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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냐
작품등록일 :
2024.07.30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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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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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야성

DUMMY

윤희동이 느끼기에 하늘과 땅 차이다. 청태오 없는 야구가 이렇게 재미있다니.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같이 야구하던 그 맛이 되살아났다.


누가 안타를 치면 뜨겁게 축하하고, 실수하면 따뜻하게 격려한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감독의 지시를 받은 대로 투수와 나, 지금 들어올 공 하나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야구만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이 열린 것이다.


"빨리 야구장 가고 싶다."


소풍 전날 아이처럼 콩닥 거리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어 또 방망이를 잡았다.



워리어스 구단은 크로커다일즈 구단에 이어 두 번째로 승부조작에 연루된 구단이 됐다.


청태오와 강효민, 정우준은 조사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선수들의 증언과 증거가 명확하게 일치했기에 긴급 체포에 들어갔다.


"권 대행님, 대행님만 알고 계십쇼. 청태오 집에서 강효민이랑 정우준이 잡혔습니다.

그런데... 약에 취한 것 같다고 해서 약까지 조사가 들어갈 것 같습니다."


"약이라는 게..."


"생각하시는 그거 맞습니다."


머리가 지끈해지는 스티브 권이었다.


"아무튼 어제 조사받은 선수들은 금전적인 이득이 없어서 일단 추가 조사를 하는 것으로 하고 오늘부터 기용하셔도 됩니다."


스티브 권의 지휘에 맞출 오케스트라가 구성되었다.


"더 빨리 뛰어!"


점심시간이 지나고 시작된 팀 훈련 시간.


팀 타율 9위, 팀 평균자책 4위에 자리한 팀 순위 7등 서울 엔젤스와의 경기.


후반기 3연승.

[86경기-43승-2무-41패-승률 0.5119]를 기록한 부산 워리어스.


3연패로 [88경기-44승-2무-42패-승률 0.5116]을 기록한 광주 치타스를 넘어 승차 없는 4등으로 올라섰다.


4등 팀을 물려받게 된 스티브의 어깨가 무겁다.


고액 연봉자들이 빠지면서 리그 6위의 타선 무게감이 확 떨어졌다. 리그 3위로 선방하던 팀평균자책점은 박웅의 이탈로 불안요소가 더해졌다.


"너희가 살아야 팀이 산다. 오늘 잘하면 너희가 주전이다! 한 개 더! 하나만 더!"


파이팅을 불어넣는 코치들 덕에 선수들의 방망이가 살벌하게 돌아갔다.


라인업을 짜고 짜고 또 짜던 스티브는 결국 육성군 선수들 중심으로 팀을 아예 개편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쨌든 청태오에게 동조해 팀 패배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존재들.


'지금 싹 다 뿌리 뽑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


라인업을 아래와 같이 제출했다. 옆에 연필로 적은 키워드가 스티브의 평가.

-1번타자 윤희동(우투우타) 중견수 -3할 타자 -5툴 플레이어 -신인 유망주

-2번타자 김민수(우투좌타) 1루수 -중장거리 -안정적인 포구 -긴 팔다리

-3번타자 그린(우투우타) 지명타자 -3/4/5슬래시라인 -30홈런 페이스 -외국인타자

-4번타자 장민호(우투우타) 포수 -일발장타 -변화구 포구 불안 -백업포수

-5번타자 우지환(우투좌타) 우익수 -좋은 컨택률 -강한 어깨 -불안한 수비

-6번타자 강현수(우투우타) 3루수 -빠른 발 -정확한 송구 -허슬플레이

-7번타자 차정민(좌투좌타) 좌익수 -눈야구 -넓은 수비범위 -도루 중독

-8번타자 유준형(우투좌타) 유격수 -작은 육각형 -내야사령관 -훌륭한 기본기

-9번타자 이성호(우투우타) 2루수 -과감한 스윙 -부드러운 풋워크 -긴장 많이 함


"다 모였지?"


경기 시작 전, 감독 대행이 된 스티브가 선수단을 모았다. 절반이 육성군에서 수혈된 유망주들.


대다수가 반년동안 스티브의 스타일을 겪어본 선수답게 각이 잡혔다.


후보 시절 팀의 4번타자가 주먹질을 하자 똑같이 맞서 싸웠던 일화가 유명한 스티브 답게 패기를 강조했다.


"김근성 감독님은 선배들의 불미스러운 일을 책임지시기 위해 물러났다.

오늘부터 너희가 이 팀의 새 얼굴이야.

이전 팀은 없어지고 새로 창단했다고 생각해라.

너희는 언제나 도전자의 입장이며, '워리어'가 되어야 해.

날 부를 땐 코치님으로 통일한다.

경기 중엔 길게 돌려 물을 필요 없어. 단순화해라.

경기장 안에서 길고 복잡한 건 다 버려.

단순하지 않은 건 막연하기 때문이다.

타자들은 하나만 생각해라. 친다, 만다.

투수들은 하나만 생각해라 넣는다, 뺀다.

그 외에 나머지는 다 버려.

수비수는 생각해라. 내가 잡으면 어디로 던질지.

미리 생각하고 있어야 판단이 늦지 않아.

즉석에서 판단하는 건 천재들의 영역이다.

우리 같은 사람은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승부해도 될까 말 까야.

고민하는 건 그라운드 밖에서 할 일이다.

그라운드에선 무조건 확신 속에서 해라.

그게 너희를 지켜줄 거다."




"부산 워리어스와 서울 엔젤스의 1차전 경기! 출발~~~ 합니다."


응원단장의 환호성과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다.


"지난 시리즈에 이어 연속으로 워리어스 해설을 맡으셨는데 관전포인트가 있을까요?"


코를 매만진 나해설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구단 이름 말고 같은 게 있나요? 이 정도면 뉴 워리어스라고 불러야겠네요."


나해설의 말대로 라인업이 전부 바뀌었다. 1번타자 윤희동과 3번타자 외국인 그린 외에는 전부 1군 출전 경기 수가 30경기 미만인 선수들.


"한 가지 제가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다들 야구주머니가 없네요. 그린만 저랑 살짝 비슷하게 야구주머니가 있는데요, 선수들이 전부 몸매가 배 나온 선수가 없습니다. 저같이 배 나온 선수가 있어야 인간미가 있거든요."


TV 팬들을 폭소시킨 나해설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역대 최악의 타고투저 시즌에 소총부대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홈런 1위부터 10위까지 전부 30홈런을 훌쩍 넘을 페이스로 달리고 있고 팀 타율 꼴찌 수원 아처스가 0.279를 기록하고 있을 만큼 타격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팀 타율이 높다, 리그 전체 타율이 높다는 것은 3할 타자의 가치가 낮다는 의미거든요, 그러면 1번부터 9번까지 3할 타자로 도배를 한다고 해도 다른 팀들은 2할 9푼에 홈런을 20개씩 때리는 강타자들과 타격전에서 밀릴 수 있다는 겁니다."


온갖 세이버메트릭스에 통달한 스티브가 이걸 모를 리 없었다.


'그래도 이게 최선이야.'


세이버메트릭스의 기본 중의 기본은 타율이 아닌 출루율을 보는 것.


현대적인 관점으로 볼 때 주자가 없을 때 볼넷은 안타와 같다. 혹은 같거나 좋다. 안타는 초구에도 나올 수 있지만, 볼넷은 최소한 투수가 공을 4개 이상 던졌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마운드가 높고 방망이가 작은 엔젤스와 지금의 워리어스는 전력 상 비슷하다고 봅니다.

오늘 경기만 놓고 보자면 불펜이 좋은 엔젤스가 4선발이 나오는 워리어스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이고요,

워리어스는 이전 시리즈에서 불펜을 아꼈기 때문에 양 팀 모두 해볼 만한 경기입니다."



윤희동이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 민재의 배팅볼을 상대하면서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비결. 그것은 바로 손과 눈의 협응능력에 있다.


공 보고 공치기가 가능한 툴을 가졌다는 이야기. 하지만 아직 공이 눈에 익지 않은 경험 적은 유망주가 실전에서 적용하는 건 요원한 이야기였다.


투수마다 다른 템포와 각, 디셉션, 무브먼트를 모두 계산해서 0.3초 만에 반응하는 것은 어려운 일.


하지만 민재와의 특훈은 그의 실전 경험을 배가시켰고, 한 달 동안 1년 치 이상의 경험치를 흡수했다. 지금의 윤희동은 거칠 것이 없다.


'감독님...'


기자회견을 하기 전. 감독실로 호출을 받은 윤희동이 땀도 다 닦지 못하고 달려갔다.


"야성."


한마디 말에 휘둥그레진 윤희동에게 김감독은 어깨를 두드렸다.


"아이야, 덩치도 좋은데. 네 안에 야성을 깨워. 그럼 너는 성공한다."


그의 한마디는 희동에게 있어 예언과도 같은 말이었다.


'야성.'


'단순함.'


전 감독과 현 감독 대행의 말을 끊임없이 되뇌며 타석에 들어섰다.


초구, 2구를 모두 흘려보낸 윤희동.


'보인다.'


이제야 서서히 보인다. 투수의 손을 떠나는 공이.


패스트볼과 변화구를 놓는 위치의 미묘한 차이가.


지난 시리즈의 수준 높은 투수전을 보니 눈이 떠진 것일까. 이제 공이 보이기 시작했다.


'친다.'


왼쪽에 벽을 세우고 엉덩이를 돌리면서 공을 끝까지 본다.


'후.'


존 앞에서 힘없이 떨어지는 슬라이더. 방망이를 멈춰 세운다. 강한 제동을 걸어 방망이를 거둔 윤희동의 머릿속이 다시 복잡해지려 한다.


김근성 감독의 마지막 경기 후 한국 야구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기자의 말에 대한 답이 귓가에 울렸다.


'지구력이랄까? 선수들이 견딜 수 있을까 싶어. 피땀을 흘려도 목표를 이루려면 힘들어야 하는데. 야성이 다 죽었어.'


다시 야인이 된 야신은 마지막까지 한국 야구를 걱정했다. 호불호가 극심하게 갈리지만 부인할 수 없는 하나, 그의 근성. 그 씨앗은 여전히 살아남아 작은 싹을 틔웠다.


"카운트, 투 볼 원 스트라이크, 타자의 카운틉니다."


3구를 잘 참은 윤희동이 타석에서 뒤로 물러났다.


"아, 지금 장갑을 벗고 있네요?"


'야성.'


입모양으로 끊임없이 되뇌며 마인드컨트롤에 집중한 윤희동이 맨손으로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장갑이 불편한가요? 요즘 타자들은 맨손 타격을 하는 선수가 거의 없죠?"


"네. 제가 현역일 때는 선배들 중에 그런 선수들이 팀마다 꼭 있었어요. 마초 같은 선배들? 수염 막 기르고, 공도 꼭 맨손으로 치고. 부상 위험이 있다 보니 요즘은 배팅 장갑 착용을 권장하기도 합니다."


깁스를 풀고 선발 라인업에 복귀한 그린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와우, 스테프. 저거 좀 봐봐. 코리안 리틀보이가 게레로가 됐어."


"터프한데?"


춤을 추기 시작하는 커리 옆에 탐슨이 한마디 했다.


"뱅."


나를 보호하는 부드러운 막. 나를 더 강하게 만들지 못하는 장애물. 현실에 안주하게 하는 편안함. 그것을 벗어낸 윤희동이 날을 세웠다.


'민재형이라면 여기서 어떻게 했을까?'


"직구를 노리라고 했겠지."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공기를 가른다.


패스트볼처럼 날아오던 공은 조금씩 속도를 줄이더니 홈플레이트에서 우뚝 멈춰 섰다.


"괜찮아. 보이거든."


딱!


"윤희동 선수, 걷어 올립니다. 멀리, 높이 갑니다. 담장~~ 넘어갔습니다. 홈~런!"


"직구 타이밍에 나왔는데 떨어지는 걸 보고 한 손을 놓으면서 돌렸어요. 한 손을 놨는데도 저렇게 까마득하게 넘어갑니다."


130m 대형 홈런. 전광판을 때리는 큰 타구가 나왔다.


"잠실의 넓은 외야를 우습게 넘겨버립니다! 로켓 같은 타구였어요. 조선의 전설이 지고, 새로운 전설이 첫 발을 뗍니다!"


선두타자 홈런으로 산뜻하게 출발한 워리어스의 공격은 끈질겼다.


"엔젤스 이규찬 선수도 오늘 컨디션이 나쁘지 않거든요. 하지만 워리어스 타자들이 전사처럼 쉽게 물러나지 않습니다~"


"김민수 선수도 6구 승부 끝에 아웃이 되기는 했지만 잘 싸워줬고요. 제 현역 시절 보는 것 같네요."


현역시절 초구를 사랑해서 욕을 많이 먹었던 나해설이 유머를 던졌다.


"저도 현역 때 저렇게 끈질기게 승부를 했다면 평가가 달라졌을 겁니다. 하하."


"아마 메이저 가셨겠죠~"


덕담을 주고받은 중계진이 주목한 것은 다름 아닌 더그아웃 분위기였다.


"덕아웃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어린 선수로 재편해서 그런지 확실히 밝아 보이네요. 조명을 새로 갈았나요?"


개그에 한 번 성공한 나해설이 개그욕심을 드러냈다.


"유머는 나해설 해설위원 현역시절 타율만큼 하면 성공입니다~"


통산 타율 2할 8푼. 220홈런을 때려낸 중장거리형 타자. 큰 덩치 때문에 늘 홈런타자로 음해(?)를 당해 비난을 당하기도 했지만 꾸준히 출루하고 좋은 타구를 날리던 타자다.


아직까지 개그의 타율이 현역 때 타율보다 낮은 것 같지만.


"절묘한 타굽니다. 파울라인 안쪽으로 천천히 흐르는 공, 3루수 대시! 맨손으로 1루~~ 아웃입니다! 아웃!"


심판은 아웃을 선언했지만 3번타자 그린은 쉽게 더그아웃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아, 그린 선수가 강하게 어필합니다. 비디오 판독을 요청하는군요."


"네, 기술이 발전하고 선수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비판이 활성화되었죠? 비디오 판독~"


푸흡. 나해설의 아재 개그가 취향에 맞았는지 캐스터가 헛웃음을 삼키다가 사래에 걸렸다.


그린이 억울한 듯 방방 뛰는 동안 느린 화면이 방송됐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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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29화 실업 24.08.21 13 0 13쪽
29 28화 기적 24.08.20 15 0 11쪽
28 27화 지배 24.08.19 17 0 12쪽
27 26화 돈 24.08.18 19 0 13쪽
26 25화 아버지 24.08.17 21 0 12쪽
25 24화 관조 24.08.16 19 0 12쪽
24 23화 생소함 24.08.15 21 0 13쪽
23 22화 김나박이, 최 24.08.14 19 0 12쪽
22 21화 개화 24.08.13 23 0 12쪽
21 20화 변신 24.08.12 23 0 12쪽
20 19화 야구 VS 축구 24.08.10 33 0 13쪽
» 18화 야성 24.08.09 29 0 13쪽
18 17화 균형 24.08.08 32 0 13쪽
17 16화 마무리 24.08.07 41 0 12쪽
16 15화 김나박이 24.08.07 42 0 12쪽
15 14화 리더 24.08.06 37 0 13쪽
14 13화 물밑 작업 24.08.06 43 0 12쪽
13 12화 카르텔 24.08.05 50 0 12쪽
12 11화 진실 24.08.05 53 0 12쪽
11 10화 승부조작(2) 24.08.04 59 0 12쪽
10 9화 승부조작(1) 24.08.04 58 0 12쪽
9 8화 구원투수, 배팅볼러 24.08.03 6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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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6화 이글아이 24.08.02 70 0 13쪽
6 5화 목격자 24.08.02 7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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