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급 홀아비의 탑공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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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찬TO
작품등록일 :
2024.08.04 22:24
최근연재일 :
2024.09.03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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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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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특성

DUMMY

“예린아 밥 먹자.”


지환이 준비한 아침은 구운 소고기에 쌈채소였다. 아침에는 돼지고기가 좀 더 좋지만, 냄새가 너무 짙어서 지양하는 편이다.


방에서 나온 예린에게 실리콘 장갑을 건넸다. 예린은 쫀쫀한 검은 장갑을 가느다란 손가락에 딱 맞춰꼈다.


“잘 먹을게.”

“응, 맛있게 먹자.”


지환은 쌈채소를 두어 장 겹쳐서 그 위에 참기름 장을 찍은 소고기와 하얀 쌀밥을 얹었다.


손바닥을 옹송그려 만든 쌈을 한입에 넣었다. 입속에서 아삭거리는 채소의 식감과 찰진 소고기의 식감이 뒤섞였다.


“아빠, 나 오늘 학생회 때문에 좀 늦어.”

“응, 알고 있어. 저번에 병실에서 말했었지. 근데 딸은 학생회에서 무슨 직책을 맡은 거야? 이번에는 회장?”

“...회, 회장은 무슨 서기야.”


예린이가 당황했는지 입술을 씰룩거렸다. 괜한 오지랖을 떨었다고 생각한 지환이 쌈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무튼. 늦어.”

“응, 평일에는 괜찮으니까. 얼마든지 볼 일 보고 와. 대신 집에 도착하면 꼭 문자 하나는 해주고.”


짧게 고개를 끄덕한 예린이 쌈 두 장에 고기를 한점 싸서 먹었다.


혜빈이는 고기 두 점에 쌈 한 장이었지. 지환은 식탁에 비어있는 한 자리를 보며 쓰게 웃었다.




“다녀올게.”

“잠시만 예린아.”


현관에서 예린을 배웅하던 지환이 주머니에서 등록증을 빼서 들었다.


띠링


예린의 등록증에서 알람이 울렸다. 등록증을 확인한 그녀의 눈이 살짝 커졌다.


“뭐야 이건?”

“응? 용돈 쓰라고.”

“학생 용돈치고 액수가 너무 크잖아.”


무려 100만원이었다. 가끔 특수 마정석을 채굴한 날이거나, 생일에나 주던 금액이었다.


지금 형편에는 불가능한 수준의 용돈일텐데... 지환을 바라보는 예린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이번에 10층으로 올라갔잖아. 채굴을 잘 마쳐서 병원비하고도 돈이 좀 남았어. 편하게 넉넉하게 써. 대신 매번 이만큼씩은 못 준다는 건 알지?”


천연덕스럽게 웃는 지환. 예린의 눈동자가 슬그머니 그의 목을 향했다.


삼일이 지났는데도 드레싱 밴드를 붙이고 있었다. 의심할 여지없는 큰 상처였다.


“...응, 고마워. 아빠.”

“잘 다녀오고.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고.”


예린은 미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밖으로 나왔다. 등 뒤로 쿵소리와 함께 대문이 닫히자마자 그녀의 눈빛이 돌변했다.


상처, 100만원, 주말 밤 늦은 귀가.


예린의 특성은 초감각이었다. 오감을 종합하여 육감을 위시하는 능력.


의심스러웠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찝찝한 의구심이 가슴 속에 또아리를 틀었다.


그녀의 특성과 맞물린 촉은 빗나간 적이 없었다.


아빠에게 무슨 사정이 생긴건지, 명확히 알만한 사람이 떠오르긴 했다.


빚을 지면서까지 물어보고 싶은 대상은 아니었지만, 아빠 일이라면 어쩔 수 없지.


교복 치마 주머니 안에 하얀 손을 집어넣었다. 마나 담배 케이스를 만지작거린 그녀가 아쉬움에 혀를 찼다.


집 근처에서는 피면 안 된다. 혹여나 아빠가 알게 되면 신경 쓰실 테니까.


후, ㅆ··· 혀 끝까지 차오르는 욕을 삼킨 그녀는 서늘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오늘 아카데미 수업에 집중하기는 그 것 같다.



***



“홍사장?”

“그래, 홍백기 사장님. 내가 탑 발생 전부터 알던 분인데 믿을 만해.”


오늘도 역시나 길드 소파에 널브러져 티비를 시청 중인 레드는 잠시 관심을 가졌다가, 이내 등을 돌리며 신경을 끊었다.


“맘대로 하삼.”


대답을 들은 지환이 레드의 옆자리로 가 앉았다. 레드가 자리가 불편한지 고개를 삐쭉 들어 지환을 쳐다봤다.


“내 자리셈.”

“공용 물품이잖아. 같이 쓰는 거지.”


레드의 얼굴이 미세하게 구겨졌다. 자꾸 오르려는 입꼬리를 꾹 참은 지환이 말을 이었다.


“영화보고 있었네. 진짜 오래된 영화잖아. 한x규, 송x호 주연 아니야? 조폭영화? 아마 제목이 넘바3였나? 이건 길드가 좀 너무하네. 적어도 한 3년 4년 전 영화를 틀어줘야지. 이건 너무 옛날 영화잖아.”

“명작임.”


레드는 지환의 비판을 일축했다. 지환은 흐리멍텅한 눈으로 영화를 시청하는 레드를 의외라는 듯 지켜봤다.


레드의 말처럼 넘바3는 참으로 명작이었다. 단순한 티비 중독자인 줄 알았는데, 영화 취향이 썩 괜찮았다.


“부탁 하나만 들어주라. 대신 귀찮게 안 할테니.”

“......”

“레드, 나 대련 한 번만 도와줘.”


레드의 태연한 표정이 단숨에 깨지며, 세상 만사의 귀찮음이 얼굴로 드러났다.


지환은 굴하지 않고 그의 옆에 더욱 가까이 붙으며 버텼다.


“노.”

“잠깐이면 돼. 진짜 부탁할 사람이 없어서 그래.”

“홍사장.”

“아니, 그분은 지금 회사에 있지. 투잡러야.”

“나도 투잡임.”


레드가 소파를 툭툭 두드렸다. 소파에 누워서 영화보는게 직업이냐.


지환은 더플백을 주섬거리더니 작은 상자를 꺼냈다.


“대신 이걸 주지.”

“......”


최신식 안대. 착용자의 눈과 콧날의 형태에 따라 자리를 잡아가는 마이크로 트랜스 폼, 거기에 은은하게 따스함을 유지해주는 자동 보온 기능까지.


명품까지는 아니지만, 10만원 이상의 거금을 주고 구입한 국산 수면안대였다.


레드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평소 레드는 소파 위에 누워서 티비를 보다가 아무 때고 잠이 들었다.


지환은 항상 밝은 형광등 아래에서 설핏 잠드는 그가 은근히 신경쓰였다.


안대를 건네주자마자 착용해보는 레드. 몸집만큼 얼굴도 작아, 안대의 겉면에 그려진 빨간 고양이 얼굴이 그의 인중까지 덮었다.


“오키, 고고싱.”


안대를 쓴 채로 상체를 일으킨 레드가 손바닥을 내밀었다. 안도의 한숨을 쉰 지환이 길드 훈련실 키를 그의 손바닥 위에 올려놨다.


*


“이제 그만 안대는 벗어야 되지 않아?”

“신경끄삼.”


지환은 훈련실에서조차 안대를 차고 누워있는 레드를 보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럼 대련 시작할까?”

“고고싱.”


레드는 드러누운 상태로 숏소드로 허공에 낙서를 하듯이 검끝을 흐느적거렸다.


지환은 등에 둘러멨던 르니쉬의 원형 방패를 왼팔 전박에 견착하고, 오른손으로 방패 안쪽에 끼워져 있는 목재 단창을 뽑아 들었다.


“진짜 준비된 거지?”

“고고.”

“간다?”

“싱.”


지환은 방패를 앞세워 바닥을 박차며 달려나갔다. 무슨 소재로 만들어진 건지는 몰라도, 방패는 오른손에 든 목재 단창만큼이나 가벼웠다.


휘적거리던 레드의 검끝이 정확히 방패를 겨눴다. 방패 위로 눈만 내민 지환은 검끝의 경고를 무시한 채 계속 질주했다.


무섭기는 해도 실험해봐야 했다. 과연 보증서에 적힌 만큼 성능이 좋을까?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뭐든 실제로 부딪혀봐야 제대로 안다.


숏소드의 사정거리에 다다랐을 즈음, 지환의 집중력이 고조됐다. 스치는 바람이 서서히 느리게 흐르기 시작했다.



콰앙


멈칫한 지환이 충격으로 두어걸음 물러났다. 레드의 숏소드가 대기를 수직으로 가르는 순간, 방패를 기울이며 전면으로 힘차게 밀었음에도 제자리에서 버틸 수 없었다.


그렇다해도 레드의 일격을 막아냈다. 보증서에 적힌 견고함과 방어력 수치가 거짓이 아니었다.


아마도 특성 때문이겠지. 르니쉬의 원형 방패의 두 가지 특성 중, 첫 번째가 방패 겉면에서 생성되는 점액질이었다.


은은한 초록색을 띠는 점액질은 기름처럼 미끄럽고 불에 잘 타는 성질이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확실히 공격을 받을 때, 방패 각도를 슬쩍 기울였더니 레드의 검날이 미끄러지며 위력이 반감됐다.


물론 위력이 반감됐어도 충격이 크긴 했지만.


지환은 방패를 내려 겉면을 확인했다. 점액질 안쪽으로 검격의 흔적이 실선처럼 남아있었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방패에 새겨진 검상을 내려다봤다.


방패의 내구성 문제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특히나 금속제가 아닌 소재의 방패인 경우, 충격에 의한 반탄력은 감소되나 둔기류를 착용한 적을 상대하면 몇 차례 방어하지 못하고 박살이 난다.


무언가를 기다리듯 검상을 바라보던 지환의 표정이 서서히 밝아졌다.


방패가 스스로를 치유하듯, 기다란 실선이 조금씩 옅어졌다.


이로써 방패의 두 번째 특성도 검증됐다. 재생 능력. 스스로 망가진 부분을 수리한다고 적혀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 신기하고 한편으로는 기묘했다.


역시 자본주의 세상이다. 1억 7천짜리 무기다. 비싼만큼 값을 하는구나.


방패 본연의 역할에도 충실하고, 여타 다양한 활용이 가능할 듯 싶었다.


아무리 방패가 견고하다고 해도 팔뚝으로 전달되는 묵직함을 전부 흡수하진 못한다.


방패를 착용한 왼팔이 우리했다. 지환은 저린 주먹을 몇 차례 쥐었다가 폈다.


레드는 질색한 표정으로 숏소드 날에 붙은 미끄덩한 점액질을 망토로 박박 닦아내고 있었다.


그나저나 정말 볼수록 신기한 녀석이었다. 어떻게 누워있는 상태로 공중에 튀어 오르더니, 몸 전체를 회전시켜 검을 휘두를 수 있는 거지?


하물며 안대도 쓴 상태라 앞도 안 보일텐데, 어떻게 정확한 타격 타이밍을 잡은 거지?


레벨과 스텟이 올라가면 저런 서커스처럼 신기한 동작도 가능해지나?


지환은 고개를 저으며 실없이 이어지려는 의문을 지웠다.


어차피 고민 끝에 부러워 해봐야, 2급 각성자인 자신은 평생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는 경지였다.


자신은 계획대로 할 일을 할 뿐. 지환은 곁에 세워둔 단창의 첨단에 엄지손가락을 콕 찔렀다.


붉은 선혈이 물방울처럼 솟아나 엄지손가락을 타고 흘렀다.



“레드, 다 닦았어?”

“오키.”

“그럼 고고싱?”


레드가 새빨간 고양이 안대를 이마까지 올려 썼다. 그의 두 눈에는 불쾌함이 잔뜩 깃들어 있었다.


왜 저래. 지가 맨날 고고싱이라고 했잖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새빨간 고양이가 삽시간에 눈앞까지 치달았다.



콰아앙 쾅 콰앙 쾅쾅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검격. 원형 방패가 넓은 편이라 망정이지, 작은 버클러 형태였으면 지금쯤 자신은 오체분시가 됐을 거다.


손속에 사정을 둔 건지, 숏소드의 궤도가 어렴풋이 보이긴 했다.


지환은 전력을 다해 방패를 요리조리 기울이며 검격을 방어했다.


역시 1억 7천은 훌륭하다. 당연히 밀리긴 했다만, 20층 헌터의 공격을 폐급 헌터가 버텨내고 있었다.


지환은 레드의 검격이 회수되는 박자에 맞춰 온힘을 다해 방패를 걷어내며 단창을 내질렀다.


아무리 레드라 하더라도 갑작스러운 반격에는 흐름이 잠시 끊길 수밖에 없다.


대련이 아닌 생사결이었다면, 아마 레드는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더욱 저돌적으로 파고들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대련 상황. 레드는 흐름을 되찾기 위해 한 발자국 물러났다.


지환의 눈이 빛났다. 이제 찝찝한 실험을 해볼 때가 왔다.


지환은 마음속으로 사과를 하며, 레드를 향해 한쪽 발을 쭉 뻗었다.


갑작스러운 진격에 레드의 눈썹 끝이 살짝 솟았다.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단창을 찌를 만한 거리가 나오지 않는다. 무슨 생각이지?


지환의 단창이 바닥으로 낙하했다. 일순 단창을 버린 손아귀가 레드의 목젖을 향해 독사처럼 뻗어졌다.



0.1초.


지환이 레드의 목줄을 쥐었던 찰나. 레드의 움직임에 긴장이 맴돌았다.



콰아앙


흡사 벼락이 내리 꽂히는 소리. 지환의 한쪽 무릎이 그대로 꺾였다.


레드의 혼신이 담긴 일격은 방패의 중앙을 협곡처럼 쪼개놨다.


레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묘한 위기감에 휩쓸려 본능적으로 진심을 다해 휘둘렀다.


그는 간질거리는 감각에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손바닥으로 오돌토돌하게 솟은 닭살이 느껴졌다.


설마하니 창을 버리고 박투로 근접전을 노리다니.


만약 지환이 암기가 장착된 장갑이라도 착용하고 있었다면 꼼짝 없이 당할 만한 기습이었다.


거기다가 미끈거리는 방패로 자신의 일격까지 막혔다. 양패구상도 실패.


사실상 자신의 패배나 마찬가지였다. 대련이라고 설렁설렁 대처한 게 화근이었다.




“후아, 내가 졌다.”


지환이 뒤로 발라당 넘어갔다. 그가 거칠게 숨을 헐떡였다.


“뭐삼?”

“응? 뭐가?”

“따고 배짱 없음. 일어나셈.”


방패를 푼 지환이 소매를 걷어올렸다. 팔뚝에는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


“좀 봐줘. 이거 봐라.”


마뜩잖은 눈빛의 레드가 숏소드를 바닥에 꽂고 주저앉았다.


“그나저나 내 실력 어땠어?”

“방패가 살렸삼.”

“아니, 방패는··· 그래, 그건 맞긴 하지.”


레드가 안대를 벗어버렸다. 약간의 짜증이 비치는 눈빛. 딱히 그의 감상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환은 빙그레 웃으며 다시 드러누웠다.


“아무튼 회심의 기습이었는데. 실패했네.”


시원섭섭한 기분이었다. 레드의 목을 잡고 넘어뜨려 진흙탕 싸움으로 끌어 들이려 했지만 역시나 무리였다.


툭툭


지환은 발끝을 건드리는 감각에 고개만 들었다. 심통난 표정의 레드가 발치에 서 있었다.


“일어나삼”

“응?”

“내가 진짜로 한 수 가르쳐줌.”

“팔뚝 아파서 힘들어. 다음에 하자.”

“지금 아님, 기회 없음. 고고싱.”


레드는 팔짱을 낀 채 지환을 내려다봤다. 아무리 상대가 방패를 들었다지만, 1급에 레벨 23인 자신이 2급 각성자를 상대로 기습에 당하다니.


레드는 검술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탑이 생성되기 전부터 수많은 검사들을 보고 자랐다.


일전에 리자드맨을 사냥할 때부터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당연 자신보단 못하지만, 그가 보기에 지환 또한 상당한 재능충이었다.


비록 힘과 속도가 부족하지만, 본능적으로 검의 궤도를 예측하고 최대한 피해를 흘리는 방향으로 방패를 기울여 최적의 각을 만들어서 방어했다.


딱히 어디서 제대로 배운 가락은 아닌데, 지환의 전투 감각은 수많은 검사들 사이에서 천재라고 불린 자신이 보기에도 뛰어난 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


지환은 치명적인 공격 앞에서도 절대 눈을 감지 않는다는 점.


심지어 그는 위험하면 할수록 눈을 부릅뜨고 치달아오는 칼날에 시선을 집중했다.


위기 상황에 눈을 감는 행위는, 태초부터 가진 보호 본능이나 마찬가지다.


칼끝이 눈앞을 스치고 갈 때, 눈을 부릅 뜬 채 시선으로 칼끝을 쫓는 기예는 뛰어난 검사 백 명 중에 한 명 꼴로 보이는 재능이었다.



“알겠다, 알겠어. 혼자 동영상 보면서 훈련하는 것보다 뭐라도 너한테 배우는 게 낫겠지.”

“동영상?”

“그래. 1개월 동안 너튜브 찾아보면서 혼자서 창술 훈련했거든. 이런 말하면 비웃겠지만, 창술과 방패술은 너튜브가 내 스승이야.”



빠직


레드의 이마에 조류의 발자국처럼 생긴 푸른 혈관이 툭 불거졌다. 너튜브로 1개월쯤 훈련한 2급 헌터가 자신의 공격을 수차례나 방어했다?


이건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 지환이 거짓말을 하거나 아니면 그가 천재 중에 천재라는 이야기였다.


가문 내에서 천재라고 칭송 받던 자신조차 감각과 신체의 움직임을 동일시하는 데만 3년,


종이 한장 차이로 코끝을 스치는 검격을 주시하는 데만 4년이 걸렸다.


물론 6살부터 10살 때까지의 일이었지만.


이건 확인이 필요하다.



“나의 훈련은 만만찮으셈.”

“그래, 그래. 알았어.”


지환이 몸을 일으켰다. 오랜만에 호승심이 일어난 레드의 눈동자는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어라. 근데 너.”

“?”

“목이 왜 그래? 다친 거 아냐?”


목? 그제야 레드는 오른쪽 목 부위가 파스라도 붙인 듯 화끈거리는 걸 느꼈다.


“언제 쓸렸나본데? 부었다. 잠시만.”


지환이 더플백을 뒤적거렸다. 그제야 레드는 목 주변에 싸한 통증을 느꼈다.


그는 숏소드의 검면을 들어 자신의 목을 비췄다.


쓸린 상처라기보다, 약한 화상을 당한 흔적처럼 보였다. 붉어진 목이 살짝 부어 있었다.


“이거 발라. 어디 부딪혔거나, 아니면 벌레가 문 것 같네.”


레드는 지환이 건넨 외상 회복제를 목에 발랐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짧게 심호흡을 했다.


지환에게 목을 잡혔던 건 찰나의 시간.


아무래도 그의 손에 쓸렸을 가능성은 적었다. 차라리 벌레 쪽이 가능성이 높았다.


“결투 고고싱.”

“훈련이라며.”

“훈련임.”


어딘가 뾰로통한 레드를 보며 지환은 피식 웃고서 단창을 고쳐 들었다.



‘띠링~’


이제 막 훈련을 빙자한 결투를 시작하려는 데 등록증에서 알람이 울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지환이 레드에게 양해를 구한 뒤, 등록증을 꺼내 확인했다.


- 혜빈 아버님, 혜빈이가 의식을 찾았습니다.


간호사에게서 온 문자였다. 등록증을 든 지환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레드, 미안한데 대련은 다음에 하자···”


지환의 목소리에는 물기가 맺혀있었다. 그는 황급히 짐들을 정리해서 등에 둘러맸다.


레드는 결투... 결투가 아니고 훈련 중에 돌아가려는 그가 내심 탐탁지 않았지만, 왠지 분위기가 묘해서 얌전히 지켜만봤다.


“다음에 꼭 다시 하는 거임.”

“응, 다음에는 꼭!”


붉게 충혈된 눈동자와 달리 밝은 미소를 머금은 지환이 훈련실 밖으로 휘리릭 사라졌다.




훈련실에 홀로 남은 레드가 양반다리로 털썩 앉아 회색빛 훈련장 천장을 멍하니 쳐다봤다.


다음에 확인해 볼 기회가 있겠지.


졸음이 몰려온다.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한 레드가 안대를 내려쓰고 그대로 훈련실 바닥에 누웠다.


그는 목에 걸린 목배게를 벗어 머리맡에 두고, 옆으로 돌아 누워 숏소드를 검집째 끌어안고서 몸을 고치처럼 웅크렸다.


불가 몇 초 후에, 고요하던 훈련실에는 작고 평온한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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