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볼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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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냐
작품등록일 :
2024.07.30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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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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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마무리

DUMMY

"타석에는 다시 1번타자 윤희동입니다. 오늘 윤희동 선수에게 기회가 많이 가네요."


주자가 놓인 두 번의 상황에서 해결을 하지 못한 윤희동이 타석에 섰다.


상대 마무리 오상호는 패스트볼이 빠른 유형의 투수. 스리쿼터의 팔 각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횡 무브먼트가 좋은 150 중후반대의 속수는 알고도 치기 어려운 공이다.


"앞에서 이민재 선수의 메이저리그급 패스트볼을 계속 봐서 눈이 높아질 수 있지만 오상호 선수의 패스트볼도 메이저리그급이라고 봅니다."


민재의 패스트볼 일변도 패턴에 감명을 받은 탓일까. 오상호도 존의 높은 곳을 노린 패스트볼을 연달아 던졌다.


[155km]


[157km]


"오상호 선수도 구속에 욕심이 나는 것 같습니다."


"'원조 파이어볼러는 나야!'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군요. 참 좋은 투수들입니다."


후배들의 기량에 흐뭇해진 나해설이 느긋하게 칭찬하는 순간.


"아! 스퀴즈 입니다, 스퀴즈! 주자는 이미 3루와 홈 중간까지 나왔고, 아!"


공 보다 주자가 빠를 수는 없는 일. 하지만 공을 던지는 것도 사람, 잡는 것도 사람이다.


과감하게 뛰어들어 포수의 다리 사이로 몸을 내던지는 주자와 마운드에서 달려내려와 글러브로 공을 퍼올리는 투수.


온 몸으로 그것을 받아내는 포수가 뒤엉켰다.


결과는?


"심판이 팔을 넓게 펼칩니다. 세이프! 세이프! 결정적인 득점이 나왔습니다!!!"


돔 구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이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득점을 한 주자도, 스퀴즈를 성공한 윤동희도 아니었다.


"김근성! 김근성! 김근성! 김근성!"


노장의 마지막 경기. 마지막까지 김근성 다운 작전과 경기운영이다.


중계진은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하고 경기장에 울리는 팬들의 목소리를 영상에 담았다.


"작가, 준비해라."


"예?"


이민재와 오상호의 광속 대결을 보며 자기 야구에 미련을 접은 김작가는 은퇴하고 값을 치를 각오를 하고있었다.


설사 자신의 억울함이 증명된다 해도 본인이 저 둘보다 뛰어난 마무리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노력 만능주의자들은 진짜 노력해보지 않은 것이다.


들쥐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코끼리처럼 될 수는 없다. 비둘기가 아무리 노력해도 독수리를 잡아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노력 무용론자들도 진짜 노력해보지 않은 것이다.


작은 물방울은 언젠가 바위에 구멍을 만들어내고, 민들레는 아스팔트 속에서도 피어난다.


김작가는 정말 조금씩 발전하고 있었다. 본인도 느끼지 못할 만큼 미세하게.


하도 많이 맞으면 덜 아프게 맞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고 하던가?


김작가도 12편의 드라마, 블론 세이브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면서 본인도 모르게 어느정도 던지면 안타가 되고 범타가 되는지 체득하고 있었다.


오히려 범타가 되지 않고 안타가 될 자리에 공을 던지기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렇게 깨달은 것은 안타가 되는 자리보다 범타가 되는 자리가 훨씬 넓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야구는 타자가 잘쳐도 7:3으로 투수가 유리한 게임이야. 봐라. 몇 명이나 네 등을 보고 서있는지."


감독의 말에 정신없이 불펜으로 향한 김작가는 또다시 맞기 위해 몸을 풀었다.



"정말 기대가 됩니다. 오늘 연속 타자 탈삼진 기록을 경신했어요. 15타자 연속 탈삼진! 거기에 승리투수 요건까지 갖췄습니다. 이러면 첫 승이 되죠?

중간투수로 나와서 5이닝 동안 리그 최강 타선인 스파이더스를 상대로 단 한 명의 타자도 예외없이 삼진, 삼진, 삼진입니다.

만약 9회까지 올라와 전부 삼진으로 돌려세운다면 한국야구 한 경기 최다 탈삼진인 18k와 연속 타자 삼진 기록을 동시 달성하게 됩니다."


숨을 한 번 고른 캐스터가 말을 이었다.


"제가 더 놀라게 된 부분은 스테미너입니다. 지금 57구를 던졌는데 구속이 거의 떨어지지 않았어요. 평균 구속은 158km, 최고구속은 무려 163km입니다. 8회 마지막 공이었죠?"


불펜에서 투수가 뛰어온다.


"아? 이민재 선수가 아닙니다. 투수가 바뀌었습니다. 워리어스의 마무리, 김작가 선수가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팬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저거저거 노망났네. 잘 던지는 아를 와 바꾸노! 지금 기록 세울 찬슨데!"


"아, 참말 답답하네, 지 마지막 경기라고 주목 받고싶다 이기가?"


"내는 몬보겠다. 작가 점마 또 시나리오 쓰고 자빠질긴데 내가 와보노."


초구.


앞에 마운드에 올랐던 이민재의 163도, 오상호의 157도 아니다.


[137km]


"137의 패스트볼, 타자 쳤습니다."


"야이씨! 패스트볼이 아이고 슬로우볼이라 캐라!"


언제나 같은 패턴.


낮은 코스에 잘 제구된 느린 패스트볼 = 유격수를 스쳐가는 안타


이것이 지난 12개의 블론세이브를 지켜보던 팬들이 경험한 시나리오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유격수, 가볍게 잡아서 1루~ 아웃입니다."


"자가 웬일이고."


"행님아. 그냥 뽀록이다. 저 아를 믿나."


2구.


우타자를 유인해내는 바깥쪽 슬라이더.


"방망이 끝에 맞았습니다. 1루수가 잡고 태그. 투아웃."


평범한 땅볼에도 평소와 다르게 열심히 베이스커버를 하러 달려갔다.


"야, 저노마 재수 좋네. 오늘은 되는 날인갑다."


"그래, 우리 민재 첫 승리 지켜줘야 될 것 아이가."


3구.


"던집니다. 외야에 높이 뜹니다."


"머고! 동점 홈런 쳐 맞는기가!"


"중견수, 담장~ 앞에서 잡았습니다. 순식간에 경기 끝! 공 3개로 마무리하는 워리어스의 마무리투수, 김작가입니다."


팬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머꼬. 이리 할 수도 있는 아가 지금까지 와 그 지랄이고."


"행님아. 혈막이 없어졌다이가."


"혈막?" "있다이가 퉁퉁하게 생긴 아."


"아, 그 똥차?"




부산의 한 부둣가. 핸드폰으로 경기를 보던 남자, 청태오가 사람을 불렀다.


"뜨자."


돌아가는 전황을 보니 버림받을 상황임을 직감한 청태오는 믿을만한 동료를 모았다.


물론 고액 FA 두 친구는 청태오의 집에서 잘자고 있다.


술에 탄 약 때문에.


"멍청한 것들. 대신 시간 좀 끌어줘라."


'박실장. 당신은 내가 이대로 물러날 줄 아나본데. 당신도 뒷통수 한 번 맞아봐.'


청태오의 야망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경기는 싱겁게 끝났다. 앞선 두 투수보다 느리고 가벼운 패스트볼을 본 타자들은 입맛을 다셨다.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를 기다리는 곰 처럼, 날아오는 공을 한 입에 꿀꺽 삼켰다.


결과는 3구 3아웃.


수훈선수 인터뷰를 박웅의 쾌유를 비는 말로 대신한 이민재는 덕아웃 안쪽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잡을 수 없었다. 조금만 더 건드리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기에.


노장과의 이별은 갑작스러웠다.


커리어 내내 따라온 '혹사'라는 논란은 그의 사퇴를 양면성 있게 바라보도록 만들었다.


"진짜 나는 저 영감 잘 그만뒀다 생각한다. 봐라. 우리 보석같은 민재 3연투 한 거. 저 영감 계속 감독이면 10연투도 시킬 걸?"


"임마. 그래도 한국 야구 역사 아니냐. 저 영감님 시절에는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았어."


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식당에서 소주와 안주를 곁들여 야구 이야기를 하던 팬들에게 주인 아주머니가 물었다.


"그래서 와 그만두는데요?"


"그러게."


-감독님의 마지막 경기를 마무리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선수 인터뷰에서 울먹이는 김작가를 보는 팬들도 뜨거운 광속구 매치와 드라마 같은 경기에 승부조작 이슈를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을 이어가던 크로커다일즈는 손을 잡은 일부 언론과 함께 진흙탕 싸움으로 들어갔다.


'김 감독님하고 기자님 덕분에 언론은 어느 정도 움직인다.'


사건을 진두지휘하기로 한 최회장은 직원들의 생계가 자신의 한 선택으로 무너질 수 있다는 중압감에 시달렸다.


만두 가게가 한 참 잘 될 때 뽑은 고등학생 아르바이트생을 적자를 보면서 대학교 진학 할 때 까지 데리고 있었던 때를 생각했다.


'그래. 나는 알몸으로 왔고 알몸으로 갈거다.'


죽을 때는 아무리 열심히 해서 모은 것이라고 해도, 양손에 꽉 쥐고 있다고 해도 들고 갈 수 없다.


아무리 넓은 집과 땅과 재산을 가지고 있어도, 결국 오동나무 코트 한 벌 입고 가는 것이 인생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자켓을 챙겨 밖으로 나간 최회장은 밤하늘을 바라봤다.


"거긴 살만하냐."


오랜만에 쌍둥이 친구 이대한과 이민국을 떠올린 최회장이다.


하늘에는 별 하나가 애처롭게 빛을 내고 있었다.




"민줴에~"


경기를 마친 숙소. 서울 시리즈가 이어지기에 지방으로 내려가지 않아도 된다.


숙소 방 문을 두드린 건 한쪽 팔에 깁스를 한 외국인 타자, 그린.


커리와 탐슨, 이제 남은 시즌 감독 대행이 된 스티브까지 넷이 찾아왔다.


"너도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크로커다일즈 이양태가 자수했다.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했어. 청태오가 브로커 역할을 하고 각 구단에 투수들을 매수한 것 같아. 이양태는 그 중 하나고."


"승부조작에 가담해서 금전적인 이익을 취한 선수들이 줄줄이 소환되고 있다. 아마 큰 징계를 받겠지. 청태오, 강우준, 강효민은 긴급 체포 영장이 나왔단다. 그 셋이 투수들을 사주해서 쉬운 공을 요구하기도 하고 일부러 아웃되어주기도 하고 했나봐."


구체적인 증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협회에서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는 없는지 클린 베이스볼 뭐시기를 만들어서 자수를 받기로 했어. 구단에서도 선수 명단을 추리고 있다. 아마 한동안 계속 잡음이 생기던지 최악의 경우에는 리그가 중단될거야. 내일 내가 정식 기자회견을 할 거니까, 한 5일 푹 쉬고 선발 준비해와. 오늘 많이 무리했을텐데 수고했다."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하지만 이민재가 무리했다는 건 안다. 한 달 동안 꾸준히 지켜본 결과 이민재는 결코 오버하는 선수가 아니다. 자기 분수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보여주는 선수.


이렇게 선수 생명을 갉아 먹으면서까지 던질 정도로 절박한 사건이 있었던걸까.


'이럴 땐 휴가 보내서 머리 좀 식혀야지.' 이 상태로 계속 공을 던지면 앞으로 커리어가 단명할 것이 자명했다.



스티브의 배려로 시간 부자가 된 이민재. 경기가 끝난 시간에 막상 딱히 할 일이 없다.


'움직이자.'


온 몸이 부서질 것 같이 욱신거린다.


'린스컴이 왜 일찍 저물었는지 알 것 같네.'


가만히 있으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잡념에 시달려 잠을 설칠 것이 분명하다.


박특급의 가르침대로 매일 아침 10km를 달린다.


군대에서 구보를 시작하고 깨달은 것은 인생에 많은 문제들이 달리면서 해결된다는 것.


불안과 우울은 지면과의 가벼운 충돌과 비교하면 저 멀리 있는 것이 되고, 몸이 통통 튈 때 마다 마음속 기쁨이 리듬을 맞춘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달리고 나서 뒤를 돌아보면, 가끔은 구덩이도 있고 언덕도 있지만 제법 곧게 달려왔다.


당시에는 심각했던 거대한 물웅덩이도, 물웅덩이가 나에게 뿌린 흙탕물도. 땀과 함께 흘러가버린다.


내가 내 속을 갉아먹으면 마음에 구덩이가 생긴다. 내 마음이 낮아지면 낮아질 수록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온갖 흙탕물과 구정물이 내 마음으로 모여든다.


지저분한 웅덩이에는 모기와 각종 벌레가 날아와 알을 까고 새끼를 키운다.


마음은 한 순간에 엉망이 된다. 그 웅덩이에 물을 빼기 위해 펌프질 하는 것이 바로 달리기였다.


밤 공기를 가르며 한바탕 뛰어가던 민재가 서서히 속력을 떨어뜨리며 깊게 숨을 뱉었다.


"민재?"


반대편에서 검은 물체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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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7화 지배 24.08.19 17 0 12쪽
27 26화 돈 24.08.18 19 0 13쪽
26 25화 아버지 24.08.17 21 0 12쪽
25 24화 관조 24.08.16 19 0 12쪽
24 23화 생소함 24.08.15 21 0 13쪽
23 22화 김나박이, 최 24.08.14 19 0 12쪽
22 21화 개화 24.08.13 23 0 12쪽
21 20화 변신 24.08.12 23 0 12쪽
20 19화 야구 VS 축구 24.08.10 33 0 13쪽
19 18화 야성 24.08.09 29 0 13쪽
18 17화 균형 24.08.08 32 0 13쪽
» 16화 마무리 24.08.07 42 0 12쪽
16 15화 김나박이 24.08.07 42 0 12쪽
15 14화 리더 24.08.06 37 0 13쪽
14 13화 물밑 작업 24.08.06 43 0 12쪽
13 12화 카르텔 24.08.05 50 0 12쪽
12 11화 진실 24.08.05 53 0 12쪽
11 10화 승부조작(2) 24.08.04 59 0 12쪽
10 9화 승부조작(1) 24.08.04 58 0 12쪽
9 8화 구원투수, 배팅볼러 24.08.03 64 0 13쪽
8 7화 100마일짜리 배팅볼 24.08.03 68 0 12쪽
7 6화 이글아이 24.08.02 70 0 13쪽
6 5화 목격자 24.08.02 71 0 11쪽
5 4화 배팅볼 24.08.01 98 1 12쪽
4 3화 스카우트 24.08.01 142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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