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상한 천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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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소고
작품등록일 :
2024.08.0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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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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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능력(2)

DUMMY

‘진짜다. 진짜야.’


밑도 끝도 없이 전음입밀을 구사할 수 있게 됐다. 우선 몸 속에서 낯선 진기가 느껴졌다. 여태껏 흡수해온 것과는 확실히 이질적이지만, 이미 원래의 진기와 융화되어 운용하는 데엔 무리가 없었다. 하루아침에 이런 변화를 겪을만한 유일한 근거는 물론 청호마정 뿐이었다.


'...태상노괴가 꿈에서 전수해 준 게 아니라면 말이지.'


물론 이는 자조적인 농담이었다. 지금 이 전음입밀은 우선 주옥 본인이 통제할 수가 없었고, 관련 구결 같은 것도 전혀 몰랐다. 이런 식으로 무공이 전달될 리 없었다. 반면 청호는 분명 전음입밀을 의도대로 구사했으니, 마정과 함께 그 무공이 옮겨왔다고 추측하는 게 더 가능성 높아 보였다.


'그런데 마정을 흡수했다고 무공까지 계승할 수 있나? 아니, 애초에 청호가 이 능력을 어떻게 익혔는지도 모르는데, 이게 전음입밀과 같은 무공은 맞아?'


마정을 흡수한 무인과 관련된 기록은 생각보다 부실했다. 마정 자체가 세상에 나온 일이 극도로 적었던 게 첫 번째 이유, 마정을 흡수한 극소수의 무인 중,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한 자가 대부분이었던 게 두 번째 이유였다. 그래서, 일생 서적을 탐독했던 주옥도 마정이 이런 식으로 작용할 줄은 상상치 못했다.


‘...생각을 읽는 건? 그것도 가능한가?’


청호와의 소리 없는 대화는, 사실 생각을 읽는 능력과 전음입밀이라는 두 능력이 조합되어 가능한 일이었다. 마침 주변에 다가와 있는 갈청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생각을 읽기를 시도해 봤지만, 갈청의 생각이 들려오는 일은 없었다.


‘읽는 건 안 된다. 그럼···’


가능성은 두 가지. 생각을 읽는 능력이 더 상급 이능이어서 아직 쓸 수 없는 거거나, 아니면 청호마정과 무관한 이능이어서 앞으로도 얻을 수 없거나.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또 독백이 새어 나갔는지, 갈청이 흠칫 놀라 주옥을 보았다. 상황이 한층 갑갑해지고 있었다.


‘미치겠네, 진짜! 통제가 안 되면 반대로 내 생각만 떠들고 다니는 거잖아!’


약이 바짝 오른 주옥 앞에, 갈청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주옥을 향해 몸짓 언어로 말했다.


‘진정해. 더 쉬어.’


‘그래. 알았다. 고마워.’


이게 그나마의 장점이었다. 방금 주옥은 말들의 몸짓 언어가 아니라 전음으로 대답했다. 이제 번거롭게 춤을 추거나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거나, 소리를 내지 않아도 의사를 전달할 수 있었다. 물론. 전음을 받는 야생마들의 지능은 그대로였으니, 단어가 조금만 어려워지면 알아듣지 못해 실용성은 극히 떨어졌다.


청호마정이라는 귀중한 보물을 통해 얻은 이능일진대, 어째 이득은 극히 작고, 손해는 아주 컸다. 자신의 생각이 주변에 흩뿌려지든 말든, 고찰은 깊어졌다.


‘청호도 이랬던 걸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한 게 아니라, 내가 청호의 생각을 읽은 거야?’


청호와 마주한 이래 모든 순간들을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과연 자신이 청호의 모든 생각을 다 읽었던 걸까? 그 짐승과 나눴던 한 마디 한 마디, 손속 한 수 한 수가 기억 속에서 되살아났다. 그리고, 결론이 나왔다.


‘그건 아니었어. 만약 그랬다면 공격을 이렇게 많이 허용했을 리가 없지.’


어떤 부위를 어떻게 공격할 것인가 하는 생각은 전혀 들려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 말인즉, 어떻게든 이 전음 능력을 통제할 방법이 있다는 얘기였다.


한 줄기 희망이 되살아났다. 지금은 자기 생각을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꼴이었지만, 잘만 연마하면 흔히 생각하는 전음입밀처럼 활용할 수 있게 될 거라는 희망이었다. 시선이 자연스레 회영에게 향했다.


‘미안하다, 회영.’


이렇게 생각하며, 주옥은 회영 바로 앞에 자리잡았다. 회영은 여전히 옆으로 몸을 뉘인 채, 얼굴과 귀, 목소리만 동원해서 간단히 물어왔다.


‘왜?’


왜 미안한데? 라는 뜻. 대답 대신, 회영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주옥이 머릿속으로 물었다.


‘들려?’


‘응.’


이번엔 눈을 감고 물었다.


‘들려?’


‘응.’


몸을 돌리고 물었다.


‘들려?’


‘응.’


들리지 않게 될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할 생각이었다.


* * *


‘들려?’


‘그만 좀 합시다, 이 미친 양반아.’


헉!


꿈이었다. 일주일째 회영에게 ‘들려?’를 묻다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든 모양이었다. 눈을 보고, 안 보고, 등을 돌리고, 마주 보고, 귀를 돌리면서고, 뒷발차기를 하면서, 그 외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행동을 취하면서 물어봤지만, 첫 이틀 동안 자신의 생각이 회영에게 들리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회영의 부상이 회복되는 데는 시간이 걸렸으니, 말들은 이곳 부근을 떠나지 않고 회영을 지켰다. 그 기간이 일주일이었다. 그 일주일간, 주옥은 운공과 회영에게 질문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 결과, 느리지만 성과가 있었다.


처음에는 전혀 통제할 수 없이 허공에 흩뿌려지던 머릿속 말들이, 점점 한 점으로 수렴하여 전달되는 것을 느꼈다. 일주일간 드러누운 회영을 고문하다시피 닦달한 결과, 일주일 뒤에는 절반 정도 확률로 생각을 차단할 수 있었다. 이제 살살 걸어다니기 시작한 회영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주옥이 속으로 되뇌었다.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어. 미안했다.’


그러자, 이번엔 생각이 전달돼 버렸는지, 회영이 돌아보고는 몸짓 언어를 보냈다.


‘미안할 거 없다.’


주옥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두 눈을 끔벅였다. 미안할 거 없다. 미안할 거 없다···? 회영이 저런 말을 할 줄 알았던가? 그 이전에, 회영이 방금 내 전음을 이해한 건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야생마들의 지능과 소통 능력은 짐승 치고 뛰어난, 딱 그 수준이었다.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어. 미안했다.’라는 문장을 이해할 정도였다면, 여태껏 간단한 단어만 나열해 의사소통을 해 왔을 리 없다.


과연 회영은 정말 자신의 말을 이해한 것일까, 확인할 방법은 하나뿐이었으니, 다시 한 번 전음을 통해 물었다


‘너 방금 내 말 이해한 거야?’


‘응. 이해한다.’


‘아니, 갑자기 왜?’


‘왜냐니, 나도 모르겠다. 줄무늬 고양이, 당하고 변했다.’


단순하긴 해도, 문장을 구사할 줄 알게 된 건 장족의 발전이었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건 그 문장의 내용이었다. 이 부분을 캐묻기 전에, 우선은 하나 알려줘야 했다.


‘그 줄무늬 고양이는 호랑이라고 해.’


‘그건 없는 말. 우리한테는.’


아차. 그렇겠군. 말들의 언어는 음절이 아니라 의미 그 자체를 전달하니, 어느 날 갑자기 새 단어를 만들어내기는 어려울 터였다. 그런데 그건 그렇다 치고.


‘왜 이렇게 똑똑해졌어?! 지능이 높아진 거야? 아니면 원래부터 똑똑했는데 전달을 잘 하게 된 거야?!’


‘똑똑해졌다. 말했다시피 줄무늬고양이한테 당하고 나서부터.’


태연히 답하는 회영의 몸짓 언어가 새삼 낯설었다. 대체 무슨 일을 당했길래 머리가 좋아진 걸까? 혹시 나도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인가?


‘어려울 것. 순전히 우연으로 추정된다.’


‘추정된다?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그렇다. 줄무늬 고양이 만난 날, 나는 산책을 나갔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이렇게까지 똑똑해진단 말인가? 경악하는 주옥에게, 회영은 설명을 이어갔다. 내용을 정리하자면 이랬다.


일찍 일어난 채 주변이나 조금 걸어볼까 싶어 길을 나선 회영에게,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머릿속을 직접 파고든 목소리가 말하길,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와 달라고 부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목소리는 단순히 아름다웠을 뿐 아니라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을 담고 있었던 것도 같다고, 회영은 회상했다. 홀린 듯 목소리를 따라간 곳은 어쩐지 배경이 좀 흐릿해 보였는데, 그 가운데엔 회영이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말이 서 있었다. 회영은 반쯤 제정신을 놓고 그 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몸짓 언어로 말을 걸려는 그 순간, 상대 암말이 달려들었다.


암말은 회영의 옆구리를 물어뜯었다. 살점이 크게 뜯겨나갔고, 그제야 회영은 제정신을 차렸다. 다시 상대방을 살펴보니, 자신에게 달려든 것은 아름다운 암말이 아니라 청호였다. 청호의 뒤집힌 눈이 자신을 바라보자, 회영은 죽음을 직감했다. 그 순간 떠오른 것은 주옥이었다. 우리 두목이라면 날 살려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부질없는 희망이 피어올랐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런데, 청호의 표정이 변했다. 아까처럼 다시 목소리가 머릿속을 헤집었다. 대신, 이번에 들려온 목소리는 하나도 아름답지 않았다. 되려 그 소리만으로도 식은땀이 날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그 목소리는, 그 두목이란 놈에게 자신을 인도하라고 말했다. 회영은 그 말을 듣자마자 몸을 돌려 달아났고, 그 뒤로는 주옥이 경험한 바대로였다.


놀라웠다. 청호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다는 점도 물론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 건 회영의 표현력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할 줄 알다니, 그것도 단 며칠 새 이런 능력을 얻었다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당황한 채 겨우 물었다.


‘그, 그래! 알았어! 그런데 네 머리는 왜 좋아진 거야?’


‘당하고 나서는 아무 차이 없었다. 변하기 시작한 건, 두목이 기운을 불어넣고 나서다.’


기운이라면 진기를 말하는 것일 터, 즉 자신이 억지로 회영의 첫 타통을 해준 다음을 뜻했다. 회영의 설명이 이어졌다.


‘줄무늬 고양이한테 당한 뒤로, 계속 머리가 이상했다.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리고, 모습이 보였다. 그 때, 두목의 기운이 들어오니 순식간에 정신이 맑아졌다. 그 이후, 그 기운이 몸속을 돌 때마다 이전에는 할 수 없던 생각을 하게 됐다.’


기연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과정이었다. 정리해 보자면 먼저 청호에게 정신을 공격당하고, 그 다음 타통을 받아 내력을 갖게 되니 머리가 좋아졌다는 황당무계한 얘기였다. 이 따위 기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는 사이 눈앞에서 회영이 몸짓 언어로 말해왔다.


‘혼란스러워 보인다.’


‘당연하지.’


‘잠시 시간 주겠다. 생각해 봐.’


이렇게 말하고, 회영은 고개를 돌려 주옥을 두고 떠나려 했다. 황당무계한 일이었다. 저 놈의 말이 머리가 좋아지더니 이제 배려까지 하는 건가? 고작 일 주일만에 저런 지성과 품성을 고루 갖췄다면, 이후엔 어떻게 되는 거지? 사실 나는 그냥 덩치 큰 말이고 쟤가 진짜 천마인 거 아냐? 이런 의구심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가운데, 한 가지 생각이 나 급히 회영을 멈춰 세웠다.


‘잠깐!’


전음이 전해져, 회영이 고개를 돌렸다. 주옥이 지체없이 물었다.


‘내가 준 기운, 움직일 수 있어?’


‘움직이는 법 깨달았다. 며칠 전.’


운공법을 깨달았다는 대답. 경험해 본 바에 의하면 짐승의 운공은 인간보다 훨씬 쉬웠으니, 인간 수준의 지능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황당한 가운데 반가움이 밀려왔다.


‘좋았어. 넌 더 똑똑하고 강해질 거야. 제대로 움직이고 있는지 나중에 봐 줄게.’


앞으로 얼마나 같이 강호를 헤맬 지는 모르겠지만, 똑똑하고 강한 동료를 얻는다는 건 반가운 일이었다. 주옥은 이렇게 말하며, 말의 얼굴이라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미소를 지었다. 그 의미만큼은 전달됐을 거라 믿었다.


‘좋지. 고마워.’


회영은 간단히 말한 뒤, 다시 주변을 어슬렁대기 시작했다. 반면, 주옥에겐 이제 본격적으로 추리할 시간. 회영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그 날 회영이 변화를 겪은 것은 머리와 단전. 달리 말해 상단전과 하단전이야. 당연히 혈맥으로 연결돼 있어서, 서로의 성장에 영향을 주고받지. 보통은 하단전 단련이 쉬우니까, 하단전을 충분히 단련해서 상단전을 여는 방식을 취하지만···’


그것마저도 사람마다, 심법마다 달랐다. 아무리 단련해도 상단전을 열 수 없는 무인과 심법이 있었고, 비교적 쉽게 상단전을 열 수 있는 경우도 있었다. 상단전을 열면 그 때부터 무형기(無形氣)를 활용한 무공, 즉 어검(馭劍)술과 육맥신검 등을 연마할 수 있게 되는데, 이런 무공들은 하나같이 절세신공이라 불렸다. 점창 무공중에는 사일검법이 그러했다.


‘···역으로 간다면 어떨까. 먼저 상단전이 열리고, 그 다음 하단전이라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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