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나르트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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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모
작품등록일 :
2024.07.17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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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살인사건

DUMMY

가니에가 이 일을 기욤으로부터 통보받은 것은 다음날 정오 무렵이었다. 기욤이 전한 말 중 '교단의 특권이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말이 가장 거슬렸다.




'특별감찰이라니. 감히 우리 교단을 상대로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정녕 드라구노프라는 작자가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구나.'




이 일은 바덴부르크 대교구 차원에서 대응할 문제가 아니었다. 혁명정부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이 문제는 교황청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또는 군사적으로 해결해야할 사안으로 보였다.




또 하나의 문제는 미어덴 교구에 대한 특별감찰이었다. 지금껏 세속 권력이 교단을 상대로 이런 황망한 짓을 벌인 적이 없었다.




교단 감찰국이 보내온 자료에 따르면 미어덴 회당은 문제가 있긴 했다. 에르탱이 미어덴 고리대금업계의 흑막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고혈을 빨아온 것은 사실이었다.




게다가 기욤 부주교의 경우 여성 신도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최근에는 열여섯 살짜리 수습신녀를 임신시키기도 했다.




휘하 교부들 역시 성적으로 문란한 경우가 많았고 일부 교부들의 경우 첩을 거느리고 있었다.




어떤 교구라도 약간씩 문제가 있긴 했지만 미어덴의 경우 좀 심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에르탱이 살해되지 않았다면 조만간 교단 감찰국으로부터 징계를 받을 게 확실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문제는 교단이 알아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문제였지 세속 권력이 감놔라 배놔라 할 사안은 아니었다.




만약 이 같은 부정비리들이 백일하에 드러난다면 교단은 심대한 타격을 받을 게 확실했다.




교단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미어덴 교구의 일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은 막아야 했다.




가니에는 이 모든 일을 세세히 적은 뒤 교황청으로 전서구를 날려보냈다. 교황청 차원에서 벨라시타의 혁명정부를 압박한다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노벨도르프는 파블로 신병 확보가 계획대로 진행되자 곧바로 다음 조치에 들어갔다. 토마스에게 즉각 파블로를 재판에 회부토록 했다.




재판은 미어덴 교구에 대한 특별감찰을 실시한 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시작하도록 했다. 노벨도르프는 노튼 카시엘 대령을 위시한 감찰단 30명을 미어덴으로 급파했다.




카시엘은 군 정보국 슈피온에서 경력을 쌓은 수사 베테랑이었다. 노벨도르프로부터 이번 사안의 중요성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언 터라 엄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미어덴으로 향했다.




카시엘 일행이 미어덴으로 도착한 것은 불과 사흘만인 10월1일이었다.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최대한 서두른 결과였다.




미어덴으로 들어선 카시엘은 마을 중앙의 회당으로 곧바로 직진했다. 카시엘은 바덴부르크 혁명정부 사령관의 직인이 찍힌 서류를 내밀며 회당 안으로 진입했다.




회당에 있던 교부들과 사제 10여명은 카시엘 일행을 저지하려 했으나 칼을 앞세운 기세등등한 모습에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사전에 준비한 대로 일부는 회당 내 모든 서류들을 압류했고, 교부와 사제들이 떠나지 못하도록 회당 내에 억류했다.




기욤 부주교가 호교사제들과 함께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든 조사가 다 끝나고 카시엘 일행이 다시 베르나우로 떠난 후였다.




카시엘은 10월15일 다시 베르나우로 돌아왔다.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자료와 관련자 취조를 통해 얻은 감찰결과는 나흘 뒤 노벨도르프에게 보고됐다.




교단의 비리가 심할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감찰결과는 이를 훨씬 뛰어넘어 심각했다. 노벨도르프는 모든 교구에서 이정도 비리가 있지는 않겠지만 모두 다 뒤진다면 그 여파는 어마어마할 것으로 보였다.




노벨도르프는 감사결과를 단순히 서신으로 전할 게 아니라 직접 드라구노프를 만나 설명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에르탱이 20여년 전 뿌린 작은 씨앗 하나가 그야말로 프란디아뿐 아니라 제국 전체를 뒤흔들 초대형 스캔들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노벨도르프가 벨라시타에 도착한 것은 10월22일 오전이었다. 노벨도르프는 휴식도 없이 곧바로 군사혁명위원회가 있는 재상부 건물로 향했다.




노벨도르프의 보고를 받은 드라구노프는 보고내용을 믿을 수가 없었다. 교단이 썩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바닥부터 철저히 썩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었다.




보고서를 다 읽은 드라구노프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허공을 쳐다보며 한숨지었다.




"이건 너무 심하군."




옆에 서 있던 노벨도르프는 드라구노프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자신의 의견을 보탰다.




"미어덴이라는 작은 교구의 비리가 이 정도라면 대교구의 상황이 어쩔지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잠깐 거기에 앉게."




노벨도르프를 소파에 앉게 한 후 드라구노프는 부관 엔리케 중령을 불렀다.




"지금 즉시 특무사령관 마르쿠스 슈나이더 소장을 불러오시오."




1층에서 대기하고 있던 슈나이더 소장은 곧바로 드라구노프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슈나이더 장군, 이쪽으로 앉으시오."




슈나이더는 노벨도르프와 눈인사를 건넨 후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드라구노프는 노벨도르프가 가져온 보고서를 슈나이더에게 건넸다.




슈나이더는 군수사를 총괄하는 특무사령관으로 비밀경찰 슈타지의 수장까지 겸하면서 전 정부 관료들의 비위를 캐고 있었다.




"느낌이 어떻소?"




슈나이더는 보고서를 다 읽은 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한 마디로 교단의 개혁 없이는 우리의 혁명이 성공하기 쉽지 않다고 판단됩니다."




드라구노프는 원하는 대답이라는 듯 무릎을 탁 쳤다.




"내 생각이 바로 그거야. 교단에 대한 대대적 개혁이 필요해. 문제는 로텐부르크의 반발을 어떻게 무마시키느냐인데... 노벨도르프 장군, 계획을 말해보게."




노벨도르프는 한 번 헛기침을 한 후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보고서 내용만을 가지고 교단에 대한 조치를 취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노벨도르프는 파블로의 재판을 통해? 자연스럽게 교단의 각종 비위가 드러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대대적으로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파블로의 재판관할권을 베르나우 재판소로 지정해 파블로를 기소함으로써 피살된 에르탱의 죄과가 드러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파블로가 에르탱을 겁박한 이유는 바로 자신의 딸이 교단에 팔려가 억울하게 죽었기 때문입니다. 에르탱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미어덴의 지하경제를 주름잡는 전주였고, 고리대금업으로 엄청난 돈을 치부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부주교 기욤의 경우 여성 신도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 신녀와의 관계를 가져 아이를 출산하기까지 했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일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는 점이야."




"신문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벨라시타의 경우 이미 신문이 발행되면서 사람들에게 다양한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신문이 프란디아 전역에서 발행돼 이 같은 소식들을 전한다면 공분을 사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그래, 혁명이 성공한 후 민초들의 폭동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상황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야. 교단의 비위가 민초들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는 효과도 있겠지?"




문제는 신문이 아직 수도 벨라시타처럼 큰 대도시에서나 팔리고 있을 뿐 중소도시나 농촌에서는 볼 수가 없었다.




"이 문제는 블레어노프 사장과 이야기를 나눠봐야겠군."




벨라시타에서 발행되는 라이히차이퉁 사장인 블레어노프는 혁명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지식인이었다. 그는 혁명이 성공한 후 드라구노프의 개혁 정책을 신문에 소개하며 여론을 혁명 지지 쪽으로 이끌고 있었다.




드라구노프는 다음날 블레어노프 사장을 참석시킨 뒤 다시 회의를 하기로 하고 일단 자리를 파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인쇄소를 각 지방 도시에 설치하는 것입니다."




드라구노프로부터 설명을 들은 블레어노프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문제라면 군대에서 운영하는 인쇄소가 각 지역에 있소이다. 급하지만 일단 그곳이라도 이용하는 게 나을듯 하군요."




블레어노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체 프란디아 인구 중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10%도 채 되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또 베르나우에서 벌어지는 재판 내용을 벨라시타로 전하고 이를 다시 전국으로 알리는 작업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말을 빠르게 몬다고 하더라도 하루에 70킬로미터 이상 달리기는 쉽지 않았다. 프란디아는 동서로 길쭉하게 늘어져 있는 데다 벨라시타의 경우 동쪽 끝에 위치하고 있어서 서쪽 끝 트란베스트까지는 2,000킬로미터가 넘는 먼 거리였다.




슈나이더가 끼어 들었다.




"저잣거리에서 세상 소식을 알려주는 헤럴드라는 직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세상 소식을 구수한 만담형식으로 전하면서 사람들로부터 푼돈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들을 활용하는 게 어떨까요?"




드라구노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문제는 그렇게 처리하면 되겠군. 또 다른 문제는 2,0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뛰어 넘어 어떻게 소식을 빨리 전하는가 하는 것이오."




노벨도르프가 대답했다.




"역참을 이용한다고 해도 최소 동서 끝거리는 20일 이상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전서구를 이용하는 것인데..."




전서구를 이용한다면 동서 끝거리의 시간을 5일 이내로 줄일 수 있었다. 실제로 지난 혁명 당일 전서구를 이용해 트란베스트의 베르린츠로 소식을 알렸고, 이를 신문으로 인쇄해 팔았던 경험이 있었다.




당시 글라츠에 있던 알폰소가 혁명 발발 일주일 만에 소식을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전서구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때는 혁명이라는 긴급한 상황이었다. 혁명을 최대한 빨리 알려야했기에 예외적인 상황에서 신문사의 접근을 허용한 경우였다.




?전서구는 보안문제뿐만 아니라 그 유지비용도 만만찮았기 때문에 군사적인 목적 이외에는 절대 사용할 수 없었다.




블레어노프는 전서구를 이용할 수 있게만 된다면 신문 시장이 혁명적인 변화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다만 전서구 이용을 위해 지불할 댓가가 문제였다.




"이 문제는 정보부 퓌러 사령관의 재가가 필요한 사안 같군요."




드라구노프가 군사혁명위원회의 의장을 맡고 있으며 실제 혁명의 주재자였지만 실무 부서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퓌러 사령관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퓌러 사령관은 난색을 표명했지만 혁명 성공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드라구노프의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퓌러는 대신 조건을 달았다. 전서구 이용은 이번 재판이 끝날 때까지만 유효하며 하루에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다고 못박았다.




블레어노프는 아쉬웠지만 당분간만이라도 사용할 수 있다는 데 만족했다. 한 번 예외를 허용했다면 다시 예외를 인정받을 기회는 언제든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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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주교살인사건 24.08.04 5 0 10쪽
77 주교살인사건 24.08.04 4 0 10쪽
76 주교살인사건 24.08.04 5 0 9쪽
75 주교살인사건 24.08.04 5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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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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