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나르트 연대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대체역사

제이모
작품등록일 :
2024.07.17 04:50
최근연재일 :
2024.08.05 00:05
연재수 :
95 회
조회수 :
1,600
추천수 :
5
글자수 :
455,697

작성
24.08.04 00:05
조회
5
추천
0
글자
10쪽

주교살인사건

DUMMY

봉사활동을 마친 후 안젤라를 포함한 봉사단원들은 모두 미어덴 회당으로 향했다. 봉사활동은 주로 안식일 전날인 금요일에 진행됐다. 봉사활동이 끝나면 미어덴 회당에서 하룻밤 묵고 다음날 미사를 참석한 후 복귀하는 식이었다.




미어덴 회당으로 도착했을 때는 제법 어둠이 짙어지고 있을 때였다. 회당 앞에서 안젤라 일행을 기다리던 에르탱은 먼발치에서 이들을 보자마자 달려와 인사를 건넸다.




에르탱에게 안젤라는 비루했던 인생을 바꾸게 해준 은인이었다. 시골 교부로 고리대금업이나 하며 인생을 탕진하고 있던 에르탱이 하루아침에 주교 자리까지 오른 것은 교황청으로 보냈던 안젤라가 파티마가 됐기 때문이었다.




만약 안젤라가 평범한 신녀로 머물렀다면 에르탱 역시 지금까지 고리대금업으로 돈이나 모으는 비루한 사제로 머물고 있었을 터였다.




에르탱이 버선발로 달려가 인사를 건네려 한 것은 자신의 출세에 대한 고마움에다 교단 직급상 파티마가 훨씬 높기 때문이었다.




파티마는 신녀가 오를 수 있는 최고 지위로 남성 사제와 비교한다면 대주교보다는 높고 추기경보다는 약간 낮은 지위였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추기경조차도 파티마를 아랫사람으로 대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이는 파티마가 성모정교를 신봉하는 각 제후국의 왕실에서 수행해야하는 임무의 중대성 때문이었다. 성모정교가 제국을 지탱하는 기둥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각 제후국의 통제가 필수적이었다. 이를 위한 최전선에 파견된 교황청의 밀사가 다름아닌 파티마였다.




파티마는 제후국 왕궁으로 파견돼 공식적으로는 국왕의 신앙증진을 돕고 제후국이 성모정교의 울타리가 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물론 이는 공식적인 역할이고 비공식적으로는 국왕의 애인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파티마의 처녀성은 중요했고, 그 결과 어릴 때 수도원으로 들어온 여아들만이 파티마 후보가 될 수 있었다. 이 아이들이 자라면서 다양한 교육과정을 거치게 되고 여러 관문을 거쳐 파티마로서의 교양을 쌓는다. 그리고 18세 무렵 파티마로 선발되는데 워낙 경쟁이 치열해 파티마가 되는 인원은 100명 중에 한 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파티마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관문은 국왕의 눈에 들어야 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뛰어난 외모였다.




파티마로서 사는 삶의 진실을 알지 못하는 교단의 신녀들은 왕궁에서 고고하게 살아가는 파티마가 자신들의 로망이었다.




한편 이론상으로는 신녀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위는 성녀였다. 하지만 성녀는 하나의 상징적 지위로서 교단이 현재의 체계를 갖춘 이래 800년 동안 성녀의 자리에 오른 이는 단 3명밖에 없었다. 교단 율법에 따르면 성녀는 신성한 존재로 교황과 동등한 권위를 지니게 된다.




"파티마님 먼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반갑게 안젤라에게 인사를 건넨 에르탱은 가까이서 안젤라의 얼굴을 보고는 너무 놀라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 했다.




20여년 전 안젤라를 낳은 도리아와 너무도 흡사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젤라는 열 살 무렵 파티마 교육을 받기 위해 교황청이 있는 로텐부르크로 떠났기 때문에 에르탱도 성인이 된 안젤라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에르탱의 인사를 받은 안젤라는 성호를 그으며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올리베르의 말을 전적으로 다 믿을 수 없지만 절반만 맞다고 하더라도 에르탱은 분명 죄인이었다.




이런 죄인과 말을 섞는다는 것 자체가 역겨웠던 안젤라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당장 교단에 이 사실을 알려 에르탱을 종교재판소에 넘기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담았다.




안젤라는 에르탱 이외의 다른 사제들에게는 반갑게 인사를 건네면서 일행을 이끌고 조용히 회당 안으로 들어갔다. 에르탱은 자신에게만 유독 쌀쌀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도 기분 나쁜 티를 낼 수 없었다. 엄연히 교단 위계상 안젤라가 에르탱보다 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르탱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신녀훈련생들이 묵을 방들을 안내해주며 안젤라의 마음을 사기 위해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지는 않았지만 파티마가 교단에 입김을 넣을 만큼의 권력은 가지고 있었다. 괜히 밉보이는 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게다가 에르탱은 주교에 만족하지 않고 더 출세하고 싶었다. 파티마를 배출한 덕분에 교부에서 주교까지 수직 상승한 에르탱은 이 정도에서 만족할 만도 했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지가 않았다.




주교가 되고 난 이후 에르탱은 더 큰 도시의 교구를 책임지는 대주교가 되고 싶었다. 미어덴처럼 작은 도시는 더 이상 자신의 욕심을 채워줄 수 없었다.




그런데 주교와 대주교는 한 직책 차이였지만 그야말로 하늘과 땅처럼 그 위상에서 차이가 있었다.




대주교가 되기 위해서는 능력도 있어야 했고 다른 여러가지 필요한 요소가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 교황청에 끈이 있어야 했다. 평생을 미어덴에서 보낸 에르탱에게 교황청과 연결되는 끈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런 면에서 안젤라의 미어덴 방문은 하늘이 주신 기회였다. 벨라시타에 머물며 프란디아의 대주교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안젤라를 이용한다면 대주교가 되는 게 꿈만은 아닐 것 같았다.




사실 이런 촌구석 회당에서 파티마를 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파티마 후보로 로텐부르크에 간다 하더라도 실제 파티마가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미어덴에서 파티마 후보를 보냈다는 것만도 그 당시에 마을이 들썩거릴 정도의 뉴스였다.




그런데 파티마가 이런 촌구석에 온다는 것은 그야말로 빅뉴스였다. 은퇴한 파티마의 경우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 마지막 봉사활동을 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아직 탱탱한 젊음을 가진 현역 파티마가 온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안젤라는 프란디아의 국왕 코를리우스 1세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총애를 받던 파티마가 아니던가.




에르탱은 자신을 냉담하게 대하는 안젤라가 의아스럽긴 했지만 원래 성격이 도도해서 그럴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했다. 에르탱은 안젤라를 미어덴 회당이 증개축을 한 후 가장 아름답게 꾸민 영빈관으로 안내했다.




조그만 시골 회당이었던 미어덴 회당이 이처럼 규모를 넓힐 수 있었던 것도 순전히 안젤라 덕분이었다. 파티마를 배출한 교구에는 교단에서 특별교부금이 하사되고 회당도 증개축하는 게 상례였다.




에르탱은 특별교부금은 모두 자신의 주머니에 채웠지만 증개축 비용은 아낌없이 회당에 쏟아부었다. 그 결과 미어덴 회당은 교구의 규모와 달리 바덴부르크 주도 베르나우 회당에 필적할 만큼 웅장하고 아름답게 지어졌다.




안젤라도 미어덴 회당을 보고서는 그 아름다움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회당 내부도 모두 대리석을 깔아놓아 마치 파르마 왕궁에 와 있는 것 같았다.




"파티마님 불편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계속 냉담하게 대했는 데도 끊임없이 알랑대는 에르탱에 짜증이 확 밀려왔지만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스리고 가까스로 목소리를 내어 말했다.




"네 주교님도 어서 가서 쉬세요."








한편 아그네스는 올리베르의 고해성사를 듣고난 후 도리아와 안젤라의 모녀관계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가시지 않았다. 침대에 누웠지만 계속 맴도는 생각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그네스 옆에는 단짝 크리스타가 잠을 청하고 있었다.




"크리스타, 잠 들었니?"




"으응? 아그테스 어젯밤에도 우리 거의 날을 샜는데 안 피곤하니? 난 너무 피곤해서 자야될 것 같은데."




"오늘 파티마님께 고해성사를 한 올리베르씨 이야기가 계속 맘에 걸려."




"뭐라고? 고해성사를 들었단 말이니? 그건 큰 죄야. 오 성모님 아그네스의 죄를 용서해주세요, 마니모넬."




크리스타는 아그네스의 말에 깜짝 놀라며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성호를 그었다.




"크리스타 호들갑 떨지말고 얼른 다시 누워. 그런게 문제가 아니야."




아그네스는 낮에 들었던 이야기를 크리스타에게 들려주기 시작했다. 크리스타는 남의 고해성사를 듣는 것은 큰 죄라며 귀를 막았지만 아그네스는 아랑곳 하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어때 네가 보기에도 도리아란 여인이 안젤라 파티마님을 낳은 엄마 같지 않니?"




크리스타는 처음에는 안 듣는 척 했지만 흥미로운 아그네스의 이야기에 어느새 귀를 쫑긋 세우며 집중하고 있었다. 아그네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보니 안젤라가 도리아란 여인의 딸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이해가 됐다.




"그럼 이곳 에르탱 주교님이 악당이란 얘기니? 수도원 사람들 말로는 정말 훌륭하신 분이라고 했는데."




"나도 그 부분이 의아스러워. 그런데 올리베르씨가 파티마님을 도리아란 여인으로 착각해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잖아.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고해성사를 했어. 그분이 하느님 앞에서 거짓말을 할 리가 없어."




"몸이 편찮으신 분의 말이라 전부 믿을 순 없어. 하도 오래 전 일이라 그야말로 큰 착각을 했을 수도 있고. 정신이 온전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어?"




"아니야. 분명 뭔가가 있어. 난 그것이 뭔지 알아낼거야."




"그래 탐정님 나셨네. 하하. 난 이제 자야겠으니 탐정님은 계속 고민하세요~."




크리스타의 무덤덤한 반응에 아그네스는 바짝 약이 올랐다. 이 문제는 혼자서라도 반드시 파헤쳐 그 결말을 알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그래 내일 미사도 있는데 나도 일단 자야겠어. 크리스타 좋은 꿈 꿔~~."




"아그네스도~."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레이나르트 연대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1부 완결 24.08.05 6 0 -
95 태동하는 잠룡 24.08.05 4 0 10쪽
94 태동하는 잠룡 24.08.05 4 0 9쪽
93 태동하는 잠룡 24.08.05 3 0 10쪽
92 태동하는 잠룡 24.08.05 5 0 11쪽
91 테동하는 잠룡 24.08.05 5 0 10쪽
90 태동하는 잠룡 24.08.05 4 0 10쪽
89 태동하는 잠룡 24.08.05 3 0 10쪽
88 태동하는 잠룡 24.08.05 3 0 10쪽
87 태동하는 잠룡 24.08.05 5 0 12쪽
86 태동하는 잠룡 24.08.05 5 0 14쪽
85 태동하는 잠룡 24.08.05 4 0 12쪽
84 주교살인사건 24.08.04 6 0 11쪽
83 주교살인사건 24.08.04 5 0 11쪽
82 주교살인사건 24.08.04 7 0 11쪽
81 주교살인사건 24.08.04 6 0 9쪽
80 주교살인사건 24.08.04 3 0 10쪽
79 주교살인사건 24.08.04 4 0 11쪽
» 주교살인사건 24.08.04 6 0 10쪽
77 주교살인사건 24.08.04 4 0 10쪽
76 주교살인사건 24.08.04 5 0 9쪽
75 주교살인사건 24.08.04 6 0 10쪽
74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5 0 10쪽
73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3 0 11쪽
72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5 0 11쪽
71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3 0 11쪽
70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4 0 10쪽
69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5 0 10쪽
68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4 0 10쪽
67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8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