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야 사는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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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김버드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7.20 13:16
최근연재일 :
2024.08.3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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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8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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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명예로운 죽음

DUMMY

장소는 다시 TBC. 단체 미팅에 앞서 이한솔 피디는 김해성과 따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내가 진짜 팍팍 밀어줄게요! 김 실장님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대신 화제성만 대박 쳐 봅시다!”


이한솔 피디가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하며 호쾌하게 외칠수록, 김해성은 점점 곤란해졌다.


‘젠장! 무난하게 방송에 나가고, 무난하게 실력파 이미지만 굳혀도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그가 단순한 사람이었다면 당장 오케이라고 외쳤을 것이다. 방송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으면 유새홍 사장에게 생색내기도 좋고 실장직도 쉽게 얻을 테니까.


문제는 이한솔 피디의 높은 목표치였다.


‘화제성 대박? 좀 밀어준다고 대박이 나오는 거라면 누구나 했을 텐데 말이야.’


곡 프로듀싱과 방송 섭외까지는 어떻게 해결했지만 ‘방송 대박’은 김해성의 영역이 아니었다.


‘애초에 내가 손대서 잘 됐던 그룹이 없었으니까···.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건 기본기와 퀄리티 영역이지 대중들 반응이 아니라고.’


버드 머니에 노예로 잡혀가기 전. 그의 매니저 생활을 보았던 이들은 모두 안타까워했다.


-해성이 걔는 열심히는 하는데 참 결과가 안 따라줘.

-성실하고 안목도 꽤 좋아. 근데 큰 프로젝트만 맡으면 망한다니까?


새삼 떠오르는 옛 기억에 김해성이 주먹을 쥐었다. 말단으로 일할 땐 문제 없다가도, 이름만 걸고 총 책임자가 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망하던 게 바로 김해성 본인 아니던가.


그나마 걸시속 만큼은 기사도 좋게 나고 인터넷 반응도 얻으면서, 김해성 특유의 망조를 비켜나간 것으로 보이긴 했지만···.


이도 따지고 보면 믿기 힘든 천운이었다. 김해성이 멤버들을 철저하게 준비시키긴 했으나. 그 이상으로 반응이 온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공수혁의 방해 공작 덕분이니까.


복잡한 마음에 김해성은 즉답을 피했다. 적절히 주제를 돌리면서 말이다.


“너무 과찬이십니다 피디님. 것보다 단체 미팅이라고 들었는데 저한테 너무 많은 시간을 쓰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네 벌써 시간이···. 우선 전체 미팅부터 하고 다시 이야기하죠!”


마침 시간이 다 된 지라 두 사람은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에는 이미 조연출과 작가진, 각 기획사의 인력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자주 망해서 그렇지 매니저 짬밥은 오래 먹은 김해성인지라, 면면만 보고도 누군지 파악이 되었다.


‘저 사람은 화이브 엔터 쪽 매니저 아닌가? 그러면 퀸걸스 담당이겠네. 저 남자는 예전부터 고고몬 키우던 사람이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 탑맨즈랑 블로썸썸 매니저인가? 특집 방송이라 그런지 다들 대형 기획사네.’


확실히 뮤직 타임에서 힘을 준 특집이었다. 김해성을 제외한 다른 이는 모두 대형 기획사 출신인 것을 보면.


마지막으로 들어온 두 사람에게 쏠린 시선에, 이한솔 피디가 김해성을 소개했다.


“이번 특집 방송에 같이하게 된 버드 엔터의 김해성 실장님이십니다. 이번 걸시속 방송으로 화제 됐던 걸그룹 블루문 아시죠? 그 친구들 담당하는 분입니다. 능력이 좋은 분이셔서 제가 직접 추천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블루문 담당의 김해성입니다!”


김해성의 각 잡힌 90도 인사에 다들 적당히 화답하면서도 의아한 표정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표정이었다. 내로라하는 대세 아이돌만 모아놓은 특집 방송에, 긴 무명의 듣보잡 3류 아이돌, 블루문을 끼워 넣다니.


블루문이 며칠 전 걸시속 방송으로 나름의 반응을 끌긴 하지만, 대형 기획사 입장에서 그 정도 화제성은 해프닝 수준이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자신들과 블루문이 한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달까.


어쨌거나 섭외는 피디의 몫이었다. 이한솔 피디는 다시 프로그램 컨셉을 설명하며 회의를 진행했다.


“이번 특집 주제가 체인지라서 그룹마다 서로의 히트곡을 바꿔서 부르는 거 아시죠? 그래서 오늘은 가장 중요한, 어떤 그룹이랑 같이 무대를 바꿀지부터 정하겠습니다. 먼저 여러분이 의견을 주시면 저희가 조율할게요.”


이한솔 피디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획사 쪽에서 질문이 쏟아졌다.


편곡은 가능한지. 제작비 분담은 어떻게 하는 건지. 코디도 합을 맞춰야 하는지 등등을. 무엇보다 자리한 기획사가 홀수라는 점에 의문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


이에 이한솔 피디가 답했다.


“아, 남은 한 팀은 핫칠링입니다! 컴백 준비로 바빠서 회의에만 못 온 거니까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요. O&D 쪽이 또 쿨하지 않습니까? 거기는 원하는 팀은 따로 없다고, 아무 팀이나 좋다고 하더라고.”


회의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옆 사람의 짜증 섞인 혼잣말도 들릴 정도로 말이다.


“아오, 핫칠링도 온다고? 바빠서 못한다더니만?”


다른 기획사도 말만 안 했을 뿐 껄끄러운 얼굴들이었다. 김해성은 이들의 반응을 이해했다.


‘하긴 다들 짬내서 음악 방송에 나오는 건데, 핫칠링이랑 같은 팀을 하긴 싫겠지. 핫칠링이랑 엮이면 방송이 오히려 마이너스잖아.’


신규 기획사 O&D가 단기간에 대형 기획사 뺨치는 크기로 성장한 이유. 그게 바로 문희아와 핫칠링 아니던가.


특히 핫칠링은 뜨거운 감자였다. 소속사와 팬들이 돌리는 엄청난 바이럴 덕분에 숨만 쉬어도 기사가 뜨는 대세 걸그룹이 됐지만. 그만큼 극성맞은 악질 팬덤도 같이 유명해졌으니 말이다.


화제성을 목표로 특집 방송에 참여하는 다른 기획사로서는 가장 피하고 싶은 존재랄까.


까딱 잘못하면 시간 들이고 노력해서 만든 무대가 묻힐 수도 있고. 최악으로는 저 지랄 맞은 팬덤에 엮여서 욕만 진탕 먹을 수도 있다.


음악 방송에 나가는 게 득이 아닌 독이 되는 것. 이는 아무리 대형 기획사라 하더라도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애초에 핫칠링 컴백을 피해 지금 쉬고 있는 그룹도 있는 만큼, 이한솔 피디가 알려 준 새 소식에 기획사들은 여유를 잃고 다급해졌다.


마지막까지 페어를 이루지 못한 팀은 핫칠링과 함께 해야 할 테니까.


“이 팀장. 퀸걸스는 언제 시간 돼? 다음 주에 여유있어?”

“우리 애들이야 언제든 오케이지!”

“이 피디님! 저희 블로썸썸이랑 퀸걸스 같이 무대 하겠습니다.”

“탑맨즈는 고고몬과 같이 합니다.”


급하게 스케줄을 묻고 조율하더니만. 대형 기획사들부터 순서대로 페어를 정했다.


다들 핫칠링을 피하려고 정신없는 와중에, 이를 보는 김해성은 갑자기 눈을 빛냈다. 이 상황이 자신에게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


한편 회의실 구석에 있던 또 다른 매니저는 초조했다.


그가 담당하고 있는 그룹은 레몬플라이.


초소형 기획사인 버드 엔터보다야 크지마는 대형 기획사라 불리긴 힘든 어중간한 크기의 회사에, 레몬플라이 자체도 어중간하게 유명하다.


뭐든 애매한 주제에 대형 기획사 쪽에 먼저 기웃거린 게 문제였을까. 제안하는 족족 까이면서 매니저의 마음이 급해졌다.


다른 기획사들이 벌써 차례로 순서를 정하고 남은 이는 벌써 한두 팀뿐인 상황. 이쯤 되자 레몬플라이의 매니저는 내심 무시하던 김해성에게 시선이 갔다.


‘젠장 우리 애들이 1군은 아니라지만 그렇다고 듣보잡이랑 같이할 레벨은 아닌데···. 어쩔 수 없지. 뭐가 됐던 핫칠링보다야 나으니까···.’


그렇게 그가 억지로 김해성에게 페어를 제안하려는 순간. 김해성이 이한솔 피디에게 다가갔다. 눈앞에서 목표를 놓친 레몬플라이의 매니저는 아연실색했다.


“뭐야?! 저 듣보잡도 벌써 팀을 꾸린 거야?!”


낭패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속마음을 육성으로 뱉을 정도로 낭패였다. 듣도 보도 못한 잡스러운 아이돌의 매니저마저 같이할 상대를 구했다면, 이제 남은 것은 자신과 핫칠링뿐일 터.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


절망한 레몬플라이 매니저의 귀에 요상한 말소리가 들렸다.


“이 피디님. 저희 블루문은 핫칠링과 함께 하겠습니다.”


뭐? 블루문이란 듣보잡이 먼저 핫칠링과 같이 하겠다고 제안한다고? 믿기지 않아 다시 들었으나 듣보잡 매니저와 이한솔 피디가 나누는 대화는 분명했다.


“그, 김 실장님···. 제가 김 실장님이 일 잘하신다는 이야긴 들었지만 그래도 핫칠링과 블루문은 좀···. 핫칠링과 같은 팀을 하시면 눈에 띄기 힘들 텐데요.”


하필 가장 무명인 블루문이 가장 주목받는 핫칠링을 원하다니. 블루문을 직접 추천한 이한솔 피디마저도 김해성을 말렸다.


핫칠링은 특집 무대의 마지막, 대미를 장식할 메인 이벤터다. 흥행을 위해서는 비등한 실력자를 붙여놔야 하는데 김해성이 나서면서 그림이 어그러졌다.


김해성과 블루문이 뭘 해보기도 전에, 극심한 체급 차이로 나가떨어질 게 뻔하니 말이다.


그러나 이한솔 피디의 배려 넘치는 설득에도 김해성은 완고했다.


“괜찮습니다 피디님. 저희 애들이 핫칠링과 데뷔 동기지 않습니까? 나름 방송적으로 스토리 텔링 할 요소고, 또 시너지 내기에도 좋지 않습니까?”


시너지는 무슨. 핫칠링의 파괴적인 인기에 블루문이 시들어 버리지나 않길 바라야 할 텐데.


이쯤 되자 회의실의 모든 시선이 김해성에게 집중됐다. 물론 그들의 눈빛도 이한솔 피디나 레몬플라이 매니저의 그것과 비슷하긴 매한가지였다.


당황한 이한솔 피디가 급하게 다른 사람들을 불렀다.


“아무리 그래도 핫칠링은 좀 더 유명한 팀이 맡는 게···. 핫칠링과 같이 서고 싶으신 분 없으십니까?”

“······.”


“진짜 없어요···?!”

“······.”


대답은 없었다. 애초에 핫칠링을 피하려던 사람들이 지금 와서 나설 리가···. 결국 핫칠링의 상대로 남은 것은 블루문뿐인 상황.


어색한 침묵 끝에 이한솔 피디가 조건부로 허락을 했다.


“으음···. 그러면 제가 O&D 엔터 쪽에 한 번 물어보고 픽스 하겠습니다.”

“넵!”


김해성의 목소리는 주제를 모르고 패기만 넘쳤다. 어쨌거나 다른 기획사의 매니저들에게는 뜻밖의 행운이었다.


핫칠링이란 불구덩이에 제 발로 들어가는 미치광이가 있을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


O&D 엔터의 양지현 팀장은 바빴다.


“팀장님. 핫칠링 프로모션 일정 나왔습니다.”

“문희아 새 광고 문의 들어왔습니다.”

“형님! 이예리 배우가 매니저를 바꿔 달라고 하는데요.”

“홍 대표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핫칠링의 컴백과 문희아와 이예리 같은 배우 관리. 추가로 기타 잡무까지. 총괄팀장이라는 직함답게, O&D 엔터의 거진 모든 일은 그의 손을 거치게 되어있었으니 말이다.


“프로모션은 이대로 진행하고 광고는 단가대로만 취급해. 예리는 당분간 배우팀에서 전담하고, 나 바쁘다. 그리고 너는···.”


성가시다는 얼굴로 일을 쳐내던 양지현에게 또 다른 직원이 달려왔다.


“팀장님! TBC 뮤직 타임의 이한솔 피디한테서 전화 왔었습니다.”

“왜? 뭐래? 짧게 말해.”


“저희가 이번에 참가하는 TBC 특집 무대 말입니다. 거기서 핫칠링의 상대가 블루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피디님이 괜찮냐고 확인 전화를···.”

“블루문?”


낯선 듯 익숙한 그룹명이었다. 직원이 설명을 덧붙였다.


“블루문이라고, 음원 사이트에 차트 인을 못하는 무명 걸그룹이 있습니다. 저희도 잘 모르는 아이돌인데, 이번에 걸시속 방송으로 잠깐 화제가 됐던 그룹이라고 합니다. 아! 거기 멤버 중 한 명이 이예리 배우랑 같은 드라마에 출연을···.”

“아, 그 새끼! 샌님처럼 생겨서는 깡다구 있던 놈!”


드디어 기억이 나긴 했는데. 어쩐지 양지현이 떠올린 것은 유미소보다도 김해성이 먼저였다.


이예리의 배우 오디션을 위해 연기 아카데미까지 찾아갔던 날. 사무실에 들이닥치며 자신 앞에서도 당당하던 그 인간이 말이다.


곱상한 외모와 다르게 서슬 퍼렇던 눈빛 때문이었다. 인생도 인상도 험하게 굴러먹은 양지현에게, 자신과 동급이라는 느낌을 주는 이는 오랜만이었으니까. 그러나 그 감상은 잠시뿐.


신인 배우 이예리를 챙겨야 했던, 그래서 자신의 성질을 어느 정도는 죽여야 했던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떠오르는 국민 아이돌, 대세 중의 대세인 핫칠링의 상대로 블루문이 걸렸다니. 상황이야 빤할 빤자였다. 양지현은 비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큭. 뭐, 보나 마나 다른 팀한테 거절당하고 마지막에 남은 놈이 그놈인 거겠지. 이한솔 피디한테 상관없다고 답해!”

“그러면 블루문을 분석해서 대비책을 짜겠습니다.”


양지현의 허락에 핫칠링의 상대가 블루문으로 확정되었다. 이에 맞춰 직원이 준비하려는데, 양지현이 어이없어했다.


“됐다. 그딴 듣보잡 아이돌을 분석해서 뭣해? 너흰 컴백만 집중하고, 그 특집은 방송국 니즈에 맞춰서 대충 넘겨. TBC 부탁으로 나가는 거라 신경 쓸 필요 없으니까.”

“넵!”


이는 양지현의 진심이었다.


신인 배우인 이예리를 케어할 때와는 다르다. 그 상황이야 어쩔 수 없이 블루문 따위를 상대해야 한 거지만, 아이돌판에서는 다르다.


핫칠링이라는 이미 완성된 거인에게, 차트 인조차 제대로 못 하는 변변찮은 삼류 아이돌은 먼지와 같았으니.


배우 판에 이어 아이돌 판에서도 블루문인지 뭔지 하는 잡것과 엮이게 된 것은 짜증 났지만 괜찮다. 어차피 핫칠링을 케어하는 것은 실무를 뛰는 매니저다. 자신이 직접 얼굴 마주할 일도 없으니 상관없다는 게 양지현의 생각이었다.


자본과 규모의 힘이 전부인 연예계에서, 그깟 매니저 한 사람이 바꿀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


버드 엔터서도 반응은 비슷했다.


핫칠링과 같은 무대에 서게 되었다는 비보에 유새홍 사장과 직원들 모두 표정이 안 좋아졌다.


“하필 걸려도 핫칠링을···.”

“이러면 방송을 잡은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핫칠링한테 묻혀서 우리 애들은 존재감도 없을 텐데요···.”

“아니, 김 실장···! 급한 대로 아무나 붙잡고 같이 하자고 했어야지! 어영부영하다가 핫칠링을 만나버리면 어떡해! 어쩐지 핫칠링도 나올 수 있다는 말 들었을 때부터 싸하더니만···.”


공수혁과 함께 이한솔 피디를 처음 봤던 날. 핫칠링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약간 걸쩍지근했던 유새홍이었다.


그래도 설마, 블루문이 핫칠링과 붙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다니···. 유새홍 사장은 울컥하다가도 한숨을 쉬었다.


“됐어, 뭐. 김 실장도 그러고 싶진 않았겠지···. 됐고. 그럼 이제 어떡해야 하는 거야?”


회의실 분위기는 김해성을 족치기보다는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더 짙었다.


선착순으로 함께 할 그룹을 정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유새홍 사장도 양지현 팀장과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김해성이 자의가 아닌 타의로, 어쩔 수 없이 핫칠링이라는 최악의 대진표를 받았다고 말이다.


바지사장인 자신도 아는 핫칠링의 위험성을, 능력자 김해성이 모를 리 없을 테니까. 스스로 핫칠링과 붙겠다고 선언할 미친놈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유새홍 사장의 착각에 부합하듯. 이어진 김해성의 답변은 사뭇 비장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그래도 핫칠링에게 지지 않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피디님이나 사장님께서 일전에 뮤직 타임은 꼭 대박 내자고 말씀하신 것도 있으니, 어떻게든 핫칠링을 이길 수 있도록···.”


유새홍이 김해성의 말을 자르고 되물었다.


“으응? 핫칠링을 이기자고···? 잠깐만. 뭘 이기겠다는 거야? 거긴 엮이면 안 되는 극성 팬클럽 애들이 있다고. 우리 애들도 옛날에 피 봤고!”

“맞습니다. 블루문 데뷔 초에 핫칠링과 같이 묶여서 신인 무대 할 때, 그때부터 핫칠링 팬들한테 귀여운 척한다고 역겹다고 욕먹어서 활동을 빨리 종료했었죠.”

“저희만이 아닙니다. 다른 아이돌 그룹도 핫칠링 팬들한테 찍히면 곤란한 일 많이 겪습니다. 저희는 팬 수도 적으니까 더 조심해야 해요.”


직원들도 유새홍 사장도 두렵다는 듯 몸서리를 쳤다. 멤버들이 예전에 핫칠링을 무서워하더니만, 그 두려움은 직원들에게도 똑같이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유새홍 사장은 고개를 저으며 김해성을 말렸다.


“그래! 김 실장이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모르나 본데, 핫칠링이나 그 팬들, 둘 다 무섭고 독하고 싸가지 없다고! 그러니까 이길 생각 같은 건 절대 하지 마! 그 인간들 눈에 잘못 띄면 큰일 나니까.”

“그러면 뮤직 타임 방송은 어떻게 하죠? 이미 이한솔 피디님께도 열심히 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됐어, 됐어! 그냥 숨죽인 듯 있어. 너무 열심히 하지도 마, 김 실장. 잘 해서 피디 마음에 드는 것보다도, 지금은 그냥 조용히 몸 사리고 넘어가는 게 더 중요하니까. 알겠지?”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죠. 멤버들한테도 잘 전달하겠습니다.”

“그래 김 실장. 뮤직 타임 피디한텐 미안하지만 이번엔 대충 넘어가자고.”


의욕 넘치는 김해성이 걱정되는 것인지. 유새홍 사장은 신신당부하며 거듭 말렸다. 몸을 사리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으로 회의가 끝날 때까지 계속 말이다.


그러나 유새홍 사장이 모르는 것이 있었으니.


이 모든 것이 ‘명예로운 죽음’을 염두에 둔, 김해성의 계획일 것이라고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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