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급 홀아비의 탑공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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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찬TO
작품등록일 :
2024.08.04 22:24
최근연재일 :
2024.09.03 13:25
연재수 :
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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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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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7화. 습지(2)

DUMMY

“씨발. 폐급 초짜 데려오면 재수 옴 붙는다더니.”


당겔은 습지에 소환된 이후로 끊임없이 꿍얼댔다.


어지간하면 참고 넘어가려던 지환도 슬슬 짜증이 치밀었다.


재수가 옴 붙기는. 습지가 걸린 건 순전히 랜덤이다. 낮은 확률이었지만, 분명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리고 매번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헌터들 사이에서, 초심자의 행운은 나름 영향력 있는 미신 중 하나였다.


물론 자신이 초심자치고도 심하게 폐급인 건 팩트지만.



“장화 신으삼.”


레드가 자신의 등에 멘 작은 슬링백을 앞쪽으로 돌려 뒤적거리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지환도 더플백 인벤토리에서 비상용 장화를 꺼내 신었다.


“아, 아니. 씨팔. 누가 그런 걸 챙기고 다녀. 1박도 아닌데.”


살짝 풀이 죽은 당겔이 옅은 술냄새를 풍기며 접근했다.


레드는 아무렇지않게 장화를 하나 더 꺼내 당겔에게 집어던졌다.


“복귀하면 두 배임.”


칫, 당겔이 장화를 주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화를 신은 지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지금 그들이 머무는 장소처럼, 습지에는 물에 잠기지 않는 분지가 군데군데 솟아있었다.


그나마 잠시 쉴만한 장소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레드, 어쩔꺼야? 여기 환경이 최악인데. 나도 10층에 진입한지 벌써 세 번째지만 이딴 습지는 처음이야.”


당겔은 굳이 여기서 무리할 필요가 있냐는 입장이었다. 다시 말해 안전 지대를 찾아 길드로 복귀하자는 의견.


“10층 습지 지형은 흔치는 않지만 평균 열에 한 번은 걸리는 지형이야. 정글이나 수풀, 초원, 들판보다는 확실히 힘든 조건이긴 하지···”


지환이 말꼬리를 흐리자. 당겔이 눈을 부릅떴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


반인반사마귀의 희번득한 검은 삼백안이 지환을 매섭게 쏘아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환은 3년전 헌터 시절 공부했던 정보들을 차분히 읊었다.


“...하지만 그만큼 이점이 있지. 채굴 가능한 마정석이 고순도일 확률이 높아. 전리품도 급이 한두단계는 더 높겠지.”


레드는 지환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굳이 아무도 의견을 내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레드가 팀의 리더를 맡고 있었다.


“단점은 뭐임?”

“습지 지형 자체가 가장 큰 단점이지. 기동력이 떨어지고 휴식이나 노숙하기가 쉽지 않아. 만약 우리가 하루 이상 머무르거나, 10층 보스를 잡으러 왔다면 나도 포기했을 거다. 시간 낭비일테니까.”


레드는 잠깐 고민하는 듯,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갸웃했다.


지환은 머릿속으로 습지 지형에 위험 요인에 서열을 매겼다.


“습지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할 사항은 몬스터의 유형이야.”


레드와 당겔이 지환을 쳐다봤다. 덤덤하지만 깊어진 황금색 눈동자와 이에 대비되는 짜증과 분노만이 뒤섞인 탁한 검정색 눈동자.


“탑은 진입할 때마다 컨셉이 바뀌고 한 번 정해진 컨셉은 공략되기 전까지 유지되는 특성이 있다.”

“핵심.”

“1층에서 10층 사이의 습지에서는 대략 다섯 종류의 메인 몬스터가 존재해. 이 중에서 가장 까다로운 건 습지 슬라임. 미리 특정한 아이템을 준비하지 않으면 토벌이 거의 불가능하지.”

“아이 씨벌, 이딴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를 왜 듣고 있어! 그냥 복귀했다가 재입장 하면 되잖아!”


당겔이 뭐라 지껄이든 레드와 지환은 신경쓰지 않았다.


레드는 계속하라는 듯이 지환을 향해 턱짓했다.


“헌팅할만한 건, 구울이나 리자드맨. 만약 트롤이나 임프 종이라면 안전 지대를 수색하고 서둘러 복귀하는 편이 나아.”


얌전히 지환의 이야기를 듣던 레드가 주변을 경계했다.


시작 지점이라 아직 주종이 어떤 괴물인지 파악하기는 불가능했다.


“레드, 할 마음이 있다면 우선 시작지점에서 벗어나야···”

“쉿.”


검지 손가락을 들어 입술을 막은 레드가 눈을 감고 청각에 집중했다.


물이 참방거리는 소리와 날벌레 무리가 윙윙대는 소리, 기포가 터지는 소리 등.


레드의 청력강화 특성이 점점 반경을 넓히며 습지의 온갖 소리를 수집했다.



쉬이익 쉬익 쉬이익 쉬익


뱀이 혀를 낼름거리는 소리.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시작 지점을 중심으로 광범히하게 퍼져있었다.


“도룡뇽이삼.”


눈을 뜬 레드가 한마디 툭 던졌다. 당겔의 표정이 똥 씹은 것처럼 변했다.


어떻게 알아냈는 지는 모르겠지만, 빈말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지환은 더플백에서 목재창을 꺼내 들었다.


“리자드맨은 트롤의 열화판이라고 보면 간단해. 약한 재생능력과 민첩성이 까다롭고, 평이한 근력이 약점이지.”


레드는 지환의 설명에 그닥 관심이 없어보였다. 의외로 단검을 꽉 쥔 당겔이 아닌 척하며 지환에게 집중했다.


“참고로 리자드맨의 피가 눈에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 혈액에 미약한 독성이 포함되어 있으니까. 독성을 제외하면 주의할 점은 셋에서 다섯 사이로 무리를 지어 다니는 습성과 한손검과 한손 방패를 주무기로 사용한다는 정도.”


지환이 숨을 골랐다. 레드는 습지에 끝단이 잠기는 붉은 망토를 풀어 자신의 슬링백에 우겨넣었다.


“활 쏘셈.”


레드가 당겔을 가리키며 지시하듯 말했다. 당겔은 꿍얼거렸지만 쥐고 있던 단검을 얌전히 허리춤에 착용하고, 벨트에 달린 복주머니 같은 인벤토리를 벌리더니 작은 활과 화살통을 꺼냈다.


지환은 주위를 둘러봤다. 수해처럼 펼쳐진 귀신가지나무.


확실히 여기서는 단검보단 활이 유용할 거다.


몸집이 작고 가벼운 당겔이라면 점프특성으로 나무 위에 올라가 기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테니까.


“당겔 상위. 내가 전위. 지환 후위.”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전술 지시였다. 위에서 활로 지원하고, 전위에서 레드가 시간을 벌면, 후위에서 창으로 공격한다.



“가자.”


레드가 앞장섰다. 당겔도 긴장했는지 촐랑거리는 입을 다물고 나무 위로 도약했다.


지환은 창을 어깨에 걸치고 레드의 뒤를 따랐다. 그는 최대한 긴장을 풀고 있으려 노력했다.


아마도 레드의 지시가 있기 전까지는 안전할 터였다.


지환은 무슨 기술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레드가 탐지 관련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예상했다.


레드가 숏소드로 갈대를 툭툭 쳐내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전면으로 푸른 기름띠가 일렁거리는 투명막이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시작 지점과 외부를 가르는 경계. 저 푸른 투명막을 통과하는 순간부터 진짜 사냥의 시작이다.


서늘한 감각이 지환의 전신을 훑고 지나간다. 광부였던 시절에도 똑같았다.


투명막을 지나칠 때면 언제나 예외없이 소름이 돋았다.



“준비하삼.”


레드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마치 그들을 기다리고 라도 했던 것처럼 늪지 주위가 부산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지환은 어깨에 멘 창을 내려, 창의 첨단을 앞쪽으로 내미는 자세를 취하고, 창대를 팔뚝과 겨드랑이 사이에 단단히 고정했다.


자, 이제 진짜 시작이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사주를 경계했다.


*


크라악! 츄아락!


리자드맨의 비명소리가 지리하게 늘어졌다. 나무로 된 창끝이 리자드맨의 몸통을 과감히 꿰뚫었다.


리자드맨의 주둥이에서 초록색 피가 뿜어져 나왔다.


창을 쥔 지환의 팔뚝에 푸른 힘줄이 불룩하게 불거졌다.


리자드맨의 몸통에 박힌 창이 핑크색 내장과 얽혀서 쑥 뽑혀나왔다.


한방한방 혼신을 다한 찌르기.


푸욱. 레드의 검격에 멈칫하던 좌측 리자드맨의 허벅지에도 목재창이 박혔다.


쇠붙이로 창끝을 단조하면 살상력은 강할지언정, 창끝과 창대의 연결부위가 부드럽지 않아서 계속 쓰다보면 찌르고 회수하는 동작에 약간의 딜레이가 걸린다.


반면에 지환이 사용하는, 단단한 나무를 통짜로 깎아 만든 일자형 목재창은 걸리는 부분이 없기에 매끄러웠다.


금속창보다 경도는 낮지만, 목재창이 초심자가 쓰기에는 여러모로 훨씬 유리했다.


창을 내지르는 지환의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는 마지막 리자드맨까지 습지로 쓰러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씨팔. 생각보다 별 거 없는데, 리자드맨 새끼들.”


긴장이 풀렸는지 쫑알거리면서 나무에서 뛰어내려온 당겔.


단검든 사마귀인 줄 알았는데, 나름 활도 쏠 줄 알았다.


지환은 거친 숨을 고르며 벨트에 걸어둔 물통을 꺼냈다. 벌써 세 번째 전투였다.


대략 다섯에서 여섯마리 정도로 뭉쳐있는 리자드맨 무리를 탐색하고 목표로 삼으면 레드가 하나, 지환이 셋, 당겔이 하나 정도를 처리했다.


실상 죽인 숫자는 크게 의미가 없었다. 레드가 화려한 검술로 최전방에서 버텨주지 않는다면, 지환과 당겔은 리자드맨 한 마리도 처리하기 버겨웠을테니까.


“수고했삼.”

“수고고 나발이고~ 이번에는 어떤 게 나왔으려나~”


레드가 자리에 앉아 한숨 돌리는 사이, 지환과 당겔은 능숙하게 죽은 리자드맨들의 머리를 잘라냈다.


헌터 용어로 갈무리라고 표현하는데, 엘리트나 보스몹이 아닌 일반 몬스터들은 굳이 머리통을 잘라내야만 전리품을 떨어트렸다.


“오와! 마정석이다. 이거이거 내가 본 마정석 중에 가장 때깔이 좋은데?!”


당겔이 얼굴에 만연한 미소를 짓고 전리품으로 떨어진 마정석을 탐욕스레 살펴봤다.


“다 챙겼으면 얼른 넣어. 다시 출발해야 되니까.”


지환이 더플백의 입구를 벌려 내밀었다. 당겔이 마뜩찮은 표정으로 더플백에 마정석과 부속물들을 던져넣었다.


“너 이 폐급새끼. 하나하나, 전부다 기억하고 있으니까. 꽁칠 생각은 하덜 마라.”


지환의 더플백 인벤토리가 가장 용량이 컸기에, 습득한 마정석과 부속물들의 보관은 지환이 맡기로 결정했다.


“걱정마라. 정확히 세 등분으로 나눌거니까.”

“복귀까지 니가 살아있으면 말이지.”


악담을 남긴 당겔이 지환에게 눈을 한번 흘기고서 다시 나무 위로 올라갔다.


지환은 습지에 가장 불만이 많았던 녀석이 제일 크게 만족하고 있는 꼴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레드. 얼마나 더 할 거지?”

“두 세 번 정도.”


지환은 등록증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오후였다. 레드의 말처럼 두 어번만 리자드맨 무리사냥을 하고 나면 시간상 복귀하는 편이 안전했다.


“그럼 이제 슬슬 안전 지대 쪽으로 이동하면서 사냥하는게 어때?”

“오케.”


레드가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그는 등록증을 꺼내 나침반을 확인했다.


탑의 특성 중 하나였다. 탑 전용 나침반을 보고 남쪽으로 걷다보면 어느 순간 반드시 복귀가 가능한 안전지대가 등장했다.


지환은 창을 지팡이처럼 기대고 서서 일어섰다.


성공적인 사냥이 이후에 잠깐의 휴식은, 긴장감이 풀리는 동시에 급격한 피로가 몰려왔다.


그는 이를 악물고 곁에 세워뒀던 더플백을 어깨에 둘러멨다.


어깨에 걸리는 묵직함에 없던 힘도 솟아났다.


지금까지 얻은 전리품만 세 등분 하더라도 액수가 상당할 것 같았다.




“다섯.”


레드가 손가락으로 전방을 가리켰다. 지환은 즉시 어깨에 메고 있던 창을 바로 잡고 공격 자세를 잡았다.


“고고싱.”


늪지를 박차며 뛰어가는 레드의 뒤를 쫓았다. 지금까지 최대로 잡은 리자드맨 무리 수는 일곱. 다섯이면 평이한 수준이었다.



키르렉! 캬아악!


리자드맨 무리로 뛰어든 레드가 화려하게 숏소드를 휘둘렀다.


리자드맨들의 주의가 레드에게 집중되어 있는 초반에 한 마리 정도는 확실히 처리해야 했다.


지환은 달리며 고도의 집중력을 돋웠다. 사냥 시간이 길어질수록 관자놀이가 지끈거리고 무거웠지만, 돈 버는 데 쉽고 편한 일이 어디있을까?


느려진 시야로 리자드맨들이 무기를 휘두르는 궤도가 어렴풋하게나마 보였다.


레드의 숏소드가 리자드맨의 낡은 버클러를 쳐올렸다. 지환은 앞이 비어버린 리자드맨의 몸통 정 가운데를 목표로 전력을 다해 창을 내질렀다.


푸우욱


피육이 뚫리는 소리가 짧게 이어지고. 리자드맨의 눈동자에 빛이 반쯤 꺼졌다.


레드가 뒤를 흘낏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환도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사냥 중에 가장 위험한 건 합리화였다.


체력이 떨어지면 순간순간 이 정도면 되지 않았을까? 라는 합리화가 육체와 정신을 서서히 좀먹는다.


그러다보면 때때로 전장을 멍하게 의식하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긴장이 풀려버리는 거다.


전장에서 긴장을 풀면 죽음이 도래한다. 삼도천에 반쯤 몸을 담그고 물장구 치는 거다.


지환은 스스로가 불러오는 나태함에 물들지 않기 위해 매번 혼신을 다했다.


레드가 만들어주는 틈을 놓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한방씩 창을 찔렀다.


물론 가끔 막힐 때도 있었지만, 절실함이 맺힌 창끝은 대체로 리자드맨의 신체를 사정없이 꿰뚫었다.



리자드맨 무리가 모조리 쓰러졌다. 리자드맨의 시체는 최소한 구멍이 한 개 이상은 뚫려있었다. 확실히 이번 전투는 지환의 공이 컸다.


“캬! 빠르다, 빨라. 점점 사냥에 속도가 붙는데.”


당겔이 갈무리를 하러 나무에서 내려왔다. 그를 보는 레드의 표정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당겔 정찰 맡으셈.”


레드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리자드맨의 목을 잘라낸 당겔이 미간을 잔뜩 구기며 레드를 노려봤다.


“갑자기 왜? 활로 견제 잘 하고 있고만.”

“당겔 정찰.”


레드는 똑같은 대답만 할 뿐이었다. 지환은 팔짱을 끼고 상황을 지켜봤다.


이런 상황이 오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자신과 레드의 손발이 맞아가면서, 전투에서 당겔의 활이 차지하는 비율이 점차 줄어들었으니까.


애당초 작은 나무활은 급소에 맞히지 못하면 살상력이 낮았다.


심지어 시간이 갈수록 점차 명중률도 떨어졌다.


마지막 전투에서는 겨우 한 두놈에게 작은 생채기나 입히고 주의를 끄는 정도였으니까.


“씨팔! 알겠어. 알았다고!”


결국 당겔이 욕설을 하며 활을 집어넣었다. 지환이 혀를 쯧쯧 찼다. 나무 위에서 활들고 꿀 빨다가, 내려와서 싸우라니까 열받겠지.


“뭐야 그 표정은? 폐급 주제에 리자드맨 몇 마리 잡았다고 아주 신이 나셨나보네?”


당겔은 괜히 지환에게 화풀이를 했다. 지환은 딱히 상대해줄 생각이 없었기에 고개를 가로젓고 말았다.


‘너 이 폐급 새끼. 레드 믿고 깝치는 데. 진짜 조심해라. 뒤통수에 단검 박히는 수가 있으니까.’


당겔이 전리품을 더플백에 욱여넣으며 속삭이듯 몰래 말했다.


지환은 리자드맨보다 사마귀가 더 귀찮았다.


“고고싱.”


레드의 지시에 지환을 보며 바닥에 침을 뱉은 당겔이 다시 나무 위로 점프했다.


지환은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었다. 레드는 아쉽지만, 아무래도 다음에는 다른 팀을 구하기로 결정했다.


*


“어라, 씨팔. 동작 정지.”


나무 위에서 이동중이던 당겔이 손차양을 하고 전면을 주시했다. 레드는 즉시 손을 들어 이동을 멈췄다.


“뭔데?”

“위험한 건 아닌 것 같고. 동그랗게 보이는데?”


당겔이 나무 위를 원숭이처럼 뛰어 넘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레드가 주의를 기울이며 신중히 이동했다. 지환도 사주경계를 철저히 하며 그의 뒤를 따랐다.


“이거 무슨 알처럼 생겼는데?”


알? 당겔이 나무 위에서 아래로 점프하더니 사라졌다.


안 좋은 예감이 지환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는 앞장서던 레드를 무시하고 달려나갔다.


멀리서 당겔이 거진 자기 상체만한 하얀 알을 품에 끌어안고 있었다.


지환은 사색이 된 얼굴로 그를 향해 크게 고함을 질렀다.


“아, 안 돼!”

“안 되기는. 왜? 혼자서 몰래 후라이라도 해서 처 먹으려고?”


당겔은 늪지 위로 튀어나와 있는 커다란 바위로 알을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알을 향해 지환이 몸을 날리며 손끝을 뻗었다.



콰작


지환의 간절함이 닿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바위에 부딪친 알의 밑바닥이 깨지며 내부가 드러났다. 깨진 알 안에는 붉은 덩어리 같은 게 펄떡거리고 있었다.


“니, 니미럴! 이게 뭐야! 씨발!”


화들짝 놀란 당겔이 뒤로 물러났다. 기괴하고 구슬픈 울음소리가 깨진 알 밖으로 흘러나왔다.


울음은 늪지 구석구석으로 퍼져 섞였다. 습지에 드리운 그늘이 짙어지고 역한 냄새가 한층 더 쿰쿰해지는 기분.


지환은 긴장감에 몸을 낮추고 창을 바짝 세워들었다.


기억하고 있다. 이건 광부로 일할 때, 10층에 가기 위한 필기 시험 문제로까지 제출됐던 알이었다.


“망했다. 다들 도망칠 준비해.”

“폐급 새끼가! 무슨 개소리야! 겨우 알 하나 깨진거 가지고! 재수없게시리!”


당겔이 깨진 알을 마구 짓밟았다. 붉은 덩어리가 발길질에 꿈틀거렸다. 알에서 울려퍼지던 울음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씨팔··· 이제야 좀 조용해졌네···”


당겔은 빨간 피가 스민 검은 부츠를 습지에 넣고 휘저었다. 짙은 갈색 흙탕물에 피가 물감처럼 번지며 퍼져나갔다.


“별 것도 아닌 일 가지고 유난은. 이래서 폐급이랑은 다니기가 껄끄럽다···안···”


당겔은 입을 뻐금거렸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부릅뜬 눈으로 멀어지는 자신의 몸뚱이를 바라보던 당겔의 머리통이 습지 바닥으로 첨벙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비키삼.”


레드가 지환의 어깨를 잡아 뒤로 우왁스럽게 잡아당겼다. 당겔의 목을 자른 차크람이 공중에서 궤적을 비틀며 부메랑처럼 건너편 습지로 돌아갔다.


차크람이 사라진 장소에 호리호리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습지 갈대를 옆으로 밀어내며 등장한 리자드. 리자드맨 전사보다 날렵한 외형이지만 키는 좀더 커보였다.



“레드, 도망쳐야 돼. 우리로는 승산이 없어.”


지환의 경고를 깡그리 무시한 레드는 한손으로 숏소드의 검자루를, 다른 손으로는 검면을 붙잡은 채 자세를 낮췄다.


후우, 지환이 신음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레드의 입꼬리가 활짝 피어있었다.


“싸울거야?”

“당근.”


것참, 말 안 듣는 녀석이네.


겉만 보면 게임중독 너드처럼 보였지만, 실상 레드의 심장은 전사의 심장 그 자체였다.


아들, 아니지 잘 쳐주면 조카 뻘로 보이는 빼빼 마른 녀석이 강대한 적을 상대로 두려움없이 전투를 준비했다.


어차피 레드 없이 혼자 튄다고 해결될 것 같지도 않고.


비록 자신이 아빠나 삼촌은 아니지만, 혼자 도망치기에는 어른으로서 너무 책임감 없어보였다.


지환은 팔을 들어 창을 고쳐잡았다. 멀리서 한발짝씩 가까워지는 리자드를 보자 절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특이하게도 리자드는 암컷이었다. 가슴에 달린 여섯개의 유방은 리자드가 암컷임을 확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키야르케그르―︎!!!


처참히 박살난 알을 확인한 리자드가 고통에 찬 비명을 울부짖었다.


갈대와 귀신나무 가지가 파르르 떨렸다. 비명이 메아리로 변해 울려 퍼질 즈음, 습지는 무서울 정도로 적막해졌다.


지환은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려 깊게 심호흡을 했다.


참방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양손에 차크람을 든 리자드가 한발짝씩 다가왔다.


눈을 반개한 지환은 날숨에 맞춰 감각의 집중도를 최대치로 달구었다.


본능적으로 흘러내리는 식은땀이, 목덜미 뒤를 개미처럼 기어 내려가는 게 생생했다.


만약 자신이 광부 시험을 보지 않았더라면, 그저 마르고 키가 큰 여성체 리자드를 이렇게까지 두려워하지는 않았을 거다.


호리호리한 신체, 큰 키, 여섯개의 유방 그리고 알까지.


너무나도 명백한 증거들이었다.


지금 지환의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리자드는 엘리트 리자드퀸이 확실했다.



불행히도 그녀는, 10층에서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최악의 생명체 중 하나였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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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화. 만두 24.08.11 184 4 21쪽
9 9화. 탑의 주인 24.08.11 204 3 17쪽
8 8화. 습지(3) 24.08.10 192 5 15쪽
» 7화. 습지(2) 24.08.09 215 4 19쪽
6 6화. 습지(1) 24.08.08 222 5 13쪽
5 5화. 텃세(2) 24.08.07 263 5 15쪽
4 4화. 텃세(1) 24.08.06 297 5 16쪽
3 3화. 폐급 홀아비(3) 24.08.05 328 5 17쪽
2 2화. 폐급 홀아비(2) 24.08.05 364 6 20쪽
1 1화. 폐급 홀아비(1) 24.08.05 470 6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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