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선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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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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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콜라
작품등록일 :
2024.08.15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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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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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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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DUMMY

5월 초의 어느 수요일 11시.

JTB방송국.


약속한 시간에 도착하여 나에게 전화를 했던 작가에게 연락해 방송국 안에 들어왔다.

여기서 낚시의 제왕의 정 PD를 다시 만났다.


“반갑다. 난 정이수 PD라고 해.”


낚시의 제왕 때에도 제대로 인사한 적이 없었는데 처음부터 나에게 말을 놨다.


“안녕하세요.”

“다시 보지만 너 진짜 잘 생겼다. 이름이 어떻게 되지?”

“한철호입니다.”

“철호. 작년에 고등학교 졸업했으니 나이가 만으로 19살?”

“네.”

“포지션이 야수라고 했다는데 정확하게 어떻게 되니? 우린 유격수가 필요하거든? 유격수 되니?”


본론으로 들어오니 역시나 포지션에 관한 질문이 가장 먼저 나왔다.

만일 여기서 정 PD가 유격수가 아니라 포수가 필요하다고 했으면 난 포수가 되었을 거다.

2루수가 필요하다면 2루수가, 3루수가 필요하다면 3루수가.

외야수가 필요하다면 마찬가지로 외야수가 되었을 거다.

나중에 돌이켜 보면 이때 정 PD의 질문이 야구인생에 큰 전환점을 만들게 된 걸 알 수 있었다.


“네. 됩니다.”


1초도 고민하지 않았다.

거짓말이 계속 거짓말을 낳고 있었지만 솔직히 미안함은 없었다.

무인도에서의 시합을 방송에 내보내지 않은 걸 생각하면 괘씸도 했고, 여기서 투수 얘기 꺼내면 바로 잘릴 거 같았으니까.

또 가상현실에서 투수 포지션만 연습한 건 아니었다.


“타석은 전에 봐서 확실한데 수비하는 걸 못 봐서 걱정이다. 연락 받을 때에 들었겠지만 넌 육성선수로 들어오는 거야. 정규직은 은퇴한 레전드 선수들만 가능해. 기회는 딱 한 번만 줄 거다. 아니다 싶으면 바로 방출이다.”


이 말도 꽤나 내 미래에 영향을 주었다.

만일 방출 얘기를 안 했고, 레전드 야구에 합류하게 되었으니 야구에 집중해서 잘 해보자고 했으면 기획사로 가서 연예인이 되려는 것도 바뀌지 않았을까?

나중에 생각해보면 이때 정 PD의 냉정한 말에 나도 함께 냉정해지게 된 거 같았다.


“네. 알겠습니다.”

“너무 쉽게 대답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레전드 야구는 전생에 본 프로그램이라 어떤 건지 알고 있었으니까.


“말로는 아무리 해도 실력을 보여드릴 수 없으니까 기회 주시면 확실하게 보여드리겠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다.


“후우, 하긴 철호는 내가 직접 눈으로 봤으니까 뽑는 거야. 아무리 은퇴를 했어도 이주성의 공을 연속으로 홈런 다섯 개라니. 그런데 고등학교 때는 성적이 왜 그렇게 안 좋았어?”


뜨끔.


“제 성적 아시나요?”


투수였던 게 들켰나 싶어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아니. 하지만 지명 못 받았으면 뻔한 거 아니야?”

“아...”


인터넷만 해도 내 고등학교 때에 대회에 나간 성적이 어떤지는 금방 알 수 있는 데 정 PD는 그것조차 하지 않고 넘겨짚은 거였다.


“지금 키가 얼마니?”

“192센티미터입니다.”

“몸무게는?”

“92킬로그램이요.”


며칠 전에 잰 거라 정확했다.

키는 나노가 이 이상으로는 더 안 큰다고 말해주기도 했고.


“타격은 피지컬로 설명을 한다고 하고. 수비는? 학교에서 잘 했어?”

“이것도 말로 해봤자 믿지 못하실 테고 시합에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유격수로서 성적은 하나도 없으니 이렇게 대답을 미뤘다.


“후우. 그래. 일단 믿고 간다. 어차피 육성선수니까...”


이건 나한테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스스로에게 하는 말 같았다.

쟤는 육성선수니까 언제든 자를 수 있어. 그러니까 깊이 파고들지 말자.

뭐 이런 거.


“저 말고도 육성선수가 또 있습니까?”

“많지. 낚시의 제왕 하면서 약속한 게 있으니까 너한테 기회를 제일 먼저 주는 거야.”

“감사합니다.”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 봐.”

“출연료는 어떻게 됩니까?”


아무래도 나에겐 돈이 중요했다.


“10만원.”

“끄응.”


절로 신음소리가 나왔다.


“적어? 막일하면 얼마 받는데?”

“곰방 할 때는 무조건 20만원 받았고요. 배 탈 때도 잘 봐주셔서 일당으로 같은 돈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출연료는 절반 밖에 안 되고, 나에겐 실망스런 액수였다.


“그럼 안 할래?”

“아뇨. 하겠습니다.”

“하기 싫으면 언제든 말해라.”


예비 명단이 많다고 하더니 PD는 아쉬울 거 없다는 태도였다.


“첫 시합은 이틀 후인 금요일에 있다. 일정이 좀 빠듯한데 준비 잘 해서 와라.”


이틀 후?

촉박해도 너무 촉박했다.

육성선수라고 컨디션이고 뭐고 전혀 고려를 안 해주었다.


“오 작가 따라 대기실로 가. 다른 육성선수들 있으니까 인사해.”


PD가 작가를 붙여줬고, 작가를 따라 대기실로 갔다.


여기에는 정장을 쫘악 빼입은 사람이 20여 명이나 있었다.

나도 한 덩치 하지만 다들 덩치가 좋은데 정장까지 쫘악 빼입으니 조직의 조직원들 같은 느낌이었다.

이들은 날 보더니 앉아 있다가 함께 일어났다.

방송이 처음이라 다들 생소한 분위기에다 긴장한 탓이었다.


“앉으세요. 이쪽은 이번에 고등학교 졸업한 한철호 선수에요.”


날 데리고 온 작가가 말하자 긴장했던 이들이 표정을 풀었다.


“서로 인사들 하세요.”

“나는 선오대 4학년 김준호.”

“해상대 3학년 이현인이야.”

“민용대 3학년. 박대흥. 포지션은 포수다.”

“반가워. 의구대 4학년. 이름은 장윤호. 넌 고등학교 졸업? 그럼 대학은 안 다녀?”

“네.”

“어... 지명은?”

“못 받았습니다.”

“.....”


날 바라보던 이들의 표정이 다양하게 변했다.

황당해 하는 표정, 어이없어 하는 표정, 제대로 들은 건가 하는 표정, 난감해 하는 표정.

나머지 사람들과도 통성명이 끝나고 나서 내 자리로 돌아오니 옆에 있던 김준호가 입을 열었다.


“넌 잘생겨서 배우해도 되겠다. 포지션은 뭐야?”

“유격숩니다.”


대답하면서 눈치를 봤다.

혹시나 대회에서 내가 투구하는 걸 본 이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통성명할 때에 들어보니 대학교 3학년이나 4학년이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온 건 나 하나뿐이었다.

또 나이차가 있어서 고등학생 때에 대회에서 날 본 사람이 없었다.


“아! 어느 고등학교 나왔는데?”

“덕죽고 나왔습니다.”

“으응? 어디?”


상대는 내 모교를 알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덕죽고는 워낙 이름값이 없었으니까.


“덕죽도에 있는 학굡니다. 다큐에도 한 번 나왔었는데요. 섬에 생긴 야구부라고.”

“아! 알아, 다큐 본 기억이 난다.”

“포지션은?”

“아까 유격수라고 말했는데요?”

“아! 그랬지. 그런데 왜 지명을... 피지컬은 좋은데...”


같은 질문을 반복할 정도로 김준호는 정신이 없어 보였다.

뒷말이 생략되었는데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왜 대학에 진학을 못했냐는 거다.

난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여러분들은 여기 대기해 있다가 부르면 나오세요. 그리고 한철호 선수는 옷 갈아입으세요.”

“네.”


작가가 나간 후에 난 한쪽 구석에 가서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넌 양복이 아니네?”

“양복이 없습니다.”

“그렇구나.”


김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니 날 가까이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대략 한 시간 정도 있었나?

내향적인 나와 달리 외향적인 김준호는 시시콜콜 질문이 많았다.

20명이 할 질문을 혼자서 다 할 정도로 말이다.

어떻게 섭외 되었냐고 묻기에 낚시의 제왕 촬영 온 이주성, 김유리 선수에 대해 말했고, 이게 인연이 되어 여기까지 왔다고 대답했다.

얘기가 길어질 거 같아 무인도에서 내기한 건 말하지 않았다.


“혹시 PD님 조카니? 아니면 은퇴하신 선배님 중에 친척이 있거나.”

“둘 다 아닙니다.”

“그럼 진짜 낚시가 인연이 되어서 뽑혔다고?”

“후우, 지명 못 받고, 대학도 못간 고졸 선수랑 동급이라니. 물론 나도 프로수준에서 보면 실력이 떨어지긴 하지만 대학리그에서 5할 치는데...”


한숨을 내쉬며 대화에 끼어든 이는 박대흥이란 선수였다.

다른 이들도 겉으로 말만 않을 뿐이지 심정은 같아 보였다.


“너 수비는 잘 하니?”

“보통은 된다고 봅니다.”

“그래, 포지션이 유격수니까 수비는 잘 하겠지. 하지만 덕죽고...”


김준호는 말을 하다가 말았는데 이번에도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짐작이 되었다.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약체 덕죽고의 유격수 수준이 높을 리가 없다는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거겠지.

어쨌든 한 시간 동안 김준호는 질문하고, 나는 최대한 간단하게 대답하기를 반복했다.


‘나노야, 이 형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쉬지 않고 계속 말을 하지?’


야구에 쓸 에너지를 입에 다 쓰는 거 같았다.

지치지 않는 백만돌이 에너자이저 느낌이었다.


#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나고 작가가 와서 우리들을 데리고 갔다.

도착한 곳은 강단 같은 곳의 복도.

안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밖에 있는 복도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잠시 후, 작가가 들어가라고 사인을 보내왔다.

강단 안에 들어가니 15명 정도의 은퇴한 선수들이 앉아있었다.

한 명씩 둘러보니 다 레전드였는데 눈에 확 들어오는 두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주성과 김유리.


정 PD가 우리를 일렬로 세워놓고 소개를 시켜줬다.


“여기에 있는 이들은 육성선숩니다. 먼저 선오대학교 4학년 김준호 선수...”


소개가 다 끝나고 레전드 선수들 중에 한 명이 날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너만 왜 고졸이니? 지명 못 받았어? 대학은?”


예상했듯 내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이때 정 PD가 나섰다.


“질문은 나중에 하시고요. 간단히 레전드 야구에 대해 설명 드리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먼저 은퇴한 레전드 선수분들은 1군입니다.”


이어서 정 PD는 육성선수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2군은 여기 있는 육성선수들입니다.”

“저희 컨셉이 뭐예요? 얘들 키우는 건가요?”


가장 고령자이자 감독직을 맡은 박유엽이 질문했다.

투수로서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하여 129경기에 등판해 21승의 성적을 올렸다.


“육성도 하긴 하지만 시합도 합니다. 1군은 방송으로 시합을 중계하고요. 2군은 뮤튜브로 중계합니다.”

"PD님? 질문이 있는데요. 1군에서 성적이 안 좋으면 2군으로 가는 겁니까?“

“시즌이 끝날 때까지 레전드 여러분들은 그런 거 없습니다. 하지만 육성선수는 1군에 올라오기도 하고, 2군으로 내려가기도 하며, 방출도 있습니다.”

“하하, 우린 방출 없어요?”


레전드 선수들이 웃으며 좋아했다.


“방출은 없지만 시즌 1에서 승률이 8할이 안 되면 프로그램이 폐지됩니다.”

“오우, 8할? 높은데요?”


다들 화들짝 놀랐다.


“사전 인터뷰 기억하세요? 여러분들 중에 8할 밑으로 말한 분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10할이라고 말한 분도 계세요. 저는 여러분들이 말한 승률의 평균도 아니고, 최저를 가지고 말한 겁니다.”

“.....”


해놓은 소리가 있기에 레전드들은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는데 굳은 얼굴들이었다.

사전 인터뷰 때만 해도 자신감을 보였지만 지금은 현실로 닥쳐온 거라 이제야 실감을 하며 걱정이 찾아온 것.


“레전드들이 지도해주는 육성선수들의 승률도 5할이 안 되면 마찬가지로 프로그램은 폐지됩니다.”

“아니, 쟤들 승률까지 우리가 관리해줘야 해요?”

“그렇습니다. 저희는 선수로서도 기량을 발휘해야 하지만 경험 많은 레전드 선수로서 후배 양성도 해야 합니다.”


장 PD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합은 몇 경기나 해요? 설마 144경기 하는 거 아니죠?”

“144경기 했다간 전부 탈진해서 병원에 입원해야 해!”

“에이, 레전드가 뭐 이래?”

“레전드는 안 늙나? 솔직히 여기서 144경기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나 해?”


말들이 많아지니 정 PD가 나섰다.


“레전드 선수들은 체력을 고려해서 최고 43살에서 잘랐습니다. 그 이상 되시는 분들은 솔직히 경기력에서 힘들다고 생각했고요. 이번 시즌에 잡힌 경기는 KBO의 4분의 1인 36시합입니다.”

“오우, 적은데?”

“이 정도면 할만하지.”

“그런데 누구랑 붙어요? 설마 프로구단은 아니죠?”


누군가 질문하자 정 PD가 피식 웃었다.


“프로구단 바빠요.”

“아니, 2군도 있으니까.”

“저희가 시합을 할 상대는 고등학교 야구부, 대학교 야구부, 독립구단 등이 됩니다.”


이때만 해도 프로야구 팀과 시합을 한다는 건 생각을 못했다.

하지만 나노는 나중에 프로구단 2군과도 시합을 하게 된다고 했다.


“첫 상대부터 소개합니다. 작년 황금사자기 우승팀인 야구 명문 휘윤 고등학교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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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화 +11 24.09.17 3,587 107 13쪽
31 31화 +5 24.09.12 4,599 132 13쪽
30 30화 +1 24.09.11 4,469 115 13쪽
29 29화 24.09.10 4,631 109 13쪽
28 28화 +6 24.09.09 5,076 112 13쪽
27 27화 +11 24.09.08 5,315 116 13쪽
26 26화 +9 24.09.07 5,421 118 13쪽
25 25화 +8 24.09.06 5,563 115 13쪽
24 24화 +7 24.09.05 5,584 121 13쪽
23 23화 +5 24.09.04 5,536 117 13쪽
22 22화 +8 24.09.03 5,633 121 13쪽
21 21화 +7 24.09.02 5,656 123 12쪽
20 20화 +11 24.09.01 5,804 102 13쪽
» 19화 +4 24.08.31 5,732 107 13쪽
18 18화 +8 24.08.30 5,990 111 12쪽
17 17화 +3 24.08.29 5,964 123 12쪽
16 16화 +3 24.08.28 6,006 110 13쪽
15 15화 +3 24.08.27 5,993 110 13쪽
14 14화 +5 24.08.26 6,013 114 12쪽
13 13화 +6 24.08.25 6,108 124 12쪽
12 12화 +6 24.08.24 6,162 12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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