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급 홀아비의 탑공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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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찬TO
작품등록일 :
2024.08.04 22:24
최근연재일 :
2024.09.03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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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1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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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만두

DUMMY

“예린아 미안. 아빠가 좀 늦었지?”


지환이 미닫이 문을 열고 병실로 헐레벌떡 들어왔다. 이미 늦은 밤이라 병실 내부의 형광등은 꺼진 채였다.


침대 옆 작은 조명의 노란 불빛 밑에서 책을 읽던 예린은 지환에게 조용히 손을 흔들었다.


“미안, 미안. 오늘 인솔 헌터님이 지각하시는 바람에 채광 시간이 좀 늦어졌어. 저녁 먹었니? 여기 만두.”


지환은 손에 들려있는 검은 비닐 봉투를 건넸다. 예린은 봉투를 받아들었다.


뜨끈한 김과 맛있는 냄새가 봉투 안에서 피어올랐다. 예린은 침실 한쪽에 배치된 테이블 위에 만두를 꺼내 펼쳐놨다.


“이리 와, 아빠도 같이 먹어.”


혜빈을 보고 있던 지환이 빙그레 웃으며 테이블로 갔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은 둘은 나무젓가락으로 만두를 집어 먹었다.


“맛있네. 요기 사거리 편의점 옆에 있는 가게야. 가끔 배고프면 예린이도 사서 먹어.”

“응, 그럴게. 목은 왜 그래? 다쳤어?”


예린의 미간이 살풋 구겨졌다. 지환은 멋쩍게 웃으며, 목 아래 부근에 붙어있는 드레싱 밴드를 매만졌다.


“별 일 아니야. 걱정 안 해도 돼. 아빠가 일하다가, 실수로 광석이 튀는 바람에 살짝 긁혔지.”


예린은 지환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아빠는 거짓말을 할 때면 항상 코 끝을 매만졌으니까.


“조심 좀 하지. 무리하지 말라니까.”

“괜찮아, 정말 괜찮아. 아빠가 무리한 게 아니라 가끔 발생하는 작은 사고니까.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돼.”


억지로 밝은 미소를 짓는 지환. 예린은 만두를 먹는 척하며 그런 지환의 미소를 피했다.


아빠는 알고 있을까? 지금 자신의 얼굴이 얼마나 초췌하고 지쳐있는지.


아마 모를거다. 그러니까 저런 들통날 거짓말을 하는 거겠지.


예린은 상처에 대해 더 캐묻지 않았다. 아무리 애틋한 가족 사이라도, 감추고 싶은 비밀 한 두개쯤은 가질 수 있는 거니까.


“그나저나 요즘 아카데미는 어때? S반이라 힘들지 않아?”

“응. 별로 힘들 거 없어. 아참, 그리고 나···”


예린이 말을 하는 도중에 지환의 셔츠 앞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지환은 잠시만이라고 하며 등록증을 확인했다.


- 고맙삼.


레드에게서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탑에서 복귀하자마자 길드 치료실에 입원시켰는데 다행히 금방 정신을 차렸나보다.


- 몸은 괜찮아?

- 당근.

- 다행이네.

- 쉬삼.


“누구?”

“어? 응. 직장 동료인데. 오늘 목 다친 거 괜찮냐고 물어보네.”


지환은 예린의 질문에 대답하느라 더는 답장을 하지 못했다.


“직장 동료 누구?”

“아, 그··· 레드라고 있어. 아빠보다 어린 친구. 약간 특이하긴 한데, 채굴도 잘하고 알고 보면 착한 친구야.”

“남자?”

“응? 그럼 당연히 남자지.”


예린이 팔짱을 끼고 의미심장한 눈초리로 지환을 흘겨봤다.


지환은 갑작스러운 예린의 태세 전환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나 다음주부터는 학생회 활동 때문에 주중엔 종종 늦을 거야.”

“그래, 그렇게 해. 아빠가 주중에는 일찍 퇴근하니까 괜찮아.”


예린이 만두를 들어 한입 베어 물었다. 지환은 레드에게 얼른 회복하기를 바란다는 내용과 함께 내일이나 모레쯤 전리품 정산을 하자고 문자를 보냈다.


이후로 딱히 답장이 오진 않았다. 대충 예스라는 의미겠지.


그나저나 20살 가까이 차이나는 친구라니··· 그래도 폐급 헌터가 1급 헌터와 친구를 먹었으니. 기꺼워 해야 하려나.


지환은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몰라 그냥 쓰게 웃었다.


여하튼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탑이 발생하고 처음 생긴 헌터 동료였으니까.


마지막 만두 하나가 남을 때까지, 예린의 살짝 구겨진 눈썹 끝은 풀리지가 않았다.


지환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그녀의 냉랭함에 조심히 만두만 씹어 삼켰다.



“다 먹었어. 배부르네.”

“예린이 다 먹었어? 그럼 이 마지막 만두는···”


지환은 만두 한 알이 남은 플라스틱 팩을 들고 혜린이 누워있는 침상으로 다가갔다.


“아빠 뭐해?”

“아, 혜빈이 만두 좋아하잖아. 만두 냄새라도 맡으면 꿈에서라도 먹을 지 모르니까.”


지환은 침상 옆 보조선반 위에 만두를 올려놨다. 그의 지친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떠올랐다.


지환의 미소에, 예린의 냉랭함이 조금은 가셨다.


“피곤하겠다. 얼른 집에 돌아가 봐. 아빠는 내일 오후 출근이라 괜찮으니까.”

“응. 그럼 먼저 들어갈게.”


예린은 읽던 책을 챙겨서 가방에 넣고서, 만두를 먹고 남은 쓰레기들을 비닐봉투에 모았다.


“아참, 내일까지 간이 침대 큰 걸로 교환해준다고 하더라. 예전부터 요청했는데 이제야 바꿔주네. 불편하겠지만 오늘까지만 거기서 자.”

“진짜?! 고맙네. 우리 딸.”


지환은 자신도 모르게 너무 반색한 나머지 조금 쑥쓰러웠다. 첫째 딸인 예린은 보기와 달리 의외로 세심한 편이었다. 간이 침대가 작다는 언질을 한 적이 없었는데. 역시 효녀 중에 효녀였다.


무표정한 예린이 문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지환은 양손을 활짝 펴고 웃으며, 팔까지 크게 흔들어 그녀를 배웅했다.



*



밤에 부는 봄바람은 시원했다. 대형 병원이라 건물 사이에 공간이 넓어서 그런지, 다른 장소에 비해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편이었다.


예린은 병원 안쪽의 흡연장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가방 앞주머니에서 마나 담배를 꺼내 물었다.


고등 아카데미 졸업반부터 마나 담배는 허용됐다.


마나 담배는 니코틴이 아니라 마정석 가루로 구성되어 있었으니까.


물론 마나 담배라고 해도 아빠가 안다면 난리를 칠 게 분명했다.


무지개빛 연기가 밤공기와 섞이며 흐릿해졌다. 예린은 자신의 등록증을 만지작거렸다.


푸석한 머리카락과 거뭇한 수염, 퀭한 광대뼈와 시꺼먼 다크서클까지.


최근 날이 갈수록 아빠는 마르고 초췌해졌다. 자잘한 부상도 늘어가고···


특히나 오늘 목에 입은 부상은 결코 쉽게 볼만한 상처가 아니었다.


드레싱 밴드 너머로 옅지만 핑크빛이 번져보였다. 그만한 크기의 드레싱 밴드로 조치했는데도, 피가 비칠 정도라면 최소 몇 바늘은 꿰맨 상처일 게 분명했다.


예린이 반쯤 피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새로 한 개피를 꺼내 물었다.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술로 문 채 잠시 멍하게 앉아서 하늘을 응시했다.


담배 필터를 짜증스레 깨물었다. 그녀는 등록증을 들고 전화 번호를 찾았다. 자신에게 마나 담배를 권한 헌터에게.



“어머? 생각보다 결정이 빠르네?”


등록증 너머에서 제인의 능청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우 같은··· 예린은 담배를 꽉 물고 불쑥 튀어나오려는 속엣말을 참아냈다.


“할게요.”


이미 권유할 때부터 계산이 끝났을 거다. 자신의 제안을 거절할 리가 없다는 사실을.


“그래, 그래~ 잘 생각했어. 그럼 언제부터 시간될까?”

“다음주부터 바로 할게요.”


제인이 간드러지게 웃으며 이런저런 사담을 떠들려고 하기에, 예린은 곧장 등록증을 끊어버렸다.



끝내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재떨이에 꾹 눌러 부러트린 예린은, 불현듯 아빠에게 깜박하고 전달하지 못한 말이 떠올랐다.


문자로 보낼까 고민하다가. 그녀는 편의점에서 탄산 음료수를 두 개 사서 병실로 다시 올라갔다.


‘만두를 사오는데, 어떻게 탄산 음료수를 안 사오지.’


혜빈의 병실에도 음료수는 있었지만, 전부다 야채나 과즙 음료뿐이었다.


하긴 예전부터 아빠는 이런 사소한 센스가 부족해서 엄마에게 핀잔을 듣곤 했었지. 바보 아빠.



예린이 병실 문을 열었다. 병실 내에 불은 전부 꺼져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어둡고 푸르스름한 달빛 아래에.


지환은 혜빈의 손을 꼬옥 붙잡은 채, 침상 위에 엎드려 잠들어 있었다.


예린은 발소리를 주의하며 조용히 들어가, 만두가 올려진 선반 위에 탄산 음료수와 원무과에 들리라는 내용의 쪽지를 올려놨다.


간이 침대에 개어진 낡은 모포를 꺼내 아빠의 등 뒤로 덮어줬다.


숨을 쉴 때마다 미약하게 들썩이는 아빠의 뒷모습은, 마치 죽다 살아온 사람처럼 지쳐보였다.


예린은 촉촉해지려는 눈망울을 소매로 닦아버렸다.


자신이 슬퍼하는게 아빠에게 도움이 되나? 전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슬픔이 아빠를 더욱 고되게 할 뿐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빠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어야 한다.


결국 돈.


슬픔이 아니라 돈이 필요했다.



병실 문을 조심스럽게 닫고 나왔다. 예린은 코에 어린 진득한 냄새를 지우려, 손등으로 붉어진 코끝을 비볐다.


예린의 발소리가 멀어져갔다. 혜빈과 지환이 잠든 병실 안에는, 만두 냄새가 은은하게 배고 있었다.



***



“감정 요청하신 방패만 남기고, 전부다 현물화를 요청하셨죠? 정산금은 총 8천 6백 1십만원 입니다. 정산은 어디로 어떻게 해드릴까요?”


어안이 벙벙해진 지환이 옆에 서 있던 레드를 보았다. 레드는 알아서 결정하라는 듯 지환을 팔뚝을 툭쳤다.


“세 등분 하면 얼맙니까?”


새로 들어온 여자 접수원은 접수처에 있는 컴퓨터를 날래게 두드렸다.


“2천 8백 7십 3만원 정도겠네요.”


2천 8백 7십 3만원··· 탑의 9층에서 광부로 활동할 때 받던 연봉의 절반을 하루만에 벌었다.


“저희 팀이었던 당겔이라고. 혹시 사망 정산금 지급 대상 지정이 되어있나요?”

“네. 당겔님 사망 정산금 및 보험, 기타 상속 관련 지급 대상자는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하늘빛 고아원입니다.”


사망한 팀원의 정산금 문제는 살아 남은 팀원들의 선택에 달려 있었다.


지환은 레드를 쳐다봤다. 레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그럼 저랑 레드에게 등록된 계좌로 각각 2천 8백 7십 3만원씩 입금 부탁드리고, 나머지 정산금은 전부다 하늘빛 고아원으로 부탁드려도 될까요?”


접수원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지환과 레드에게 죽은 당겔 몫의 정산금까지 나눠줄 책임은 없었다.


하지만 지급 대상이 고아원이라는 점과 잠시나마 당겔의 욕설을 따라하며 힘을 냈던 기억이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만에 하나 자신이 죽더라도, 남은 팀원들이 지금처럼 예린과 혜빈에게 정산금을 나눠주겠지 라는 얄팍한 기대감도 한 몫 거들었다.


“괜찮을까?”

“맘대로 하삼.”


띠링, 지환이 등록증을 확인했다. 계좌에 5천만원에 가까운 돈이 찍혀있었다.


오늘부터 혜빈에게 주입되는 마정석의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갔다. 병원 원무과에서 입원비등 여러가지 부대비용을 합치면 하루에 200만원 정도 지출될 거라고 전달받았다.


5천만원이면··· 보험을 제하고, 대략 한달 반 정도 버틸 수가 있었다.


지환이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헌터로 복귀하지 않았다면 감당이 불가능했을 금액이었다.


“방패도 감정이 끝났는데. 확인해보시겠어요?”


지환이 알겠다고 대답하자, 접수원이 접수처 내에 마이크에 대고 홀로 중얼거렸다.


“저기 접수원님, 그런데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네? 그럼요.”

“혹시 전에 계시던 남자 접수원분은 어디 가셨나요?”


길드의 접수원은 잘 바뀌지 않는다. 해당 길드에서 부득이하게 전투에 참여가 불가능해진 길드원을 접수원으로 고용해서 때문에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보통 몇 년은 한 사람으로 유지된다.


“그분은 공금횡령으로 협회에서 재판 중이세요.”


조금 놀란듯한 표정을 꾸며낸 지환이 작은 감탄사와 함께 고개를 주억거렸다.


서비스도 나쁘고, 인상도 별로다 싶었는데. 역시나 한방에 골로 갔구나.


“이제 도착했대요. 방패 확인하시고요.”


기다랗게 이어진 접수처 끝부분에 철문이 열렸다.


허리에 찬 두툼한 은색 망치가 돋보이는, 험악한 인상의 중년의 대장장이가 한손에 방패를 들고 등장했다.


“누가 박지환이냐?”

“접니다.”

“너가 획득한 방패인가?”

“저희 팀이 함께 엘리트 몬스터를 잡고 얻은 전리품입니다.”


방패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이상유무를 살핀 대장장이는 지환에게 방패를 건넸다.


“운이 좋군. 나름 쓸만한 방패야.”


대장장이는 허리춤에 공구벨트에서 꼬깃꼬깃 구겨진 종이 한장을 꺼내 펼쳤다.


“헌터 협회의 은색 대장장이 베오른이 확인하고 보증한다. 이 방패의 이름은 르니쉬의 원형 방패로 B등급 방어구로 등록되어있는 탑 전용 장구류이다.”


그는 자신이 읽던 구겨진 종이를 내밀었다. 종이를 받아든 지환은 첫째 줄에 적힌 감정 결과서라는 제목과 마지막 줄에 적힌 대장장이 베오른의 서명과 헌터협회대장의 직인을 확실히 확인했다.


“잘 쓰고, 혹여나 부서지면 내 이름을 대고 길드에 맡겨라. 새것처럼 고쳐주지.”


지환이 손을 내밀며 감사하다고 대답했다. 베오른이 그의 손을 마주잡았다. 단단한 굳은살이 인상적이었다.


악수를 마친 베오른은 다시 철문으로 돌아갔다. 레드가 다가와 관심이 가는 지 방패를 기웃거렸다.


B급이라. 탑의 장구류에 대해서는 지환도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그저 최하급 장구류인 F급부터 최고급인 SS급까지, 등급이 분류되어 있다는 정도.


지환은 방패를 들고 접수원에게 가져갔다. 접수원은 방싯거리는 얼굴로 지환을 반겼다.


“혹시 판매하시려고요?”

“음, 판매하면 대금이 얼마 정도 나올까요?”


접수원이 손을 뻗어 지환이 들고 있는 종이를 가리켰다.


“어디 한번 볼까요? 희귀도 B급 중형 방패··· 특성이 두 개에··· 견고함 1Lv···”


접수원은 장구류 감정 결과서를 보고 중얼거리며 컴퓨터에 방패의 특징들을 기입했다.


“지금 길드 매물로 나온 건 없네요. 1년 전에 유사한 종류의 방패를 매매한 기록이 있긴한데. 그것보다는 이게 사양이 좀더 나은 편이라···”


턱에 손을 괴고 잠깐 고민하던 접수원이 입술끝을 살짝 구겼다.


“만약 당장 저희 길드에 현물화하신다고 하시면···”


지환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도대체 얼마길래 저리 뜸을 들이는 거지.


“1억 5천까지 드릴 수 있겠네요.”


지환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1억 5천? 방패 하나가 1억 5천!?


“어··· 음··· 그러니까··· 잠시만요. 혼자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서요.”


지환이 장구류 감정 결과서를 돌려받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끝이 파리하게 떨리고 있었다.


“...흥정을 아시는 분이군요··· 좋아요! 1억 7천! 그 이상은 진짜 안 돼요! 제가 장담하는데 어느 길드를 가더라도 이 가격보다 높게 쳐주는 곳은 없을 거예요!”


1억 7천!? 단숨에 2천만원이나 뛰었다. 지환은 격하게 두근대는 심장을 가라앉히며 우선 감정 결과서를 돌려받았다.


“레드··· 너도 들었지? 1억 7천이라고 하는데?”

“오키.”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방패 표면을 만지작거리며 놀던 레드는, 손가락에 미끄덩한 점액질이 묻어나오는 걸 보더니 질색했다.


“방패. 가지삼.”

“뭐?”

“목숨빚.”

“무, 무슨 소리야. 아, 아무리 그래도 같이 사냥한 건데.”

“필요없삼. 님 쓰셈.”


레드는 관심없다는 듯 자기 전용 소파로 돌아가 누워버렸다. 지환이 몇 차례 불러봤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원래 레드는 한번 누워서 티비를 보기 시작하면 어지간해서는 대꾸조차 안 했다.


“어떻게 하실래요?”


지환은 접수원의 당당한 눈빛에 혹하긴 했으나. 결국 좀더 생각해보겠다고 말하고 접수처를 벗어났다.


당장 계좌에 돈이 모자라는 상태도 아니었고. 아무리 고민해봐도 독단적으로 방패를 처분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레드. 그럼 당장 네가 팔거나 쓸 생각이 없다면, 우선은 내가 장비로 사용하고 있어도 될까? 나중에 판매할 예정이 생기면 그 때 팔아서 서로 대금을 나누도록 하고.”


레드가 티비에서 눈도 떼지 않은 체 저리 가라고 손을 내저었다.


지환은 1억 7천을 앞에 두고도 귀찮아하는 레드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아직 너무 어리긴 했다. 결혼도 안 한듯 싶고, 당장 딸린 식구도 없어보이니 돈 귀한 줄 모를 수도 있지··· 라고 이해하기에는 액수가 너무 높은 거 아닐까.


“티비보는데 미안하지만. 하나만 더 물어보자. 레드 다음에 또 나랑 탑에 동행할 의향이 있어?”

“고고싱. 대신···”

“당연히 10층 보스 잡으러 가야지.”


레드가 눈동자만 굴려 지환을 흘끗 봤다. 그는 누운 상태로 엄지손가락 하나만 까닥 들어올렸다.


“팀원은 어떻게 할까?”

“알아서 하삼.”

“그럼 접수원에게 알아서 구해달라고 한다?”


지환이 아는 헌터라고는 레드가 전부였다. 레드도 피차일반인 듯 싶었다. 레드의 눈꺼풀이 조금씩 감기기 시작했다. 지환은 서둘러서 할 말을 내뱉었다.


“날짜는 언제로 할까?”

“암때나.”

“그럼 이번 주말에 가자. 난 주중에는 바쁘거든.”


레드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밤새 게임하고 잠드는 아들, 아니지 조카를 바라보는 기분이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너 나한테 존댓말할 생각은 없는거지?”

“...패스.”

“응, 그래. 혹시나 해서 물어본거야.”


레드의 눈꺼풀이 완전 닫혔다. 새액 소리를 내며 잠든 그를 내려다보며 지환은 헛웃음이 피식 새어나왔다.


‘그래, 그래. 실력도 뛰어나고 1억 7천짜리 방패까지 맘대로 하라고 하시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잡일 정도는 내가 맡아서 해야지.’


지환은 접수처로 다시 갔다. 접수원의 방패를 보는 아련한 눈길을 애써 무시한 채 그는 매칭을 요구했다.


“이번 주말에 10층 보스 헌팅 매칭 구할 수 있을까요?”

“네에··· 잠시만요. 한번 알아볼게요.”


맥빠진 목소리로 대답하는 접수원. 하지만 그녀는 프로였다. 커미션이 떨어지는 매칭 건수를 놓칠 수는 없었다.


“두 분은 같이 가시는 거죠? 그리고 분류는 검사랑 창술사로 설명드릴게요?”

“네.”


접수원은 컴퓨터를 조작하며 벽에 결려있던 헤드셋을 착용했다.


‘네, 네. 거기요. 실력은 10층에서 두 분이서 엘리트 리자드퀸을 잡았죠. 한 분은 1급이고, 다른 분은 2급에 무특성이시긴 한데···’


이윽고 그녀는 헤드셋으로 여기저기 전화를 하며 매칭팀을 열정적으로 탐색했다.


역시나 지환의 등급과 특성이 걸림돌이었다. 아무리 10층 엘리트 리자드 퀸을 사냥했다지만, 서류상 보기에는 폐급인 상태 그대로였다.


‘한번 저 믿고 가보시라니까요! 이번에 B급 방패까지 얻어서 장비도 훨씬 빵빵해지셨다니까요.’


정산하던 이미지와 달리 열정적으로 영업을 해주는 접수원의 모습에, 지환은 나중에 방패를 팔게 되면 이분에게 팔아드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네, 네. 한 번 고려해보세요. 이름이요? 레드랑 박지환. 등록된 진짜 이름이에요.’


잠시 손으로 헤드셋 마이크를 움켜쥔 접수원이 지환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데, 매칭금은 당일 지급이신거죠?”

“그럼요. 성사되면 지금 바로 드릴게요.”


한쪽 눈을 찡긋한 접수원이 다시 헤드셋으로 통화를 이어갔다.


“네, 네. 사장님. 성함이 박지환님 맞아요. 네에? 통화해보고 싶다고요?”


접수원은 고개를 갸웃하며 지환을 보며 헤드셋을 톡톡 두드렸다.


지환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기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곧 연결해드릴게요.”


접수원이 헤드셋을 벗어 내려놓았다. 잠시 뒤 지환의 등록증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박지환이 본인 등록증 맞습니까?’

‘예, 제가 박지환입니다.’

‘거, 혹시 5년 전 쯤에 출판사에 근무하지 않았소?’

‘어라, 예. 맞습니다.’

‘야 임마! 박지환! 서운하네! 내 목소리 몰라?’

‘누구···?’

‘홍백기! 너는 임마 사장님 목소리도 까먹고!’


지환은 진심으로 깜짝 놀랐다. 세상 정말 좁구나. 그는 어처구니 없는 만남과 반가움에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간 잘 지내셨어요? 사장님.’

‘사장님은 무슨! 너 임마 어디야? 도봉구에 있는 길드냐? 헌터는 어쩌다 된 거야?’


홍백기 사장은 예나 지금이나 궁금한 게 많았고 화통했다.


실로 오랜만에 듣는 추억의 목소리. 쏟아지는 질문 세례와 파안대소에 지환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그나저나 임마 목소리 들으니까 또 생각나네. 니가 내 오토바이 훔쳐갔던 거 기억나냐? 그 때 내가 을마나 고생을 했는지!’

‘아, 맞다. 그랬었죠. 다시 한번 죄송했습니다. 사장님.’


최초의 각성 웨이브 때 벌였던, 불미스러운 사건이 떠올라 괜히 머쓱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도 이제는 저 때문에 오토바이에 키 안 꽂아두고 다니실 거 아닙니까.’

‘파하하하! 듣고 웃지 말어. 얼마전에 또 오토바이 키 꽂아 놔서 도난 당했다.’


지환이 참지 못하고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사람 참 한결 같아서 멋지네.


‘됐다, 임마. 아무튼 어디야? 주말에 같이 탑 오르기 전에 술이라도 한 잔 해야지.’

‘그래요. 언제 시간 되세요?’


시간 약속을 잡는데도 또 한참을 떠들어댔다. 정말 사람 안 변한다더니. 홍사장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홍백기. 그는 탑이 발생하기 이전, 지환이 다니고 있던 홍 출판사의 사장이었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안한 밤 되시고, 기운찬 월요일 맞이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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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8화. 참관수업(3) 24.09.02 26 3 13쪽
27 27화. 참관수업(2) 24.08.30 38 2 12쪽
26 26화. 참관수업(1) 24.08.29 43 2 15쪽
25 25화. 평가 24.08.28 52 3 18쪽
24 24화. 청목신녀의 손녀 24.08.27 53 2 13쪽
23 23화. 도축 길드 24.08.26 67 4 16쪽
22 22화. 보스전(4) 24.08.23 79 3 15쪽
21 21화. 보스전(3) 24.08.22 80 2 17쪽
20 20화. 보스전(2) 24.08.21 85 4 13쪽
19 19화. 보스전(1) 24.08.20 94 2 16쪽
18 18화. 10층(4) +1 24.08.19 99 3 19쪽
17 17화. 10층(3) 24.08.18 108 4 15쪽
16 16화. 10층(2) 24.08.17 120 5 13쪽
15 15화. 10층(1) 24.08.16 135 4 15쪽
14 14화. 특성창 24.08.15 137 5 16쪽
13 13화. 멘토와 멘티 24.08.14 148 3 17쪽
12 12화. 특성 24.08.13 174 4 17쪽
11 11화. 기일 24.08.12 180 2 18쪽
» 10화. 만두 24.08.11 184 4 21쪽
9 9화. 탑의 주인 24.08.11 204 3 17쪽
8 8화. 습지(3) 24.08.10 192 5 15쪽
7 7화. 습지(2) 24.08.09 214 4 19쪽
6 6화. 습지(1) 24.08.08 222 5 13쪽
5 5화. 텃세(2) 24.08.07 262 5 15쪽
4 4화. 텃세(1) 24.08.06 296 5 16쪽
3 3화. 폐급 홀아비(3) 24.08.05 328 5 17쪽
2 2화. 폐급 홀아비(2) 24.08.05 364 6 20쪽
1 1화. 폐급 홀아비(1) 24.08.05 470 6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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