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나르트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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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모
작품등록일 :
2024.07.17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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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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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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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동하는 잠룡

DUMMY

쉴새없이 말을 몬 카를로스 일행은 10월9일 저녁 무렵 글라츠성에 도착했다. 성문을 통과하자마자 비젠도르프 저택으로 직진했다.




제레미야 집사는 카를로스 일행의 행색을 보자 뭔가 큰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나으리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지금 하나하나 설명할 시간 없어. 아버님 어디 계시나?"




"지금 집무실에 계십니다만..."




카를로스와 타이젠호프는 곧바로 알폰소의 집무실이 있는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카를로스가 가장 무서워 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아버지 알폰소였기에 불안함을 잔뜩 품은 채 집무실로 들어섰다..




오는 도중 이 일에 대해 어떻게 말할 것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적당한 변명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드레멘으로 들린 일을 어떻게 설명할지 난감했다. 메릴린을 만나기 위해 그곳에 들렀다가 병력 대부분을 잃고 왔다고 말했다가는 블호령이 떨어질 게 뻔했다.




그렇다고 속일 수도 없었다. 타이젠호프도 같이 있었기 때문에 어설프게 속였다가는 금방 들통나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메릴린 이야기는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카를로스는 오는 도중 융베르트의 초청을 받고 드레멘으로 들린 것으로 하자고 타이젠호프와 입을 맞췄다.




드레멘으로 가자고 고집을 부렸던 카를로스를 제대로 인도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도 있었기에 카를로스의 제안에 타이젠호프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님, 소자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알폰소는 카를로스가 일반 병사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게냐?"




카를로스는 지난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7대 가문의 회합, 베스타노프 장군과의 담판 등은 순조롭게 진행됐다고 말했다.




"베르린츠를 떠날 즈음 드레멘의 융베르트가 우리를 초청했는데 그곳으로 간 게 실수였습니다."




"융베르트? 막스 아이작그라프 경의 아들 말이냐?"




"네, 그가 우리에게 하룻밤 묵고 떠나기를 요청해왔습니다."




카를로스는 메릴린 이야기는 쏙 뺀 채 융베르트가 처음부터 자신들을 노리고 우터베써강을 넘어온 에슈리히 장군의 부대와 공모해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둘러댔다.




"타이젠호프, 카를로스의 말이 전부 사실이냐?"




타이젠호프는 알폰소의 추궁에 말을 더듬거렸다.




"아... 네... 그렇습니다. 후작님. 융베르트가 우리를 잡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타이젠호프는 알폰소가 두려웠지만 지금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알폰소는 카를로스와 타이젠호프를 번갈아 쳐다 봤다. 일단 임무는 완수했으나 곧바로 복귀하지 않고 드레멘으로 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징계감이었다.




그런데 전쟁을 앞두고 병사 한 명이 아쉬운 상황에서 100명에 이르는 병사들을 잃었다는 것은 지휘관으로서는 실격이었다.




알폰소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고 돌아가 쉬라고 말했다.




"아버님,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일단 임무는 완수했으니 다행이다. 그렇더라도 휘하 병력 대부분을 잃었다는 것은 지휘관으로서 큰 오점이야. 당분간 자숙하고 있도록 해."




"아버님, 지금 이곳 트란베스트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자숙이라니요? 다른 임무를 맡겨 주신다면..."




알폰소는 손짓으로 카를로스의 말문을 막았다.




"더 이상 말하지 말고 내가 지시한 대로 자숙하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카를로스는 자기 뒤를 따라 나오는 타이젠호프에게 다가가 말했다.




"자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리 둘만의 약속을 지켜야 하네. 아버님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네나 나나 크게 경을 치게 될 것이야."




"알겠습니다, 나으리. 저도 살아야 하니 제 입에서 엉뚱한 말이 나갈 일은 없을 겝니다. 걱정마십시오."




카를로스는 일단 집으로 가서 푹 쉬고 싶었다. 밤새 긴장한 채 말을 몰아 오는 바람에 팔과 다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탈출에 성공하고 아버지라는 큰산을 넘었다는 생각에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안방으로 들어서는 순간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더 있음을 알게 됐다.




"당신, 어떻게 된 거예요? 멀쩡히 데리고 갔던 군인 100명을 다 잃고 오다니오."




카타리나였다. 이미 제레미야 집사를 통해 저간의 사정을 들은 모양이었다.




"지금은 너무 피곤하니까 나중에 이야기해. 죽다가 겨우 살아서 왔다구!"




"흥, 누가 모를 줄 알아요? 드레멘으로 들렀다면서요?"




"아니 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




방금 알폰소와 나눈 대화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카를로스는 깜짝 놀랐다.




"지금 어디서 들었는지가 중요해요? 드레멘으로 가서 그년을 만났고 이 사단이 났다는 게 문제지."




카타리나가 이미 집안 곳간 열쇠를 쥐고 각종 대소사에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 아버지의 집무실에서 나눈 이야기가 벌써 카타리나의 귀에 들어갈 정도라니. 비젠도르프 가문은 사실상 큰며느리 카타리나가 쥐락펴락하고 있음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그년이라니 뭔소리야? 융베르트가 우리를 노리고 판 함정에 걸려들었을 뿐이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카타리나는 가소롭다는 듯 비웃었다.




"귀신은 속여도 전 못 속여요. 드레멘에 메릴린 그년이 없었다면 행여나 당신이 그곳에 가셨겠어요?"




단편적으로 들은 사실만으로 카타리나는 정확하게 상황을 추측했다. 궁지에 몰리자 카를로스는 오히려 역정을 냈다.




"그만해. 메릴린이라니 무슨 소리야? 한 달만에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그게 할 소리야?"




카를로스가 화를 내며 침실로 향하자 카타리나는 뒤에서 카를로스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지금 한가하게 잠이나 잘 때가 아니에요. 이리 와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 같이 상의해봐요."




"앞으로 어떡하긴 뭘 어떡해? 아버님께서 나보고 당분간 자숙하래."




"아버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아니 다른 말은 잘도 숨어서 들었는데 이 말은 못 들은 모양이지? 그 말 그대로야. 앞으로 자숙하라고 하니까 난 좀 쉬어야겠어."




카를로스는 침대 위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미약한 몸부림이었다.




카타리나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하더니 이불을 확 제끼며 카를로스의 팔을 흔들어댔다.




"아버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정말 이럴 때가 아니에요. 뭔가 대책을 세워야죠."




카타리나의 행동에 카를로스는 짜증이 폭발했다.




"대책이 뭐가 있어? 이 집안에서 아버님이 결정하시면 그걸로 끝인데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난 당신이 메릴린을 만나든 다른 여종과 관계를 맺든 아무렇지도 않아요. 하지만 당신이 이 집안을 물려받지 못하게 되는 것만은 참을 수 없어요."




카타리나는 단호한 눈빛으로 카를로스를 노려봤다. 이런 경우에는 카타리나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 내가 또 사고를 쳤어. 지금 당장 어떻게 할 방법이 없잖아. 아버님의 진노가 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자구."




"나도 금세 알아낸 사실인데 언제까지 아버님을 속일 수 있을까요. 아마 당신이 메릴린을 만나러 드레멘에 들렀다는 걸 곧 아시게 될 거예요."




카를로스의 얼굴이 갑자기 흙빛으로 변했다.




"그럼 어떡하지? 여자 하나 만나려고 드레멘으로 갔다가 병사 100명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정말 큰일인데..."




"당신은 당신 동생 헬무트가 이 집안을 물려받으면 좋아요? 후작 작위를 동생이 물려받고 당신은 평생 카를로스 경으로 불리는 걸 참을 수 있겠어요?"




"나야... 나도 아버님 뒤를 잇고 싶어. 그렇지만 아버님이 동생에게 물려주신다면 어쩔 수 없..."




"무슨 나약한 소리예요? 제가 왜 우리 아빠를 졸라 당신에게 시집온 줄 아세요?"




"잘 알지. 잘 알고말고."




"그런데 지금 그게 할 말이에요? 동생이 장자의 권리를 빼앗아 가는데 어쩔 수 없다니."




후계자 이야기만 나오면 카타리나가 필요 이상으로 흥분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카를로스는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없는 동안 아버님께서 서부전선에 있던 헬무트를 집으로 불러들였어요. 이번 임무를 맡으면서 당신이 후계자 경쟁에서 한 발 앞서 나갔지만 사고를 치면서 다시 원점이 됐어요. 아니 상황을 보니 아주 뒤처진 것 같네요."




카타리나는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하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단은 메릴린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함구하세요. 아버님이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때가서 다시 대책을 강구해보록 하죠."




"휴... 알았어. 그리고 그 다음은?"




"정말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야죠. 적들에게 붙잡힌 병사들의 가족들도 챙겨야 하고."




그 말에 카를로스는 자신을 대신해 붙잡혔을 에드가 떠올랐다. 메릴린을 죽였다는 사실에 한동안 에드가 죽이고 싶도록 미웠지만 결과적으로 그 판단은 정확했다.




만약 메릴린이 살아있었다면 자신은 끝까지 함께 도망가려 했을 게 뻔했다. 그 경우 아마도 얼마 가지도 못하고 붙잡혔을 가능성이 높았다.




에드가 그 이후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졌다. 카를로스는 카타리나에게 에드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전했다.




"에드란 병사가 정말 훌륭하고 대담한 결단을 했네요. 그런 부하를 잃었다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지휘관으로 실격이에요."




"에드가 나 대신 추격대를 유인하면서 나에게 자신의 가족들을 돌봐달라고 부탁했어. 특히 셋째 아들을 트란베스트 행정학교로 진학시켜달라고 했어."




잠시 생각에 잠겼던 카타리나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환한 미소를 띄었다.




"잘하면 에드란 사람 덕분에 우린 전화위복의 기회가 올 수도 있겠는데요?"




"그게 무슨 말이야?"




"당신도 스스로 잘 알다시피 당신은 지휘관으로서 부족한 점이 많아요."




카를로스는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남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자 적잖이 불편했다.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래서?"




"부하들과 격의 없이 어울린다는 점은 분명 장점이에요. 하지만 부하들을 아우르고 이들로부터 진정한 충성심을 불러일으키는 카리스마가 부족해요."




정확한 판단이었다. 그런 면에서 둘째 헬무트가 항상 부러웠다. 때로는 부드럽게 떄로는 단호하게 부하들을 통솔하는 헬무트는 전장에서는 언제나 앞장섰고 무슨 일이든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부하들의 존경을 이끌어냈다.




"당신 대신에 목숨을 건 에드의 가족들에게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주세요. 그리고 셋째 아들을 이곳으로 불러 행정학교에 입학시키세요."




"뭐 당신이 얘기하지 않아도 챙겨주려고 하긴 했지만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주라고?"




"이런 일에 돈을 아껴선 안돼요. 주군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부하에게는 이 정도의 보상이 주어진다는 것을 알려주는 게 이 일의 핵심이에요."




카타리나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가문의 사병들은 가문에 충성한다고 하지만 사병노릇은 사실 생계수단이었다.




그런데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경우 그 이상의 보상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들의 충성심은 크게 고양될 수 있었다.




"내일이라도 당장 아버님께 가셔서 에드의 가족에게 보상을 한다고 말씀하세요. 그리고 셋째 아들을 불러 행정학교에 입학시키겠다는 것두요."




난마처럼 얽혀있던 실타래가 카타리나의 손에 닿자 하나씩 풀리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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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태동하는 잠룡 24.08.05 2 0 10쪽
92 태동하는 잠룡 24.08.05 5 0 11쪽
91 테동하는 잠룡 24.08.05 5 0 10쪽
90 태동하는 잠룡 24.08.05 3 0 10쪽
89 태동하는 잠룡 24.08.05 3 0 10쪽
88 태동하는 잠룡 24.08.05 3 0 10쪽
87 태동하는 잠룡 24.08.05 4 0 12쪽
86 태동하는 잠룡 24.08.05 5 0 14쪽
» 태동하는 잠룡 24.08.05 4 0 12쪽
84 주교살인사건 24.08.04 6 0 11쪽
83 주교살인사건 24.08.04 4 0 11쪽
82 주교살인사건 24.08.04 7 0 11쪽
81 주교살인사건 24.08.04 6 0 9쪽
80 주교살인사건 24.08.04 3 0 10쪽
79 주교살인사건 24.08.04 3 0 11쪽
78 주교살인사건 24.08.04 5 0 10쪽
77 주교살인사건 24.08.04 4 0 10쪽
76 주교살인사건 24.08.04 4 0 9쪽
75 주교살인사건 24.08.04 5 0 10쪽
74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4 0 10쪽
73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3 0 11쪽
72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4 0 11쪽
71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3 0 11쪽
70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4 0 10쪽
69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5 0 10쪽
68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4 0 10쪽
67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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