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고1 겨울방학이 되었다.
다른 애들과 달리 나는 첫 배를 타고 나가 막일을 하고, 일이 끝나면 인천항 부근의 헬스장에서 웨이트 훈련을 한 후에 마지막 배를 타고 들어왔다.
내가 어려서 그런지 트레이너가 와서 지도를 해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나노가 있기에 따로 트레이너는 필요 없었다.
[할 수 있어요! 이게 마지막입니다! 이걸 해내야 프로 갑니다! 힘을 내요! 힘! 힘! 힘!]
벤치프레스를 하는 중이었다.
너무 힘들어 두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당장이라도 역기를 내려버리고 싶은데 나노는 시어머니 잔소리처럼 몸속에서 끝없이 날 자극했다.
‘으으. 시끄러! 조용히 하라고!’
“으아아악!”
악으로 소리를 내지르며 역기를 올렸다.
하지만 내릴 자신이 없었다.
내리다가 가슴에 툭 떨어트려 크게 다칠 거 같았다.
“트, 트레이너님? 트레이너님! 도와주세요! 못 내리겠습니다!”
“잠깐만! 간다!”
멀리 있던 트레이너가 뛰어와 얼른 역기를 들어줬고, 양쪽 바에 안정적으로 내려놓을 수 있었다.
학학학학.
“감사합니다. 죽는 줄 알았어요.”
가쁜 숨을 내쉬며 고마움을 표했다.
“이게 얼마야? 120킬로? 너무 올린 거 아니니? 치기 어린 마음에 높이는 건 알겠는데 무게가 다가 아니다. 30% 정도 줄이고 횟수를 늘려라.”
“네.”
나노가 이렇게 하라고 했어요.
이렇게 고자질 할 수 없어서 순순히 대답했다.
“그리고 기구가 있는데 왜 위험하게 역기로 하니? 기구로 해.”
“네.”
[가벼운 무게로 횟수를 늘리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극한의 무게에 도전해서 근육에 강한 자극을 줘야 합니다. 그리고 고정된 기구가 아닌 역기로 해야 여러 근육들이 자극을 받게 됩니다. 전 2104년의 발달된 스포츠 매커니즘에 따라 지도해드리는 겁니다.]
‘알았다. 잔소리 그만.’
하지만 벤치프레스만 아니라 스쿼트, 데드 리프트, 역기와 덤벨을 이용한 각종 운동하도록 했고, 자세가 흐트러질 때마다 잔소리를 쉬지 않았다.
평일은 이렇게 보내도 토요일과 일요일의 주말만큼은 은비랑 섬 밖에 나가 실컷 즐기며 놀았다.
투자한 비트코인에 대해 말하면 2015년에 450달러에 샀는데 지금은 966달러였다.
이걸 보고 있으니 뿌듯하고, 행복 수치가 올라갔다.
[행복물질이 많이 배출되어 나노입자 복구율이 7%가 되었습니다.]
‘그래, 행복하기는 한데 속도가 참...’
은비와 사귀면서 나름 행복하게 산다고 하는데도 아직도 7%라니.
‘코인을 보고 있으니 먹는 게 아깝다. 번 돈으로 코인을 사면 더 많이 벌 텐데.’
지금은 2016년.
솔직히 코인만 생각하면 2~3년만 일찍 나노가 나에게 왔다면 하는 소망이 있었다.
‘어? 잠깐만! 컴퓨터 사서 채굴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왜 이 생각을 이제야 했지?’
2016년이면 채굴을 해도 짭짤하게 벌 수 있는 시기인데.
[채굴을 하려면 하루 종일 컴퓨터를 켜놔야 하는데 관리가 될까요?]
‘아! 그렇겠다.’
뿐만 아니라 숙소의 전기세도 올라가서 지적을 받을 테고, 컴퓨터 켜놓는 게 금지될 거다.
괜히 컴퓨터 사는데 큰돈만 쓰고 끝날 수 있었다.
한편 은비는 방학인데 주말만 노는 걸 아쉬워했다.
“평일에도 같이 놀고 싶다. 방학 전에는 주말만 일했잖아. 지금도 그렇게 하면 안 돼?”
은비가 철없어 보였으나 이제 16살인 걸 생각하면 이런 말을 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일을 해야 돈을 벌지.”
목표가 있었는데 두 달 가까이 되는 방학 동안에 500만원을 모아서 코인을 추가로 더 사는 거였다.
“철호야? 넌 집이 정말 그렇게 가난해?”
“그렇게라니?”
“니가 계속 막일을 해야 할 만큼?”
“내가 쓰는 돈 내가 버는 거야. 나 엄청 먹는 거 알지? 이렇게 먹으니까 크고 있잖아?”
“하긴...”
한 번 먹으면 고기로 몇 인분씩 먹어대는 걸 은비도 뻔히 알았다.
겨울 방학이 끝날 무렵에는 진짜로 500만원을 모아서 코인을 추가로 구매했다.
이때 시세가 대략 1,000달러.
환율은 1달러에 대략 1,200원.
이전에 400만원을 투자한 건 889만원으로 바뀌어 있었고, 이번에 투자한 것까지 합치니 1,389만원을 1,000달러 시세에 투자한 셈이 되었다.
#
해가 바뀌어 2017년이 되었고, 3월이 찾아왔다.
야구부에도 후배들이 들어왔는데 인원이...
확 줄어든 8명이었다.
작년보다 10명이나 줄어들었는데 이유는?
해마다 고교 대회가 여럿 있는데 여기서 우승, 준우승이 아니라 16강에라도 올라갔다면 희망이 보이겠지만 매 대회에서 1회전 탈락.
덕죽고 전국 최약체 야구부로 소문이 나버렸다.
첫 해는 아무 기록이 없었기에 기대를 가지고 나처럼 옮겨오는 애들이 많았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실망이다, 최약체 학교라 주목받을 일도 없겠다, 스카우트도 찾아오지 않겠다 등.
지명을 받으려면 내가 잘하는 것도 있지만 남에게 보여줄 기회가 있어야 하는 거다.
그런데 1회전에서 탈락하는 학교에 속해 있으면 스카우트에게 나를 보여줄 기회조차 없는 거다.
강태현이 나름 활약했지만 걔는 포지션이 1루수.
혼자 힘으로 팀을 승리까지 이끌 정도는 아니었다.
이런 상황이니 굳이 먼 섬까지 와서 1년 내내 합숙하며 보내는 생활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새로 들어오는 후배도 줄어들었는데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동기 중에 10명이나 야구를 그만 두고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고1 때까지 해봤지만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이제라도 공부를 하든, 기술을 배우겠다고 했다.
야구를 아예 그만두겠다는 거라 감독이나 코치도 말릴 수 없었다.
물론 몇몇은 인맥을 동원했는지, 금전인지 모르지만 다른 학교 야구부에서 계속 야구를 한다고 했지만 실력을 뻔히 알기에 나는 하나도 아쉽지가 않았다.
하여튼 이런 이유로 야구부 인원은 늘어난 게 아니라 오히려 줄어서 16명이 되었다.
재밌는 건 강태현의 좌우에서 오른팔, 왼팔 노릇을 하며 제일 고기를 많이 얻어먹은 두 놈이 전학 가는 10명 중에 있다는 것.
꼬라지가 간신 같은 놈들이었다.
집에서 열심히 고기를 가져와 먹이며 야구부 대빵을 하던 강태현은 10명이나 쑥 빠져나가니 화를 참지 못했다.
“개새끼들. 처먹었으면 갈 때 말이라도 하고 가던가!”
강태현이 전화를 걸어서 소리를 지르며 싸우기까지 했고, 일부는 차단해서 통화가 되질 않았다.
“에이, 씨팔! 나도 탈출했어야 했는데. 으아아악!”
룸메인 기성이는 떠나지 않았다.
“기성아, 너는 포지션이 포수고, 너 정도 피지컬이면 다른 학교 야구부에서도 받아줄 거 같은데 왜 덕죽도까지 왔어?”
피식.
“서운하다. 이제야 궁금했냐?”
“미안하다.”
내 일만 신경 쓰고 살았더니 룸메인 기성이에게도 관심을 주지 못했다.
“중3 때에 입스가 왔어. 테스트 받을 때마다 공을 바닥에 처박으니 누가 날 뽑겠어?”
“지금은 괜찮은 거 같은데?”
“여전해.”
“하지만 대회에서 너 실수하지 않던데?”
“나도 나은 줄 알았어. 사실 방학 때에 다른 학교로 옮기려고 테스트도 받았는데 똑같더라.”
“하지만 여기선...”
“덕죽고는 어차피 진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서 그런 가봐. 시합을 해도 압박감이 제로잖아?”
“그랬구나.”
기성이에게도 남모를 고통이 있었던 거다.
한편 야구부에 문제가 발생했는데 10명이나 나가버리면서 투수가 0명이 된 것.
동기 중에 투수를 하던 3명이 모두 빠져버렸고, 신입생 중에는 투수를 하던 애가 없었다.
감독은 재학생과 신입생 모두를 모아놓고 투수 테스트를 하셨다.
그런데 난 열외.
“저도 테스트 해주십시오!”
용기를 내어 말했다.
방학 중에도 계속 성장했고, 현재 내 키는 169센티미터에, 몸무게는 69킬로그램까지 늘어나 있었다.
작년 겨울에 처음 덕죽도에 왔을 때는 155센티미터에 50킬로그램이었으니까 엄청나게 큰 것.
이제 막일을 나가도 최소한 작다며 거절을 당하는 일은 없었다.
“으음. 투수 해본다고?”
“네. 저 진짜 많이 컸습니다. 근육도 붙고 힘도 늘었습니다.”
쫙쫙 갈라지는 근육질 몸매는 아니었다.
하지만 옷을 벗으면 단단하게 근육이 붙은 걸 알 수 있었다.
“좋아. 던져봐.”
이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난 즉시 마운드로 올라갔다.
[제가 도울까요?]
‘아니. 내 힘으로 해보고 싶어.’
투수를 하던 동기 세 명이 방학 중에 전학을 가는 걸 미리 보았기에 나노에게 말해 가상현실에서 투수 훈련을 해오긴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캐치볼 외에 투구를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노의 도움조차 거부하고 가볍게 어깨를 돌린 후에 가상현실에서 많이 했던 그대로 투구를 했다.
슈우우웃~ 퍼억!
“와아~ 좋다!”
공을 받은 기성이가 친구인 나를 생각해서 더 크게 호응해주었다.
“스피드건 가져와 봐.”
딱 한 번 던졌을 뿐인데 범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감독이 스피드건을 찾으셨다.
“다시 던져 봐!”
감독 말에 아까랑 똑같이 폼을 잡고 던졌다.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르기에 전력으로 던졌는데 아까보다 빨라진 거 같지만 옆으로 크게 빠져서 기성이가 몸을 날려도 잡지 못할 정도였다.
113!
스피드건에 찍힌 숫자였다.
에이, 고작 이 113?
사회인 야구에서나 통한다고?
나한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 같은데 두 번의 생을 통해 마운드에서 던진 두 번째 공이었다.
나노는 현재 내 상태에 대해 말해준 것도 있었다.
[지금 내는 힘이 제가 주인님의 몸에 들어오기 전보다 많이 개선된 겁니다. 근육의 힘 크기를 결정짓는 요소에는 5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첫째, 운동 신경 세포의 수
둘째, 세포가 내는 자극의 강도
셋째, 근육의 크기
넷째, 근육 내 근섬유의 공조
다섯째, 여러 근육 간의 공조
사자의 경우를 보면 근육의 크기가 같아도 그 안의 근섬유가 인간과 비교해 2배 얇고 또 많습니다. 때문에 동일 크기의 인간의 근육에 비해 사자가 4배에 달하는 근력을 낼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데 주인님은 특히 약한 축이라 고칠 게 많았습니다.]
‘끄응. 특히 약한 축...’
굳이 말 안 해도 나도 아는 사실인데...
[고등학교 때에 전성기를 만들고 팔꿈치나 어깨 수술로 망가지는 투수가 되기 싫으시다면 길게 보셔야 합니다. 구속이 높다, 낮다를 떠나서 무리하게 구속을 올리면 몸에 무리가 가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무리하게 구속을 내려고 한 적은 없었는데?’
감독이 마운드에 세워주지도 않는데 뭔 무리?
[혹시나 해서 말씀드립니다. 근육 세포를 개선하여 동물의 것처럼 바꾸는데 최소한 1년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1년 후라도 150 이상의 구속을 내기 위해서는 폼의 개선이라든지, 기술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결국 참고 기다리는 게 답이었다.
잠시 딴 얘기를 했는데 113이란 구속임에도 투수 출신이 아닌 감독은 현재는 부족해도 앞으로 성장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셨다.
또 작년에 비해 키도 크고, 몸도 불고 있었기에 앞으로 더 크고, 체중도 늘어날 가능성도 생각했다.
‘잘 키우면 130킬로미터 이상도 될 거야. 어쩌면 140킬로미터? 우리 팀으로선 이 정도도 괜찮지.’
프로 지명받기는 힘들어도 최약체인 덕죽고 입장에서는 말이다.
“최 코치가 보기엔 어때?”
“좋은데요?”
“변화구 하나만 장착하면 충분히 써먹겠지?”
“네.”
“다행이다. 철호가 도움이 될 때도 있네? 하하.”
감독은 껄껄 웃으며 좋아했다.
나는 멈추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20여 구를 던졌다.
모두 포심.
가상현실에서 변화구도 나노에게 배우고 던기지도 했지만 여기선 그냥 포심만 던졌다.
변화구는 포심보다 더 느려서 솔직히 보여줄 정도가 아니었다.
오늘 던진 공의 구속은 최고 116킬로미터, 최저 108킬로미터.
마음은 단 한 번이라도 120을 넘기고 싶었으나 실제로 투구한 게 처음이라 그런지 120을 넘지 못했다.
막일 할 때에 나노가 힘을 내게 해주는 것처럼 도움을 받았다면 조금은 더 빠르게 던질 수는 있기는 했겠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쨌든 나는 투수로 뽑혔다.
혼자만 아니라 총 세 명.
아마 다른 학교였다면 투수조에서도 후보로 벤치신세였을 것.
소식을 듣고 은비는 크게 기뻐하... 지 않았다.
“내가 투수가 됐어! 주전이라고. 그런데 안 기뻐?”
“난 니가 가수하길 바래.”
“또 그 얘기야?”
“점점 더 잘 부르잖아!”
은비 말처럼 난 노래를 더 잘 부르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음색!
난 계속 성장하고 있었고, 나노가 최고의 음색과 음역대가 나오게 성대를 만져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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