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성기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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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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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4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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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1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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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DUMMY

아직 어둠이 짙게 드리워진 시각, 광장에는 야간 근무를 서고 있는 병사들이 조용히 순찰을 돌고 있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새벽의 바람은 부드럽게 불었지만, 병사들에게는 긴장감이 엿보였다.



터덜터덜 걸음을 옮긴 엘라라가 결계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신관이 되버린 걸까요?"


몇 시간 사이에 수척해진 표정의 엘라라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지난 밤을 꼴딱 새우기라도 했는지 눈밑이 칙칙했다.



"내가 한가지 장담하지."


나의 말에 그녀가 빤히 나를 바라보았다.


"뭐를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을 평생 다행이라고 여길 것이라는 점."



엘라라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더니, 결연한 눈빛으로 외쳤다.


"그래요, 뭐 죽기밖에 더하겠어요? 갑시다! 까짓거!"


그녀는 길게 심호흡을 한 뒤,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 목숨 한번 살려주셨잖아요. 저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은 사뭇 비장하기까지 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서 고든이 결계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야간 근무하는 병사들이 그에게 경례를 하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그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새벽의 어스름 속에도 그의 동작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경례를 한 뒤, 고든을 바라보았다.


그가 들고 있던 반지를 우리에게 하나씩 건네주었다.



"먼저 보급품부터 전달하도록 하지."


그가 건네준 것은 아공간 반지였다.


생존에 필요한 식량과 마나 포션, 침낭, 마법 통신구, 나침반이 들어있었다.


반지를 손가락에 끼우자, 손가락 사이즈에 맞추어 조절이 되었다.



그는 그의 아공간 반지를 잠시 뒤적거리더니, 검 한자루를 꺼내서 나에게 내밀었다.


"꽤나 쓸만한 검이더군."



스르릉 -


검집에서 검을 꺼내어 살펴보았다.


어두운 금속으로 만들어진 검날을 가진 검이었다.


검날은 빛을 거의 반사하지 않으며, 마치 어둠 속에 잠긴 듯한 깊은 빛을 띠고 있었다.


날의 표면에는 마법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강화마법이 걸려있군요."


검기를 두르자, 미세하게 문양이 빛을 머금었다.



"그래, 메르하 대신관이 힘을 쓴 모양이야."


고든은 마법사들은 검에 마법을 실어주는 사소한 업무에는 영 관심이 없어서, 메르하가 간신히 얻어냈다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나는 만족스레 미소지었다.



"대신관님께도 나중에 인사를 드려야겠군요."


고든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이 밝아오기 전에 탑에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겠다. 제군들 준비됐나?"


그의 목소리가 새벽을 가르며 울려 퍼졌다.


"네, 대대장님."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이 돌아오자, 고든은 앞장서서 결계를 향했다.


그는 전망대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수문장 헤센에게 눈으로 인사를 건네고는, 결계안으로 진입했다.



[ 미지의 숲에 진입하였습니다. ]


경계에 들어서는 순간, 문구가 번쩍 눈앞에 떠올랐다.


[ 알 수 없는 힘을 개척하였습니다. ]


[ 최초의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고유 능력이 부여됩니다. ]


광장에 있는 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던 문구들이 연속해서 눈앞에 보였다.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문구는 미지의 숲을 벗어나는 순간 보이지 않는다.


'알 수 없는 힘' 이라는 것이 하단전을 만들어 낸 것을 말한다는 직감이 왔다.



선택창이 반짝이면서 하나의 카드가 나왔다.


나는 고든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자연스레 걸으면서 떠있는 카드를 눈으로 훑었다.


초록색의 카드는 어서 선택해달라는 듯이 눈앞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이런 식의 선택을 요구한 것은 처음이기에 잠시 망설였다.


나를 주시하던 엘라라가 무슨일이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살짝 고개를 가로젓자, 그녀는 눈치껏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숨기지 못한 호기심이 깃들어있었다.



'선택해보자.'


검지를 들어 스치듯이 카드를 선택했다.


손가락이 닿은 부분이 번쩍이더니, 초록빛이 나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화아아 -


[ 자연 친화 ]


[ 자연 환경과의 조화 능력이 향상됩니다. 숲 속에서 적에게 발각될 확률이 급격히 낮아집니다. ]



마나포스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 나를 휘감았다.


그 힘을 흡수하고 나니, 미지의 숲의 미약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미지의 숲 입구에는 아직 오염이 되지 않은 부분이 남아있다.


겨우 한 뼘 정도 남은 거리.


그 사라질 듯한 생명의 흔적이 느껴진다.



이 시스템은 도대체 무엇일까.


의문을 삼키며 고든의 뒷모습을 따라 걸었다.



"전방에 고블린 17마리. 로덴 경 실력 발휘 해보겠는가?"


고든이 전방을 주시하며 툭 던지듯 말을 꺼냈다.


나 역시도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기에 빠르게 응수했다.



"늦지 않게 따라오시죠."


엘라라가 서둘러 양손을 들어올리며, 신성력을 모았다.


그녀의 신성력이 나를 휘감는 것을 느끼며 앞으로 빠르게 쏘아져나갔다.



화아아아 -


나는 고블린들이 숨어있는 장소에 당도하여,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키르륵?]


[키륵!]


고블린 무리는 눈앞에 내가 다가갈 때까지 나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그들은 당황하여, 대열조차 정비하지 못한 채 엉거주춤하게 서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불현듯 조금 전 시스템창의 문구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자연 친화라는 능력이 숲 속에서 적에게 발각될 확률이 낮아진다고 했었지.


그 영향인 것일까?


나의 입술이 비릿하게 올라갔다.



청성 만상귀일검법(萬象歸一劍法) 1초식, 무영벽풍(無影霹風)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검이 번개처럼 내리쳤다.


일 순간의 번쩍임과 같은 검광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번개처럼 빠르게 휘몰아치는 검격이 고블린들에게 내리꽂혔다.



서걱 -


순식간에 고블린 17마리의 목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초록색의 피가 번지는 모습과 동시에 시스템 창이 켜졌다.


[고블린 전사를 처치하였습니다. 경험치 +1]

[고블린 전사를 처치하였습니다. 경험치 +1]

[고블린 전사를 처치하였습니다. 경험치 +1]

...



나는 검에 맺혀있는 피를 털어내고는 검집에 꽂아넣었다.


이 시스템이 나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능력이라면 나쁘지 않았다.



"발군의 검술이군."


고든이 다가오며 말했다.


"외부에서 배울 기회가 있었습니다."


신성력을 발현하기 이전에 검술을 배운 성기사들이 종종 있었기에 고든은 별말없이 수긍했다.


엘라라는 괜히 본인이 어깨가 으쓱해져서는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알리스테어 신관님."


"네, 로덴 경!"


"나침반을 꺼내보시겠습니까?"


"잠시만요, 여기있습니다!"


엘라라가 밝은 표정으로 아공간 반지에서 나침반을 꺼내어 들었다.


"이제 길을 안내하시죠."


그녀를 향해 단호하게 말하자, 엘라라는 잠시 입을 삐죽거리고는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엘라라가 앞에서 길을 찾고, 간간히 고블린이 나타나면 내가 달려나가서 제거하는 식으로 우리는 빠르게 전진했다.


[고블린 전사를 처치하였습니다. 경험치 +1]

[고블린 전사를 처치하였습니다. 경험치 +1]

...



"기분 탓인가? 고블린들이 오늘따라 굼뜬 것 같은데."


고든이 중얼거렸다.


나는 그의 말을 못들은 척, 계속해서 전진했다.


실제로 고블린들은 내가 가까이 다가가기 전까지, 나의 기척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블린들이 어디까지 눈치 채지 못할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정면에 고블린의 기척이 느껴지자 엘라라를 제치며 빠른 속도로 앞으로 튀어나갔다.


고블린 무리는 이번에도 나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저들끼리 무언가를 속닥이고 있었다.


나는 가까이 있는 녀석의 볼을 검으로 톡톡 건드려봤다.



[키르르륵!]


화들짝 놀란 고블린이 경기를 일으키며 소리를 질렀다.


서걱 -


머리가 하늘로 솟구치며,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이정도의 거리까지 허용하다니, 자연 친화의 특성이 놀라울 정도였다.



그 다음 고블린을 만났을 때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보았다.


[키륵!]


서걱 -



"자네... 독특한 버릇이 있군."


고든은 괴이한 짓을 보겠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옆에 선 엘라라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엘라라는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어쭈?



"그저 확인해본 것 뿐입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떨떠름했으나, 상관없었다.



해가 떠오를 무렵, 우리는 탑의 입구에 다다랐다.


밝은 빛이 내리쬐기 시작하는 태양 아래에서, 우리는 탑의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현재 1층에는 마법사들이 조사를 진행중이고, 마물은 모두 제거된 상태니 바로 진입하지."


고든이 입구에 들어서며 말했다.


내부에 들어서자, 어두울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시야가 환하게 보일 정도로 많은 마법 램프들이 켜져 있었다.


익숙한 통로였으나,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누군가의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가 통로 안을 울렸다.


"이것봐! 여기에는 이 수식을 적용하는 게 아니라고!"


"허, 적어도 자네가 말한 수식보다는 이게 적합하다는 걸 모르겠나?"


자줏빛 로브를 입은 두 명의 마법사가 아웅다웅하며 다투고 있었다.



그들 뿐만 아니라, 여러 명의 마법사가 통로를 돌아다니며 수식을 계산하고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손에 양피지를 쥐고 있었는데,


계산이 틀릴 때마다 아무렇게나 양피지를 북북 찢어서 바닥에 던져버리고 있었다.



"뭘 놓치고 있는거지?"


마법사 한 명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질렀다.



그들은 우리가 바로 옆을 지나가도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충혈된 눈매가 그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 했다.



"저분들은 어떤 조사를 하러 오신 건가요?"


엘라라가 마법사들을 쳐다보며 조용히 말하자, 고든이 그녀의 시선을 따라 마법사들을 바라보았다.


"1층에서 발생된 변수의 원인을 찾고 있는데, 이제 시일이 얼마남지 않았거든."



탑 안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날짜다.


리셋이 되기전까지 모든 조사가 완료되어야 한다.


1층은 15일마다 리셋이 되기 때문에, 그들에게 남은 시간은 단 열흘이었다.


잠시 골똘히 생각하던 엘라라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움찔거리다가 다급하게 손으로 입을 가렸다.



동시에 나도 그녀와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변수라면 나를 말하는 건가?


그 날 발생된 일의 원인이 나라는 건가?


그들 사이를 지나가는 와중에, 여기저기서 고통에 찬 마법사들의 외침이 귓가에 들려왔다.



구석에서 멍하니 바닥을 바라보고 있는 프레스턴이 보였다.


"수식이 이게 맞아야 하는건데... 이것도 아니면 뭘 대입해야 하는거지..."


그의 중얼거림을 뒤로 한 채, 나는 발길을 옮겼다.


고든의 시선도 잠시 프레스턴의 얼굴에 닿았으나 그를 못본 척 지나쳐 걸었다.



1층의 통로들은 미로와 흡사하기 때문에, 이곳을 잘 알고있는 고든이 앞서서 길을 안내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미로의 구조가 그대로 그려져 있는지, 그의 걸음에는 거침이 없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달려가다가, 도중에 엘라라가 지칠 때마다 잠시 쉬어가곤 했다.


그리고 밤이 되기 직전에서야 1층의 마지막 구간에 도달하였다.



"이 위는 흔히 1.5층이라고 불리는 곳이지."


고든이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그곳은 각 층계마다 존재하는 휴식공간과 같은 개념이었다.


리셋이 진행되는 동안, 진입대가 대피할 장소이기도 했다.


1층을 벗어나는 것은 처음인 엘라라는 다소 상기된 표정이었다.



통로의 끝에는 거대한 문이 있었다.


고대의 신화 속에 등장할 것 같이 생긴 문의 표면에는 신비로운 상징들이 새겨져 있었고,


문 가장자리를 따라 금속들이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고든이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화아아악 -


문이 열림과 동시에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밝은 빛이 쏟아져 나왔다.


간신히 눈을 뜸과 동시에 엘라라가 당황하며 말했다.


"여, 여기가 1.5층 인가요?"


전혀 생각지 못한 분위기에 나 역시도 당황하였다.


대피소 정도로 생각했던 1.5층은 아이러니하게도.


연회장이었다.



"이게 우리가 탑을 성채라고 부르는 이유지."


고든이 씨익 웃고는 연회장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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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6화. 24.09.05 40 0 16쪽
26 25화. 24.09.04 42 0 12쪽
25 24화. 24.09.03 42 0 13쪽
24 23화. 24.09.03 39 0 12쪽
23 22화. 24.09.02 45 0 10쪽
22 21화. 24.09.02 42 0 10쪽
21 20화. 24.09.01 58 1 11쪽
20 19화. 24.08.31 61 2 16쪽
19 18화. 24.08.30 60 2 15쪽
18 17화. 24.08.29 64 1 11쪽
17 16화. 24.08.28 69 1 14쪽
16 15화. 24.08.27 67 2 12쪽
15 14화. 24.08.26 7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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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2화. 24.08.24 71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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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화. 24.08.21 81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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