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급 홀아비의 탑공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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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찬TO
작품등록일 :
2024.08.04 22:24
최근연재일 :
2024.09.03 13:25
연재수 :
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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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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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6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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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텃세(1)

DUMMY

지환은 식기용 은색 스테인레스 보울(bowl)에 뽀얗게 잘 익은 닭가슴살 조각들과 깔끔하게 손질된 알록달록한 야채를 한번에 넣어 버무렸다.


그는 찬장에서 발사믹 소스를 꺼내어 보울 안에 두어 바퀴쯤 넉넉히 돌려 부었다.



띠링


오븐에서 알람이 울렸다. 그는 오븐을 열어 뜨끈한 호밀 베이글을 꺼냈다.


냉장고에서 꺼낸 카이막 치즈를 접시 한켠에 덜고 그 옆에 베이글을 올려놨다.


그는 새하얀 식기에 준비된 음식들을 식탁 위에 가지런하게 차렸다.


“예린아, 밥먹자.”


다정한 목소리에 거실 왼쪽 편에 있는 두 개의 방문 중에서 오른쪽 방문이 열렸다.


예린은 언제나처럼 아카데미에 갈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로 거실로 나왔다.


그녀는 말없이 식탁에 와 앉았다. 머쓱한 웃음을 지은 지환이 앞치마에 손을 주섬주섬 닦았다.



“오늘은 아빠가 혜빈이랑 밤새 있을 테니까. 아카데미 끝나면 친구들이랑 시간 좀 보내면서 쉬어.”


혜빈이 의식을 잃은 지 한 달이 지났다. 지환과 예린은 시간이 날 때마다 그녀의 병상을 지켰다.


“아니야. 내일부터 주말이잖아. 내가 저녁에 혜빈이랑 보낼 테니, 오늘은 아빠가 집에 와서 쉬어.”

“아니야. 대신 주말에 하루는 아빠도 부탁할게.”


고등아카데미에 입학한 이후로, 예린은 아카데미를 끝마치면 매번 병원으로 직행했다.


분명 처음 만난 반 친구들이랑 친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할 텐데.


앞치마를 벗어 주방 한켠에 걸어둔 지환이 예린의 건너편에 앉았다.


“늦게 들어와도 되니까. 대신 몇시라도 상관없으니 집에 도착하면 연락은 한번 꼭 해줘야 돼. 알았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첫째 딸을 바라보자 괜스레 울컥했다.


그는 황급히 컵을 들어 물을 마시는 척하며 목구멍을 넘어오려는 슬픔과 미안함을 삼켰다




“...아빠. 혜빈이 돈 많이 들지 않아?”


식사를 마친 예린이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으며 무뚝뚝한 어투로 물었다.


지환은 베이글에 치즈를 바르던 나이프를 접시 위에 차분히 올려놓았다.


“그 이야기는 더 이상 안하기로 했잖아.”

“내가 아카데미 그만두고 탑에서 알바라도 하면···”

“식사 다 했으면 얼른 등교할 준비하렴. 저녁에 재미있게 놀다오고.”


얼굴에 걸린 미소와 달리 목소리는 단호했다. 예린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살풋 구겨졌다.


냅킨으로 입술을 닦은 예린이 방으로 돌아갔다. 식탁에 홀로 남은 지환은 짧고 조용한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를 잃은 이후로 예린이 가족에게 느끼는 책임감을 이해하고 있었다.


헌터가 된 이유가 비단 혜빈이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만에 하나 혜빈이가 치료를 제대로 못 받는 경우가 생긴다면, 분명 예린이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당장 아카데미를 때려치고 돈벌이를 찾겠지. 탑에 진입이 가능한 미성년자 여성은 여러가지 이유로 음지에서 선호하는 편이다.


물론 예린이가 그럴 리는 없겠지만, 헌터라면 언제나 최악을 상정하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


가장으로서 아빠로서, 어떻게든 치료비를 마련해야 한다.




“다녀올게.”

“응, 잘 다녀오렴.”


예린은 구두를 신고 대문을 열었다. 그 때 뒤에서 앞치마를 두른 지환이 다급히 그녀를 불러세웠다.


“미안, 미안. 아빠가 눈치없이 말만 하고서는.”


지환은 젖은 손으로 주머니를 뒤져 지폐 몇 장을 꺼냈다. 큰 돈은 아니지만, 학생이 하루 놀기에는 부족하지 않을 액수.


“가져가렴. 전부다 써도 괜찮으니까. 아끼지 말고.”

“괜찮아. 저번에 생활비 준 것도 남았어.”


지환은 예빈이 등에 멘 가방 앞주머니를 열어 돈을 넣고 닫았다.


“기죽지 말고! 힘차고 기운차게 파이팅!”


지환의 환한 웃음에 무표정한 예린의 입꼬리가 살짝 펴졌다.


본인도 무척 힘들텐데. 아빠는 자신의 감정보다 딸들이 우선이었다.


“아빠도 출근 잘해.”

“그래, 항상 차조심하고!”


문이 닫혔다. 잠깐 닫힌 문을 바라보던 예린이 이내 발길을 돌렸다.



결국 돈이 문제다.


아빠를 탓할 생각은 없다. 예린이 아는 한 아빠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가정적이며 벌이도 평균보다 높은 편이었으니까.


거기다가 아빠는 아내와 사별한 홀아비였다. 그럼에도 아무 불만없이 지금만큼 자신과 혜린을 사랑해주는 것만 해도 대단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저 재난처럼 닥쳐온 시련이기에, 평범한 노동자가 감당하기에 벅찬 현실이 문제였다.


돈. 돈. 돈. 돈. 돈.


단순했다. 돈만 해결되면 아빠도 혜빈이도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


그늘진 얼굴의 예린이 가방 앞주머니에서 지환이 넣어둔 지폐를 꺼냈다.


그녀는 지폐를 여러번 접어서 가방 안쪽 깊숙한 곳에 따로 숨기듯이 소중히 넣었다.


돈을 벌어야 한다.


장녀인 예린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지환은 식탁을 마저 정리하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은 지환은 옷장 구석에 꽁꽁 숨겨둔 검고 낡은 더플백을 챙겼다.


인벤토리. 예전 광부 시절 보급용 더플백형 중고 인벤토리를 하나 챙겨뒀었다.


아이들과 여행이나 갈 때 쓰려고 산 건데. 이렇게 사용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더플백을 어깨에 멘 지환이 집밖으로 나왔다. 조심스레 주변을 살펴본 그는, 예린이 시야에 보이지 않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굳이 헌터로 복귀했다는 사실을 가족들에게 밝힐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딸들이 안다고 변할 것도 없는데. 걱정만 끼칠 뿐이었다.



집을 나선 지환은 더는 다정한 아빠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의 굳은 얼굴에는 단단한 각오가 오롯이 떠올랐다.


한 달째. 오늘도 헌터 지환은 탑이 아닌 길드로 발걸음을 옮겼다.



*



길드의 아침은 언제나 한산했다. 일반적으로 한번 탑에 오르면 층을 공략하기 위해 며칠씩 머물다 내려오니, 굳이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헌터는 거의 없었다.


“오늘도 왔군.”


접수원은 턱을 괴고 앉아 고개를 삐딱하게 했다. 지환이 인사차 접수원에게 고개를 끄덕했다.


“그만두라고 수 차례나 경고했는데. 정말 고집 쌘 양반이군.”


중년의 피로해보이는 접수원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환은 언제나처럼 가방에서 지폐를 꺼냈다.


“그래. 마음대로 하라고. 다치든 뒤지든 네 인생이니까 말이야.”


하아, 접수원이 한숨을 쉬었다. 가끔 이런 녀석들이 있었다. 2급, 똥폐급 주제에 오르지 못할 꿈을 꾸는 멍청이들.


지환에게서 돈을 받은 접수원은 평소처럼 적당히 낡은 훈련실 번호키를 찾아 서랍을 뒤적거렸다.


“67번 훈련실. 반드시 17시까지는 키 반납해. 저번처럼 교대시간 다 돼서 가지고 오면 절대로 반납 안 받아줄 거야.”


지환은 대꾸없이 더플백을 뒤적거려 돈을 더 꺼냈다. 훈련실 대여 비용보다 적어도 두 배는 넘어 보이는 액수.


접수원의 괴고 있던 팔을 내리고 고개를 똑바로 했다.


“뭐냐? 이건?”

“매칭금입니다. 내일 오전에 입장해서 오후에 퇴장할 10층 파티로 부탁합니다.”


접수원은 이마에 걸어둔 안경을 내려서 똑바로 썼다. 그는 ‘2급 무특성’이라고 적힌 서랍을 열었다.


서류가 몇 개 되지 않아, 박지환이라는 택이 붙은 서류는 금세 찾을 수 있었다.


피식, 절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홀로 훈련실에서 고작 한달 수련한 폐급 헌터가 파티를 구한다라.


지금 이 녀석과 탑에 가겠다고 원할 헌터는 아무도 없을 거다.


쓰읍, 접수원은 아쉬움에 혀를 찼다. 훈련실 대관은 길드 입장에서 그리 남는 장사가 아니었다. 이래저래 준비해둘 게 많았고 유지비용도 만만찮았다.


훈련실은 미래를 위한 가치 투자이자, 일종의 서비스에 가까웠다.


길드 내에 실질적인 돈벌이는 파티 매칭과 마정석 및 소재, 장비류의 현물화였다.


파티 매칭은 가입한 헌터들의 정보만 잘 분류해두면, 매칭비를 거의 공돈처럼 챙길 수 있는 투자 대비 수익이 높은 수입원이었고.


마정석이나 소재, 장비류는 단가 자체가 워낙 쎄다보니 현물화시 수수료가 낮아도 큰 수익을 보는 구조였다.


물론 둘 다 위험요소가 존재했다. 특히나 파티매칭은 치명적인 디메리트가 있었다.


기간 내에 파티 매칭을 실패하면 매칭비를 도로 환불해줘야 한다는 헌터 보호법이 제정된 것.


사정이 이렇다보니 길드 입장에서는 헌터 파티가 탑공략에 실패하여 죽더라도 어떻게든 매칭을 이어주는 쪽이 이득이었다.


매칭비와 달리 사망보험료는 길드에서 보장해주는 시스템이 아니니까.


매칭을 접수했는데 매칭에 실패한다? 길드 입장에서는 노력은 노력대로하고 아까운 돈과 시간만 날리는 거다.


길드는 협회와 달리 조합이기 전에 사기업이다. 그들은 결코 손해를 보지 않는 쪽을 택한다.


매칭의 디메리트는 말단 접수원들에게 떠넘겨졌다. 매칭 실패에 대한 책임은 접수원들의 개인 월급으로 매워졌다.


물론 반대급부로 접수원이 매칭에 성공하면 건 당으로 커미션에다가 평가 점수까지 가산됐다.


길드 접수원은 일종의 영업직이나 다름없었다. 길드 내에서 접수원으로 살아남으려면 죽이되든 밥이되든 파티 매칭은 피하기 힘든 일거리였다.



‘하씨. 어디 남는 구멍 없나.’


이런 폐급은 서류로는 매칭이 불가능하다. 긴급한 즉석 파티여야 합류 가능성이 미약하게나마 확보된다.


중년의 접수원은 다급히 길드 내부를 훑어봤다. 지환은 접수대 위에 매칭비를 올려둔 채 그대로 기다리고 있었다.


순간 접수원의 시야에 한 녀석이 들어왔다. 아침부터 제 집 마냥 소파에 누워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는 녀석.


일명 잔반 처리반 레드. 확신은 없지만 확인해볼 가치는 있었다.


접수원은 레드라는 단어를 웅얼거리며 접수대 위에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렸다.


이윽고 모니터를 응시하는 그의 주름진 눈가에 탐욕스러운 음영이 짙어졌다.


“어이 레드! 이리와봐.”


길드 공용 소파를 마치 혼자 쓰듯이 누워있던 레드가 상체를 반쯤 일으켰다.


그는 멍한 눈으로 지환과 접수원을 보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빨리 이리 와보라니까. 너 내일 아침에 탑 진입할 거라며.”


다급하게 구슬리는 목소리. 레드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간신히 일어나 터덜터덜 걸어왔다.


“지금 너 파티원 한 명 뿐이잖아. 남은 자리는 이 녀석으로 어때?”


한껏 튀어나온 거북목의 레드가 흐리멍텅한 눈동자로 지환을 응시했다.


지환은 자신을 바라보는 레드의 얼굴을 마주봤다. 헌터라기에 너무나 앳된 인상.


부시시한 금발과 평체보다 작은 키, 끝단이 바닥에 살짝 끌리는 붉은 망토.


지환의 눈에는 레드가 마치 나사가 하나쯤 빠진 어린왕자처럼 보였다.


“미성년자는 헌터 등록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레드가 동안이기는 하지. 하지만 엄연한 스무살. 성인이라고.”


길드에서 보증하니 거짓말은 아닐 터였다. 지환은 다시 한번 레드를 훑어봤다.


스무 살이라, 자신과 나이 차이가 어림 두 배였다.


“레드. 너는 어차피 아무나 상관없잖아? 무조건 세 명은 채워야 하고.”


솔로잉은 30층을 뚫은 헌터들이 갖는 축복이다. 그전까지 최소3명, 최대5명으로 파티를 이루지 않으면 탑에 진입할 수 없었다.


레드가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접수원이 방긋 웃으며 양손으로 접수대 위에 돈을 갈퀴처럼 끌어안았다.





누군가 접수원의 손목을 붙잡았다. 접수원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고개를 쳐들었다.


“아니. 파티는 두 명인데 왜 레드 허락만 받냐? 내 동의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첫인상이 사마귀처럼 생긴 녀석이었다. 더듬이만 달아서 당장 수풀에 내놓으면 사람인지 사마귀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동률.


“어이. 키만 큰 놈. 몇 급 몇 층이야?”

“2급, 10층.”

“특성은?”

“없다.”


사마귀의 미간이 살벌하게 구겨졌다. 사마귀치고도 무척이나 인상이 더러운 쪽에 속하는 녀석이었다.


“씨팔. 장난하나. 무슨 진짜 우리가 잔반 처리기인 줄 알아?!”

“당겔, 길드 내에서 욕설은 금지다!”

“꺼져. 접수원 병신아. 너 같으면 욕이 안 나오겠냐? 도대체 몇번 째야 씨팔!”


당겔이 바닥으로 침을 탁 뱉았다. 접수원이 기가 찬 지 헛웃음을 웃었다.


그의 웃음에 당겔은 허리춤에 숨겨둔 단검에 손을 가져갔다.


“벌써 부상당한 놈만 세 명째다. 네 병신같은 매칭 때문에 도통 11층으로 올라갈 수가 없어!”

“당겔, 웃기지마라. 매칭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다들 너랑 엇비슷한 실력이었어. 레드 등 뒤에 숨어서 죽은 헌터들을 발판 삼아 겨우 목숨이나 부지한 놈 주제에. 어딜 남탓을 해?”


당겔에게 잡힌 접수원의 손목이 부르르 떨렸다. 손목을 붙잡은 당겔의 팔뚝에는 힘줄이 솟았다.


“안 놔?”

“못 놔! 씹쌔끼야! 다른 놈, 정상적인 놈 매칭해달라고!”


접수원의 반대쪽 손이 번개같이 움직였다. 접수원의 손에 번쩍거리는 송곳이 당겔의 팔뚝을 노리고 내리꽂혔다.



치-잉, 팍, 팍.


접수원의 송곳과 당겔이 뽑아들던 단검이 동시에 공중으로 솟구쳤다.


길드 천장에 박힌 송곳과 단검이 파르르 떨렸다. 길드 1층에 머물던 헌터들이 접수대 쪽을 힐끗거렸다.


“하지마셈.”


레드가 손에 든 숏소드를 허리춤에 달린 검집에 착검했다.


얼굴이 벌개진 당겔과 접수원은 서로를 보며 어금니를 으득으득 갈았다.


지환이 레드와 눈이 마주쳤다. 불미스러운 사태에도 레드의 흐리멍텅한 눈 속에는 딱히 의욕이랄 게 없었다.


“이름이 뭐임?”

“지환.”

“훈련실 가실 거?”

“67번.”


지환은 한손으로 67이 새겨진 키를 들었다. 레드는 맹한 눈빛으로 접수원을 응시했다.


“뭐··· 무어! 왜?”

“67번, 공용키.”

“그럼 추, 추가금···!”


순간 레드의 눈빛이 돌변했다. 안개 속에 잠긴 눈동자에 진득한 살기가 서서히 번졌다. 접수원은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너도 양보하셈.”

“그, 그래. 알겠다. 알겠어. 화내지 말고, 이번에는 무료로 빌려줄테니까.”


레드는 67번 훈련실 공용키를 두 개 더 받았다. 그는 그 중 하나를 당겔에게 넘겼다.


“고고싱.”

“...어딜? 갑자기 훈련실은 뭐하러?”

“둘, 대련해보셈.”


당황한 당겔이 입술을 떼려는 순간, 순식간에 지환과 당겔의 소매를 낚아 챈 레드가 연습실 키 번호를 중얼거렸다.


*


“뭐야! 구경났어? 다들 하던 일이나 마저 하시지!”


젠장. 접수원은 투덜거리며 괜히 헌터들에게 화를 냈다.


헌터들은 그런 모습이 익숙한지 금세 다들 자신이 하던 일로 돌아갔다.


날백수 새끼들. 지금 이 시간에 여기 머무는 헌터들은 대체로 별 볼 일 없는 놈들이었다.


레드만 제외하면···


접수원은 접수대에 올려져 있는 매칭비를 한아름에 끌어안고 안쪽으로 당겼다.


멍청한 놈. 매칭비로 이만한 돈을 내다니.


이 정도 금액이면 레드 같은 잔반 처리기가 아니라, 꽤 괜찮은 1급이나 특급 정도로 매칭해줬어야 했다.


돈을 내려보는 접수원의 눈이 탐욕으로 빛났다. 그는 주변 눈치를 살핀 후 매칭금의 일부를 자신의 바지 주머니로 몰래 꿍쳤다.


접수원은 남은 매칭비를 접수대 아래 은색 금고에 보관했다.


후, 대충 정리된건가. 한숨을 쉬던 접수원이 순간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천장에는 단검과 송곳이 장식품처럼 박혀 있었다.


염병. 저거 떨어져서 누구 다치면 자신에게 책임을 물을 지도 몰랐다.


접수원은 접수대를 닫고 뒤편 어두운 창고로 가 사다리를 찾다가, 불현듯 조금 기이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아까 레드가 살기를 내뿜었던 순간, 본능적으로 자신과 당겔은 뱀 앞에 선 쥐처럼 바짝 움츠려 들었다.


비단 자신과 당겔만 그랬겠는가. 길드에 머물던 헌터들도 다들 긴장했을 거다.


그런데 어째선지···


키만 큰 똥패급 헌터만이 유일하게 차분해보였다.


찰나였지만, 기이한 기분이었다. 고양이를 앞에 둔 연두색 개구리들 사이에, 눈치없는 검정 개구리 한 마리가 불쑥 섞여있는 것처럼.


흐음, 아닌가? 착각한 건가.


이맛살을 찌푸린 접수원은 두둑한 바지 주머니를 두드리며 마음속에 찜찜함을 날려보냈다.


어차피 그 자식은 레드와 한 팀이다. 아마 내일 이후로는 한동안 볼 일이 없겠지.


병원이나 장례식장 신세를 지게 될테니.


접수원은 귀찮고 불편한 생각을 접어두었다. 계단을 발견한 그는 단검과 송곳이 박힌 천장으로 올라갔다.


어찌나 단단히 박혔는지, 낑낑대며 용을 써도 단검과 송곳은 쉬이 빠지지 않았다.


염병, 돈 벌어 먹고 살기가 이렇게 힘들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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