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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냐
작품등록일 :
2024.07.30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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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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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김나박이

DUMMY

강호정이 강습타구를 때려내던 직후, 투수 박웅이 팔꿈치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아, 지독한 불운입니다. 좋은 투구를 이어가던 박웅 선수에게 부상이 찾아왔습니다."


"팔꿈치 쪽으로 보이죠? 아무래도 포크볼을 주 무기로 사용하기 때문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습니다."


전반기를 3점대 평균자책점으로 마무리하며 이제는 믿음직한 토종 1선발이 되었다는 평가가 나오던 박웅이다.


"준비해."


감독의 말이 떨어졌다.


"아, 마운드에 김근성 감독이 직접 올라오는군요."


트레이너와 함께 마운드로 올라온 감독은 말없이 박웅의 볼을 쓰다듬었다.


괜찮다는 표시로 손을 들어 올리려던 박웅은 '악!' 하는 입모양과 함께 팔을 움직이지 못했다.


박웅이 트레이너의 부축을 받아 내려가고 올라온 투수는,


"이민재. 이민재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이렇게 되면 3연투죠?"


"급한 상황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만, 신인 선수를 3연투 시키면 김근성 감독의 마지막 경기까지 '혹사'라는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마지막까지 혹사라는 키워드가 나오자 신인 시절 김근성 감독의 밑에서 뛰었던 나해설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저는 혹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단 첫 경기 10구, 두 번째 경기 3구로 마무리했고, 이민재 선수는 다른 선수와 다르게 불펜 피칭이 없습니다.

외부에서 모르는 사실 중 하나는 김근성 감독은 항상 투수의 상태를 묻고, 투수 본인이 OK 한 상황에서만 등판시킨다는 겁니다.

트레이닝 파트를 강화해서 선수들의 건강 상태를 주기적으로 체크하고 있고, 팀 닥터와 상의하여 수치 상으로 등판이 불가능하면 올리지 않습니다.

개인마다 연투로 쌓이는 부담도 다르고요. 저는 모든 선수를 등판 횟수 같은 잣대로 혹사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건 무리라고 봅니다."


평소와 다른 나해설의 반응에 머쓱해진 중계석의 분위기를 바꿔놓은 것은 또다시 이민재였다.


"이민재 선수 또, 투구폼이 바뀌었습니다."




전날 저녁.


이민재를 부른 김근성 감독은 아무 말 없이 얼굴을 빤히 바라만 보았다.


그러기를 1분, 2분, 5분.


처음에는 김근성의 코. 다음에는 입을 보며 살짝 웃어보기도 하고 엄격 근엄 진지한 표정을 지어보기도 했다. 아무 반응이 없는 감독님 때문에 눈 둘 곳을 찾지 못하고 바닥을 바라보다가, 눈을 깜빡이다가, 찻잔을 만지작 거리기도 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두근두근.


심장 뛰는 소리. 살짝 눈을 떠 김근성의 눈을 바라봤다.


"가... 감독님?"


김근성 감독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민재의 목소리에 고인 눈물이 왼 뺨을 타고 흘러내리며 그의 낡은 바지 위에 떨어졌다.


"조금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그의 말은 예상외의 것이었다.


"김나박이라고 아느냐."


'김나박이면...'


"발성의 정석 김범수, 공명과 기교의 나얼, 압도적 성량의 박효신, 피지컬의 이수 아닙니까?"


"그럼 하현우는?"


"예...?"


눈물이 쏙 들어간 김근성 감독이 꿀밤을 한 대 먹였다.


"내가 가수 얘기 하려고 물어봤겠냐. 피처면 야구 이야기를 해야지."


급격하게 현실로 드리프트 한 민재였다.


"그럼..."


이것은 프로야구 이전의 역사.


"그때는 실업야구라는 게 있었지."


한국전쟁 직후인 50년대에 태어난 김근성이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


"우리 지역에는 김나박이라는 4대 피처가 있었어."


제구의 정석 좌완 정통파 김근성, 강속구와 기교를 갖춘 좌완 스리쿼터 나이든, 압도적 구위의 우투 오버핸드 박특급, 튼튼한 피지컬과 무한한 체력의 옆구리 투수 이필승.


"우리 넷은 같은 동네에서 자랐어. 우리 동네에는 모든 소년들의 첫사랑이 있었지. 그게 너희 할머니 순자다."


김근성은 지금, 감독이 아니라 10대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너무 예뻤어. 스치기만 해도 꽃 향기가 나는 듯 정신이 아득해졌지. 우리 넷은 각자 장학금을 주는 고등학교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우리 마음이 전부 같다는 걸 알았지. 너도나도 네 할머니를 보지 못해 안달이었으니까."


고봉밥을 먹고 운동만 하는 소년들의 머릿속에는 편지라던가, 꽃다발이라던가 하는 로맨틱이 아닌 공놀이 밖에 없었다.


"미군과 친선전이 생겼다. 당연히 우리 넷이 지역 대표로 뽑혔지. 우리는 내기를 하기로 했다."


가장 많은 삼진을 잡는 사람이 그녀에게 고백하기로. 물론 그녀가 받아준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네 명이 각각 2이닝씩을 던지기로 했어. 첫 투수는 나였지. 나는 속구가 빠르지 않아 구석구석으로 던지는 왼손잡이. 미군들이 몸이 덜 풀린 건지, 친선전인데 이렇게 똥쭐 빠지게 던질 줄 몰랐던 건지."


2이닝 동안 3개의 삼진을 잡아낸 김근성이었다.


"두 번째 투수는 네가 아는 박특급이었다."


그녀를 차지하겠다는 일념에 뿜어져 나오는 아드레날린은 말도 안 되게 155km를 찍게 만들며 군인들을 놀라게 했다.


"박특급이 아마 5개를 잡았을 거야. 나는 진짜 실망했지. 2이닝에 3개 잡는 것도 나는 기적이었으니까."


그다음 타자 때 사건이 터졌다.


"2이닝에 5개면 하나 빼고 전부 삼진 아니냐. 다음 피처가 삼진 욕심을 부리니 어깨에 힘이 마구 들어가지."


혼혈이라 어릴 때부터 공을 가지고 놀던 나이든은 단순한 기교파가 아니었다.


"왼손에, 속구도 빠른 녀석이 공을 여기저기 날려대니 첫 이닝은 세 타자 전부 삼진을 잡았어."


비극은 이제 시작이었다.


"녀석이 힘이 들어가서 제구가 없으니까 타자들이 서있기로 한 거야. 볼이 두 개, 세 개 연속으로 들어가니까 감독이 그냥 빼버렸않나 싶어."


"그래서 옆구리 이필승이 나와서 삼진을 여섯 개 잡아버렸어. 3이닝 동안. 그래서 이필승이가 먼저 고백을 했지."


그 사정을 알 리 없는 그녀는 처음 고백한 사람과 결혼했다.


"그게 네 할아버지다. 이필승이."


문제는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자들.


우여곡절 끝에 박특급은 편지와 미련을 함께 담아 떠나보냈고, 김근성은 부상으로 꿈을 접어야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나이든.'


"나이든 그 녀석은 참지 않았어. 자기를 빼버린 감독을 그날 경기 마치고 주먹으로 패버렸지. 문제를 일으켜서 지 아비를 따라 미국으로 가버렸다."


회상에서 돌아온 김근성이 다시 슬픈 눈을 했다.


"조금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다는 말이 이 말이다. 내 오랜 친구의 손자야."


그러고 보니 이민재는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


"분명 네 할아버지와 나이든 사이에 무슨 사건이 있었다. 이건, 나이든이 떠날 때 남겼다고 최총재한테 전해 받은 쪽지다."


꼬깃꼬깃한 쪽찌에 삐뚤빼뚤한 글씨.


[순자와 이필승 사이의 씨앗은 전부 짓밟아 없애겠다.]




투수는 저마다 보폭이 있다. 영어로는 스트라이드.


"오늘 이민재 선수의 스트라이드가 엄청 넓죠? 지난 두 번의 등판 모두 자기 발 크기로 다섯 발에서 여섯 발 정도로 안정적이었는데 지금은 어제의 1.5배는 더 되어 보입니다."


"어깨와 몸의 각을 보세요, 거의 180도입니다. 완전 위에서 찍어 누르고 있어요."


3일 동안 보여준 세 개의 각기 다른 투구폼. 팔 각도만 다른 것이 아니라 밟는 투구판 위치, 레그 킥, 스트라이드, 딜리버리, 릴리스포인트까지. 모든 메커니즘이 전부 다르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해설이 혀를 내두르는 사이, 무수한 기억 속 한 페이지를 찾아낸 캐스터가 소리쳤다.


"린스컴! 린스컴 투구폼 아닙니까?"


온몸을 쥐어짜,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는 폼. 발가락 끝에서 손가락 끝까지 온몸을 활용해 힘을 전달하는 그의 투구폼은 그를 2연속 사이영상이라는 정상으로 이끌었다.


[161km]


전광판에는 161km가 찍혔다.


"100마일! 한국 리그에서 100마일을 던지는 한국인 투수가 나왔습니다!"


구속보다 놀라운 것은 엄청난 구위와 무브먼트였다.


"볼끝 좀 보세요. 공이 살아서 간다는 표현은 이런 공에 어울리는 표현이죠."


홀로 물리 법칙을 벗어난 듯 솟아오르는 공.


벌써 세 개 연속 같은 코스로 들어가지만 타자는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트위스트 딜리버리로 몸을 한 번 꼬아서 들어가면 타자는 타이밍 맞추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어제 탐슨의 폼처럼 얌전한 폼이 아니라 이렇게 폼이 와일드하면 보기만 해도 x타자들은 기가 죽죠."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한 이닝을 정리하는 데는 공 9개면 충분했다.


"갑작스러운 박웅 선수의 팔꿈치 통증으로 교체된 이민재 선수가 주자를 신경 쓰지 않고 공 9개로 타자 셋을 잡고 이닝을 마무리합니다. 5회 초 부산 워리어스의 공격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여기는 고척입니다."


공수가 교대되고 광고가 송출됐다.


흥분한 중계진이 서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언터처블이죠?"


"이거 잘하면 오히려 승부조작 이슈가 다 덮일 수도 있겠는데요?"


리그의 존패 위기 앞에선 한국 야구. 심각한 위기가 작게 느껴질 만큼 현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더 던질 수 있겠어?"


한 번도 린스컴의 폼으로 던지는 걸 본 적 없던 스티브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경기는 9회 초, 워리어스의 공격.


양 팀 모두 득점하지 못하고 2:2의 투수전이 지속되었다.


중간으로 두 번 나와 불펜 자원으로 알고 있던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다.


이틀 연속 등판한 후 세 번째 등판. 이전 등판처럼 분위기를 가져오는 원포인트나 한 이닝만 짧게 가져가고 휴식을 부여할 줄 알았는데 4회부터 8회까지 15명의 타자, 5이닝을 올킬(K) 했으니 말이다.


고개를 한 번 끄덕. 그러고 다시 상념에 빠진 민재를 보고 스티브는 고민에 들어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지난 한 달간 본의 아니게 관찰한 민재는 결코 저런 모습이 아니었다. 낯을 가리기는 하지만 일단 사람이 자신의 울타리에 들어오면 집안 대들보라도 뽑아 남을 줘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웃음과 친절을 잃지 않던 사람. 하지만 결코 만만하지 않은 아우라. 같은 공간에 있지만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은 이질적인 존재.


"악에 받친 모습인가..."


"와우. 흑화 한 건가? 크큭."


좀처럼 말이 없는 탐슨이 어제 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주인공의 포즈를 따라 했다.


'탐슨, 조용히!'


민재의 심기를 거스를까 겁이 난 스티브가 파닥거리는 동안, 김근성의 눈이 빛났다.



"아~ 9회에 드디어 선두타자 출루에 성공하는 워리어스입니다."


"스티브."


육성군에서 급하게 올라온 9번 타자가 타격을 준비했다.


김근성 감독이 왼쪽 귀를 만졌다. 작전이 있다는 사인.


타석과 1루 주자 모두 감독이 아닌 스티브를 주목했다. 워낙 많은 경기를 뛴 김근성 감독의 작전 사인은 어느 정도 간파된 사실. 김근성 감독에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상황을 역이용해 스티브가 진짜 사인을 냈다.


"초구, 주자 뜁니다! 높은 공을 찍었어요, 타구는 1,2루간을 향합니다. 투수 잡아서, 1루~ 아웃입니다. 아! 주자는 2루를 돌아 3루까지! 3루까지! 들어갔습니다!"


"과감한 작전이네요. 런 앤 히트가 나왔는데 스타트가 빨랐고, 배터리도 어느 정도 간파했는지 공을 높게 요구했는데 이걸 또 어떻게든 맞혀냈어요."


"주자의 과감함이 돋보였습니다."


"지금 장면 보시면, 주자는 수비 쪽은 보지도 않죠? 이미 런 앤 히트에 3루까지 가는 걸로 작전이 나온 겁니다. 3루 주루코치가 돌리는 장면이고요. 도박수가 통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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