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성기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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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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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4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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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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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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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DUMMY

밖에서 일어난 소란으로 두 명의 신관은 치유소의 문을 활짝 연채로 서성이고 있었다.


"이러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는 건 아니겠지?"


"흠흠. 그런 말 말게."


안경을 쓴 신관의 조심스러운 말에 덩치가 큰 신관이 손사레를 치며 부인했다.


그러나, 그의 안색도 파리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브레이크면... 어떡하지?"


"벌써 900년전 일이야. 지금 탑에 들어가 있는 인원이 몇 인가?"


안경을 쓴 신관이 불안감이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꾸만 흘러내리는 안경을 위로 치켜세우던 그는 노을을 등진 채 걸어오는 두 명의 남녀를 발견했다.



"알리스테어 신관님?"


평소 눈여겨보던 신관인지라 그는 한 눈에 엘라라를 알아보았다.



"아니, 괜찮으십니까?"


덩치 큰 신관이 엘라라에게로 달려나왔다. 그의 시선이 엘라라와 나를 번갈아 살폈다.



"외상은 없으십니다. 다만, 무리를 하셨으니 편히 쉴 수 있게 해주시지요."


신관에게 말하자, 그는 나의 얼굴을 보며 살짝 갸웃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쪽으로 들어오십시오."


엘라라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신관에게 부축을 받으며 치유소로 향했다.


엘라라의 시선이 잠시 나에게 닿았다.


그녀는 마치, 약속대로 치유소에는 온거죠?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이자, 엘라라는 작게 미소짓고 치유소로 들어갔다.



"저어... 브레이크는 아닌거죠?"


안경을 쓴 신관이 다가오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귀를 기울여야 제대로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아닙니다. 자세한 건 조만간 알게 되실 겁니다. 저도 좀 쉬어도 되겠습니까?"


온화한 미소를 띄며 그에게 대답을 해주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손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안내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신관은 근처에 있는 치유소 막사 중 한 곳으로 들어갔다.


막사 안에는 간이 침상과 작은 테이블 하나가 전부였다.


협소해보이는 공간이었으나, 부대 내의 막사보다는 사정이 나았다.



"신관님, 저도 쉬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도 방문하지 않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입구에 서있는 신관을 바라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아까 중앙 치유소로 오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부드럽게 그에게 말하자, 그는 쭈뼛거리며 안경을 손으로 치켜올린 후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신관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몸을 돌려 침상으로 향했다.


몸에 걸친 은색의 갑옷을 하나씩 벗어서 근처에 아무렇게나 놔두었다.


침상에 오르며, 검집을 바로 옆에 두었다.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두 눈을 감았다.


지금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단전을 만들 수 있는지 확인해보는 것이었다.


성기사의 마나포스를 담고있는 마나하트와 내공을 쌓을 수 있는 단전이 과연 공존할 수 있을까?



호흡을 가다듬자, 나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나의 주변을 흐르고 있는 기를 느껴보았다.


주변의 기운이 서서히 몸 안으로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염의 영향인지 이곳은, 본래의 세계보다 탁기(濁氣)가 가득하였다.


그 안에서 정순한 기운만을 거르고 걸러서 배꼽아래 하단전이 위치할 곳을 조심스럽게 건드려보았다.



'불순한 기운이 지나치게 많다.'


미간이 찌푸려졌다.


거르고 걸렀음에도 여전히 탁기가 섞여있었다.


이 상태로 단전을 만들게 되면, 앞으로 내가 나아갈 방향의 걸림돌이 될 수 밖에 없다.


방법이 없는 걸까.


주변의 기운을 다시 한 번 느껴보았다.



공기 중에 흩날리는 기운과 함께, 거칠게 구성되어 있는 마나가 느껴졌다.


성기사들은 마나포스를 심장에 갈무리하여, 신성력으로 발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나의 몸이 곧 포스를 신성력으로 정화시키는 샘의 역할인 것이다.


하나, 이 몸은 마나포스와 친밀도가 낮다.


공기 중에 가득 찬 마나는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며, 거친 기세로 몸을 비껴 흘러갔다.



'모든 것은 이 세상을 이루는 요소일 뿐.'


이미 초절정고수의 반열에 올랐던 나는,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세상과 나의 존재는 구분되지 않고, 나는 곧 세상의 일부이며, 세상은 곧 나로 구성된다.


흐름은 아(我)와 비아(非我)를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여긴다.


급격하게 나의 세계와 세상이 동화되어가는 기분을 느꼈다.


내 안의 깊은 심상까지 내려왔던 세계가 밝은 빛과 함께 눈앞으로 퍼져나갔다.



무아지경(無我之境) 심신일여(心身一如)



깨달음을 얻음과 동시에, 마나가 부드럽게 몸을 휘감는 것이 느껴졌다.


마나를 몸 속으로 받아들이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서히 흐르도록 유도했다.


세포 하나하나마다 마나를 몸에 새기듯이 빨아들였다.


혈이 흐르는 맥을 따라 마나가 배꼽 아래 하단전을 향해 모여든다.


맥이 터질 듯이 마나가 들이찼다.



'조금씩.'


혈맥을 확장하면서, 천천히 하단전을 건드린다.


한 번, 두 번, 세 번


하단전이 서서히 열리면서 마나를 들이킨다.


'되었다.'



나머지는 마나의 흐름대로 놔두었다.


작은 덩어리가 서서히 응축되며, 씨앗과 같은 크기의 하단전이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흘러가는 대로 놔두었다.


채울만큼 채워보아라.



하단전을 서서히 채워가는 모양새가 심상치 않았다.


씨앗만한 크기의 단전은 어느새 완연한 구슬모양으로 자리잡았다.


내심 당황스러웠다.


마나 감응력이 뛰어나지 않던 무재(無才)의 몸이건만.


한 번 길을 터놓자, 마치 초원을 질주하는 명마처럼 기세가 거침없었다.



청류심법의 구결을 떠올리며, 고요하게 내공을 운기했다.


정심여수(靜心如水)

마음을 물처럼 고요하게 가라앉히고,


청기여류(靑氣如流)

청정한 기운이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


영정치원(寧靜致遠)

고요함 속에서 멀리까지 나아가며,


행기무애(行氣無礙)

기운의 흐름이 막힘이 없게 하라.


단전에서 뻗어나온 내공이 경맥을 따라 순환하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 느껴진다.



하단전이 완벽히 자리 잡은 것을 확인하고 눈을 떴다.


눈 앞이 맑아지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공기 중에 날리는 고운 먼지와 마나의 흐름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류(二流)의 경지에 들어섰다.


입가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밖은 어느 새 동이 트며, 밝아지고 있었다.


귀를 기울이니, 멀리서 벌어지는 소음들이 자세히 들려왔다.


'아직 수습대는 귀환하지 않은 모양이군.'


침상에서 일어나며 다시 갑옷을 갖추어입고, 밖으로 나섰다.




* * *




"아, 나오셨군요..."


안경을 쓴 신관이 초조하게 중앙 치유소 앞에 서있었다.


그는 나를 기다린 기색이 역력했다.



"덕분에 편히 쉬었습니다. 저에게 할 말이 있으십니까?"


신관은 안경을 손으로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메르하 대신관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일어나시면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알겠습니다. 알리스테어 신관님은 좀 어떠신가요?"


"신성력이 거의 바닥이 나셔서... 여전히 회복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아직 일어나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엘라라를 만나는 건 조금 뒤로 미루어야 하겠군.



"그렇군요. 그럼."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자, 안경을 쓴 신관도 엉거주춤하게 인사를 건넸다.


뒤를 돌아 메르하 대신관의 막사쪽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여전히 그가 나를 바라보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녀의 막사는 먼 곳에 위치해있었다.


걸어가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았다.


연합군 대부분이 수색대로 탑에 들어간 지금, 광장은 평소보다 적은 인원수가 대기하고 있었다.



걸어가는 내내 그들의 시선은 나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의문과 호기심, 때때로 적의까지 느껴졌다.


1층에서 전사한 31명은 누군가의 동료였기에, 그들이 사건의 진상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메르하 대신관의 막사에 앞에 도착하여, 인기척을 내며 말했다.


"마르셀 로덴입니다."


"들어오세요."


메르하의 허가가 떨어지자, 나는 막사안으로 들어갔다.



막사안에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메르하와 한 사람이 마주보고 앉아있었다.


그는 내가 들어서는 순간 꿰뚫을 듯한 눈빛으로 나를 살펴보았다.


진한 회색 머리카락에 짙푸른 눈을 지닌 성기사.


고든 힐데가르트


예비대대의 대대장이었다.



왼쪽 가슴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숙이며 경례를 했다.


"부르셨습니까."


"일단 앉지."


고든의 낮은 목소리가 막사안에 울려퍼졌다.



자리에 앉는 동안에도 그의 시선은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의 앞에 놓인 서류에는 마르셀 로덴에 관한 정보가 적혀있었다.



"탑에 진입한 수색대가 곧 복귀할 예정이네."


고든은 테이블에 놓인 서류를 들어올리며 차갑게 말했다.


수색대가 복귀하면, 그들은 곧바로 나를 호출해 탐문 결과와 내 진술을 맞대어 심문할 것이 분명했다.



"서임식에서 맹세한 대로, 제 입에서 나온 모든 말을 증명할 것입니다."


고든은 아무런 대답없이 서류를 보고 있었다.



메르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저는 1급 신관입니다. 저와 함께 증명을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지금 보여드리면 되겠습니까?"



메르하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허리춤에 있는 검집을 들어올렸다.


고든은 나를 바라보지 않은 채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메르하가 나의 옆으로 걸어오며 조용히 말했다.


"먼저, 우리는 로덴경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드릴게요."


"괜찮습니다. 연합군에게 증명하는 절차일 뿐이니까요."



나는 검집을 들어올리고 마나를 끌어올리며 순환시킨 뒤, 검집에 검기를 씌웠다.


곧 사라질 듯 아스라한 검기가 검집을 둘러싸았다.


어제의 전투와 동일한 형상을 보여야 하기에 조절을 했다.


메르하는 흔들리는 눈빛이었다.


얼핏 자조섞인 미소마저 보이고 있었다.



그녀는 곧 한 손을 들어올려 신성력을 구체로 만들었다.


작은 동작이었으나, 한눈에 보기에도 엘라라의 신성력과 비교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다.


곧이어, 메르하의 신성력이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화아아 -


신성력이 내게 닿은 것을 느끼며 그 힘을 흡수하였고, 마나를 순환시켜 딱 어제만큼의 신성력을 내뿜었다.


청성 만상귀일검법(萬象歸一劍法) 1초식 무영벽풍(無影霹風)


검집에 기운이 휘몰아치며, 번개가 맺히기 시작했다.



이대로 휘둘렀다가는 테이블이며 막사가 모두 박살이 날 것이기에,


검집에만 번개가 맺힌 채로 파직- 파직- 소리를 내고 있었다.


움찔거리는 하단전을 강하게 억눌렀다.



"한 번 더 보내주시겠습니까?"


입을 벌리고 있는 메르하에게 말을 건네자, 그녀가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화아아 -


메르하의 신성력이 닿는 순간, 그 힘을 흡수하여 검집으로 보냈다.



청성 만상귀일검법(萬象歸一劍法) 2초식, 천뢰귀류(天雷歸流)


천둥이 치는 소리가 들려오며, 검집을 중심으로 바람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우우웅 - 파지직 -


금방이라도 주변에 내려꽂힐 듯이 번개가 강하게 검집을 휘몰아쳤다.



"!!!"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고든은 두 눈을 부릅뜬 채로 경악했다.


그는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정리할 생각도 못한 채 굳어버렸다.



검집을 타고 오르는 번개를 갈무리하며, 검집을 다시 허리춤으로 내렸다.


순간 막사안에 정적이 흘렀다.



"하! 하하하하하!"


정적을 깨트린 것은 고든이었다. 그는 자리에 앉으며 실성한 사람처럼 웃었다.



"이건...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능력이네요."


메르하는 여전히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신성력을 흡수하여 사용한다는 것.


게다가 검집을 타고 흐르던 번개와 천둥의 이처럼 강대한 힘이라니.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았건만. 정말 듣도보도 못한 실력이군."


고든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머리를 쓸어 정리하였다.


손에는 숨길 수 없는 약간의 떨림마저 느껴졌다.



"살아남기 위해 하다보니, 그리 되었습니다."


"마르셀 로덴 경이라고 했나?"


"네, 그렇습니다."


"메르하 대신관."


"네."


"대주교님에게 보고드려야겠군."


메르하는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통신구를 연결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든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로덴 경, 지금 연합군이 탑의 몇 층까지 올랐는지 알고 있는가?"


"12층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12층까지만 무려 천 년의 세월이 걸렸네."


나는 가만히 고든의 말을 경청했다.



"경이라면, 우리의 시간을 줄여줄 지도 모르겠군."


그는 껄껄 웃으며 막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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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4화. 24.09.03 41 0 13쪽
24 23화. 24.09.03 38 0 12쪽
23 22화. 24.09.02 44 0 10쪽
22 21화. 24.09.02 41 0 10쪽
21 20화. 24.09.01 57 1 11쪽
20 19화. 24.08.31 60 2 16쪽
19 18화. 24.08.30 59 2 15쪽
18 17화. 24.08.29 63 1 11쪽
17 16화. 24.08.28 68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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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2화. 24.08.24 70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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