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나르트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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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모
작품등록일 :
2024.07.17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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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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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동하는 잠룡

DUMMY

"네가 왜 마차에 타고 있어? 넌 걸어와."




마차에 오르자마자 시비를 걸어왔다. 동행하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을 텐데 니나는 괜한 심술을 부렸다.




"아가씨, 레이도 아가씨랑 함께 입학합니다. 여기서 먼 거리니 같이 가야 합니다."




가르펜이 니나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그래도 싫어, 쟤 냄새난단 말이야. 나 같은 귀족 아가씨가 저런 하층민과 같은 마차에 타는 게 말이나 돼?"




가르펜은 니나가 한 번 고집을 피우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할 방법이 없자 가르펜은 마차 밖에 있는 카타리나에게 구원의 눈길을 보냈다.




그제서야 카타리나는 마차 창 안을 보며 니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니나, 같이 가기로 했는데 왜 그러니? 이건 기품 있는 숙녀가 할 행동이 아니야."




니나는 좋은 말로 달래는 엄마에게도 떼를 썼다.




"싫다니까 왜 그래? 쟤한테서 진짜 냄새난단 말이야."




막무가내로 고집을 피우는 니나를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눈치를 보던 레이나르트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니나 아가씨 말대로 전 걸어서 갈게요. 제가 내릴게요."




가르펜이 레이나르트를 만류했다.




"거기가 어딘데 걸어서 간다는 거냐."




"아니에요. 니나 아가씨가 불편하다고 하니 제가 걸어가면 돼요."




잔뜩 심술을 부리던 니나는 자기 장난감이 이렇게 쉽게 항복을 하자 김이 샜다. 그렇다고 자기 말을 물리기도 무안한 상황이었다.




레이나르트가 마차 문을 열고 막 내리려 하는 찰라 니나는 소리를 질렀다.




"야, 마부석 옆에 타! 괜히 불쌍한 척 하지마!"




가르펜은 마차에서 내리려던 레이나르트를 바로 붙잡았다. 가르펜은 레이나르트 머리에 손을 올려 고개를 수차례 숙이게 했다.




"레이, 어서 아가씨께 감사하다고 인사해야지? '아가씨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해."




마음 같아서는 학교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어머니가 계신 홀츠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라 참고 또 참았다.




"니나 아가씨,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를 한 후 레이나르트는 마차에서 내려 마부 옆으로 가 앉았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마침내 마차는 트레비앙 유년학교를 향해 출발할 수 있었다. 카타리나는 딸이 학교에서 별다른 사고를 치지 말기를 기원하며 마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마부 옆 자리는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다. 이제 막 겨울이 끝나가고 있어 바람이 차긴 했지만 탁 트인 전방을 바라보자 기분이 한껏 상쾌했다.




레이나르트는 마부와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여행을 즐겁게 만끽했다.




마차 안에 있는 니나는 또 심기가 편치 않았다. 괜한 심술을 부려 레이나르트를 마부석으로 보내는 바람에 말동무가 없어 심심했다.




맞은 편에 가르펜이 앉아 있었지만 50세를 넘긴 늙은이와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가르펜, 우리 얼마나 가야돼?"




"네, 아가씨. 앞으로 서너 시간은 더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서너 시간을 더 이렇게 심심하게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미칠 것 같았다. 슬쩍 마부석을 보니 레이나르트는 마부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혼자만 즐거운 걸 보니 또 심술이 났다.




'난 심심해 죽겠는데 넌 그렇게 즐거워?'




"가르펜, 잠시 마차를 세워."




"네? 이제 출발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요. 뭐 필요하신 게 있으신가요, 아가씨?"




"그냥 세우라면 세워."




니나는 말대꾸를 하는 가르펜에게 괜히 성질이 났다. 가르펜은 저 꼬마아가씨가 또 무슨 트집을 잡으려고 이러는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마차가 서자 니나는 마차에서 내려 레이나르트를 불렀다.




"왜 그러세요 아가씨?"




"너, 뒤에 타."




"괜찮습니다 아가씨. 마부석이 그렇게 불편하지 않아요."




자존심을 꺾고 호의를 보였는데 그걸 거절하자 니나는 화가 잔뜩 났다.




"그냥 걸어서 갈래? 내가 뒤에 타라면 탈 것이지 뭔 말이 그렇게 많아?"




레이나르트는 더 참지 못하고 한 마디를 하려 했다. 이를 눈치 챈 가르펜이 재빨리 레이나르트의 입을 막으며 말했다.




"레이, 뭐하는 거니? 아가씨께서 이른 은혜를 베푸셨는데 '감사합니다'라고 하고 얼른 뒷자리에 타야지."




레이나르트는 다시 한 번 화를 삭이며 이를 갈았다.




"니나 아가씨, 하해와 같은 은혜 감사합니다."




니나는 레이나르트의 인사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마차 위로 올랐다. 가르펜은 레이나르트를 달래가며 마차 위로 함께 올랐다.




레이나르트는 가르펜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다보니 니나와 어쩔 수 없이 마주볼 수밖에 없었다.




니나의 눈과 마주치면 또 무슨 트집을 잡을지 몰라 레이나르트는 시선을 바깥으로 돌렸다.




니나는 맞은 편에 있는 레이나르트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동안 남루한 옷을 입고 있던 레이나르트만 봐왔던 니나는 오늘처럼 말쑥하게 차려입은 레이나르트가 어색했다.




레이나르트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니 짙은 눈썹에 푸른 눈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하층민답지 않게 뽀얀 피부와 오똑한 콧날을 보고는 참 잘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자 니나의 얼굴이 자기도 모르게 발그레 달아올랐다. 니나는 흠칫 놀라며 자신의 마음을 남에게 들킨듯 부끄러워졌다.




자기를 부끄럽게 만든 게 레이나르트라고 생각되자 갑자기 화가 났다. 니나는 맞은 편에서 바깥 풍경에 심취돼 있는 레이나르트의 종아리뼈를 툭 찼다.




"앗... 아야..."




레이나르트가 쳐다보자 니나는 짐짓 모른 채 하며 창 밖을 응시했다.




"니나 아가씨 왜 그러세요?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세요?"




"뭔 소리야? 내가 너한테 뭔 할 말이 있겠어?"




"그런데 제 종아리는 왜 차셨어요?"




"뭐? 내가 너 종아리를 찼다구? 증거 있어?"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딱 그짝이었다. 니나가 불 같이 화를 내자 레이나르트는 더 말을 섞기 싫어 사과했다.




"니나 아가씨, 죄송해요. 제가 사과드릴게요."




레이나르트가 또 고개를 숙이자 그게 또 못마땅했다.




"그러니까 죄송할 짓 하지마. 어디를 기어올라."




레이나르트에게는 힘겨운 여정이었다. 서너 차례 더 니나와의 푸닥거리를 한 후 겨우 트레비앙 유년학교에 도착했다.




드넓은 대지 위해 건립된 트레비앙 유년학교는 총 7개의 건물로 이뤄져 있었다. 그중 2채는 각각 남녀 기숙사로 운영되고 있었다.




중앙 교정은 전체 학생 150여명이 뛰어 놀기에 충분할 정도로 넓었다. 교장실이 있는 교무처 건물 앞에는 트레비앙 바르테스의 동상이 학생들을 굽어보듯 서 있었다.




레이나르트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입학생 대부분이 교정에 모여 있었다. 학교란 곳을 처음 본 레이나르트는 교정에 서서 휘둥그레진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니나."




저 멀리서 레이나르트가 탄 마차가 도착하는 광경을 지켜보던 학생 중 하나가 다가오며 니나의 이름을 불렀다.




"어, 빌헬름 오빠? 오빠가 언제 글라츠로 돌아왔어? 오빠도 여기 학교에 다니는 거야?"




헬무트의 외동 아들 빌헬름이었다. 빌헬름 역시 유년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지난달에 어머니랑 가족 모두가 글라츠로 돌아왔어. 아버님께서 앞으로 계속 글라츠에 머물 거라며 날 이 학교로 입학시켰지."




"그래? 오빠랑 같이 다니면 재밌겠다."




둘은 그동안 묵혀뒀던 이야기를 다 하려는 듯 한참 동안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 니나 뒤편에서 어정쩡한 모습으로 서 있는 레이나르트가 빌헬름의 눈에 띄었다.




"쟤는 누구니? 네 시중을 드는 하인이니?"




빌헬름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거기에 레이나르트가 서 있었다.




"쟤는 신경 안써도 돼. 우리 집에 있는 애인데 하인 비슷해."




니나의 말에 빌헬름은 한껏 거들먹 거리며 레이나르트에게 호통 쳤다.




"비젠도르프 가문의 하인이면 하인답게 가문의 후계자 앞에 와서 머리를 조아려야지 거기서 뭐하는 게냐?"




곁에 서 있던 가르펜은 '가문의 후계자'라는 말이 거슬렸다. 카타리나가 만약 이 말을 들었다면 한바탕 난리를 치렀을 터였다.




가르펜은 얼른 레이나르트에게 인사하라고 말했다.




"빌헬름 도련님, 안녕하세요. 전 레이나르트 키실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전 하인이 아닙니다."




빌헬름은 레이나르트가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대답을 하자 버럭 화가 났다. 하인 주제에 자신에게 대드는 것으로 보였다.




"이봐 가르펜, 도대체 집안에서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감히 하인이 주인에게 저렇게 말하는거지?"




빌헬름이 레이나르트를 한 대 때릴 기세로 다가서자 가르펜이 급히 그 앞을 막아섰다.




"도련님, 고정하십시오. 레이는 아가씨의 시중을 드는 하인이 아닙니다. 이번에 같이 학교에서 공부할 입학생입니다."




"뭐? 여기서 공부를 한다고? 언제부터 종놈에게 공부를 가르쳤나? 나중에 할아버지께 단단히 말씀드려야겠군."




교정에 도착하자마자 또 한바탕 홍역을 치르자 가르펜은 과연 레이나르트가 제대로 공부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레이나르트를 곁에서 지켜본 가르펜은 레이나르트가 매우 똑똑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빌헬름이나 니나처럼 귀족이라는 자부심으로 가득찬 아이들 사이에서 얼마나 견딜까 안타까웠다.




입학식이 끝나고 입학생들은 각자 자기 방을 배정받아 기숙사로 향했다. 본격적인 수업은 내일부터 시작이었다.




레이나르트는 남자기숙사 4층 403호를 배정받았다. 레이나르트가 자신의 짐을 챙겨 방에 들어섰을 때 방 안에는 룸메이트가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안녕, 이번에 입학한 학생이구나. 반가워. 난 그레고르 브레히트라고 해. 그렉이라고 부르면 돼."




"어 안녕, 난 레이나르트 키실링이야. 만나서 반가워. 레이라고 불러."




"그래 레이, 저기 침대 2층을 네가 쓰면 돼. 새로 룸메이트가 온다고 해서 깨끗하게 치워뒀어."




"고마워."




레이나르트보다 한 살 많은 그레고르는 2년 전부터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귀금속상인으로 큰 돈을 모은 아버지를 둔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비젠도르프 영지 내 멜크에서 자란 그레고르는 고향에 있는 수도원학교에서 기초교육을 받은 후 이곳으로 유학왔다.




어릴 때부터 귀족 못지 않게 풍요로운 가정환경에서 자랐지만 귀족들의 허세나 거드름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남을 세심히 배려하는 것은 물론 겸손함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자 레이나르트는 금세 그레고르의 성격을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약간 내성적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조용한 성품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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