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급 홀아비의 탑공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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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찬TO
작품등록일 :
2024.08.04 22:24
최근연재일 :
2024.09.03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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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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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18화. 10층(4)

DUMMY

푸확―


트롤의 오른쪽 눈알에 깃대처럼 꽂힌 단창이 파르르 떨렸다.


돌곤봉을 떨어트린 트롤이, 괴성을 내지르며 발광했다.


트롤이 울부짖는 소리에 얼음처럼 굳어있던 다슬의 몸이 움직였다.


황급히 무릎을 펴고 일어난 그녀는 위태롭게 휘청거리며 트롤의 그림자 아래에서 벗어났다.


뒤이어 도착한 레드가 트롤의 가랑이 사이를 슬라이딩하며 통과했다.



스걱, 스걱


트롤의 양쪽 오금에서 스프레이처럼 붉은 피가 뿜어졌다. 지환과 함께 싸우는 동안, 레드도 트롤의 약점들을 파악했다.


무리해서 나아가려던 다슬이 결국 발이 엉키며 넘어졌다.


그녀는 쓰러지면서도 기민하게 골반을 틀더니 몸을 뒤로 돌렸다.


“K직장인의 스트레스는 식는 법을 몰라!”


손목에 달린 연노가 오금이 잘려 무릎을 꿇은 트롤을 겨냥했다.



파파파파팍


연노 다섯 발이 트롤의 얼굴로 쏘아졌다. 세 발은 버둥거리는 팔에 박혔지만 한 발은 들창코에, 나머지 한 발은 눈가에 꽂혀있는 단창 옆에 단단히 박혔다.



쿠어엉


트롤이 손등으로 단창이 박힌 눈을 세차게 비볐다. 연노의 작은 화살과는 사이즈가 달랐다. 좌우로 흔들리는 단창이 상처를 더욱 크게 벌렸다.


트롤은 찢어진 망막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울음을 터트렸다.


트롤이 고통에 정신이 없는 사이, 레드가 트롤의 등짝을 밟고 올라갔다.


그는 트롤의 귀를 붙잡아 확 잡아 당겨 강제로 왼쪽 눈꺼풀을 뜨게 만들었다.


날이 무디고 녹이 슨 숏소드가 트롤의 남은 한쪽 눈깔에 깊숙이 쑤셔 박혔다.



쿠어어어엉


폐부부터 끌어 오르는 트롤의 비명이 숲 속 전체에 울려 퍼졌다.


트롤의 발광이 더욱 격해졌다. 귀를 놓친 레드가 공중제비를 돌며 바닥으로 착지했다.


깨진 거울처럼 비치는 세상. 트롤의 망가진 시야는 한치 앞도 제대로 식별하지 못했다.


트롤이 그르렁거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멍청하긴 하지만 자신이 죽을 장소도 모를 정도로 무지하진 않았다.


필연적인 죽음 앞에서 괴물은 무슨 선택을 할 것 인가.


트롤은 주먹을 말아쥐었다. 바위처럼 단단한 주먹이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깨진 시야 속으로 들어오는 한 인간. 자신의 발치에 쓰러져 있는 인간은 도망치지 못하고 있었다.


죽음을 앞에 둔 트롤은 나름 합리적인 괴물이었다.


결론은 나와있다. 죽을 거다. 그럼 분노를 표출한다. 당장 죽더라도 직면한 증오를 해소한다.



다슬은 다리가 꼬이면서 쓰러진 이후로 발목을 삐었는지 일어설 수가 없었다.


만세하듯 주먹을 한껏 들어 올린 트롤을 칩떠보며, 그녀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파파파파팍


탄창에 남은 마지막 화살이었다. 면상이 고슴도치처럼 변했음에도, 오히려 즐거운 듯 트롤의 입꼬리는 찢어지듯이 하늘을 향했다.


부우우웅


바람이 쪼개지는 굉음을 따라, 트롤의 바위만한 주먹이 낙석처럼 떨어져 내렸다.



쿠웅—


범종처럼 묵직하게 울리는 소리. 지면과 대기가 잘게 떨렸다.


질끈 감고 있던 눈꺼풀이 본능적으로 와락 구겨졌다. 분명히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긴 한데.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나 죽은 건가? 다슬이 얼굴을 가리고 있던 팔을 내리며 살며시 눈을 떴다.


“괘, 괜찮습니까?”

“...지환씨?”


자신의 앞을 막아선 지환이 방패로 트롤의 주먹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가 방패를 기울이자, 만화처럼 미끄러지듯이 옆으로 흘러내리는 트롤의 주먹.


방패를 늘어뜨린 그가 신음성을 삼키며 다슬을 돌아봤다.


“괜찮습니까? ··· 어디 많이 다친 건 아니시죠?”

“네, 넵. 발목을 살짝 접질렸을 뿐이에요. 멀쩡해요.”

“다행이네요.”


지환의 기다란 입술이 희미하고 지친 미소를 그렸다.


순간 다슬은 지환의 등 뒤로 후광이 비추는 착시가 보였다.


그녀의 심장이 바늘에 찔린 듯이 따끔했다. 뭐지? 그녀로서는 난생 처음 느껴보는 통증이었다.


‘내가 상당히 놀라고 피곤했나 보네. 심부전이 왔나 봐. 이번에 돌아가면 종합검진이라도 받아봐야 하나.’


다슬이 자신의 증상을 고찰하며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이제 어서 빠지죠.”

“예··· 예?!”


지쳤지만 다정한 목소리와 손목을 감싸는 투박한 손가락.


다슬의 머릿속을 지배하려던 건강염려증이 바닷물에 쓸리는 모래성처럼 흩어졌다.


트롤은 발악이라도 하듯 소리를 지르며 양손을 미친놈처럼 휘저었다.


레드가 시간을 벌어주고 있지만 언제라도 재차 공격을 시도할지 모르는 상황.


다슬의 식었던 등판이 다시금 축축해졌다.


지환이 아니었으면 쥐포가 됐을 거다. 죽음이라는 산들바람이 자신의 볼을 장난스레 어루만지고 지나간 기분.


다슬이 지환의 손목을 맞잡았다. 지환이 팔에 힘을 주며 그녀를 당겨 올렸다.


지환은 자연스레 다슬을 자신의 등판으로 이끌었다.


발목 아래로 도통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머뭇거리지 않고 그대로 그에게 업혔다.


지환은 다슬을 등에 업은 채 외곽으로 내달렸다. 우선 안전한 장소까지 그녀를 데려가야 한다.



단단하고 울퉁불퉁한 등판에 가슴을 붙이고 있자니, 괜스레 다슬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극도의 스트레스에 몸살이라도 걸린 걸까?


지환의 뒤통수를 보며 아리송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역시 복귀하면 꼭 병원에 들려야겠다고 다짐했다.




“괴물 놈이! 감히 우리 회사에 값비싼 인력을! 탑 내에서는 산재 처리도 안 된다!”


우렁찬 고함 소리에, 트롤이 고개가 반사적으로 치켜들었다.


공처럼 동그랗게 말린 무언가가 주황빛 노을을 가르며 트롤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쿠직


공에서 벼락처럼 튀어나온 발바닥이 정확하게 트롤의 눈에 박혀있던 단창을 찍어 눌렀다.


크어? 트롤의 입에서 어리둥절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녀석은 오줌이라도 지린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자신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더듬거렸다.


손가락에 걸리적거리는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눈에 단창이 박혀있었는데.


단창의 행방에 대한 의문이 트롤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회색 거체(巨體)가 기우뚱하더니 엎어졌다.


모두의 이목이 엎드린 트롤의 시체에 머물렀다.


트롤의 뒤통수를 뚫고, 피에 물든 단창의 첨단이 삐죽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죽다 살았네. 다들 괜찮나?”


홍사장이 거멓게 착색된 얼굴로 물었다. 그는 갑자기 혀뿌리까지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를 급히 되삼켰다.


피비린내가 입안 가득히 퍼졌다. 홍사장은 핑크빛 침을 바닥에 퉤 뱉어냈다.


트롤의 팔꿈치에 복부를 직격 당했다.


운이 좋았다. 곧장 회복제를 들이켰기에 망정이지 자칫하다 저승사자를 영접할 뻔했다.



지환도 홍사장을 보며 짧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홍사장이 트롤에게 맞고 돌멩이처럼 날아갈 때, 어쩌면 그와의 인연이 마지막일 지도 모르겠다는 불안한 의심이 뇌리를 잠깐 스쳐갔었다.


“사장님이 제일 아픈 거 아니에요?”

“쯧쯧,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게, 어디서 허세는.”


홍사장에게 한마디 더 쏘아주려던 다슬이, 발목에 닿는 서늘한 감촉에 입술을 꼭 다물었다.


“잠시만 계세요. 외상회복제는 최대한 빨리 발라야 효과가 좋습니다.”


자신의 발목을 조심스레 어루만지는 지환의 손길. 미끈하고 시원한 감촉이 발목을 감싸고 맴돌았다.


“그래. 우리 지환이도 오래 참고 살긴 했지.”

“뭔 또 헛소리를 하십니까?”

“사, 사장님은! 노, 농담이 왜 그렇게 저질이에요!”


얼굴이 홍당무처럼 익은 다슬이 홍사장을 향해 손사래를 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환은 그녀의 발목에 꼼꼼하게 붕대까지 감아주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님, 트롤이삼?”


어느새 다가온 레드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지환의 팔뚝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지환은 날벌레를 쫓듯이 손을 휘적거렸지만, 레드는 기민하게 피하며 지환의 상체 곳곳을 손가락으로 콕콕 찔러댔다.


“그래서 홍사장님,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넌 어떤데?”


지환이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홍사장을 바라봤다. 홍사장은 검게 썩은 얼굴로 씨익 웃었다.


홍사장은 탑이 발생하기 이전부터 저랬다. 자신이 신뢰하는 직원에게는 기탄없이 의견을 구했다.


“이르기는 하지만, 근처에 야영지를 정하고 휴식하는 편이 나을 것 같네요.”

“어째서?”

“그나마 여기가 제일 안전할 테니까요. 서로의 경계를 중요시하는 트롤 특성 상, 다른 트롤이 접근하진 않을 거고. 트롤보다 하위 개체 괴물들도 당연히 트롤의 서식지는 피해갈 거구요.”


지환의 분석에 홍사장이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전부터 직원들의 의견은 50대 50이었다. 50%의 성공과 50%의 실패.


홍사장은 성공은 직원들과 나눴으며, 실패는 혼자 책임졌다.


“그래, 이 근방이 제일 안전하겠구만. 지환이 말대로 오늘은 여기까지!”


홍사장의 결정에 모두가 무기를 바닥에 내려놨다.


지환이 깊은 숨을 내쉬었다. 노을이 짙긴 했지만 밤이 찾아오기엔 남은 시간이 길었다.




“역시 엘리트였구나.”


지환이 먼지처럼 변해 흩날리는 트롤 시체 두 구를 보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트롤은 부부가 아닌 이상 짝으로 다니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트롤 부부는 엘리트로 판정된다.


고개를 들고 코를 킁킁 대던 레드가 단창이 박혔던 트롤이 사라진 장소로 뛰어갔다.


“오오!”


레드가 소재와 마정석이 작은 봉분처럼 쌓여있는 장소에서 무언가를 들어 올리더니 감탄사를 남발했다.


무광택의 회색빛이 맴도는 굵은 도신, 도의 허리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하얀 붕대가 감긴 손잡이.


레드가 허리춤에 찼던 반파된 숏소드를 내팽개치고, 새롭게 득템한 도(刀)를 허리춤에 착용했다.


“...바닥에 끌리는데 괜찮아?”

“당근.”


도가 꽤 큰 편이라 패용이 불편할텐데도, 레드는 시종일관 해맑은 표정이었다. 안대를 선물했을 때도 저 정도로 좋아하진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전리품이다. 둘이서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



“어이, 레드 친구. 그 칼 갖고 싶은 거요?”

“응.”

“좋아. 그럼 칼을 양도하는 대신 내가 말을 편하게 놔도 될까?”

“응응.”

“오케이. 거래 성립.”


의외로 홍사장은 쿨하게 넘어갔다. 레드는 새로 얻은 무기를 훑느라 여념이 없었기에, 지환이 대신 다슬에게 눈길을 보냈다.


“에··· 저는 보류. 그래도 복귀하기 전까지 레드씨가 사용하는 점에는 이견 없어요.”


다슬은 명확히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하긴 10층에서 리자드퀸을 사냥하고 얻은 목재창이 1억 7천이었는데, 하물며 저건 금속이다. 훨씬 비싸겠지.


어찌 됐든 당장은 레드가 소지하게 된 거다.


지환이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여기까지였다. 헌팅이 완료되고 나면 적당한 금액을 지불하든 다른 전리품을 양보하든, 레드가 알아서 처리할 문제였다.



지환은 첫 번째로 죽은 트롤이 있던 자리로 눈을 돌렸다. 역시 트롤의 시체는 사라져있었다. 딱히 장구류는 보이지 않았지만 소재와 마정석은 봉긋하게 쌓여있었다.


지환은 두 구의 트롤 시체가 남긴 전리품들을 모조리 더플백에 챙겨 담았다.


상당한 양이었다. 저번 리자드퀸을 사냥했을 때보다 거진 세 배는 되는 양이었다.


“다음에는 인벤토리를 하나 더 구입해야겠네요.”


돈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다슬이 건네는 말에 지환은 슬쩍 웃어버렸다.


“자, 자. 다들 서두르자고. 이제 해가 거의 넘어갔어. 여유 부릴 시간이 없다고.”


홍사장이 손차양을 만들고 목을 뻗어 길게 내다봤다.


멀리서부터 짙은 푸름이 밀물처럼 몰려와, 하늘에 드리운 주황빛을 서서히 잠식하고 있었다.



*



모닥불 위로 들통에 담긴 스튜가 끓고 있다. 지환이 국자로 들통 안을 한 바퀴 돌려 저었다.


매콤하고 구수한 냄새가 모닥불 주위로 퍼졌다. 지환은 국자로 걸쭉한 스튜를 퍼 그릇에 옮겨 담았다.


모두가 지환이 주는 그릇을 하나씩 받아 들었다. 지환은 자신의 스튜를 앞에 내려두고 모닥불 주위에 꽂아두었던, 겉이 갈색으로 그을린 닭꼬치 네 개를 동료들에게 하나씩 나눠줬다.


“오훔~ 이게 닭도 닭이지만, 함께 구운 파가 엄청 맛있네요.”

“역시 지환이! 애 둘 딸린 홀아비는 다르다니까!”


홍사장이 스튜에 닭꼬치 끝을 소스처럼 찍었다. 입속에 닭 한 덩이와 파 한 덩이를 한꺼번에 집어 넣은 홍사장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지환도 닭꼬치를 한입 베어 물었다. 후추의 매콤함과 은은하게 퍼지는 고소함, 까맣게 그을린 닭꼬치의 풍미가 환상적으로 어우러져 입안을 가득 채웠다.


“...제가 만들었지만, 엄청 맛있네요.”

“인정.”


스튜와 닭꼬치를 맛본 다슬의 눈에 놀라움이 서렸고, 레드는 그새 텅 비어버린 꼬치를 바닥에 버리고 스튜를 그릇째로 들어 마시고 있었다.


밥하는 데 두 시간이나 걸린다고, 배고파 죽는다고 그렇게 면박을 주더니. 지환은 피식 웃으며 식사를 계속했다.


이래저래 신경 써서 준비한 보람이 있었다. 역시 고생한 저녁에는 따뜻하고 기운이 나는 고기와 스튜가 최고였다.



“발목은 좀 어떠십니까?”

“아, 네. 괜찮아요.”


지환이 다슬의 발목을 주시했다. 걷기는 했지만 아직 불안정해 보였다. 그는 스튜 그릇을 잠시 평평한 돌 위에 내려놓고 더플백에서 외상치료제를 꺼냈다.


“외상치료제입니다. 이따가 저녁에 한번만 더 바르면···”

“아, 아, 아니에요! 이, 이리 주세요! 제가 바를게요!”


다슬이 황급히 지환의 말을 자르며 외상치료제를 빼앗듯이 가져갔다.


발목이 다 나은 건가. 예상보다 재빠른 그녀의 움직임에 지환이 고개를 갸웃했다.


“힘내라. 좀만 더하면 넘어올 거다. 지환이도 이제 독수공방 청산할 때가 됐지. 암, 그렇고 말고.”


다슬이 형형한 눈빛을 빛내며 홍사장을 째려봤다. 홍사장은 능글맞게 스튜를 마시는 척하며 시선을 피했다.


저런 질 낮은 농담은 홍사장의 입버릇이나 마찬가지였다. 지환은 그저 덤덤할 뿐이었다.


스무 살 조금 넘은 아가씨가 이혼한 아저씨인 나를 왜?


말도 안 되는 망상이었다. 혹여나 천만에 하나라도 그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지환은 상대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당연히 거절할 터였다.


“큼큼, 그나저나 지환씨. 궁금한 거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다슬이 주먹으로 입을 가리고 헛기침을 내뱉으며 물었다. 지환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네, 그럼요.”

“트롤의 일격을 방패로 버텼는데. 괜찮으세요?”


그녀는 걱정과 의구심이 뒤섞인 표정으로 물었다. 순간 반사적으로 나오려는 ‘괜찮다’는 말을 간신히 참아냈다.


다슬은 출판사의 기자였다. 태연하게 괜찮다는 말을 지껄이면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할 지도 몰랐다.


지환은 2급 무특성 헌터였다. 옆으로 빗겨 맞은 것도 아니고, 트롤이 혼신을 다해 내려 찍는 주먹을 폐급 헌터가 방패 하나로 버텨낸 거다.


어딘가 상식 밖의 부조리한 현상이 발생했다.


다슬의 질문에 난처해진 지환은 검지로 구레나룻을 긁적였다.


그녀가 의아해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사실상 자신은 곤죽이 됐어야 맞다.


뭐라고 핑계를 대야 하나. 머리를 굴려봤지만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꽤 좋은 방패였고, 운이 좋았습니다.”

“그걸 운이 좋아서 막았다고요?”


고개가 삐뚜름하게 꺾인 다슬을 보며, 지환은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설프게 지어낸 핑계보다는 차라리 운이 낫다. 지환을 유심히 살펴보던 다슬이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운이라. 어찌 됐든 절 살려주신 거니까. 감사해요.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도 못 드렸네요.”

“다슬씨가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저희도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신기한 생물을 관찰하듯이 지환을 쳐다봤다.


지환은 덤덤하게 그녀의 눈을 마주했다. 이내 픽하고 웃어버린 다슬이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양파 같은 사람이군요. 지환씨는.”

“그렇습니까?”

“네, 까도까도 잘 모르겠어요.”

“...이럴 거면 그냥 둘이 모텔을 잡지 그래?”


홍사장의 한마디에 화들짝 놀란 다슬의 양볼이 사과처럼 달아올랐다.


“무···무슨 말씀이세요! 오,,, 옷이 아니라! 속옷! 아니, 아니지! 까도 까도 나오는 매력적인···! 아니, 그것도 아니고!”


당황해서 횡설수설하는 다슬을 보며 홍사장이 히죽거렸다.


이내 아랫입술을 꾹 다문 다슬이 분노를 삭히며 졸리다는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나버렸다.



“빠빠.”


새로운 도검을 끌어안고 모닥불 앞에서 꾸벅꾸벅 졸던 레드도 그대로 옆으로 허물어지며 잠들었다.


지환은 다슬의 일 인용 텐트에 불이 꺼지는 모습을 끝까지 확인했다.


그는 모포를 돌돌 말아 레드의 목에 베개처럼 괴어주고, 이마 위에 쓰고 있던 안대를 내려 눈을 가려줬다.



“홍사장님, 그럼 이만 저도 들어갈게요.”


모닥불 앞에 앉은 홍사장이 대충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불침번 설 때, 졸릴까봐 머그컵이랑 아메리카노까지 챙겨왔더니···


홍사장은 머그컵에다가 얼음과 직접 가져온 브랜디를 채워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다.


“사장님, 그러다 진짜 골로 가십니다.”

“좀 봐줘라. 사냥도 끝났고, 여긴 트롤 구역이라 안전하다며.”


지환은 더플백을 뒤져 육포와 치즈를 소량 꺼냈다. 안주도 하나 없이 이 밤에 저런 독주를 들이켜다니.


예전부터 손이 참 많이 가는 사장이었다.


“비명횡사하세요. 비명횡사.”

“그 때가 내 갈 때인가 보지.”

“적당히 드십쇼. 적당히.”

“네가 무슨 내 마누라냐? 쓸데없는 잔소리는 그만 됐고. 얼른 들어가.”


홍사장이 잠시 뜸을 들였다. 그는 우묵해진 눈으로 지환을 주시했다.


“지환이. 너 진짜 2급 무특성 각성자 맞아?”

“네. 헌터 협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해줬죠.”


지환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준비하고 있던 멘트를 꺼냈다.


홍사장은 10년을 넘게 한 회사를 이끈 총수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딘가 어수룩해보이지만, 그의 통찰력은 지금 모인 파티원 중에서 가장 뛰어남이 분명했다.


그런 그가 트롤을 사냥하는 동안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다.


둘이서 간신히 버티던 트롤의 일격을 혼자서 버티고, 냅다 던진 단창이 레드보다 빠르게 날아가 트롤의 눈을 직격했으니.


홍사장님이 의구심을 품지 않는다면 그게 더 기묘한 상황이었다.


“그렇구만. 알겠다. 얼른 자라.”


홍사장은 별다른 질문 없이 모닥불을 우두커니 주시했다. 딱히 지환에게 대답을 원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럼, 먼저 들어가 볼게요. 고생하십쇼.”


홍사장과 일별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마 앞으로는 자신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 홍사장이 각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일은 없을 거다.


그는 출판사 사장이라는 직함과 어울리지 않게, 자신의 의구심보다 타인의 프라이버시가 더욱 중요하다는 신념을 가졌으니까.


지환은 모닥불 불빛이 흐릿하게 미치는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번데기처럼 생긴 침낭을 펼쳐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내 기다렸던 혼자만의 시간. 지환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스르륵 눈을 감았다.



‘특성창.’


일순 그의 눈꺼풀 아래로 특성창이 은하수처럼 광활하게 펼쳐졌다.


- 새로운 특성 2개를 획득하셨습니다. ‘현재 적응된 특성은 총 4개’입니다. 관리자께서는 검토 후 종료해주시길 바랍니다.


드넓은 회색 별무리 사이에, 새로운 별자리 두 개가 초롱초롱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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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화. 특성 24.08.13 174 4 17쪽
11 11화. 기일 24.08.12 180 2 18쪽
10 10화. 만두 24.08.11 183 4 21쪽
9 9화. 탑의 주인 24.08.11 204 3 17쪽
8 8화. 습지(3) 24.08.10 192 5 15쪽
7 7화. 습지(2) 24.08.09 214 4 19쪽
6 6화. 습지(1) 24.08.08 222 5 13쪽
5 5화. 텃세(2) 24.08.07 262 5 15쪽
4 4화. 텃세(1) 24.08.06 296 5 16쪽
3 3화. 폐급 홀아비(3) 24.08.05 328 5 17쪽
2 2화. 폐급 홀아비(2) 24.08.05 364 6 20쪽
1 1화. 폐급 홀아비(1) 24.08.05 470 6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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