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대군을 총으로 쏴 죽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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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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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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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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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내가 선택한 왕의 길(1) 수정(9월13일/오후1시41분)

DUMMY

9화 내가 선택한 왕의 길(1)



“나도 안다니까?”


왕이 갑자기 벌컥 화를 냈다. 정인지와 신숙주는 화들짝 놀라면서 몸을 움츠렸다.


“그래. 씨······내가 어? 이유 없는 조선을 만들었지. 그래. 응? 뭐? 어쩌라고?”

“저, 전하. 고정하시옵소서.”

“다 비틀었는데 어떻게 고정해달라고?! 이유도 없는데 고정이 되냐고. 용접이라도 해? 그래. 나도 내가 책임져야 하는 거 안다 이거야! 뭐 어디에 고정할까? 뭐야? 고개 안 끄덕여?”

“시, 신이 이미 서른 번 끄덕였사옵니다.”


정인지는 식겁했다.


주안상을 대령하여 기대가 컸다. 어사주도 먹고 술도 먹고 취기도 오르고 마음껏 떠들고. 그런데 대체 이게 뭔가.


‘무슨 주량이 이렇게 약해?’


왕은 단 석 잔 만에 취해버렸다.


정인지는 비로소 농민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비가 내려서 기뻐했는데 쭈르륵 내리고 그쳐 버렸을 때의 마음 말이다. 작물은 아직 간에 기별도 안 갔을 건데 말이다.


이심전심 역지사지 뭐 하여튼 그런 거였다.


의금부에 갇혀 있느라고 술을 못 마셨더니 입에 지독한 가뭄이 도래했다. 통곡할 정도로 슬펐는데 말에 좋았다가 고작 한 잔만 먹었으니 이건 너무 괴로운 상황이었다.


‘기우제에 기뻐하지 않는 백성들의 마음을 알겠구나. 음. 그런데 이쯤 되면 재빠르게 도망가도 기억 못 할 거 같은데?’


이대로 도주하여 집에서 마음껏 마시는 게 좋다.


‘도승지도 데리고 가야겠어. 모처럼 한잔하자고.’


반면, 신숙주는 주먹을 꽉 쥐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저기 어딘가에 이조판서 임명 교지가 있다. 취기에 내 이름을 쓰고 옥새를 찍으신다면 만사형통이다. 그래. 버틴다. 동이 틀 때까지.’


신숙주는 뜨거운 결의를 다졌다. 당대 제일의 주당으로 꼽히는 그였기에 결의의 정도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최후의 승자?


얼마든지 자신 있었다.


그때 정인지가 미세한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왕의 행동도 참으로 기민했다.


“정인지.”

“예, 예?”

“어디 가나?”

“어심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자 한 것이었사옵니다.”

“응? 뭐라는 거야. 와서 뭐라고 하려고.”

“그저 신이 대신으로서 농심을 알게 되었사옵니다.”

“농심이 그······그래. 좌상도 농심을 좋아하나 보군.”

“예? 아. 예. 응당 그러하옵니다.”

“그렇지. 거기 라면이 맛깔나. 해장에 좋은데 먹을까?”


무슨 말이야?

정인지는 황당했다.


“전하. 대취하셨사옵니다. 하오니······.”

“나 안 취했어. 안 취했다고! 멀쩡해. 혀도 안 꼬이잖아. 응?”

“이미 심하게······.”

“정인지 뭔지 열받게 하네. 응?”

“이미 심하게 멀쩡하시니 신이 감복하였사옵니다. 신은 진실로 불순한 마음이 없사옵니다.”

“그래. 없지. 이유가 없어. 내가 이유 없는 조선 만들었거든.”

“예?”

“그렇지. 그런데 내가 뭐할지 생각해 보라고 했는데? 한다고!”

“예?”

“한다니까? 그래. 할게. 어? 원한 건 아닌데 한다고. 뭐. 왜. 내가 언제 안 한다고 했어? 그런데 뭘 해야 할지 모른다고 그러니까 너희가 말해봐.”


말하면 말꼬리 잡고 늘어질 기세였다. 정인지는 현명하게 처세하기로 했다.


‘내일 취기가 가라앉으신 뒤 복심으로 역할을 잘 수행하면 돼. 지금은 눈치껏 사라지자.’


결심했다. 왕에게 술을 더 먹이기로.


석 잔에 저 꼴이면 두 잔만 더 먹여도 마무리다.


이것이야말로 군자의 나라에서 주도하는 주도다.


“하하하. 전하. 일단 신이 한잔 올리겠사옵니다.”

“응? 좋지. 두 잔 올려. 두 잔. 휴.”


정인지가 몸을 숙이던 그 순간이었다.


“전하. 신이 고할 것이 있사옵니다.”


신숙주의 단호함은 왕과 정인지의 움직임을 멈추게 했다.


“응? 정인지. 그대로 기다려 봐.”

“예?”

“도승지. 말해봐.”

“도, 도승지. 내일 하시오. 내일. 내가 자세가 참으로 불편하오.”

“조용히 하라. 도승지. 계속 말해. 내가 뭘 하면 되는 거지? 아. 왕으로서 어쩌고저쩌고······이런 거 말고. 구체적으로 말해.”

“전하. 신이 자세를 바로 해도 되겠사옵니까? 손이 떨리고 허리도 아프옵니다.”

“시끄럽다. 정인지. 내가 지켜본다고 했노라.”

“······.”


신숙주는 차분하게 숨을 쉬었다.


‘좌의정이 머뭇거릴 때 치고 나가야 한다.’


어쩌면 동이 틀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전하.”

“고하라.”


신숙주는 단호하게 말했다.


“신은 패물을 모두 반납했사옵니다.”

“······.”

“이토록 어명에 진심이오니 어찌 충신이라고 하지 않겠사옵니까.”


이 사실을 꼭 고해달라고 내수사 관원에게 신신당부했으나 실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전전긍긍했는데 비로소 말하게 되었으니 어찌 뿌듯하지 않겠는가.


물론 노비 제도로 여론을 어떻게든 해보려는 한명회가 이 일을 들으면 노발대발하겠지만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다.


“그건 당연한 거고.”


훗. 고작 이게 전부라면 말도 꺼내지 않았다.


“가장 빨랐사옵니다.”


회심의 수를 던진 신숙주는 뿌듯했다.


“성삼문과 별 차이가 없던데?”


성삼문이 또 문제였다. 영의정도 뺏어가더니! 신숙주는 차분하게 대처했다.


“전하. 신은 손도 대지 않았던 것이지만 영의정은 다 사용하고 따로 구한 것이옵니다. 그는 참으로 부유하기 때문이옵니다.”

“응? 성삼문이 부유한가?”

“압도적으로 그러하옵니다.”

“오.”


*****


성삼문 말이다. 꼬질꼬질하고 땍땍거려서 꼬장꼬장해서 세상에 불만이 많은 처사인 줄 알았는데 부자란다.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러면······.”


아 어지럽다.


구구단 이럴 때는 구구단이지.


성삼문이 왜?


사팔에 삼십육······구구 팔십일······이사······가야 하는데.


오. 그렇게······많아? 성삼문 부자가?


나 멀쩡해.


성삼문 부자가 부자네. 부자야. 부자.


나도 복권 1등이야. 20억이라고. 내 복권.


그래. 성······? 야. 그거 내 복권이라고 했지?


건드리면 다 쏴버린다.


죽여 버려 진짜. 나 총 있어.


하씨. 어지러워.


머리가 깨질 것 같다. 속도 미친 듯이 쓰렸다.


“흐어······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술을 먹지 않겠습니다. 살려주세요. 제발······.”


엄청난 숙취에 신을 향해서 간절하게 빌었다.


다시는 나쁜 짓 안 할 테니까 이 고통을 거둬주길 바랐다.


정말로.


그런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기도를 멈추고 슬쩍 봤는데 상선이 오묘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상당히 뻘쭘한 일이라는 건 나도 잘 알고 있기에 최대한 자연스럽고 티 나지 않게 기도를 멈췄다.


“휴. 상선. 내가 어제 몇 병이나 마셨나? 죽겠군.”

“몇 병이 아니라 몇 잔이옵니다.”

“응? 농이 과하군. 몇 잔이라니. 사발로 마신 것도 아닌데.”

“정확하게는 석 잔이옵니다.”

“세 병이겠지.”

“아니옵니다.”

“어명이다. 세 병이니라.”

“신의 목을 치셔도 석 잔이옵니다.”

“······.”


소주 세 병을 마셔도 멀쩡한 게 나의 본체였건만 단종 놈의 새끼는 겨우 석 잔에······진짜 저질이었다.


“좌의정 정인지와 도승지 신숙주는 지극히 멀쩡한 몰골로 퇴궐하였사옵니다.”


이건 나의 패배가 아니다. 단종의 패배다.


제기랄.


“수라를 올리겠사옵니다.”


그래도 수라상이라서 이것저것 먹으니까 좀 낫다.


“휴. 살 것 같네.”


그런데 이제 깨달았는데 필름이 끊겼다. 아니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데 속이 너무 아파서 발로 차버린 화두였다.


원래 필름 끊길 정도로 달려도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기억을 찾아 떠나지 않는다.


기도하고 물 마시고 그 뒤에 기억을 찾아 떠난다.


그런데 이때 한 장면이 심지어 흑역사에 해당하는 장면이 떠오르면 팔다리가 멈춘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거나 머리를 쥐어뜯거나 파닥파닥 뛰면서 바닥과 씨름한다.


“음. 그런데 중요한 말 같았는데. 불러서 물어보려니 좀 그렇지. 이건 자존심 문제야.”


술 부심이 제일 멍청한 짓이라지만 그래도 가져야 하는 거긴 하다.


어쨌든 필름이 끊기면 그렇다. 아예 기억이 안 나는 것도 아니고 장면 장면만 기억난다.


지금 기억하지 못하는 그 어떤 순간 나는 멀쩡하게 살아 숨 쉬며 생명 연장의 위엄을 달성하고 뭐 그런다.


그런데 덕지덕지 뇌 속에 붙어 있는 잘려졌던 기억이 한 장면을 떠올리면 멀찍이 떨어진 또 다른 장면도 끄집어내고 그런다.


이러다 보면 뭐라도 기억난다.


“성삼문이라.”


신숙주는 그냥 그가 땅 부자라는 말을 한 게 전부였다.


그런데 뭔가 걸리는 게 있었다. 바로 부르려다가 생각이 바뀌었다. 그 전에 확인할 게 있었다.


그리고 나도 나를 확인 좀 해야 하고.


“······.”


노비 공부하다가 다른 걸 찾아보고 나니 머리가 상당히 복잡하고 어지러웠다.


“······이게 맞나?”


해야 할 일이라고는 보였으나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대상이 성삼문이라.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었다.


잘게 이를 깨물다가 한숨을 쉬었다.


“내가 왕이었지. 그러면 해야지.”


처음이라서 고민이 되고 어렵지만 차차 나아지겠지.


이게 옳고 바르다면.


확인의 끝에서 내가 왕으로 해야 할 일을 보게 되었다.


*****


사극 드라마를 보면 왕이 대전 중앙에 앉아 있고 신하들은 좌우에 서서 눈알을 굴리는 장면이 있다.


이곳에서 이놈 저놈 팀을 맞춰서 이인삼각처럼 강렬한 팀플을 보여 줄 때도 있었고 한 명이 무쌍을 찍으며 싹 정리할 때도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주인공의 포지션이었다.


경험상 주인공이 왕이면 왕이 무쌍을 찍었고, 주인공이 신하일 때는 왕은 무기력하게 쭈구리처럼 눈치나 볼 때 간신 한 놈이 탈탈 털면서 무쌍을 찍었다.


왕은 부들부들. 측근들은 한숨. 간신 부하들은 웃고.


이때 장면이 빠르게 전환되면서 왕의 밀명을 받은 신하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악의 무리와 싸우거나 땅을 판다거나 동굴에 들어간다거나 어떤 영감과 협상에 성공한다거나 결정적인 증거나 증인을 확보해서 왕에게 텔레파시를 보내고 왕은 실실 쪼개는 모습이 연출된다.


뭐. 여기서는 그럴 일이 없을 거 같긴 했다.


드라마와 다른 게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대부분이 악의 무리에 속했던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가 있었다. 아직 나는 공부한 정도만 숙지하고 있어서 광범위한 국정 운영의 지식이 없었다.


성삼문을 위시한 대신들이 속사포처럼 이런 말, 저런 말을 하는데 정말 어지러웠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리하라’ 정도였다.


그래서 나만의 생각이나 하면서 홀로 외로움을 달래고 있었다고 할까?


이런 시간을 피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이 순간에 나는 다시 느꼈다.


하루라도 빨리 박학다식해져야 한다는 걸 말이다.


멍하게 있다가는 진짜 멍해질 것 같았다.


내가 상대하는 저 사람들은 너무 똑똑하고 아는 것도 많았다.


마음 다부지게 먹어야 할 것 같았다.


그나저나 대신들. 오늘따라 왜 다들 저렇게 기분이 좋을까?


이상할 정도로 전부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는데 로또라도 된 사람들 같았다.


저 웃음을 모두 없애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무기를 나는 가져왔다. 터트릴 때를 기다릴 뿐이었다.


작가의말

늦지않았어님 추천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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