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나르트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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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모
작품등록일 :
2024.07.17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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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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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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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살인사건

DUMMY

"자 내일은 미어덴으로 가서 봉사활동을 해야하니 일찍 취침하세요."




마리에타 신녀는 신녀훈련생들이 모여 있는 방의 등불을 끄면서 취침 시간을 알렸다. 마리에타의 말에 따라 신녀후보생들은 모두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신녀훈련생 아그네스는 잔뜩 들떠 있었다. 내일 드디어 마을을 구경할 수 있다는 생각에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그네스에게 어릴 적 첫 기억부터 열다섯 살이 될 때까지 모든 기억은 람코스타 수도원과 그 주변 반경 1킬로미터가 전부였다.




철이 들기 전부터 아그네스의 일상은 식사, 기도, 마당쓸기 등 똑 같은 패턴의 반복이었다. 아그네스에게 세상은 수도원이 전부였고 다른 세상은 주변 마을로 봉사활동을 다녀온 수습신녀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통해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다.




아그네스는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뒤척였다. '얼마나 재미있을까? 사람들을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아그네스, 너도 잠이 안오니?"




옆에 누워 있던 동급생 크리스타였다. 그녀도 처음 나가는 봉사활동에 들떠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크리스타, 너도 내일이 처음이지?"




"응, 당연히 처음이지."




사실 아그네스가 있는 숙소의 신녀후보생 20명 전원이 아주 어린 갓난 아기거나 서너 살 이전에 수도원으로 온 경우라 세상밖 구경은 사실상 처음이었다.




숙소의 신녀훈련생들은 수도원에서 오랫동안 엄숙하고 절제된 생활을 해왔지만 지금은 여느 10대 소녀들과 다름이 없었다. 아그네스와 크리스타는 밤새 수다를 떨다 늦게 잠이 들었다.




"거기 잠꾸러기들 어서 일어나 기도실로 모이세요. 오늘은 일정이 빠듯하니 제발 빨리 움직여요~~."




새벽기도와 아침식사를 마친 신녀훈련생 20명은 수도원장실로 모두 모였다. 미르니온 수도원장은 첫 봉사활동을 앞두고 신녀훈련생들이 지켜야할 것, 유의해야할 점 등에 대해 설명한 뒤 자신의 오른 편에 서 있던 신녀 한 명을 소개했다.




"여러분들 주목하세요. 우리 수도원 출신으로 처음 파티마에 오른 안젤라님을 소개합니다. 안젤라님은 그동안 벨라시타의 파르마궁에서 파티마로 지내왔습니다. 안젤라님은 당분간 여기서 여러분들을 가르치며 함께 생활할테니 잘 부탁드려요."




아그네스와 크리스타는 파티마라는 말에 까치발을 하며 안젤라의 얼굴을 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녀의 얼굴은 뽀얀 살결 때분에 붉은 입술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그러면서도 전혀 퇴폐스럽지 않고 뭔가 성스러운 기운이 후광처럼 빛나고 있는 듯 했다.




"이곳을 떠난지 13년만에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됐어요. 여러분들을 한 두 살짜리 애기 때 봤는데 벌써 이렇게 자랐네요. 반가워요."




아그네스와 크리스타는 안젤라와 한 마디라도 이야기 하고 싶어 친구들을 밀쳐가며 그 곁으로 갔다. 가까이서 본 안젤라의 얼굴은 훨씬 더 아름다웠다. 그런데 뭔가 알 수 없는 근심이 얼굴에 드리워져 있는 듯 보였다.




안젤라를 선두로 수습신녀 2명 등 수도원 봉사단 23명은 오솔길을 따라 산 밑 마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그네스는 안젤라에게 말을 걸어봤지만 안젤라는 자애로운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아그네스의 기대와 달리 봉사단은 미어덴 시내로 들어가지 않고 마을 외곽으로 향했기 때문에 마을 구경을 할 수가 없었다.




이날 봉사단이 찾은 곳은 미어덴을 포함해 인근 마을의 부랑자와 정신병자 등을 모아놓은 부랑자수용소였다. 병원의 역할도 했지만 이들에게 특별한 치료라는 것은 없었고 일반인들로부터 격리시킨 후 죽을 때까지 붙잡아두는 그런 곳이었다.




그러다보니 이들 환자들은 수용소 내부 맨땅에 널부러진 채 방치돼 있는 경우가 많았고, 정신병자의 경우에는 결박해 작은 상자에 가둬두고 있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너무 참혹한 광경이 펼쳐지자 아그네스 등 신녀훈련생들은 잔뜩 찌푸린 표정을 지었다.




아그네스는 사랑의 정신으로 이들을 돌봐야 한다고 배웠지만 너무 더러워 이들에게 다가가기조차 쉽지 않았다. 비단 아그네스뿐 아니라 같이 온 신녀훈련생 전원이 환자들을 본 후 어쩔줄 모르고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때 안젤라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다리의 종기가 터져 고름이 허벅지를 온통 뒤덮고 있는 환자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환자의 다리를 자신의 무릎 위에 올린 후 세마포로 정성스럽게 닦아내기 시작했다.




안젤라가 먼저 시작하자 수습신녀 2명은 안젤라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신녀훈련생들에게 각자 해야할 일을 지시하고 돌봐야할 환자들을 지정해줬다. 아그네스가 맡은 환자는 양쪽 다리가 무릎 밑으로 모두 잘려나가있고 오른팔이 마비된 환자였다.




안젤라는 여전히 두려움이 컸지만 성호를 그은 후 용기를 내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전 아그네스라고 해요. 제가 몸을 씻겨 드릴게요."




양쪽다리가 잘린 환자는 가만히 고개를 들어 아그네스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신녀님, 제 몸이 너무 더러워서 죄송합니다."




"아직 전 신녀가 아니예요. 신녀가 되기 위해 훈련을 받고 있는 훈련생이예요. 이런 일도 모두 신녀가 되기 위한 과정이니 죄송스러워 하지 않으셔도 돼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 환자의 몸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대야에 담겨있는 애꿎은 세마포만 씻고 물기 짜내기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신녀님, 힘드시면 그냥 씻기는 시늉만 하세요. 전 정말 괜찮으니까요."




"아, 아니예요. 제가 처음이다 보니까 약간 긴장한 것 같아요. 바로 씻겨 드릴게요."




아그네스는 환자의 몸을 허벅지부터 조심스럽게 씻겨가기 시작했다. 잘려나간 부분은 잘려나갈 당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듯 상처가 짓이겨져 생긴 것으로 보이는 흉터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이름을 묻자 이 사내는 잠시 머뭇거렸다. 마치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아 머릿속으로 떠올리려는 듯 보였다.




"올리베르, 올리베르 야나체크예요. 올리베르라 부르시면 돼요."




아그네스는 올리베르의 오른쪽 다리 잘린 부분을 조심스럽게 세마포로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두 다리가 절단됐는지 궁금해졌다.




평소 호기심이 많았던 아그네스는 수도원에서도 질문이 많기로 유명했다.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고 뭔가 답을 얻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상처에 대해 물었을 때 이 질문 자체가 상대에게 마음의 상처가 될 수 있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아그네스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그런데 올리베르씨는 어쩌다 다리를 이렇게 다치시게 된건가요? 어디 전쟁터에라도 계셨나요?"




아직 세상 사람들과의 대화법에 익숙치 않은 아그네스의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질문이었다.




대뜸 질문을 받자 올리베르는 약간 당황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예전의 고통이 떠오르는 듯 표정이 일그러졌다.




"예전에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 벌을 받은 것이지요."




"어떤 죄요? 성모님은 어떤 죄도 다 용서해주신답니다. 성모님께 회개하세요. 형제님."




비록 꼴은 이렇게 됐지만 올리베르 역시 성모정교를 믿는 신실한 신도였다. 그동안 자신의 죄를 회개할 기회가 없었던 게 아쉬웠던 참이었다.




그런데 조그마한 신녀 하나가 자신에게 고해성사를 제안하자 앞뒤 잴 것 없었다. 당장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씻어내고 싶었다.




"고해성사를 하고 싶은데 신녀님께 해도 될까요?"




"전 아직 훈련생이라서 고해성사를 들을 수 없어요. 대신 저기 계신 안젤라 신녀님께서 고해성사를 들어주실 거예요."




"전 그냥 아그네스 신녀님께 드려도 상관없는데..."




"아니예요. 저희 교단 규칙상 그건 불가능해요. 제가 안젤라 파티마님께 말씀드려볼게요. 안젤라 파티마님은 파르마궁에서 국왕 전하를 모셨던 분이세요. 아마 흔쾌히 허락하실거예요."




아그네스는 종종걸음으로 안젤라에게 다가가 사정을 설명했다. 안젤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후 올리베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 앉았다.




올리베르의 몸이 불편해 움직이기 힘들어 어쩔 수 없이 개방된 공간에서 고해성사를 하게 됐다. 대신 다들 대화를 들을 수 없도록 멀찍이 떨어져 있으라고 했다.




"형제님, 제 얼굴을 보고 죄를 고백하세요."




올리베르는 안젤라의 음성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고개를 들어 안젤라의 얼굴을 보자마자 올리베르는 경악하며 괴성을 질렀다.




"으아아악. 성모님 제발 절 살려주세요...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멀찍이 떨어져 있던 사람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혹시 올리베르가 안젤라에게 해코지라도 할까 싶어 병원 간호부 2명이 다가가려 했다.




"오지 않으셔도 돼요. 이분께서 그냥 무언가에 놀라신듯 해요."




안젤라는 다가오려는 간호부들을 제지한 뒤 올리베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정시키려 애썼다.




"형제님, 여기에는 누구도 형제님을 해칠 사람이 없어요. 걱정말고 진정하세요."




올리베르는 부들부들 떨며 눈을 가렸던 왼손을 살짝 치켜들며 다시 안젤라의 얼굴을 훔쳐봤다. 다시 한 번 깜짝 놀라며 눈을 감았다.




"무엇이 그렇게 형제님을 두렵게 하나요? 마음을 진정하고 천천히 이야기해보세요."




안젤라의 여러차례 설득에 마침내 눈을 뜬 올리베르는 이번에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전 정말 죽을 죄를 지은 죄인입니다.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어요. 흑흑."




안젤라는 벌벌 떨고 있는 올리베르를 진정시키려는 듯 등을 쓰다듬었다.




"형제님, 저희 성모님은 모든 죄인의 죄를 다 용서해주신답니다. 차근차근 자신이 지은 죄를 고백하세요."




안젤라의 말에 용기를 얻은 올리베르는 자신의 과거를 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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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태동하는 잠룡 24.08.05 4 0 10쪽
94 태동하는 잠룡 24.08.05 4 0 9쪽
93 태동하는 잠룡 24.08.05 2 0 10쪽
92 태동하는 잠룡 24.08.05 5 0 11쪽
91 테동하는 잠룡 24.08.05 5 0 10쪽
90 태동하는 잠룡 24.08.05 4 0 10쪽
89 태동하는 잠룡 24.08.05 3 0 10쪽
88 태동하는 잠룡 24.08.05 3 0 10쪽
87 태동하는 잠룡 24.08.05 5 0 12쪽
86 태동하는 잠룡 24.08.05 5 0 14쪽
85 태동하는 잠룡 24.08.05 4 0 12쪽
84 주교살인사건 24.08.04 6 0 11쪽
83 주교살인사건 24.08.04 5 0 11쪽
82 주교살인사건 24.08.04 7 0 11쪽
81 주교살인사건 24.08.04 6 0 9쪽
80 주교살인사건 24.08.04 3 0 10쪽
79 주교살인사건 24.08.04 3 0 11쪽
78 주교살인사건 24.08.04 5 0 10쪽
77 주교살인사건 24.08.04 4 0 10쪽
76 주교살인사건 24.08.04 5 0 9쪽
» 주교살인사건 24.08.04 6 0 10쪽
74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5 0 10쪽
73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3 0 11쪽
72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4 0 11쪽
71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3 0 11쪽
70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4 0 10쪽
69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5 0 10쪽
68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4 0 10쪽
67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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