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나르트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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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모
작품등록일 :
2024.07.17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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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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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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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동하는 잠룡

DUMMY

"레이, 넌 어디서 공부했니?"




"난 학교라고는 여기가 처음이야. 그래서 사실 내일 수업이 두려워."




학교를 처음 다닌다는 말에 그레고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여기 교과과정은 기초적인 공부가 된 사람들만 받을 수 있도록 짜여져 있는데... 어떻게 여기 들어올 수 있었니?"




그레고르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진심으로 레이나르트가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하는 듯 했다.




레이나르트는 지금껏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지만 한 번도 남들에게 말하지 않았던 자신의 처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레고르는 레이나르트의 이야기에 안타까운듯 미약한 신음소리를 내기도 하고 고개도 끄덕여 가며 귀 기울여 들었다.




"아버지 일은 정말 안됐네. 레이, 힘내."




"고마워, 그렉."




그레고르는 레이나르트의 이야기가 끝나고 난 후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하더니 불쑥 말을 꺼냈다.




"네가 싫지 않다면 공부는 내가 도와줄게. 매일 저녁 나에게 과외를 받는다면 본인 노력 여하에 따라 빠르게 남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거야."




레이나르트는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만난 것 같았다. 아버지 죽음 이후 모든 게 엉망이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이 학교로 오게 돼 그레고르를 만난 것은 행운처럼 느껴졌다.




"정말 그렇게 해줄 수 있어? 너 공부하는 것도 바쁠텐데..."




"하나하나 가르치겠다는 게 아니라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 내가 설명해주겠다는 거야. 공부하다 모르는 것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고."




"정말 고마워, 그렉. 나 정말 열심히 공부할게.“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됐다. 오전은 남녀 구분 없이 함께 수업을 들었고, 오후에는 남녀가 각각 따로 수업을 듣는 식이었다.




1학년 커리큘럼은 대학에서 배우게 될 문법, 논리학, 수사학, 산술, 기하, 음악, 천문 등 7과목이었다. 남학생들은 오후 수업이 끝난 후 체력단련 과정이 따로 있었다.




책을 많이 읽은 레이나르트였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들은 너무 생소했다. 교사의 말은 외국어로 하는 듯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자리를 옮기려 할 때 니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레이, 어디 가?"




"아, 니나 아가씨. 식사하러 가는 중입니다."




니나는 벌써 친구들을 사귀었는지 여학생 대여섯 명과 함께 어울리고 있었다. 이에 반해 레이나르트는 신분 탓에 쉽사리 동급생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남학생들은 빌헬름을 중심으로 여러 명이 떼를 지어 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다른 급우들도 삼삼오오 무리를 짓기 시작했지만 레이나르트만 혼자였다.




"왜 혼자 밥 먹으러 가? 같이 가자는 사람이 없어?"




"아... 네, 아직..."




니나와 함께 온 친구들이 뒤에서 수근대기 시작했다.




"니나 아가씨, 누구예요? 잘 생겼는데?"




니나 친구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하며 깔깔거렸다. 레이나르트는 구경거리가 된 것 같아 자존심이 한껏 상했다.




"야, 왜 그렇게 힘이 없냐? 같이 식사할 사람 없으면 우리랑 같이 하던가."




항상 자기를 괴롭히던 니나가 갑자기 친절을 베풀자 문득 의심이 생겼다.




'또 어떤 짓을 하려고 저러는 거지?'




"왜 대답이 없냐? 같이 먹기 싫어?"




"니나 아가씨, 그럼 같이 가도 될까요?"




레이나르트가 대답을 하자마자 니나는 웃음을 빵 터뜨렸다.




"당연히 안되지. 냄새나는 너랑 어떻게 식사를 같이 하냐? 넌 냄새 나니까 남들 식사 끝나고 나서 혼자 하던가 해. 얘들아 가자."




니나는 레이나르트 곁을 지나가며 냄새가 난다는 듯 코를 막고 손을 휘저었다.




"니나 아가씨, 너무하셨어요. 하하. 냄새 안나는데?"




"누구길래 그렇게 막 대하는 거예요?"




"좀 불쌍해요~."




니나의 친구들은 니나의 행동이 너무 과했다며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쟤는 우리집 하인이야. 내 맘대로 해도 돼."




"기품 있게 잘 생겼는데 하인이라구요?"




"그렇다니까. 하인이야 하인."




"한 번 사귀어 볼까 했는데 하인이면 안 되겠네요. 하하."




"내꺼니까 함부로 넘보지마."




차라리 같이 식사를 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모든 학생들이 남녀 구분해서 따로 식사를 하는데 혼자 여학생들 틈에 끼어 있다면 오히려 더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식당에 들어서자 전교생이 모두 모여 바글바글했다. 레이나르트의 동급생은 35명이었는데 5개 학년 학생들을 다 합치면 160여명이었다.




가운데 뷔페식으로 음식들이 놓여 있었고 학생들은 저마다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가져와 자리에 앉아 먹는 방식이었다.




레이나르트는 빵과 버터, 햄을 고른 후 멀찍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 조용히 앉았다. 빵에 버터를 바르고 있을 때 맞은 편에 누가 와서 앉았다.




"레이, 혼자 먹고 있을 줄 알았어. 나랑 같이 먹자."




그레고르였다.




"오늘 수업은 어땠어? 들을 만 했니?"




레이나르트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기초가 없다면 아마 어려웠을 거야. 걱정마. 오늘 저녁부터 바로 특훈 시작이야."




오후수업은 산술과 체력단련이었다. 체력단련이 그나마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레이나르트는 아버지 에드를 닮아 체력에는 자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레이나르트는 저녁 시간 전 휴식을 취하기 위해 숙소로 향했다. 기숙사로 가는 길 저 멀리에 빌헬름 무리들이 모여 깔깔대고 있었다.




아무래도 조짐이 좋지 않았다. 뭔가 시비를 걸지 않을까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그들 쪽으로 다가갔다.




"야! 레이나르트, 이리 와봐."




나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레이나르트는 무시하고 싶었으나 자신이 몸담고 있는 비젠도르프 가문의 도련님이라 그럴 수도 없었다.




"네, 빌헬름 도련님. 부르셨습니까."




"너 아까 체력단련 시간에 보니까 제법 잘 뛰던데? 전에 해본 적 있어?"




체력단련시간은 주로 럭비나 축구 등 스포츠로 구성돼 있었다. 이날은 럭비를 했는데 레이나르트의 주력이 단연 돋보였었다.




"아니오, 오늘 처음 해봤습니다. 도련님."




빌헬름은 뒤에 있는 친구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




"봤지? 내 말이 맞지? 원래 허드렛일을 종놈들이 잘 뛰어. 머리는 비었어도 뜀박질 같은 건 잘해."




빌헬름의 말에 친구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한참 웃던 빌헬름은 갑자기 웃음을 뚝 그치고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종놈아. 주인님이 패스를 하라고 하면 했어야지 왜 혼자 미친 망아지처럼 뛰고 난리야? 어?"




이날 럭비를 처음 경험한 레이나르트는 룰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상태여서 경기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제가 어떻게 하는지 잘 몰라서 그랬습니다."




"그래? 잘못했으면 맞아야지. 쫌만 잘해주면 종놈들은 기어오르게 돼 있어. 맞아야 정신 차리지."




빌헬름은 갑자기 주먹으로 레이나르트의 얼굴을 강타했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레이나르트는 피할 새도 없이 얼굴을 맞아 뒤로 쓰러졌다.




빌헬름의 폭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쓰러진 레이나르트에게 다가가 발로 차고 밟았다.




빌헬름의 친구들은 웃으며 그냥 구경만 하고 있었다. 한참을 때리던 빌헬름은 그제서야 분이 좀 풀린듯 레이나르트를 향해 침을 뱉었다.




"앞으로 조심해. 내가 계속 지켜보고 있어."




레이나르트는 글라츠로 와서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들은 이후 처음 눈물을 흘렸다. 아파서 나온 눈물이 아니라 자신의 처지가 너무 불쌍했기 때문이었다.




그냥 홀츠에 살고 있었다면 가족과 함께 부족하지만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평생 자기 형제들을 키우느라 희생한 엄마를 생각하니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행정학교를 졸업하기를 바라는 엄마의 소원을 외면하기 힘들었다.




레이나르트는 기숙사에 머물며 저녁시간을 건너 뛰었다. 상처가 난 얼굴을 남들에게 보이기도 싫었고 입맛도 없었다.




저녁시간이 끝나고 그레고르가 방으로 돌아왔다.




"아니 레이, 너 얼굴이 왜 그래? 누구한테 맞았니?"




젖은 수건으로 얼굴 찜질을 하고 있던 레이나르트는 별일 아니라는듯 웃어 넘기려 했다.




"의무실에라도 가봐야 할 것 같은데... 레이 나랑 같이 의무실로 가보자."




"그렉, 괜찮아. 약간 멍이 든 것뿐이야."




레이나르트가 일을 크게 벌이고 싶지 않은 것 같아 보여 그레고르는 그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이런 나쁜 놈들... 사람을 이렇게까지 때리다니..."




그레고르는 진심으로 레이나르트를 걱정하는 듯 보였다. 그런 그레고르가 고마웠다.




"그렉,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난 공부를 해야 해."




그레고르는 이런 상황에서도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레이나르트가 대견스러웠다.




과외수업이 끝난 후 레이나르트는 그레고르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레고르는 자신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친구들로부터 따돌림 당하는 외톨이였다고 고백했다.




"그렉 너도 외톨이였다구?"




"그래, 집안이 부자이긴 하지만 평민이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뭐?"




"넌 파덴스인이라고 들어봤니?"




"파덴스인?"




"그래, 우리 집안의 혈통은 파덴스인이야. 우리 파덴스인은 나라 없이 수많은 나라에 퍼져 살고 있는 민족이야."




코반트대륙 세르베스 제국의 우르반 지역에서 파생한 것으로 알려진 파덴스인은 니튼하임 제국의 이방인이었다. 니튼하임 제국은 원래 수많은 민족으로 이뤄져 있어 민족차별이라는 개념이 원래 없었다.




성모정교를 믿는 형제라는 의식이 오히려 더 강했다. 그런데 파덴스인은 달랐다. 이들이 믿는 종교는 파덴스교였으며 그 국가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자신들의 언어와 전통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에 대한 소속감이 없는 파덴스인들은 귀금속업, 고리대금업?, 회계사 등의 업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돈을 많이 모으더라도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파덴스인들은 부동산을 거의 소유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다른 민족의 시기심을 사게 됐고 박해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레고르의 경우 아버지 대에 성모정교로 개종을 함으로써 기존 파덴스인 커뮤니티를 떠난 경우였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은 색안경을 끼고 파덴스인들을 경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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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주교살인사건 24.08.04 6 0 9쪽
80 주교살인사건 24.08.04 3 0 10쪽
79 주교살인사건 24.08.04 4 0 11쪽
78 주교살인사건 24.08.04 5 0 10쪽
77 주교살인사건 24.08.04 4 0 10쪽
76 주교살인사건 24.08.04 5 0 9쪽
75 주교살인사건 24.08.04 6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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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3 0 11쪽
70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4 0 10쪽
69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5 0 10쪽
68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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