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나르트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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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모
작품등록일 :
2024.07.17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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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살인사건

DUMMY

드라구노프는 이날 오후 군터스 상공인연합회장을 만났다. 전서구와 헤럴드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만만찮은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군터스에게 여기에 필요한 자금을 추가로 요청할 요량이었다.




오후 4시쯤 군터스가 드라구노프가 있는 사령부로 들어왔다. 군터스를 보자 드라구노프는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목이 마른 쪽이 드라구노프였던 탓에 처음 혁명을 일으킬 때처럼 위압적으로 행동할 수는 없었다.




"오랜만이오. 군터스 회장."




"각하, 오랜만에 뵙습니다. 한창 바쁘실텐데 어쩐 일이십니까?"




드라구노프는 상인들로부터 돈을 끌어낸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지난번 혁명을 일으킬 당시 깨달았다. 드라구노프가 혁명을 구상하면서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이 자금조달이었다. 실제 혁명에는 많은 돈이 들 수밖에 없었다.




군대를 움직여야 하고, 각 지방에 관청을 설치해야 하는 등 이런저런 명목으로 돈이 많이 들었다. 게다가 미온적인 관료들과 지방 유지들에게는 그에 걸맞는 당근도 제시해야 했다.




이미 쓰여질 데가 정해져있는 국가 재정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었다. 드라구노프는 군터스 회장을 비롯한 상공인과 은행가들로부터 헌금 형식으로 큰 돈을 받기로 약속받았다.




만약 혁명이 실패한다면 상공인과 은행가들 모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기에 이들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돈을 건넸다. 이들은 무기명 어음을 선호했다.




대부분은 일단 은행으로부터 차용을 한 뒤 혁명이 성공한다면 그 돈을 대신 갚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혁명 성공 후 정작 청구서를 들고 갔을 때는 다양한 핑계를 대며 미루기 일쑤였다.




무력으로 위협을 해보기도 했지만 이들에게 있어서 신앙과 같은 돈을 받아내는 일은 무엇보다 힘들었다.




드라구노프는 이번에는 이들의 수작에 놀아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군터스 회장, 지난번 도움 감사했소. 이렇게 갑자기 만나자고 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혹시 돈이 더 필요하신 건가요?"




군터스가 먼저 치고 들어왔다. 갑작스럽게 만나자고 했을 때부터 드라구노프가 돈 이야기를 꺼낼 것이라고 생각하고 충분히 대응할 준비를 하고 온 듯했다.




"그... 그렇소이다."




"각하께서 잘 아시다시피 저희들은 이미 적잖은 돈을 기부한 것으로 아는데요. 저희들도 살아보자고 혁명에 동참한 것인데 이런 식이면 구체제와 다른 게 없지 않겠습니까."




군터스가 단단히 작정을 하고 온 것 같았다. 구체제까지 거론하며 이렇게 나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구체제와 비교하다니 군터스 회장, 말이 너무 심한 것 아니오?"




군터스의 노회한 화술에 휘말리다간 혁명의 정당성까지 부정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드라구노프는 노기가 가득한 음성으로 나무랐다.




군터스는 즉시 사과했다.




"앗,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저는 다만 저희 상공인들 입장을 살펴주시라는 말씀을 전달하고자... 사실 저희들이 혁명에 적극 동참한 이유가 뭔지 각하께서 더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나아지는 건 없고 계속 혁명자금 명목으로 돈만 가지고 간다면 저희들 중에서 불만을 가지는 자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지 않겠습니까."




계속 이런 식으로 돈을 뜯어간다면 혁명에 대해 다시 재고할 수 있다는 사실상 협박이었다. 상공인 역시 혁명정부의 강력한 지지세력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군터스의 말을 쉬이 흘려들을 수만은 없었다.




그렇지만 현재 드라구노프가 처한 상황이 더욱 다급했다.




"잘 알고 있소이다. 그런데 이왕 시작한 혁명인데 성공해야 하지 않겠소이까. 여기서 지지부진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구체제 인사들이 조만간 반격을 해올 수도 있어요."




"각하, 말씀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만 지난번에도 상당히 힘들게 자금을 마련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상공인들의 사정이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드라구노프는 두 번 생각해보지도 않고 힘들다는 말만 계속 하자 기분이 상했다.




"녹인장도 폐지했고, 각종 무역 규제도 다 풀린 마당에 아직 힘들다는 말은 듣기 좀 그렇소이다. 도대체 우리 혁명정부가 당신들을 위해 무엇을 더 해야 한단 말이오?"




드라구노프의 짜증이 폭발한 듯 보이자 군터스는 움찔했다. 즉각 자세를 낮췄다. 어쨌든 칼을 쥔 쪽은 드라구노프였기 때문이었다.




"각하의 배려에 저희 상공인들은 모두 감사하고 있습니다. 녹인장도 폐지되고 각종 규제들이 사라져 저희들도 오랜만에 장사하기 좋은 세상을 만난 건 맞습니다. 그런데 그 정책의 효과는 몇 개월을 두고 서서히 나타나는 것이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아닙니다. 저희들이 혁명에 동참한 것은 다 같이 살기 위함이란 걸 다시 한 번 고려해주시기 바랍니다."




맞는 말이었다. 이들이 드라구노프의 혁명에 동참한 것은 순전히 게오르크의 반개혁 정책 때문에 장사가 힘들어졌기 때문이었다.




장사히기 좋은 세상을 보기 위해 혁명에 동참했는데 더 이상 돈을 빼앗긴다면 혁명에 동참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당장은 좀 힘들 수 있소이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혁명이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워요."




"혁명자금이 더 필요한 이유가 뭔지 여쭤봐도 될까요?"




드라구노프는 전날과 이날 오전에 있었던 내용을 개괄적으로 설명해줬다. 대외비로 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었다.




"그정도라면 그렇게 큰 돈이 들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 뭔가 다른 일을 추진하고 계신 것 아닙니까. 각하께서 말씀하신 정도면 굳이 저를 만날 필요까진 없어 보이는데요..."




드라구노프는 노회한 장사꾼을 더 이상 속이기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사실을 털어놨다.




"조만간 트란베스트에서 전쟁을 치러야 할 것 같은데 전비가 부족한 게 사실이오. 그쪽을 무력으로 진압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더 들 것으로 예상되오."




군터스는 잠시 고민하는 듯 했다.




"결국 우려했던 대로 트란베스트가 문제였군요. 저희들도 그런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내 요구를 들어주시겠소?"




"그런데 굳이 지금 상황에서 트란베스트를 무력으로 병합해야할 필요가 있을까요? 일단 그들이 원하는 대로 두고 나머지 지역을 안정시킨 후 트란베스트 문제는 천천히 해결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드라구노프에게는 국가적인 일을 일개 상인 나부랭이와 상의한다는 것부터가 짜증나는 일이었다. 돈줄을 저쪽에서 쥐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이를 참아야 한다는 건 더더욱...




"본관도 그 생각을 하지 않은 바가 아니오. 다만 트란베스트를 그대로 둔다면 나머지 지역의 안정이 더욱 힘들다고 판단하고 있소이다. 트란베스트가 예외를 인정받는다면 다른 영주들이 가만 있겠소? 너도나도 예외를 인정해달라고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소이까."




드라구노프는 자기도 모르게 짜증이 나 언성이 높아졌다. 군터스는 움찔하는 듯 했지만 역시 노련한 상인답게 자기 할 말을 이어 갔다.




"정 그렇다면 저희들을 쥐어짜는 것보다 차라리 채권을 발행하는 게 어떨까요? 볼프그라트 은행 명의로 채권을 발행한다면 전비는 조달할 수 있을 텐데요."




"그 생각을 안 한 바는 아니오. 하지만 혁명을 일으킨 지 이제 두 달이 됐는데 어느 나라에서 우리 채권을 사주겠소?"




"그건 은행에 맡기면 되지요. 볼프그라트 행장과 이야기해본다면 해결책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드라구노프는 자신의 돈을 쓰지 않으려는 군터스 회장이 그렇게 얄미울 수 없었다. 하지만 더 추궁해봐야 필요한 만큼 자금을 조달할 수도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칼로 위협한다면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겠지만 그건 모든 상공인들의 반발을 일으킬 수 있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었다.




"블프그라트 행장이라고 별 수 있겠소?"




"각하께서는 힐베르담의 은행가들을 너무 무시하는군요. 그들은 분명히 각하께, 아니 우리 프란디아를 담보로 한 채권에 투자할 것입니다."




"힐베르담?"




"네, 힐베르담이요. 그들은 돈이 되는 곳이면 어디든 투자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혁명이 발발해 정정이 불안한 상황이라면 더 큰 이익을 보기 위해 달려들 것입니다."




드라구노프는 힐베르담의 자금을 끌어들인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그런데 군터스의 말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어 보였다.




"그 돈장사꾼들이 과연?"




"다만 이자율을 높게 받겠지요. 이건 리스크가 큰 투자니까요."




드라구노프는 기분이 나빴다. 리스크가 크다는 것은 혁명 성공에 대해 시장의 평가가 인색하다는 것 아닌가.




군터스는 드라구노프의 안색을 살핀 후 다시 말을 이었다.




"각하께서 너무 기분 나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게 그들이 돈을 버는 방식이니까요. 일단 전쟁을 치를 수 있을 만큼의 돈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우리 상공인들의 푼돈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판을 키우세요."




"일단 알겠소이다."




드라구노프의 긴급 접견 소식을 들은 볼프그라트 행장은 늦은 밤 혁명군 사령부를 찾아왔다.




"각하의 재가만 떨어진다면 당장 힐베르담으로 달려가 채권 발행을 타진해보겠습니다."




볼프그라트는 자신있게 말했다.




"문제는 이자율이오. 행장께서 최대한 이자율을 낮춰주시오. 그렇지 않다면 우리 혁명정부가 시작부터 빚더미를 지고 시작할 수밖에 없소."




드라구노프는 될 수 있으면 은행가들에게 손을 벌리고 싶지 않았다. 숭고한 이상으로 시작한 혁명에 돈이 끼어든다면 그때부터 순수성이 훼손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제국 내 몇몇 왕국들이 전쟁을 치르느라 은행으로부터 빌린 돈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드라구노프는 은행가들을 믿지 않았다. 이들은 국가보다도 돈을 숭배하는 집단들로 애국심 따위는 기대할 수 없는 종족들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노력은 해보겠습니다만 아무래도 그곳에는 시장 가격이라는 게 있습니다. 채권 발행의 성공여부는 순전히 돈을 쥔 힐베르담의 은행가들의 마음입니다."




"그러니까 특별히 부탁하는 것 아니오."




드라구노프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내일 바로 힐베르담으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달 초순이면 결과를 가지고 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알았소. 그럼 수고해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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