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야 사는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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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김버드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7.20 13:16
최근연재일 :
2024.08.3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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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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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뜻밖의 인맥

DUMMY

몇 다리를 건너야 하는, 심지어 한 번도 만나본 적 없고 그 사람 역시 김해성의 존재를 모를 인맥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김해성은 자신 있게 답했다.


프로듀싱으로는 상대가 안 되니까 방송국 인맥으로 깔아뭉개려는 게 공수혁의 의도다. 도발이 눈에 빤히 보이는데 굳이 피하고 싶지 않았다.


‘내 밑에 있으면 방송으로 인지도 올릴 생각은 접으라고?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실제로 내가 대부업체에서 일하는 동안 방송국 인맥은 다 끊겼으니까.’


그러나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김해성의 매니저 경력을 박살 낸 깡패들이 되레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줄 거라고 누가 알았을까.


깡패들의 고객 목록을 달달 외운 덕분인가. 지금 김해성의 머릿속에는 온갖 유명인사가 떠올랐다.


‘중견 연예인, 작가, 연출진에 유명 피디까지···. 뭐, 그중에 한 명만 붙잡아도 괜찮지 않겠어?’


공수혁처럼 오디션 배역 하나를 통으로 차지하는 건 힘들겠지만. 어쨌거나 방송 출연만으로 빌빌댈 필요는 없는 거였다.


방송도 따오겠다는 김해성의 말에 유새홍 사장이 흥분했다.


“아니, 김 매니저! 작곡가 말고 방송 쪽 인맥도 있는 거였어?! 왜 미리 말 안 했어?”


공 실장이 그간 따온 건 미소의 조연 역할 몇 개와 몇천만 원씩 내고 겨우 출연한 음악 방송이 전부라며, 유새홍 사장은 은근한 불만까지 내비쳤다.


‘점핑 작업도 순항 중인데 이 상황에서 내가 인지도 높은 방송 출연까지 따온다면? 공수혁을 더 몰아붙일 수 있는 거지.’


계산은 끝났다.

버드 엔터 밖으로 나온 김해성은 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다. 버드 머니에서 고객(빚쟁이) 뒷조사를 담당하는 깡패, 황조현 팀장이었다.


-어어. 호식이냐?

“예, 형님! 접니다. 혹시 도움 좀 받을 수 있겠습니까?”


-도움? 무슨 도움?

“버드 머니 고객 중에 연예계 종사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 정보가 필요합니다. 이번에 블루문을 꼭 방송 출연시켜야 하거든요.”


-그거야 어렵지 않지! 파일 찾아놓을 테니 기다려라. 며칠은 걸릴 거다.

“넵 형님! 그리고 하나 더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혹시···.”


자초지종을 들은 황조현 팀장이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황조현과 연락하고 나니, 김해성은 새삼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황 팀장···. 내가 빚쟁이일 땐 미친 듯이 쫓아다니고 쪼아대던 사람이었는데 말이야. 지금은 제일 많이 도와주네.’


기묘하게 든든한 일이었다.


한때는 악몽보다도 더 끔찍했던 황조현 팀장이, 이제는 버드 머니에서 김해성의 편을 가장 많이 들어주는 사람이 되다니. 김해성을 잘 아는 만큼 그가 절대 성공할 리 없다고, 엔터 쪽 배신자가 될 리 없다고 보증 서주니까 말이다···.


‘여하간 앞으로는 연예계 인맥 관리(?)도 가능하다는 거지. 좋아. 멤버들 실전 경험이 걱정됐는데···. 라이브 특훈 계획도 아예 방송에 맞춰서 짜놔야겠어.’


버드 머니에서 서류를 작업하며 빚쟁이 목록을 달달 외운 김해성이다. 김해성은 생각했다.


황조현 팀장이 자료를 준비하는 동안 섭외할 방송에 맞춰 멤버들을 준비시키리라고.


***


며칠 뒤 블루문의 숙소.


눈떠보니 벌써 점심시간이다. 망돌답게 텅텅 빈 스케줄 덕분에 하루 종일 숙소에서 뒹굴거렸건만. 신기하게도 때가 되면 배가 고팠다. 침대에 누워있던 차서원이 벌떡 일어났다.


“제육볶음 제육볶음! 언니들 제육볶음 콜?”


차서원의 질문에 백송이 샐러드를 씹었다.


“제육볶음은 무슨···. 그제도 제육이고 어제도 제육을 먹었는데 너는 그게 또 먹고 싶니? 너도 오늘은 풀 먹어.”

“제육만 먹진 않았어. 군만두도 먹었다구. 백쏭은 어제도 풀이고 오늘도 풀인데 안 질려?”

“보통 아이돌은 식단관리라는 걸 한단다. 너처럼 먹고 싶은 대로 다 먹어도 살 안 찌는 사람은 드물다고. 나 간다.”


마지막 잎사귀까지 다 먹은 백송이 일어났다.


“어디 가는데? 오늘은 수업도 없잖아?”

“회사 가서 연습하게. 수연 언니는 아까 전에 출발했어.”


“아, 쏭 언니~ 같이 먹자. 내가 설거지도 하고 군만두도 튀겨줄게!”

“빨리 먹고 와. 너무 많이 먹지는 말고! 너희 부모님이 보내주신 택배 일주일도 안 됐는데 벌써 다 거덜 났잖아. 너희 부모님도 매번 그렇게 반찬 해주시면 얼마나 힘들겠어?!”


“잔소리할 거면 기다렸다가 같이 가자!”

“안 돼. 수연 언니가 내 자작곡이라서 더 열심히 연습했다는 말 들었지? 언니가 노력하는 만큼 우리도 열심히 해야지.”

“그건 그런데···.”


백송이 기타를 챙겨 들고 나가버렸다. 백송이 맞는 말만 해서 반박할 수는 없었지만 어쩐지 서운했다.


“혼자 밥 먹으면 심심하다구···.”


차서원은 슬픈 눈으로 밥상을 차렸다. 백송 말대로 벌써 동나고 있는 부모님 표 반찬과 냉동식품까지 전부 꺼냈으나 어쩐지 헛헛한 기분이었다.


“역시 사람은 밥 친구가 필요해. 언니들이 먹방은 그만 보라고 했지만···. 그럴 거면 같이 먹어주던가!”


차서원이 변명을 하며 핸드폰을 켰다. 차서원의 뉴튜브 알고리즘은 단순했다. 댄스 챌린지와 먹방. 안무와 먹방. 그리고 먹방. 또 먹방···.


다른 멤버들은 차서원의 먹방 사랑을 걱정했다. 원래 잘 먹는 아이가 먹방 탓에 식사량이 더 늘었다고 여겼으니까. 그래서 내린 것이 먹방 금지령 처방이건만 차서원의 알고리즘을 보았을 때 그 처방은 딱히 지켜지는 것 같지 않았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밥 친구가 필요하다는 말로 먹방 탐독을 시작한 차서원은, 방금까지 슬퍼하던 게 무색하도록 몇 분도 안 되어 화면에 빠져들었다.


“이건 본 거고. 이것도 본 거고···. 오. ‘걸시속’ 새 클립이네?”


하도 많이 보다 보니 이제는 먹방 비스무리한 예능 영상도 추천으로 올라오는 지경이었다. 다행히 추천 영상은 차서원의 취향이었다. 밥 친구로도 좋았고 심지어 유익하기까지 했다.


시장 좌판에서 맛있게 음식을 먹는 유명한 연예인들을 보고 있으니 차서원도 의욕이 샘솟았다.


“나도 유명해지면 시장 투어 다녀야지! 가서 이모들이 주는 음식 다 먹고 사인도 해드릴 거야! 10년 안에는 가능하겠지?”


차서원 나름의 현실적인 소망이었다. 아무리 블루문이 인기가 바닥이라지만, 그래도 10년 안에는 성공할 거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차서원의 소원은 생각보다 빠르게 이루어졌다. 김해성이 잡아 온 새로운 스케줄 덕분이었다.


***


지하 연습실이 오랜만에 시끌벅적했다.


일찍부터 와있던 구수연과 백송. 유새홍 사장이 공 실장을 쪼아준 덕분에 겨우 시간을 낸 유미소. 밥을 세 그릇은 먹은 뒤에야 합류한 차서원까지.


멤버들은 김해성이 전해준 행사 소식에 소리를 지르며 방방 뛰었다.


“정말요? 스케줄이 잡혔어요?!”

“우왓! 행사는 처음인데! 그것도 이렇게 많이요?!”

“그래 얘들아! 아주 작은 행사이긴 한데 이제 우리도 스케줄이 꽉꽉 찼다!”

“대박!”

“이거 꿈 아니죠?”


그러나 기쁨은 잠시였다. 김해성이 들뜬 멤버들을 진정시키며 운을 뗐다.


“얘들아. 스케줄 설명에 앞서 할 이야기가 있다. 녹음이 끝난 뒤로 내가 여러 가지로 생각해봤는데 점핑이 잘되면 우리가 방송에 나갈 수 있잖아? 아니면 아주 큰 무대에 선다든지 말이다.”

“대박! 방송 나가면 진짜 좋겠다···.”


“그래. 그런데 방송이나 큰 무대는 녹음실과 달라. 실수한다고 몇 번씩 리테이크 해주거나 컨디션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어떤 상황이든 자기 실력을 100% 발휘해야 하는 거야.”

“앗···.”


김해성의 지적에 멤버들이 흠칫했다. 특히나 구수연이 긴장했다. 당연히 구수연 자신을 저격한 이야기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김해성은 구수연만 언급하기보다는 멤버 전체에게 조언하듯 차분히 말했다.


“물론 너희들 실력이 최고인 거야 내가 잘 알지. 서원이 미소 잘 부르고. 송이는 작곡에 연주까지 되고. 수연이는 완전 실력파 메보고! 그런데 너희가 라이브 경험이 적더라고. 음악 방송 나갔을 때도 AR (All Recorded : 반주에 가수의 목소리까지 녹음된 음원) 깔고 노래했었지? 팬싸나 미니 팬미팅 때도 노래보다는 퍼포먼스 위주로 보여줬었고?”


블루문에 관한 건 다 꿰고 있는 김해성이었다. 확인차 던진 질문에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는 라이브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경험이 적다 보니까 자꾸 떨리고 실수하는 거야. 최근에 수연이가 멤버들 앞에서 노래 연습한다고 했는데, 그게 좋은 자세인 거다. 자꾸 해봐야 느는 거니까.”


“맞아요! 대박!”

“수연 언니가 노력한 덕분이야.”

“나도 언니 녹음본 들었어. 정말 좋더라.”


공수혁 실장이었다면 부족한 실력을 꼬투리 잡아 험한 소리를 퍼부었을 텐데 김해성은 오히려 칭찬을 해주었다. 추가로 멤버들의 호평까지 이어지자 구수연도 용기를 내서 솔직하게 고백했다.


“매니저님. 늘긴 했지만···. 멤버들 앞에서만이에요. 낯선 사람들 앞에서는 아직도 제대로 못 부르겠어요. 긴장이 안 풀려서···.”


어렵게 꺼낸 이야기에 김해성이 웃었다.


“그래서 내가 준비했다. 아까 내가 작은 행사라고 했었지? 이게 사실은 그냥 행사가 아니다. 너희들의 라이브 특훈을 위한 거야. 일명 시장 투어!”

“네에?!?!”


“큰 무대에 서기 전에 동네 행사부터 차근차근 다지는 거지. 내가 일부러 아는 분 통해서 동네 시장에서 하는 장기자랑 무대나 판촉 행사를 싹쓸이해왔어. 행사비는 없지만, 그래도 시장에서 쓸 수 있는 쿠폰 같은 건 주신다고 하니까. 식도락 여행도 겸하는 거지.”

“네???”


‘행사비도 안 받는 시장 투어라고···? 내가 뭘 들은 거지···?’


김해성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연습실 분위기는 싸해졌다. 멤버들이 벙찐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는 와중에 차서원만이 신나서 떠들었다.


“오예에! 시장에 간다! 그러면 쿠폰으로 먹을 거 사도 되죠?!”

“물론이지!”

“역시 매니저님이 최고야!”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백송이 물어보았다.


“매, 매니저님. 시장 투어라뇨? 라이브 연습이 필요하다는 건 이해했지만요. 그러면 차라리 홍대로 가지 왜 시장이에요···?”

“시장이든 홍대든 같은 무대 아니냐. 언제나 어디서나 너희가 최선을 다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선택한 장소다.”


김해성이 꽤나 명언을 날렸지만 백송은 납득할 수 없었다.


“아니, 그래도요···!”

“송아. 매니저님이 이미 행사를 잡으셨다잖아.”


구수연이 말리자 백송이 답답해했다.


“아니, 언니! 라이브 연습이면 오픈 마이크도 있고 버스킹도 있잖아! 왜 하필 시장에서 라이브 특훈을 하냐고···.”


백송의 의문은 타당했다. 구수연 역시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장소가 이상하긴 해···. 그래도 나는 김해성 매니저님을 믿어. 레코딩에서 내 목소리도 최상으로 끌어내 주셨잖아.”

“그거야 언니가 혼자 연습하고 노력한 게 효과를 봐서···.”

“송아. 매니저님 덕분에 점핑 녹음을 성공적으로 끝낸 거잖아. 나는 김해성 매니저님을 믿어. 시장 투어라는 것도 분명 깊은 뜻이 있어서 계획하신 걸 거야.”


김해성 매니저에 한해서 절대적 신뢰를 보이는 구수연이었다. 백송이 다급하게 유미소를 불렀다.


“미소 너는? 넌 괜찮아? 오디션으로 바쁜데 괜찮아? 겨우 낸 시간을 시장바닥에서 이상한 행사하는 데 써도 괜찮냐구···?!”


유미소는 곰곰이 생각했다. 단순히 행사를 물어보는 질문이었음에도 유미소는 좀 더 포괄적으로 접근했다.


‘수연 언니는 매니저님이 마련한 무대니까 시장에서 노래하는 것도 괜찮다고 했잖아. 결국 매니저님에 대한 신뢰가 중요한 건가?’


김해성 매니저. 죽어가던 블루문의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바꿔준 사람.


일전에 스튜디오 엔지니어에게까지 블루문을 홍보하던 모습을 보았을 때, 김해성 매니저는 진심으로 블루문을 아끼는 듯했다.


마음씨만 좋은 게 아니다. 김해성 매니저는 능력도 갖췄다. 점핑 편곡의 반응도 좋았었고 멤버들 레코딩도 잘 이끌었다지 않나?


‘내 연기 스케줄도 정리해주셨고.’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김해성 매니저가 나서준 덕분에 공수혁 실장이 욱여넣은 쓸데없는 연기 스케줄도 일부 조정할 수 있었다.


연기 학원을 뺑뺑이 돌았을 시간에 멤버들과 함께 특훈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유미소에겐 기쁜 일이었다.


유미소가 결론을 냈다.


“응. 괜찮아.”

“아니···. 다들 찬성이면 나도 하겠지만···.”


구수연에 이어 유미소도 좋아하자 백송도 별수 없었다. 그러나 마음속에 드는 의문은 막을 수 없었다.


돈도 돈이지만 왜 하필 시장이란 장소를 고른 것인지. 동네 시장에서 노래하는 것이 정말로 자신들에게 효과가 있을지. 무엇보다, 장기자랑에 판촉 행사 무대라니···!


‘아무리 블루문이 인기가 없다지만, 그래도 너무 한 거 아니야? 내가 하고 싶었던 음악은 이런 게 아닌데···. 나만 창피한 거냐고···?!’


다행히 백송의 낙담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리고 송아.”

“네?”

“잠깐 이야기 좀 하자. 송이 너한테는 내가 특별히 부탁할 게 있어.”


김해성은 처음부터 대비책을 가져왔으니까.


***


그리고 다시 며칠 뒤.


지친 얼굴의 삐쩍 마른 중년 남자가 택시에서 내렸다. TBC 예능국의 스타, 장위준 피디였다.


밤샘 작업 후 겨우 한 이른 퇴근이었음에도, 장위준은 즐겁지 않다는 얼굴이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장위준은 자신이 집을 그리워하지 않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남자 혼자 살기에 40평대의 브랜드 아파트는 너무 넓고 휑했다. 먼지 앉은 거실과 차가운 바닥에 몸서리친 장위준이, 담뱃갑에 라이터만 챙겨서 다시 밖으로 나왔다.


아내가 봤다면 또 피우러 가냐고 한소리 했겠지만 어쩌랴? 아내와 아이들은 이역만리 타국에 있고 가장의 속은 타들어 가는데···.


몇십억 아파트 한구석에 옹졸하게 마련된 흡연부스에서, 장위준 피디는 줄담배를 피웠다. 스읍- 소리가 나도록 길게 길게 연기를 빨아들였다.


그럼에도 장위준의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아직 끝마치지 못한 편집 작업보다도 더한 걱정이 밀려왔음에.


‘젠장. 사기로 날린 돈은 어떡하지? 이제 곧 애들 학비랑 생활비 보내야 하는데? 대부업체 새끼들한테 꾼 돈은 또 언제 갚아?’


아무에게도 말 못 한 비밀에 궐련도, 장위준의 속마음도 이미 시꺼멓다. 와중에 또 전화가 울렸다.


“이런 씨···! 엇? 모르는 번호잖아?”


버드 머니의 빚 독촉 전화인 줄 알고 놀랐다가 안도했다. 동시에 모르는 번호를 본 순간, 사라진 투자 사기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절로 통화 버튼을 누르게 되었다.


“홍 대표? 드래곤 인베스트 홍 대표야?!”

-아, 안녕하십니까 장위준 피디님. 저는 버드 엔터의 매니저 김해성이라고 합니다. 제가 피디님께 할 좋은 제안이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뭐?! 어디 기획사라고?”

-저희는 버드 엔터라고 블루문이라는 걸그룹을 만든 신생 기획사인데···.

“이 새끼가 미쳤나?!”


너무 자신만만하기에 대형 기획사의 매니저가 전화한 줄 알았다. 그러나 다시 물어봐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하꼬 기획사와 걸그룹이었다. 울컥하는 마음에 장위준은 욕을 퍼붓고 전화를 끊었다.


가끔씩 어디서 번호를 알아내어 멋대로 연락해오는 쪽이 있긴 했지만, 그건 상대도 끗발이 있을 때 한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끗발이 없다면 다른 조연출 등을 통해서 연을 대거나, 방송국 대기실에 진 치고 앉아서 인사부터 하는 게 관례였다.


물론 전화 한 번에 온갖 쌍욕을 퍼부은 것은 너무한 감이 없지 않았으나···. 장위준 피디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이 방송국의 역학관계니까. 잘나가는 피디라면 하꼬 기획사의 빌빌거리는 매니저 따위는 얼마든지 무시해도 괜찮다. 아쉬운 쪽은 하꼬 기획사다. 자신이 멋대로 굴고 욕해도 상대방은 그저 굽신거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장위준 피디는 그렇게 생각했다. 버드 머니의 황 팀장이 갑자기 자신을 호출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급한 일이라며 방송국까지 찾아오겠다는 깡패를 겨우 말렸다. 인근 카페에 들어간 장위준은, 카페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덩치의 빡빡머리를 보았다.


수금하러 찾아오는 버드 머니의 깡패, 황조현 팀장이었다. 장위준은 삐져나오는 욕을 참고 억지웃음을 지었다.


“화, 황 팀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입금이 늦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달에는 정말 돈이 없어서···.”

“장 피디야, 너 왜 싸가지가 없냐? 엉?!”


빨리 돈 갚으란 말은 들었어도 싸가지 없다는 말은 처음이었다. 방송국에서야 자주 듣던 뒷담이지만, 여하간 버드 머니의 깡패에게선 나올 리 없는 말이었다. 깡패들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고 저절로 예의를 갖추게 되는 장위준이었는데 말이다.


“제, 제가 싸가지가 없다고요···?”

“그래 이 새꺄. 네가 뭔데 우리 막내한테 욕부터 하고 지랄이야?! 이놈이 딴따라 매니저에 똥손이라고 우습게 보이냐?!”

“네?! 제가 황 팀장님 동생분께 실례했다고요?!”


이번엔 더 황당한 이야기다. 황 팀장에게 동생이 있는지도 몰랐고 만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욕을 했다는 말인가? 장위준 피디가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감도 못 잡았을 때.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황조현의 덩치에 가려져 있던 말쑥한 남자가 황조현을 말렸다.


“아이고, 형님! 저는 괜찮다니까요. 뭣 하러 피디님께 화를 냅니까?”

“뭐가 괜찮아?! 내가 안 괜찮아, 임마! 사람이 너무 착해도 일이 안 풀리는 거다. 내가 널 모르냐?”

“하긴···. 세상에 조현 형님만큼 절 잘 아는 사람이 없긴 하죠. 그래서 저도 형님으로 잘 모시지 않습니까?”


두 사람 대화에 장위준 피디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황조현 팀장 옆에 앉은 것은 분명 처음 보는 남자인데, 이상하게도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뭐지···? 분명 본적은 없는데. 왜 들어본 듯한 목소리야?’


호감 가는 인상이라 이전에 봤다면 모를 수 없는 얼굴이었다. 의아한 장위준이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황 팀장님. 옆의 분은···?”


그제서야 장위준 피디와 눈을 맞춘 남자가, 부드럽게 웃었다.


“아,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직접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장위준 피디님. 저는 버드 엔터의 김해성 매니저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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