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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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안
작품등록일 :
2024.07.0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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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은 광해였다 - 1

DUMMY

임진년, 4월 26일, 흐림


당장 비라도 내릴 것 같은 날씨였다. 하지만 나는 승리를 예감했다. 반면, 적장 가등청정이 끌고 온 일본의 제2번 대에는 지옥 같은 날이 될 것이다.

잠시 후, 날이 어둑해졌을 때였다. 항아리 협곡으로 들어오는 가등청정과 그의 부하들은 그야말로 자만과 방심으로 가득했다. 고작 백여 명의 기마대에 유인되는 걸 보니, 더더욱 실소가 나왔다.

그나마 배울 점은 적의 전법이다. 그들은 방패를 목책처럼 사용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창을 찔렀다. 그러자 기마병의 돌진이 저지되었다. 동시에 격발한 조총에 아군 피해가 속출했으니.

만약 유인을 위해 덮친 의도가 아니었다면, 큰 낭패를 봤을 것이다.

다행히 아군의 지휘관이 적기에 퇴각 명령을 내렸다. 이를 신나게 쫓는 가등청정의 병력이 뒤를 따랐다. 앞으로 닥칠 일도 모른 채 말이다.

마침내, 나는 절벽 위 병사들에게 외쳤다. 비격진천뢰를 투하하라고. 역시나 곧바로 투하된 포탄이 아비규환을 만들었다. 이윽고 쏜 화살 비는 가등청정은 크게 다치게 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조선 땅을 밟은 후, 우리 백성을 잔인하고 포악하게 짓밟은 놈들을 나는 용서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 조선 15대 황제, 흠덕제(欽德帝)의 조일전기(朝日戰記) 중에서


* * *


이혼이 눈을 떴다.


‘응?’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타이머였다.


06 : 00 : 00

05 : 59 : 59

05 : 59 : 58


눈살을 찌푸린 이혼.

1초씩 줄어드는 타이머를 보며 그는 느꼈다. 저 시간이 끝이 나면, 무슨 일이 발생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게 분명 자신이 원하는 건 아닐 것 같았다.

그다음으로 느낀 것은 계절감이었다. 한파가 몰아쳐 온 수능 날과는 달랐다. 오히려 나른하기까지 한 늦은 봄날의 아침 기운이 이혼의 몸을 에워쌌다.


‘이건, 그날이다!’


과거로 왔다는 걸 깨닫는 순간, 이혼은 오늘이 언제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오늘은 임진년 4월 17일이었다.

어떻게 알았냐? 인간은 늘 특별한 날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오늘이 바로 그때다.


‘그렇다면 분명 그 소식이 올 것이다!’


그토록 오랜만에 본 만삭의 아내. 이혼은 애틋한 말 한마디도 못 건네고 이혼은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다.


“저하, 밥 한술도 안 뜨시고······.”

“미안하오. 밥 생각이 없소.”


그녀와는 네 명의 자식을 두었다. 안타깝게도 그중 세 명은 어려서 요절했다.

고로, 현재 아내의 배 안에는 장남이 될 그놈이 자라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녀석을 지키지도 못했지.’


아픈 과거가 떠오르자, 이혼은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감상에 젖을 수만은 없었다. 나아가자. 곧 닥쳐올 왜란을 잘 막는 게, 아이를 살리는 길이었다.

이 생각으로 서둘러 문밖을 나갔다. 목적지는 경복궁.


“음······.”


원래 이혼은 경복궁에서 유년과 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가 관례를 올린 후, 동대문 근처로 거처를 옮겼다.

새삼 그때 그 시절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는 걸 느낀다. 무려 한 시간이나 걸었지만, 눈에 스치는 모든 광경이 정겨울 정도였다.

평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백성들, 코끝을 스치는 흙냄새,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까지.

종내에는 육조 거리에 도착했다. 그리고 잠시 후 입궐을 준비하는 대신들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내가 확실히 과거로 돌아왔구나.’


어떤 영문인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 이혼은 남쪽 바다에서의 흉보가 조정에 도착하는 그날에 광해로 회귀했다.

아니다. 왜 이날인지 알 것 같다. 이제부터는 과거와 똑바로 마주하고, 제대로 된 선택을 하라는 하늘의 뜻일 터.


“후······.”


이혼은 심호흡을 내뿜었다. 그때, 입궐하는 대신 중 누군가를 발견했다.

이혼은 잠시 생각을 멈추었다.

가장 높은 품계라는 걸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붉은 색의 관복. 그리고 금색의 장식. 마지막으로 통찰력을 품은 눈빛과 오십 년 묵은 지혜를 내뿜는 용모의 소유자······.


‘좌상 대감!’


그는 바로 류성룡이었다.

이렇게 보니, 너무나 반가웠다.

그렇지만 그 마음을 표현하기도, 그럴만한 시간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왕의 핏줄이라는 신분은 그래서는 안 된다.

권력은 아버지와 아들조차도 서로 나눌 수 없는 것.

왕자는 정치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 조정 대신을 접촉해서도 안 된다. 그 순간, 그를 지켜보는 감시의 눈길로 인해 왕의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어차피 이혼은 류성룡을 보러 온 것이 아니었다.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다.’


광해군이었던 과거로 온 이혼. 과연 똑같은 일이 똑같은 시간에 똑같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이혼은 그게 궁금했다.

그래서 서둘러 궐 밖에서 뒷짐을 지고 서 있었고, 얼마 안 되어 곧······.


‘역시······.’


가장 급한 소식을 증명하는 방울 세 개가 딸랑이는 소리를 낸다. 전령 하나가 비변사로 허둥지둥 들어가고 있었던 것.


“아······.”


이혼의 입 밖으로 탄식이 흘러나온다. 마음 한편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더 마음이 무거웠던 게 있었다. 아버지인 선조가 전령이 가져온 장계 소식을 듣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거라는 걸 알아서다.


‘어쩌나? 골든타임을 계속 놓치게 될 텐데······.’


걱정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생각해야 했다. 자신을 과거로 돌려보낸 하늘의 뜻에 부합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아니,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스스로 질문을 계속 던져본다.

머지않아 이혼은 동공을 깊게 가라앉힌 후, 입 밖으로 다음의 말을 내뱉었다.


“그래, 뭐든 해야지.”


그것이 아버지의 견제를 받는 일일지라도,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다가올 미래를 바꿀 수 있으리라.


05 : 00 : 03

05 : 00 : 02

05 : 00 : 01


다만 타이머의 시간이 계속 흘러간다.

이혼의 마음도 조급해진다.

저 시간이 끝나면······.


‘왠지 아무것도 못 하고 끝날 거 같다.’


과거를 바꿀 기회가······.


* * *


한편, 입궐할 때, 얼핏 광해군 이혼을 본 류성룡. 고개를 갸웃했다.


‘어인 일이실까?’


광해는 왕자 중에서 가장 품행이 단정했다. 또한, 몹시도 신중했다. 더구나 최근에는 더 숨을 죽이며 살았다. 지난해 그를 세자로 책봉해야 한다고 읍소한 정철이 귀양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런 광해가 수많은 대신이 오가는 그 시각, 그 자리에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얼굴이었다.

정확히는 무슨 일이 터졌다는 것을 아는 표정과 눈빛이라고나 할까?


‘어인 일이냐고 물어봤어야 했나?’


절대 실행할 수 없었던 생각을 품은 류성룡.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에 빈청으로 향했다. 역시나······.


“좌상 대감, 경상 좌수사 박홍의 장계가 왔소이다.”


편전에 모인 많은 신료. 그중 사간원 사간인 윤승훈이 흉보를 알렸다.


“왜군이 나흘 전에 부산포를 함락했다고 합니다.”

“아니, 그게 사실이오?”

“그렇소이다. 방금 전해진 급보요.”

“그럼, 함락일이 언제요?”

“나흘 전 일이라고 하고, 그 장계를 뒤따르는 적병이 밤낮을 달려 북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류성룡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어쩐지 아까부터 불길하더라니. 아니, 그보다 며칠 전에 비둘기처럼 생긴 회색빛 새 한 마리가 몹시도 구슬프게 울더라니.


‘그래, 그게 나흘 전이었지.’


이 짧은 순간에도 신료들은 믿기지 않은 급보에 탄식을 토해내고 있었다.


“아니, 봉화가 왜 오지 않은 것이오?”

“나도 그게 의문이오. 그렇다고 장계를 안 믿을 수는 없고······.”

“승정원은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소. 전하께서는 어찌 아직 들라는 명이 없는 거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적들이 지금 어디까지 올라오고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마음만 조급하오.”


그때 다시 윤승훈이 류성룡을 향해 물었다.


“좌상 대감, 부산포 함락이라면 을묘년 수준의 변은 되는 것 같소이다. 뭔가 빨리 대책을 논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을묘년의 변. 삼십 년도 넘게 지난 을묘왜변을 뜻한다.

당시 왜구 7천은 전라도를 약탈·유린하고 제주도를 침략했다.

굳이 오래전 그 사건과 비교하는 이유. 부산포 함락이 주는 충격 때문일 것이다.

사실 ‘왜변’은 늘 있었던 왜구의 노략질과 차원이 다르다. 조선의 땅을 본거지로 삼고, 육로나 해상권을 장악하려는 계획적인, 즉, 전쟁에 가까운 침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류성룡의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이거, 그때 황 참판의 말이 옳다면, 왜변이 아닌 왜란이 될지도 모르겠구나······.’


황 참판이란 병조참판 황윤길을 뜻한다. 서인인 그는 2년 전 통신정사로 일본에 파견되었다가 작년에 귀국했다.

그는 장차 일본이 반드시 침략할 것이므로, 단단히 방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함께 간 통신부사 김성일이 이를 부정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인물됨이 보잘것없었단다. 준비된 군사도 없었단다.

이 엇갈린 주장으로 신료들은 양쪽으로 편이 갈려야 했다.

누구나 알 듯, 김성일은 동인이다. 지금은 동인의 입김이 더 강해지던 시기. 서인인 황윤길 의견이 뭉개져 버린 것은 필연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같은 동인임에도, 류성룡은 나중에 따로 김성일을 불러 물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라고 여겼기에.


- 만약 전란이 난다면 어찌하시려고, 그렇게 확신하셨습니까?

- 확신하지 않았습니다.

- 아니, 그럼······?

- 민심이 놀라고 조정이 혼란해질까 저어되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한다. 당시, 김성일 역시 그릇된 판단을 했다는 걸 류성룡은 알아챘다. 그렇지만 결국 류성룡도 실수한 셈이었다. 김성일의 속내를 들었으면서도, 전란을 단단히 대비하지 않았으니.


“휴······.”


오늘도 말을 아끼며, 답답한 마음을 한숨으로 내쉬어 본다.

더 큰 문제는 잠시 후 금상 이연의 태도로 돌아왔다. 들라는 명이 없자, 어쩔 수 없이 류성룡과 신료들이 그를 찾아뵈었는데.


“이른 시각에 어인 소란이요. 봉화가 오른 것도 아니고, 그저 장계 한 장인 것을.”


인빈 김씨와의 지난밤을 보낸 노곤함이 주상을 덮쳤을까? 임금은 나른한 표정으로 신료들의 청을 그저 호들갑 정도라고 치부했다.

어쩔 수 없이, 류성룡도 나아가며 한마디 더 보태봤다. 아니, 그러려고 했지만.


“전하······.”

“알았소. 이 일은 해라도 중천에 오른 뒤에 다시 논의하도록 하겠소.”


류성룡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이런······.’


속으로 탄식하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순간, 대신들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주상께서는 이 일을 너무 가벼이 여기시는 것 같소.”

“아까 비변사가 뵙기를 청했는데, 윤허하지도 않으셨다고 하오.”


한 번 더 말을 아끼는 류성룡. 즉시, 신료들에게 조심하라고 전했다. 그렇지만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는 것 같아서, 심경이 몹시도 복잡했다. 그 마음을 풀고자, 잠시 궐 밖으로 나섰다.

왜일까? 아침에 잠깐 봤던 광해를 떠올랐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지금 순간, 그가 생각날 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임금의 명을 기다리다 지칠 무렵.


‘응?’


저 멀리서 다가오는 광해를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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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대마도에서 꿈꾸는 대항해시대 - 3 +4 24.09.01 1,209 40 12쪽
59 대마도에서 꿈꾸는 대항해시대 - 2 +1 24.08.31 1,243 42 12쪽
58 대마도에서 꿈꾸는 대항해시대 - 1 +3 24.08.30 1,308 4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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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7 +2 24.08.28 1,276 38 11쪽
55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6 +6 24.08.27 1,328 4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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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4 +1 24.08.25 1,374 42 12쪽
52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3 +3 24.08.24 1,429 47 11쪽
51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2 +1 24.08.23 1,477 4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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