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북진 (3) - 탈북
우리 한민족의 조상은 과연 아프리카 초원에 살던 흑인 일까요?
27. 북진 (3) – 탈북
“설마 드론으로 저 사람들을 들어 나르자는 얘기는 아니지요? 윤 차장!”
지은의 야시시한 유혹에 빠져 얼떨결에 그러자고 했던 문도가 제 정신이 들어서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지은을 바라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드론으로 훈제칠면조나 실어가서 가난해 보이는 북한 주민들 집에 던져주고 온 게 고작인데 사람을 들고 나르자니? 윤 차장 이게 벌써 잠이 와서 헛소리를 하나 싶다.
“왜 못해요? 사람이나 물건이나 드론으로 들 수만 있으면 옮겨 나르는 건 가능하잖아요! 저 여자는 암만 봐도 저보다 훨씬 작으니까, 체중이 뭐 한.. 40Kg 정도밖에 안 나갈 것 같은데요. 호호.”
지은이 자기 몸무게 49Kg을 밝히는 게 쑥스러운지 입을 가리고 웃는다.
“예, 뭐.. 그렇지, 뭐. 사람도 가볍고 드론 로봇팔로 안전하게 들 수만 있으면 나를 수도 있겠지요. 음.흠.”
문도의 머릿속에 늘씬한 S라인 윤지은이 얇고 짧은 잠자리 옷만 걸친 채 침대에 잠들어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자기의 드론 BB1이 가제트 팔을 뻗어 지은의 개미허리와 목덜미를 받쳐서 자기 앞으로 들고 오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자, 미동도 없이 잠들어 가늘고 긴 백옥 같은 양쪽 팔이 아래로 축 늘어져있던 지은이 갑자기 팔을 움직이며 꿈틀거렸고 그만 BB가 지은을 떨어뜨리고 만다.
“크엌, 안돼요! 잠든 사람은 몰라도 깨어있는 사람은 몸부림을 쳐서 들고 올 수가 없어요!”
무심코 헛소리가 나와 버린다.
“잠든 사람을 왜 들고 와요! 저 여자를 들어 나르자니 까요! 그리고 옆에 누워있는 남자도 잠든 게 아니고 다리가 부러져서 누워있는 거잖아요? 호호.”
지은은 문도가 당황해서 누워있는 남자를 잠든 사람으로 잘못 말한 줄 알고 웃으며 말한다.
“아, 아.. 그렇지, 참. 자는 게 아니고 다쳐서 누워있지! 흐흐.”
음흉한 생각을 하던 문도가 나쁜 짓 하다 들킨 사람처럼 얼굴이 붉어진다.
“네, 물론 움직이는 사람이니까 로봇 팔로 받쳐들기만 해서는 위험하겠죠? 들려있는 사람도 불안해 할 거구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밑에 받칠 수 있는 물건이 있으면 훨씬 수월할 것 같은데요.”
지은이 화면을 살펴보면서 좋은 방법이 없을까 궁리를 한다.
“그거야 뭐, 적당한 굵기 나뭇가지 두 개 잘라서 밑에 받치고, 잔가지로 엮어서 사다리처럼 만들면 되겠네요. 아래 위에서 로봇 팔로 거머쥐고 나르면 되지 않겠어요? 저 여자는 양손으로 나뭇가지 꽉 붙잡고 있으라고 하고요.”
이번에 멸악산 동굴 중계국 설치하면서 입구에 나무를 옮겨 심어 위장 작업을 했었다. 그때 입구를 가리던 쓸모 없는 나무의 곁가지를 자르느라고 전기 톱을 드론에 부착했는데 그걸 사용하면 부목을 만드는 건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아, 네. 그렇게 하면 되겠네요. 고 사장님 머리가 대단하세요! 호홍~”
지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일부러 문도를 칭찬해 준다. 사내들 부려먹는 방법은 단순하니까.
“그런데, 저 사람들 드론이 말하는 거 보고 놀라서 기절하지 않을까요? 상상도 못하던 일이라서. 크크.”
칭찬받은 코모도섬의 왕도마뱀 코모도가 고래가 되어 싱글벙글 춤추며 앞서 나간다.
“네, 그게 좀 염려가 되네요. 제가 조심해서 잘 말해 볼게요.”
지은이 너무 염려 말라는 눈짓으로 살짝 윙크를 한다.
“아, 예. 그래요. 윤 차장이 하는 게 아무래도 낫겠네요. 음. 흠. 근데, 잠깐 화장실 좀 다녀와서 시작합시다. 신경 썼더니 갑자기. 크크.”
춤추느라 신나서 자기가 마이크 잡으려던 고문도 고래가 무안해서 마렵지도 않은 `네이쳐 콜즈 미`를 하며 일어선다. 아까 멸악산 출발 전에 볼일 본지가 한 시간밖에 안 됐구먼!
“어머, 급하세요? 얼른 다녀오세요. 저도 있다 갔다 올게요. 호호.”
지은이 입을 가리며 웃는다. 속내가 뻔히 보이는데 오늘따라 순진한 문도가 마음에 쏙 든다.
***
함경남도 봉천군 고운산 자락, 조장골에서 2Km 떨어진 산자락 계곡 얼어붙은 개울물 가에 다리를 다쳐 누워있는 젊은 남자와 곁에 울면서 앉아 있는 그의 연인.
졸졸대는 개울물 소리만 들리는 적막을 깨고, 어디선가 맑고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안녕하세요? 놀라지 마세요, 지나가던 사람이에요.]
남쪽 멀리 200리 길, 80Km 거리에 있는 시흥시 삼통사 본부에서 날려보낸 지은의 목소리가 드론의 성능 좋은 스피커에서 울려 나오는 것이다.
“옴마, 이게 뭔 소리 지비?”
소스라쳐 놀란 영순이 어쩔 줄을 모른다.
덕배도 깜짝 놀라서 누워있던 상체를 곧추세우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도와드리려는 거니까 안심하세요. 저는 나쁜 사람 아닙니다. 자유의 나라 남한 사람입니다.]
지은이 낮은 톤으로 천천히 또박또박 발음을 한다.
“덕배씨, 남한 사람이라는디, 젊은 여자 같지유?”
“그러네. 어디서 나는 소리여 이것이. 누, 누구시요? 혹시.. 우리민족 입네까?”
덕배가 그 와중에도 정신을 가다듬고 혹시 자기와 접속하고 있는 남조선의 대북지원 단체인 `우리민족` 관계자가 여기까지 찾아왔나 싶어 얼떨결에 물어본다.
“기걸 말하면 우짭네까? 덕배씨!”
남조선을 위장한 보위부 여성동무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영순이 깜짝 놀라서 나지막이 소리친다. 그제야 덕배는 아차, 하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네, 맞습니다. 덕배씨와 연락한 우리민족 안내자 입니다. 지금 다치신 줄 알고 찾아온 거니까 안심하십시오. 많이 아프시죠? 제가 곧 도와드릴게요. 아무 염려 마세요.]
영리한 지은이 재치 있게 금방 들은 우리민족을 써먹는다. 물론 아까 음성 마이크로 도청한 덕배라는 남자 이름도 각본대로 써먹고.
“아, 예! 우리민족 관계자 분이시오? 반갑습네다. 얼른 이리로 나오시라요.”
자기 이름을 알고 있고 전혀 북한 말투가 섞이지 않은 전형적인 남조선 여성의 말씨를 듣고 안심이 된 덕배가 소리가 들린 바위 쪽을 쳐다보고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소리친다.
자기가 다친 줄도 알고 있는데 잡으러 온 보위부 사람이라면 굳이 바위 뒤에 숨어있을 이유는 없을 거란 생각이 퍼뜩 든 모양이다.
[네, 덕배씨, 그리고 영순씨. 잠시만 더 얘기 나누고 나갈게요. 제가 두 분께 설명을 드려야 할 게 조금 있어요. 우리 남한에는 기술이 많이 발달한 건 알고 계시죠? 우리는 날아다니는 작은 날틀로 물건도 실어서 나릅니다. 지금 우리가 보낸 그 작은 날틀로 두 분을 실어서 조지골 삼촌댁까지 날라드릴 거에요. 그러니까 사람이 아닌 날틀을 보시고 놀라지 마시라고요. 자세한 설명은 나가서 더 드릴게요. 지금 바위 위에 앉아 있는데 바로 내려 갈게요.~]
잠시 후 바위 위에서 전조 라이터를 환하게 켠 지은의 BB3가 천천히 내려왔다.
지은의 설명을 듣고 반신반의하며 조마조마하게 가슴을 졸이고 있던 두 남녀도 사람이 아니고 그렇게 크지도 않은 날틀이 내려오니까 안심이 되면서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공중을 한 바퀴 선회하며 몸체 전체를 보여준 BB3는 두 사람 앞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놀라기는 했지만 자기들을 구해주러 왔다는 남조선의 첨단 날틀을 보고, 두 사람은 너무 반갑고 신기해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희망에 찬 미소를 짓는다.
[놀라지는 않으셨어요? 저 위에 남자 분이 조종하는 날틀이 한 대 더 있습니다. 한꺼번에 내려오면 놀라실까 봐 나중에 내려올 겁니다. 우리는 지금 남한에서 두 분을 보면서 얘기하고 있어요. 이 날틀이 작아도 힘이 아주 셉니다. 우선 나뭇가지를 잘라서 운반용 받침대를 만들 겁니다. 그런 다음에 두 날틀이 앞뒤에서 받침대를 잡고 올려서 한 분씩 교대로 실어 나를 겁니다. 먼저, 부상당하고 조지골 삼촌댁 위치를 잘 아시는 덕배씨를 나르고 돌아와서 영순씨를 모셔갈게요. 무슨 말씀인지 이해 되시나요?]
드론 BB3에서 차분하고 맑은 지은의 목소리가 마치 곁에서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들리자 두 남녀는 이제는 살았구나 하고 감격해서 서로 부둥켜안고 눈시울을 붉힌다. 아까 헤어지지 못한다고 울어서 눈물자국이 말라붙어 있는 영순의 눈가에는 벌써 닭똥 같은 이슬이 맺힌다.
“너무 감사합네다, 남조선 우리민족 분들! 이러키 우리를 살려주신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디 모르갔시유. 감사합네다. 감사합네다.”
얼음판에 미끄러져 낙상해서 다리가 부러진 게 아니고, 걷지 못할 만큼 발목을 조금 삐었던 덕배는 앉은 채 연신 허리를 굽혀 드론 BB3에게 절을 한다.
덕배를 부축하고 있는 영순도 자동으로 절을 올리며 흐르는 눈물을 훔칠 생각도 안 한다.
잠시 후에 문도의 드론 BB1도 내려와 정중하게 더듬더듬 인사말을 했다.
그리고 두 대의 BB는 근처에 숲을 이루고 있는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에서 받침대로 쓸 곧고 굵은 적당한 가지를 골라 전기 톱으로 잘라내었다. 그런 다음 약간 가늘고 빳빳한 가지를 여러 개 잘라내어 사다리모양의 운반용 받침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드론에 실려있는 굵은 밧줄을 꺼내어 두 사람에게 나눠주고 잔가지를 굵은 가지의 머리부분, 등 부분, 엉덩이부분과 종아리 부분에 움직이지 않게 꽁꽁 묶어 매게 했다.
손발이 척척 맞는 지은과 문도, 목숨을 함께할 만큼 깊은 연인 사이로 죽다가 살아난 두 남녀가 만든 운반용 사다리는 한 시간도 안되어 완성이 되었다.
[덕배씨 몸무게가 55Kg이라고 하셨죠? 먼저 덕배씨를 사다리에 올려 눕혀보세요. 어느 정도인지 확인부터 해볼게요.]
사다리 작업 전에 두 사람의 체중을 물어서 알아둔 지은이 두 사람에게 지시를 한다. 체중은 42Kg으로 깡말라 보이는 영순이 남남북녀의 티를 내면서 옹골차게 덕배를 사다리 위에 옮겨 편하게 눕힌다. 그리고 나서 지은의 지시대로 가지고 있던 모포를 접어 고개가 앞쪽을 바라볼 수 있을 만큼 덕배의 머리를 받쳐 올려 준다.
지켜보던 문도의 BB1이 비행방향의 앞쪽이 될 덕배의 다리 쪽으로 가고, 지은의 BB3가 덕배의 머리 쪽으로 가서 가제트 팔로 사다리 받침대를 꽉 거머쥔다.
[편대장님, 저는 준비됐어요. 이제 카운트 다운하고 1m만 올려 보세요.]
뒤쪽의 드론 BB3에서 염려스러우면서도 기대에 찬 지은의 목소리가 울려 나온다.
지은과 덕배는 아까 시흥 삼통사 본부에서 드론 비행개시 전에 탈북자 운반작전을 세우고 충분한 검토를 했었다.
실어 나를 두 사람의 무게와 거리, 시간 등을 추정하고, 면밀히 계산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영순씨만 조지골 삼촌댁으로 옮기려 했는데, 계산을 하다 보니까 드론의 배터리 용량을 감안할 때 둘이서 함께 비행하면 두 사람을 모두 운반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물론 함께 검토는 했지만 문도는 큰 머리를 끄떡거리며 구경만 했고, 지은이가 다 아이디어도 내고 캘큐레이터를 두드린 것이다.
[예, 알았어요. 셋까지 셉니다. 하나.. 두울.. 세엣!]
앞쪽의 드론 BB1에서 편대장 문도의 자신 있는 목소리가 퍼져 나온다.
드디어 체중이 55Kg인 남자를 실은 사다리가 서서히 공중으로 부양하기 시작한다. 10초도 안되어 사다리는 상공 1m에 올라가 가만히 머물고 있다.
[성공입니다! 덕배씨 안심하시고 가만히 누워계시면 됩니다. 저희는 화물 운반을 많이 해본 사람들입니다. 이 정도면 아무런 문제없이 조지골 삼촌댁까지 모셔갈 수 있습니다. 이제 안전상 전조등 불을 끄고 갈 것입니다. 초지골까지는 저희가 알아서 찾아 갈 겁니다. 근처에 가시면 어둡지만 잘 살펴보시고 삼촌댁 방향을 가리켜주십시오. 그리고 영순씨는 저희가 대략 한 시간 정도 지나서 돌아 올 것이니까, 안심하시고 여기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그럼 이제 셋까지 헤아린 뒤에 출발합니다. 하나.. 두울.. 세엣!]
공중에 떠있던 드론 사다리 비행대가 서서히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시속 18Km, 초속 5m의 속도로 서남쪽 방향 조지골을 향해서 날아간다.
밑에서 조바심으로 바라보다 박수치는 영순의 눈에서 뜨거운 환희의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 지구상에서 드론이 살아있는 사람을 싣고 날아가는 세계 최초의 역사적인 사건이 어둡고 추운 북한 땅 어느 산골짜기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다.
인간의 착한 심성인 자비로움을 기본바탕으로 하여 압박 받고 피폐하게 사는 인류를 구제하고자 뭉친 젊은이들의 모임 `삼통사`!
이제부터 그 들의 눈부신 활약이 펼쳐질 서광이 비쳐오고 있는 순간이다.
이 소설은 판타지가 아닙니다. 머지않은 장래에 닥쳐 올 사실을 미리 알려드리는 겁니다. 여러분의 가까운 미래를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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