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범이 매점에서 부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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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졸한톳찜
그림/삽화
옹골찬멸치국밥
작품등록일 :
2024.07.0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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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1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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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6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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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부활

DUMMY

나는 재빠르게 뛰어올라 포터 위 공구 상자를 끄집어 내렸다.

이내 도끼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전면전이다···!’

작전은 전부 구상해 놓았다.

이래 봬도 머리 하나는 잘 돌아가는 편이기에.


휙-

허공에 내 점퍼를 두른 공구 가방을 집어 던진다.


피융-

화살이 날아와 공구 가방을 정확히 타격한다.


다시 봐도 무서운 활 솜씨였지만, 노인이 들고 있는 것은 총이 아니라 활이다.

한 발, 한 발 사이의 발사 간격이 꽤 컸던 것이라.

그리고 그 틈은 내가 포터 뒤에서 뛰쳐나오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휙-

나는 포터 뒤에서 재빠르게 튀어나와 공구 상자에 들어있던 장도리 하나를 노인의 쪽으로 있는 힘껏 던졌다.

노인은 당황하며 자세가 흐트러졌고,

장도리를 피하느라 찰나의 시간 손실이 발생했다.


“으아아아!”

나에게는 그 찰나가 천금 같은 시간이었다.

노인이 나에게 활을 당겨 겨눴을 때.

나는 이미 사과나무 뒤에 숨어든 뒤였다.


후우웅!-


콰직!-

어깨 축에 의해 힘이 실린 도끼가 재빠르게 나무를 강타한다.

땅이 흔들릴 정도의 큰 굉음과 함께 나무가 휘청거리기 시작한다.


“이 고얀 놈이!”

노인이 목이 찢어질 것만 같은 괴성을 내지르며 나를 위협한다.

이따금 날아오는 화살이 사과나무로 향한다.


그러나 아낌없이 주는 사과나무는 노인의 화살마저 막아주었다.

결별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주는 나무의 선물이었다.


콰직! 콰지직!

사과나무가 피를 토하듯 붉은 사과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후드득후드득 소리를 내며 무수히 많은 선악과를 쏟아내는 것이었다.

휘성은 아버지가 자식처럼 여기시던 사과나무를 베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형아가 미안하다. 근데 솔직히 니 열매 존나 맛없어.”


휘성이 나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사과나무는 그런 그의 도끼질을 묵묵히 맞아주었다.

나쁜 남자와 아낌없는 유기체의 교과서적인 교류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콰직!-


콰직!-

그렇게나 두꺼운 사과나무인데, 마치 귀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아니. 이미 귀신이 들린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계속해서 내려찍기 시작했다.


슈웅- 슈우웅-

화살 비가 매섭게 쏟아진다.


슈우웅-

퍽!-


“으윽!”

가끔 위협적인 궤도로 날라와 휘성을 노리던 화살 하나가 바람을 타고 굴절되어 그의 허벅다리에 정확히 박히고, 휘성은 난생처음 겪어보는 고통에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마음을 다잡고 도끼질을 멈추지 않았다.

노인이 이렇게까지 격노하여 활을 쏜다는 것은, 그의 계획이 흐트러지고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휘성은 자신이 사과나무를 건드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얼추 느낄 수 있었다.

상황은 확실히 바뀌고 있었다.

뭣 같은 이유로 자신을 죽이려 드는 사람에게서 최대한 저항하는 것.

그 사람의 미친 논리를 온몸으로 부정하고 난 뒤,

마지막에는 목청이 터져라 비웃는 것만큼 쾌락적인 것도 없었다.


지금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긴장에서 나오는 아드레날린인지,

아니면 쾌락에서 나오는 엔도르핀인지도 모른 채 미친 듯이 도끼를 휘두른다.


“멍청하구나! 니 몸뚱이를 가릴 만큼 큰 나무가 그리 쉽게 잘릴듯싶으냐!”


나는 그의 일리 있는 주장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 도끼, 스위스제라 잘 박혀요~.’라는 식의 억지라도 부려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내 개인적인 객기에 불과했다.

의미 없는 공상론이 가득 투영된 객기 말이다.


#그러던 그 순간.

귓가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아른거렸다.


‘아이야, 거세게 휘둘러라.’


“어···?”


‘아이야, 아이야, 장군님 노하셨다.’

무람의 원한 섞인 목소리였다.


‘아이야, 아이야, 피의 복수를 해주시오.’

그때였다.

잔뜩 부풀어 오른 휘성의 혈관이 매우 붉게 물드는 것이 아닌가.

귓불에서부터 시작된 혈류가 온몸 구석구석에 퍼지기 시작한다.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두 눈이 충혈되어 피의 호수를 담았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의 동공이 점점 가늘어지더니 영락없는 호랑이의 눈이 번뜩였다.


‘빙의의 대가로 사과나무를 가져가겠네. 미안하오.’


콰광!-

여껏 들어본 적 없는 폭발 소리가 산 전체에 울려 퍼졌다.

눈앞에서 펼쳐진 상황은 폭발이 아니었다.

‘마찰’과 ‘충격’이었다.

오로지 휘성의 도끼질에서 흘러나온 소리였던 것이다.


“이게 무슨 괴력이란 말인가!”

노인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멈춰! 멈추거라! 아이고 이놈아! 무지몽매한 녀석아!”

멈추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노인의 표정이 눈앞에 선하게 보인다.


웃겼다.

어느새 화살도 다 떨어져서는 비참하게 절규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웃겼다.

지금 절규해야 할 사람이 누군지 잊으신 것 같았다.


이상한 괴담으로 인해 손님이 줄고,

자다가 집이 불타고,

정신병자 노인이 쏜 화살까지 박힌 내가 불쌍해야 하는 상황 아니던가.


“너는 지금 장산범에게 현혹이 된 것이야! 당장 멈추게! 네 이놈!”

노인이 앞뒤 안 가리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나에게 달려들었다.

도끼를 든 휘성에게 노년의 광인이 맨몸으로 달려들었다.


노년의 광인은 계속해서 괴물의 존재를 들먹이며 휘성을 말렸지만,

송곳니를 드러낸 매점 주인은 멈추지 않았다.


콱!-

노년의 광인이 화살이 꽂힌 허벅다리를 물어뜯으며 저항해 보지만,

오두막이 전소해 버린 매점 주인은 멈추지 않았다.


푹-

떨어져 있던 화살을 주워 그대로 복부에 쑤셔 넣어 보지만,

웬일인지 매점 주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노인은 느꼈다.

휘성은 지금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한순간 호랑이였다.

이 산의 진정한 주인이며 사과나무의 주인이기도 했다.


꽈아악-

노인은 휘성의 허벅다리를 더욱 거세게 물어뜯었다.

광인의 늙은 이빨이 하나둘 떨어져 나갈 정도의 악력이었지만,

휘성은 멈추지 않았다.


휘성은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당장 도끼로 노인의 자뇌와 우뇌를 가르고 싶은데···!’

‘그러고 싶은데···!’

“아우! 시발 진짜아!!”


하지만 생각처럼 그럴 수는 없었다.

저런 허접 늙다리 정신병자로 인해 살인 혐의를 뒤집어쓰고 싶지 않았다.

몸은 영락없는 호랑이 파워를 가졌지만, 정신만큼은 법치 국가의 시민.

나는 기둥이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하는 사과나무를 노인 대신 노려보며 악으로 깡으로 버티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맹공격을 퍼붓는 노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쌍방은 과하다! 일방적인 살인미수로 갑시다 우리! 그게 훨씬 깔끔하잖아!”


쾅!-


쾅!


콰직!-


장산범이 무시무시한 괴물이든, 악랄한 살인자이든 아무 상관 없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장산범이라고 불리는 김무람이 현재 나에게 힘을 주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지금은 도끼질 한 번 한 번에 온 힘을 실을 뿐이었다.

허리에, 팔에, 손목에, 손가락 하나 하나에 혈액이 순환하는 것을 느낀다.

워낙 빠른 속도로 회전한 탓에, 손가락 끝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이때 발생한 원심력은 팔이 뜯겨 나가는 듯한 고통을 선사했고,

덩달아 발생한 구심력은 근육 세포 다발이 물러 터지는 듯한 고통을 선사했다.


“내가 가더라도 니는 잡고 간다.”

이 말은 순전히 사과 나무에게 한 말이었다.

노인에게 보내는 충고이기도 했다.


‘그만 단념해. 틀니값만 비싸질 테니까. 임플란트라면 더더욱···!’

고통으로 충혈된 두 눈을 부릅뜨곤, 처절하게 저항하는 노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쾅!


콰지직!


크으응!

불타오르던 오두막을 꿋꿋이 지키고 있었던 사과나무는 자신의 화려한 절단으로 이 사단의 마무리를 장식했다.


“이···. 이놈아···. 아이구 이놈아!”


“그 못난 장산범 지금 꺼내드렸어요. 마주 잡고 만수무강하셔요. 할아버지.”


노인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휘청거리며 쓰러진 사과나무를 바라보다가

이내, 우당탕거리며 추하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탁!-


탁!-


탁!-


“으, 으어어···. 으아악! 젠장!”

그의 모습은 정말로 겁에 질린 듯했고,

나는 다시 한번 그가 노망이 난 미치광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주변에는 쓰러진 사과나무 하나뿐이었는데도,

계속해서 몸부림치고 추하게 도망가는 그의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물론 안쓰럽다는 발언은 빈말이다.

실제로는 어이가 없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해서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으어어으어···. 장산범! 장산범이야! 아이구! 살려주시게! 아이고 사람 살려어···.”

노인이 숨을 헐떡이며 산을 뛰어 내려간다.


콰르륵!-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뼈가 부러져도 멈추지 않고 뛰어 내려간다.

“으헉. 헉. 장산범이 날! 장산범이···!”


“끄아아아악!”

계단식 녹차밭의 찻잎에 살갗이 찢겨나가도 멈추지 않고 뛰어 내려간다.


그가 급하게 뛰어 내려가던 와중에 낡고 헤진 폴더폰을 꺼내어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아···. 죄송하믑. 죄송합니데에···.”

누군가에게 하는 것인지 모를 사과를 연발하며 전화를 두드리는 것이었다.


나는 혹시 그가 119에 신고라도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급하게 뒤를 따라 뛰어갔다.

벌써 정신을 차리고 신고하려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좀 더 미쳐 날뛰어서 나를 한 대만 때려주길 바랐다.

그래야 정당방위 여신님의 가호가 함께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존나 세게 패고 싶다.’

내 머릿속에는 이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때였다.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고 있음을 육감으로 느낀 나였다.


슈우웅-


팅!


콰지직-


뒤에서 갑작스럽게 날아온 화살이 내 옆을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나는 본능적으로 불타는 오두막 쪽을 바라보았다.

불타는 오두막의 후광을 배경으로 걸어 나오는 누군가가 보였다.


“사람이···. 있었나?”


수수한 흰색 한복을 걸치고 천천히 걸어 나오는 여자의 모습.

어느새 떨어져 있던 활과 화살통을 쥐고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신기루를 보는 듯한 그녀의 자태에 잠시 멍해진 나.

이내 다시 정신을 차리고 화살이 날아간 곳을 바라본다.


“끄으으윽···. 허억. 허억. 끄으으···. 끄으으. 끄아아아악! 아아아악!”


전화기를 쥐고 있던 노인의 손목이 보였다.

그의 손목이 비정상적으로 덜렁거렸다.

몇 초가 더 지난 뒤에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의 손목은 두부처럼 부드럽게 관통되어 있었으며,

선혈이 낭자하여 푸른 녹차잎을 홍차 잎으로 물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장산범! 아니, 김··· 김무람, 내가···. 내가···. 잘못했네! 다시는 건드리지 않을 터이니 이번만 눈감아 주시게. 옛 가족 식구들도 자네가 이러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야.”

노인이 부르짖으며 장산범으로 보이는 여자에게 자비를 구했다.


그러나, 그녀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다가올 뿐이었다.

여전히 무표정의 상태를 현상 유지 중인 여자의 얼굴은 겁이 없는 편인 나마저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차갑고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잘못했네. 전부 내가 잘못했네. 한 번만 살려주시게···.”

노인은 오줌을 질질 흘리며,

관통당해 움직이지도 않는 손과 반대쪽 손을 겨우 모아 싹싹 빌기 시작했다.


터벅-


터벅-


터벅-

무표정의 얼굴이 가까워지자,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보였다.

그녀는 꿈속에서 질리도록 보았던 무람이라는 자의 얼굴이었다.

혈류가 흐르지 않는 마물의 얼굴.

세월을 거슬러 복수를 다짐한 가짜 인간.

.

.

.


‘장산범...!’

이제 더는 꿈속의 형상이 아닌 것.

그녀의 실체는 점점 더 도드라지고.

나는 넋이 빠져 온몸이 경직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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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화. 마무리 정리 24.08.17 2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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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화. 귀기 누적의 부작용 24.08.15 3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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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9화. 데라의 심리는 24.08.12 32 0 11쪽
18 18화. 결계 속의 스몰 토킹 24.08.11 34 0 11쪽
17 17화. 접선까지만. 24.08.08 36 0 12쪽
16 16화. 결별과 추격의 때 24.08.08 35 0 9쪽
15 15화. 거래의 성립. 24.07.30 37 0 12쪽
14 14화. 빈민가 저항군들 24.07.30 38 0 11쪽
13 13화. 엄연한 정당성 24.07.26 38 0 10쪽
12 12화. 능력의 일각 24.07.26 34 0 9쪽
11 11화. 깊은 오해 24.07.24 3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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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화. 미행범은 아군인가 24.07.19 40 0 12쪽
8 8화. 대항마의 움직임 24.07.18 4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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