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나르트 연대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대체역사

제이모
작품등록일 :
2024.07.17 04:50
최근연재일 :
2024.08.05 00:05
연재수 :
95 회
조회수 :
1,603
추천수 :
5
글자수 :
455,697

작성
24.08.05 00:05
조회
4
추천
0
글자
10쪽

태동하는 잠룡

DUMMY

니나는 패거리들을 이끌고 오후 수업이 있는 교실로 향했다. 니나는 분이 풀리지 않은 듯 교실로 가던 중 옆에 있는 기둥을 발로 뻥 찼다.




카렌은 니나 패거리를 따라가지 않고 남아 있었다.




"레이, 괜찮니? 괜히 나 때문에..."




"아가씨야말로 괜찮으세요? 전 이런 일 많이 당해봐서 아무렇지도 않아요."




레이나르트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카렌도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니나 아가씨 성질을 건드려놨으니 카렌 아가씨가 아무래도 걱정이네요."




"아냐, 난 괜찮아. 니나 아가씨도 곧 화가 풀릴거야."




"네 그럼 카렌 아가씨, 전 이만 오후 수업 들으러 가볼게요. 아가씨도 얼른 가세요."




레이나르트와 카렌이 사귄다는 소문이 금세 학교 안에 퍼졌다. 이 소문은 빌헬름의 귀에도 들어갔다.




빌헬름 역시 뭇 남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카렌을 좋아하고 있었다. 자신의 배경을 앞세우며 여러차례 데이트 신청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카렌은 웃음만 지을 뿐 단 한 번도 데이트를 허락하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했던 빌헬름은 분풀이 상대를 찾았다.




"종놈이 나의 카렌과 사귀고 있다고?"




"네 도련님. 지금 이 소문이 학교 안에 쫙 퍼졌어요. 아까 낮에 니나 아가씨와 한바탕 했다고 하던데요?"




어쩐지 처음 볼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어딜 가나 그런 사람이 꼭 있다. 주는 것 없이 미운...




카렌은 입학할 때부터 빌헬름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여학생이었다. 비젠도르프 가문이라는 배경과 자신의 준수한 외모면 당연히 카렌이 자신과 사귀는 것을 허락할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허락이 아니라 오히려 고마워할 것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카렌은 빌헬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화가 났지만 연약한 여성은 보호의 대상이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되내이며 참았다.




이후에도 틈만 나면 카렌에게 말을 걸어 자신의 매력을 알아달라고 호소했다. 카렌은 요지부동이었다. 아마도 카렌이 나이가 어려 아직 이성관계에 대해 관심이 없어서 그럴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했다.




그런데 레이나르트와 사귀고 있다고? 내가 아니라 니나네 집 종놈인 레이나르트?




빌헬름은 즉시 레이나르트를 찾아가 주먹이라도 날리고 싶었다. 당장은 지켜보는 눈이 많아 곤란했다. 향후 비젠도르프 가문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르작, 저녁 식사가 끝나면 너희들이 함께 가서 레이나르트를 데리고 와."




"우리가 항상 모이는 그곳으로 데려가면 되나요?"




빌헬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교무처가 있는 건물 뒷편은 의외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었다. 빌헬름 패거리들은 그곳을 아지트로 삼고 있었다.




저녁시간이 끝났을 때 그레고르는 레이나르트와 함께 방으로 가기 위해 식당 안을 두리번 거렸다. 그때 저멀리 식당 후문 근처에서 남학생 대여섯 명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모습을 포착했다.




자세히 보니 레이나르트를 둘러싸고 학생 몇 명이 투닥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질 것 같아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레고르가 식당 중앙쯤 왔을 때 레이나르트와 아이들은 식당 문 밖으로 사라졌다. 그레고르는 급히 그쪽으로 달려가 바깥을 살펴보았지만 아이들의 흔적은 없었다.




뭔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든 그레고르는 레이나르트를 찾기 위해 교정 이곳저곳을 다 뒤지고 다녔다. 도무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혹시 기숙사로 들어갔는가 싶어 방으로 가봤지만 레이나르트는 없었다. 다시 기숙사 밖으로 나온 그레고르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학생 기숙사 쪽으로 갔다.




여학생 기숙사 문 앞에서 니나 무리가 모여 무엇이 그렇게 재밌는지 신나게 웃으며 재잘대고 있었다.




"니나 아가씨, 안녕하세요. 전 레이나르트의 룸메이트 그레고르라고 합니다."




한참 떠들고 있던 니나는 왠 공부벌레처럼 생긴 샌님 하나가 어정쩡한 모습으로 서서 말을 걸자 기분이 팍 상했다.




"뭐야?"




"혹시 레이나르트 못 보셨나요?"




"내가 레이나르트 친구야? 왜 그걸 나한테 물어?"




"방금 전 식당에서 동급생 몇 명에게 끌려가는 것 같아서 혹시 보셨는가 해서요."




동급생들에게 끌려갔다는 말에 카렌이 불쑥 끼어들었다.




"끌려갔다구요? 누구한테요?"




점심 때 니나에게 혼이 난 이후 카렌은 지금까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레이나르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다고 하자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아까 뺨을 때린 게 한편으로 미안했던 니나는 조심스럽게 카렌을 용서해줄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런데 레이나르트 일에 또 끼어들자 꺼져가던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




"카렌, 넌 어딜 끼어드는 거니? 너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거야?"




니나의 표독스런 표정을 본 카렌은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레고르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어색한 표정을 짓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도 레이나르트를 본 사람이 없어. 근데 누구한테 끌려갔다는 거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식당에서 몇 명이랑 투닥거리는 것 같았는데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레고르는 가볍게 목례를 한 후 다시 레이나르트를 찾기 위해 교정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레고르는 문득 교무처 뒤편에 우거진 수풀이 떠올랐다.




'혹시 그쪽으로 끌고 간 게 아닐까.'




그곳은 평소에 인적도 없고 교무처 뒷쪽이라 학생들이 가길 꺼려하는 곳이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학생들이 싸움을 하기에는 적합해보였다.




교무처 쪽으로 발길을 옮기던 그레고르는 산책 중이던 지리교사 로타르와 마주쳤다. 헐레벌떡 뛰어가는 그레고르가 이상했는지 로타르는 그레고르를 불러 세웠다.




그레고르는 식당에서의 일을 소상하게 전했다. 그러자 로타르도 뭔가 안 좋은 낌새를 느꼈는지 같이 찾아보자고 했다.




수풀로 다가갔을 때 수풀 안 깊숙한 곳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레고르와 로타르는 즉시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뛰어 갔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수풀 안에는 참혹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도무지 학생들의 패싸움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학생 한 명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5명의 학생이 쓰러진 학생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5명 중 2명도 얼굴 등에 온통 피가 묻어 있었다.




그레고르는 쓰러져 있는 학생이 레이나르트일 것이라고 직감했다. 즉시 달려가 얼굴을 살펴보았다.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였지만 분명히 레이나르트였다.




레이나르트 폭행사건은 트레비앙 유년학교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유년학교가 건립된 이래 이런저런 폭력사건이 있었지만 이번 사건은 질적으로 달랐다.




일단 설립자의 손자가 주도한 폭행사건이라는 점과 5명이 1명에게 집단린치를 가했다는 점, 피해자가 정신을 잃을 정도로 크게 다쳤다는 점 등이었다.




학교 측은 즉시 진상조사에 나섰다. 진상조사는 주동자인 빌헬름이 쉽게 폭행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어렵지 않게 진행됐다.




현장을 발견했던 그레고르와 로타르의 증언도 진상조사서에 포함됐다. 진상조사는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마무리됐다.




진상조사단이 올린 보고서를 본 학교장 슈테른베르크는 난감했다. 이 보고서대로 라면 빌헬름은 퇴학을 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설립자의 손자를 퇴학처분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슈테른베르크는 곧바로 조치를 취해야 했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뤘다.




빌헬름이 진상조사단에 거짓을 말하지 않은 것은 감히 누가 나를 건드릴 수 있겠느냐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빌헬름은 자신이 직접 지시해 레이나르트를 폭행했으며 이에 대해 전혀 사과할 뜻이 없음을 명확히 했다.




'차라리 거짓말을 할 것이지. 왜 이렇게 당당히 자신의 죄를 인정해서 날 괴롭히는 거야...'




베르린츠 대학에서 법학 교수로 재직했던 슈테른베르크는 독직 사건에 연루돼 자리를 잃었다. 다른 대학으로 갈 길이 막히자 모든 연줄을 동원해 겨우 이곳 교장 자리를 얻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폭행사건이 벌어지면서 위기를 맞이하게 됐다. 두어 차례 징계위원회를 열었지만 빌헬름의 퇴학은 변경할 수 없어 보였다. 슈테른베르크는 차마 퇴학처분 한다는 말과 함께 의사봉을 두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또 결정이 연기됐다. 슈테른베르크는 결국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헬무트 집안에 이 같은 내용을 알렸다. 때는 폭행 사건이 벌어진 지 한 달여가 지난 6월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헬무트의 부인 예니페르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학교로 달려왔다. 예니페르는 진상조사단을 윽박질러 보고서를 수정하도록 강요했다.




진상조사단 일부는 이를 거부했으나 슈테른베르크는 이들을 조사단에서 배제시킨 뒤 보고서 수정을 강행했다.




결국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었고 폭행을 당한 레이나르트는 퇴학, 빌헬름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정학처분을 받게 됐다.




이 같은 결과가 교내에 알려지자 학생들은 격분했다. 누가 보더라도 빌헬름이 잘못한 게 확실했지만 학교는 힘없는 레이나르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치졸한 짓을 벌인 것이었다.




니나 역시 격한 반응을 보였다. 비록 레이나르트를 괴롭히긴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자신만에게 허용된 특권이었다.




니나는 카렌이 레이나르트에게 관심을 보인 후 더욱 레이나르트를 괘씸하게 여겼다. 그러나 앞으로 학교를 같이 다닐 수 없게 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니나는 즉시 어머니 카타리나 앞으로 편지를 썼다. 학교 측에 지급으로 편지를 전달해달라고 부탁했다.




레이나르트 폭행 사건은 어느덧 아이들 다툼에서 카를로스와 헬무트 형제간 힘대결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레이나르트 연대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1부 완결 24.08.05 6 0 -
» 태동하는 잠룡 24.08.05 5 0 10쪽
94 태동하는 잠룡 24.08.05 4 0 9쪽
93 태동하는 잠룡 24.08.05 3 0 10쪽
92 태동하는 잠룡 24.08.05 5 0 11쪽
91 테동하는 잠룡 24.08.05 5 0 10쪽
90 태동하는 잠룡 24.08.05 4 0 10쪽
89 태동하는 잠룡 24.08.05 3 0 10쪽
88 태동하는 잠룡 24.08.05 3 0 10쪽
87 태동하는 잠룡 24.08.05 5 0 12쪽
86 태동하는 잠룡 24.08.05 5 0 14쪽
85 태동하는 잠룡 24.08.05 4 0 12쪽
84 주교살인사건 24.08.04 6 0 11쪽
83 주교살인사건 24.08.04 5 0 11쪽
82 주교살인사건 24.08.04 7 0 11쪽
81 주교살인사건 24.08.04 6 0 9쪽
80 주교살인사건 24.08.04 4 0 10쪽
79 주교살인사건 24.08.04 4 0 11쪽
78 주교살인사건 24.08.04 6 0 10쪽
77 주교살인사건 24.08.04 4 0 10쪽
76 주교살인사건 24.08.04 5 0 9쪽
75 주교살인사건 24.08.04 6 0 10쪽
74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5 0 10쪽
73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3 0 11쪽
72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5 0 11쪽
71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3 0 11쪽
70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5 0 10쪽
69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5 0 10쪽
68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4 0 10쪽
67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8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