이대한과 이민국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면.


"제가 무례했다면 사과드리죠."


한 발 물러난 박실장이 여유를 보였다.


"너랑 말장난할 생각 없어. 너 목적이 뭐야.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하도 소리를 질러서 핸드폰 소리가 뭉개진다. 핸드폰을 귀에서 멀리 때고 듣던 박실장이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어르신 말벗 서비스라고 모르십니까? 요즘 실버산업이 대세라는데. 사업가가 트렌드 공부에 소홀하시면 곤란하죠."


"너 어디야. 당장 불어."


"ㅇㅇ병원은 아니라는 점 말씀드리고 싶네요."


최회장이 있는 병원을 콕 집었다.


"나랑 해보자는 거냐?"


"오우. 저 그렇게 간 큰 놈은 아닙니다. 대기업 회장님을 적으로 돌리는 건 내키지 않는군요. 차라리 절 스카우트하시는 건 어떠십니까. 여긴 직원 복지가 영 별로라 이직할까 고민 중이거든요."




"너 이 새끼!"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박실장이 멱살을 틀어잡혔다.


"흠. 어젯밤에 잡혔던 거에 비하면 가볍긴 하네요."


"뭐?"


어제 민재에게 했던 것처럼 양팔을 들어 올린 박실장이 옷무새를 고치며 자리에 앉았다.


"어제 만난 100년 묵은 구렁이보다는 상대하기 수월하군요. 당신은 어느 종류인가요?"


지긋이 최회장을 바라보던 박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 무슨 짓 하고 다녔어. 트럭 사고 났을 때 그 기사한테 준거 뭐야."


"트럭 사고라니, 무슨 이야기하시는지 잘 모르겠네요?"


"그래. 그럴 줄 알았지. 김비서."


체격 좋은 남자가 화면을 당겨왔다.


"멋지네요. 제가 나오죠? 여기서 제가 브이 했는데 보셨나 모르겠군요."


카메라가 있는 걸 알고 있었나. 건물 관리용으로 달려있는 CCTV에 우연히 녹화된 것을 겨우 공수해 왔다.


빠져나갈 수 없는 증거라고 생각해 비장의 무기로 준비했는데 이렇게 쉽게 인정할 줄이야.


아니. 오히려 알고 있었을 줄이야.


"하고 싶은 말씀이 뭘까요? 네가 사주해서 내 사람들이 죽었다?"


"그래 이 새끼야! 둘 다 병원 신세야!"


"어허. 팩트 체크 해볼까요? 죽은 사람은 한 명도 없죠. 안 그렇습니까?"


오히려 김비서에게 질문을 하며 동의를 구했다.


"하. 참내. 뭐 하는 놈이야?"


어깨를 으쓱한 박실장이 대답하려 하자,


"됐어. 답을 바라고 물어보는 게 아니니까. 네 놈은 남 긁는데 재주가 있어."


"칭찬 감사합니다."


"또라이."


"제가 또라이로 보이십니까? 저런. 저는 거울입니다. 당신의 모습을 비추고 있죠."


한 마디도 지지 않는 박실장을 보고 포기했다.


"그래. 네가 할 말 해봐."


"민재 씨는 올해 미국에 진출해야 합니다."


대뜸 튀어나온 이름에 황당해하는 최회장의 반응은 안중에도 없다.


"그분이 그렇게 정하셨거든요. 민재씨가 메이저에 진출해야 모든 실마리가 풀릴 겁니다. 당신 친구에 관한 것도, 당신 아버지에 대한 것도."


"이대장 의원이 끗발 좋은 건 인정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뭐라고? 올해 미국 진출? 내 친구랑 아버지는 또 무슨 연관이 있다고..."


"서비스는 여기까지. 아, 그리고 전 사람 죽인 적 없습니다. 드럼통에 들어갈 사람들 구한 적은 있어도요."


일어나 나가버리는 박실장을 붙잡을 수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큰 그림을 보고 있는지 가늠할 수 없었으므로.




"네, 아저씨. 연락을 못 받으셔서 걱정했어요."


"그래, 일이 좀 있었다. 혹시 박실장이라는 사람 만난 적 있어?"


"네."


짧은 대답 후 숨을 고른 민재가 전화기를 쥔 손을 살짝 떨었다.


"이대장 의원이 보고 싶어 한다고 해서 갔더니 올해 꼭 메이저리그 진출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사인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끝이야?"


"네."


의미심장한 말만 남기고 사라진 박실장과 마찬가지로 어딘가 빠진 것 같은 이민재의 이야기를 듣고 살짝 고민에 빠진 최회장이다.


"민재야, 잘 들어라. 나는 너를 이미 가족으로 생각해.

수현이는 내 딸이지만 너무 잘났어.

그런 애를 데리고 살 사람은 너밖에 없다.

너만 괜찮으면 둘이 행복하게 살면 안 되겠니?

돈은 얼마든지 있다.

수현이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사람 부대끼는 것 그리 좋아하지 않으니 지금 수현이가 번 돈 만으로도 3대가 먹고살아도 남을 거야.

원한다면 내 회사 지분 절반이라도 줄 수 있다.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 너도, 수현이도. 제발 행복했으면 좋겠다."


전화 너머로 살짝이지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도망친 곳에 천국이 있던가요? 투수가 공을 던져야 경기가 시작되죠. 아시잖아요, 저 직구밖에 못 던지는 거."


진실의 편린을 마주한 이민재는 진실의 한가운데로 공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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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7화 지배 24.08.19 17 0 12쪽
27 26화 돈 24.08.18 19 0 13쪽
» 25화 아버지 24.08.17 21 0 12쪽
25 24화 관조 24.08.16 19 0 12쪽
24 23화 생소함 24.08.15 21 0 13쪽
23 22화 김나박이, 최 24.08.14 19 0 12쪽
22 21화 개화 24.08.13 22 0 12쪽
21 20화 변신 24.08.12 23 0 12쪽
20 19화 야구 VS 축구 24.08.10 33 0 13쪽
19 18화 야성 24.08.09 28 0 13쪽
18 17화 균형 24.08.08 32 0 13쪽
17 16화 마무리 24.08.07 41 0 12쪽
16 15화 김나박이 24.08.07 4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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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3화 물밑 작업 24.08.06 43 0 12쪽
13 12화 카르텔 24.08.05 50 0 12쪽
12 11화 진실 24.08.05 5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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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9화 승부조작(1) 24.08.04 5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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