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야 사는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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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김버드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7.20 13:16
최근연재일 :
2024.08.3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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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3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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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위기를 기회로

DUMMY

공수혁 실장은 요즘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문자를 확인한 공수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김해성 : 공수혁 실장님. 내일 블루문 단체 행사가 있어서 미소 양 연기 수업 스케줄을 조정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 도떼기 시장판을 다니면서 ‘무급’으로 행사 다닌다는 놈이, 오히려 공수혁에게 멋대로 스케줄을 바꿔달라 뭐해달라 요구하고 있었다. 목은 아주 빳빳이 세운 채 말이다.


‘멍청한 놈. 내가 허락해주겠냐?! 돈도 안 되는 행사 때문에 비싼 돈 주고 잡은 수업을 취소하라고?!’


솔직히 유미소 연기력이야 선생 몇 명 더 붙인다고 나아질 사항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연기 레슨으로 유미소의 스케줄을 꽉꽉 채운 이유는 단 하나.


‘네 놈 방해하려고 일부러 잡아둔 레슨인데!’


점핑 프로듀싱으로 개쪽을 당한 이후. 공수혁은 김해성을 마냥 무시하기가 어려웠다. 김해성이 손대는 일마다 망해서 잠수까지 탄 운수 더러운 매니저라지만, 놈이 자평한 대로 능력만큼은 확실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유미소의 합격이 거의 90% 확실한 상태임에도 ‘혹시 떨어질지도 모른다’라며 바쁜 척을 했다. 얼마 안 남은 점핑 발매까지 김해성이 하려는 일은 최대한 훼방 놓아야 하니까.


안된다고 답장하려는데 바로 다음 문자가 왔다.


[김해성 : 그리고 내일 행사가 지방이라, 운전 전담해줄 로드 매니저도 한 명 부탁드립니다. 유새홍 사장님도 허락해 주셨으니 따로 보고 안 하셔도 됩니다.]


“뭐?! 유 사장이 허락했다고?!”


그러나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스케줄 변경 통보만으로도 짜증이 나는 데 로드 매니저까지 한 명 내달라? 심지어 그걸 유새홍 사장에게 이미 허락받았다?!


아니 될 소리다. 공수혁이 분개하여 사장실로 달려갔다.


“유 사장님. 곧 오디션인데 왜 자꾸 김 매니저 일정에 양보하라는 겁니까? 듣자 하니 시장판에서 돈도 안 되는 행사를 뛴다던데. 그딴 일에 제가 일정에 스탭까지 양보해야 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이러다 미소가 오디션에서 떨어지면 사장님께서 책임지실 겁니까?!”

“허허. 공 실장 진정해. 김 매니저가 무급 행사만 다니는 게 아니야. 김해성 매니저가 점핑 음원 발매한 다음에 나갈 방송도 싹 다잡아놨더라고. 그것도 멤버 하나만 나가는 게 아니고 블루문 단체로 전부.”


이전 같으면 공수혁이 언짢은 낌새만 내도 어쩔 줄 모르던 바지사장이 이제는 공수혁 앞에서 여유를 부렸다.


“MBS 오디션은 합격이 유력하다며? 시장행사 도는 것도 내일이면 끝난다니까 공 실장이 양보 좀 해.”


김해성이 단체 방송을 잡아 왔으니까 당분간은 태클 걸지 말고 양보하란 소리였다.


이에 공수혁이 대놓고 비웃었다. 김해성이 내보낸다는 방송 목록은 이미 그도 들어 알고 있었다.


“김해성이 잡아 온 방송이라 봤자 라디오에 뉴튜브 따위 아닙니까? 아, 시청률 0%의 심야 방송도 하나 잡았댔지. 박수 셔틀하러?”

“스케줄이 없는 것보다는 낫잖아.”


“아이고 사장님. 김 매니저가 그런 급 낮은 스케줄 물어왔다고 기뻐하시면 안 됩니다. 그딴 방송은 저도 금방 따와요. 제가 못 한 게 아니고 안 한 겁니다. 애초에 방송에 나가는 이유가 뭡니까? 홍보를 바라고 나가는 것 아녜요? 그러려면 양보다는 질이죠. 이름값 있는, 파급력 있는 방송을 따와야 한다 아닙니까? 공중파 황금시간대에 방영될 미니 드라마 정도는 되어야지 원···.”


공수혁이 일부러 크게 혀를 찬 뒤 유새홍을 쳐다보았다. 계산된 행동이었다. 김해성 놈을 들인 이후로 유새홍은 지나치게 기세등등했다. 야코를 죽일 필요가 있었다.


‘쯧. 노래하나 괜찮게 뽑았다고 홀랑 넘어가서는 말이야. 유 사장도 참 연예계 생활을 몰라요. 아이돌이 노래가 좋다고 성공하면 개나 소나 성공하게?! 연예인은 인지도야, 인지도! 또 까먹었나 본데 내가 알려줘야지 원.’


노래야 김해성이 더 잘 프로듀싱 한다지만, 아이돌은 결국 인지도다. 노래와 상관없이 얼굴이 알려져야 성공하는 판이라는 거다.


특히나 연예계는 인의 장막이 두껍기로 유명했다. 고이다 못해 썩기까지 한 이쪽 업계에서, 잠수 타는 동안 휴민트가 박살 난 똥손 매니저와 업계 굴러가는 사정을 모르는 바지사장의 조합이 살아남을 수 있겠나?


결국 제대로 된 방송을 따올 수 있는 건 공수혁 뿐이었다.


‘아쉬운 건 유 사장 쪽이지.’


공수혁은 그리 판단했다. 그렇기에 지금도 유새홍 사장이 먼저 굽히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째 반응이 이상했다. 이쯤 말했으면 알아들었을 텐데 유새홍 사장은 움츠러들지도 않고 침착했다. 공수혁이 한 말을 곱씹더니 웃어 보이기까지 하는 것 아닌가?


“역시 공 실장도 그렇게 생각하지? 유명한 방송에 나가야 홍보도 팍팍 되는 거 아냐. 그래서 내가 김 매니저 스케줄부터 우선한 거야.”

“뭐 얼마나 유명한 거에 나간다고···.”


퉁명한 공수혁의 반응에 유새홍이 목소리를 낮췄다.


“걸시속이야, 걸시속! 김 매니저가 나간다는 프로그램이 걸시속이라고. TBC의 간판 예능, ‘걸어서 시장 속으로’. 공 실장도 알지?”

“네?! 걸시속이요?!”

“걸시속은 나랑 우리 마누라도 매주 챙겨보는데, 그걸 블루문이 나간다니까?!”


유새홍 사장이 신난 만큼 공수혁은 머리가 띵했다.


‘걸시속을 김해성이···?! 말도 안 돼···!’


어떻게 메이저 방송을 뚫은 것인지 상상도 안 됐다. 특히나 다른 방송이면 모를까. 걸시속의 장위준 피디는 접대도 안 받는 깐깐한 인간으로 유명했다.


“아니, 무슨 수로?! 사기 치는 거 아닙니까?!”


믿지 못해서 아무 말이나 뱉었는데 유새홍 사장이 어물쩍거렸다.


“사실 섭외가 정식으로 온 게 아니긴 한데···.”

“아이고 사장님! 정식으로 계약한 게 아니면 당연히 사기죠. 김해성 그놈이 실적 뻥튀기하려고 구라친 걸 믿으십니까?!”

“사기는 정말 아니야. 돈 뜯긴 것도 없고···. 근데 출연 확률이 100%가 아니래.”


공수혁의 추궁에 유새홍 사장이 입을 열었다.


“그쪽 피디랑 이야기해봤는데, 아직 확정은 아니라서 내일 촬영 여부에 따라서 편집될 수도 있다고 하네? 무대를 잘해야 방송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블루문 애들이나 공 실장한테는 그냥 행사라고만 말한 거야. 혹시 실망할까 봐···.”


‘뭐? 촬영하기는 하는데 방송 확정은 아니라고? 블루문 애들이 잘해야 방송에 내보낸다는, 이런 조건부 섭외인가?’


상황이 재밌게 돌아갔다. 공수혁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자 유새홍 사장이 뒤늦게 수습했다.


“그래도 너무 걱정마, 공 실장! 내일 촬영 때 우리 애들이 제 실력만 보이면 분량 뽑아주겠다고 다 약속됐대! 그러니까 그냥 내일 로드 하나 붙여주고 애들이 촬영 잘하길 바라야지. 이거, 다른 사람들한텐 말하지 말고!”


아무래도 김해성 매니저와 했던 약속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공수혁이 웬일로 순순히 답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저야 입이 무거우니까 걱정 마세요. 김 매니저한테 운전 잘하는 놈으로 한 명 보내겠습니다.”


그러나 협조적으로 보이는 건 겉모습뿐이었다.


‘조건부라는 말인즉, 무대를 못 하면 방송 나갈 일도 없다는 거잖아?’


블루문을 누구보다 잘 아는 공수혁이다. 그의 머릿속엔 벌써 무대를 망칠 수십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매니지먼트 부서로 돌아온 뒤. 로드매니저를 따로 불러낸 공수혁이 조용히 무언갈 지시했다.


***


딸기 축제라는 현수막이 크게 걸린 양평의 한 시장. 규모 있는 지역 축제인 만큼 무대도 크고 낮부터 사람들이 떨벅거렸다. 천막으로 꾸려놓은 대기실도 따로 있었다.


덕분에 멤버들과 로드매니저는 무대 전까지 편히 쉴 수 있었지만 김해성은 예외였다. 행사 관계자들을 만나 인사하고 명함을 돌리느냐 바빴으니까.


“버드 엔터의 김해성이라고 합니다.”

“어 김 매니저. 잘 왔습니다. 대기실은 어때요?”

“대기실 정말 좋던데요?”

“그렇죠? 우리 김 매니저가 워낙 서울에서 평이 좋더라고. 내가 이야기 듣고 특별히 제일 크고 좋은 자리로 내준 겁니다. 무대도 하고 촬영도 겸한다고 하니, 내가 더 신경 썼어요.”

“감사합니다, 블루문 아이들 좋게 봐주십쇼!”


‘서울에서 얻은 호평이 여기서도 도움이 되네.’


인사만 다녔을 뿐인데 벌써 좋은 이야기가 나왔다.


‘나중에 미소가 버드 머니로 돌아가고 내가 블루문 2기를 만들어도, 이런 행사는 쉽게 따겠는데?’


장위준 피디와의 일정 조율도 스무스하게 진행되었다. 김해성이 장위준 피디와 전화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장 피디님. 예예. 오전에 도착해서 준비 중입니다. 네. 관계자분께 허락받았고요, 메인 무대를 찍어주시면 됩니다. 이따 촬영 때 뵙겠습니다.”


관계자들도 만났고 장위준 피디와도 연락을 마쳤다. 이쯤 되면 쉴 법도 한데 김해성은 계속해서 행사장 입구를 기웃거렸다.


“아무리 차가 막혔어도 이제는 슬슬 도착할 때가 됐는데···.”


그때 현수막과 종이 뭉치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김해성을 불렀다.


“혹시 김해성 매니저님?”

“오셨습니까?! 아이고, 고생하셨습니다!”


김해성은 기쁜 얼굴로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맞이했다.


오늘 공연을 위해 준비한 마지막 조각이었다.


***


준비를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온 김해성이 멤버들을 보고 웃었다.


“얘들아. 또 연습하는 거냐? 잠깐 쉬어.”


멤버들은 대기실에서도 동선을 맞춰보고 목을 풀고 있었다. 지난 한 달간 새벽부터 밤까지 연습실에서 살다시피 한 멤버들이었다.


시장판 행사를 하도 많이 뛰어서 그런가.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노래만 들으면 자동으로 춤이 나올 지경임에도 멤버들은 연습에 진심이었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말이다.


김해성이 진정시키자 구수연이 긴장해서 답했다.


“떨려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요···.”

“사람들이 많아서 그래?”

“아뇨. 그건 특훈 덕분에 이제 별로 안 떨리는데···.”


사람들 다박다박 붙어있는 시장통에서도 노래를 한 덕분인가. 적어도 모르는 사람들 앞이라고 긴장하는 건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왜? 세트 리스트 바뀐 거야 충분히 연습했잖아?”


김해성이 다시 물어보자 구수연이 한숨을 쉬었다.


“무대가 너무 커요···. 거기에 핫칠링도 온대요···.”


엔딩을 장식할 인기 걸그룹 핫칠링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평소와는 분위기가 약간 달랐다. 걱정 많은 구수연만 긴장한 게 아니었다.


백송은 차서원과 떠드는 대신 기타만 만졌고 유미소도 이미 다 외운 가사지를 한 번 더 보고 있었다. 차서원도 언제 산 건지 모를 딸기 주스를 한 모금씩 겨우 마시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원샷으로 단번에 컵을 비워냈을 텐데 말이다.


도대체 핫칠링과 이 분위기가 무슨 상관인가 싶을 때. 구수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핫칠링이 저희랑 데뷔 동기거든요···. 음악방송에서 신인 그룹으로 묶여서 소개도 되었고 대기실도 같이 썼었고요···. 그런데···.”


이를 들은 김해성이 넘겨짚었다.


‘흠. 멤버들 마음이 복잡할 만도 하네. 똑같이 시작했는데 한쪽은 전 국민이 다 아는 대세 걸그룹이 되었고, 다른 한쪽은 행사비도 안 받고 사정해서 겨우 무대에 오르는 처지니까···.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게 쫄 일은 아니지 않나?’


“얘들아. 인기 차이가 신경 쓰여서 그래?”


김해성의 의아함에 유미소가 설명을 더 했다.


“아니요 매니저님. 단순히 인기 차이 때문이 아니에요. 저희가 데뷔 때부터 핫칠링이랑 엮이다 보니, 핫칠링 멤버들도 불편하고 그 팬들은 더 불편하거든요. 핫칠링 팬들이 저희를 너무 싫어해서요···.”

“아하···.”


그러고 보니 블루문은 데뷔초에 악플을 참 많이 받았었다. 너무 과한 공주풍 컨셉 때문에 문제였던 것 같으나, 가끔은 너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욕을 먹었다.


‘백송이 핫칠링 멤버를 노려봤다는 이유로 욕먹은 기사도 있었지? 송이는 그냥 눈매가 날카로운 것뿐인데···. 혹시 핫칠링 팬들 때문에 없는 욕을 먹은 건가?’


멤버들 이야길 들어보니 꽤 타당한 걱정이었다.


싹수없다고 유명한 핫칠링과 자기네 가수보다도 더 성격이 더럽다고 악명이 자자한 그 팬들을 생각하면 말이다.


‘걸시속 이야긴 안 하길 잘했어. 핫칠링 만으로도 얘들이 겁을 먹었는데, 촬영까지 한다고 했으면 진짜 얼어붙었겠구만. 사람들도 미리 불러놔서 다행이네.’


이해는 하지만 이 상태로 무대에 올려보낼 순 없었다. 김해성이 멤버들을 불러모았다.


“얘들아. 핫칠링이랑 악연인 건 알겠다. 그렇지만 그쪽은 이따 밤 공연이고 우린 곧 있을 낮 공연이잖아. 직접 마주치는 것도 아닌데 의식할 필요는 없어.”

“그래도 혹시 핫칠링 팬들이 벌써부터 와있으면요···?”


그러니까, 멤버들은 미리부터 와있을 핫칠링의 팬들을 걱정하는 것이었다. 귀여운 걱정에 김해성은 웃으며 답했다.


“얘들아 지금 관객석에 아무도 없어. 핫칠링 팬은 고사하고 아예 무대에 관심 있는 사람조차 없다. 그러니까 핫칠링 걱정은 안 해도 돼.”

“관객이 아무도 없어요?”


관객이 없다는 이야기가 새로운 걱정이 되기 전에, 김해성이 멤버들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


“오히려 좋지. 관객석이 채워지면 그게 전부 우리가 잘한 덕분이잖아? 사람들은 금방 알아본다. 너희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얼마나 잘하는지. 무엇보다 오늘이 시장 투어의 마지막 무대 아니냐. 화끈하게 다 보여주고 오자. 너희가 얼마나 대단한지!”


김해성의 말에 멤버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노력만큼은 자신 있었다. 처음에 비하면 실력이 늘었다는 것도 스스로 실감했고 말이다.


손가락에 박인 굳은살을 만지던 백송이 답했다.


“매니저님 말이 맞았어요. 특훈, 저는 좋았어요. 고맙습니다.”

“나두!”

“좋았습니다.”

“저 정말 많이 늘었어요. 지금은 긴장해도 노래할 수 있을 정도로···! 감사합니다, 매니저님!”


시장 라이브 투어를 한다고 했을 때 가장 반대하던 백송이, 이제는 가장 먼저 고맙다는 이야길 꺼냈다. 다른 멤버들도 하나둘 답하면서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간 김해성과 함께한 노력과 경험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듯.


“그래 얘들아. 장소나 돈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이번 투어가 끝나면 너희가 얻는 게 많을 거야.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모든 무대가 소중하다는 마음으로 임하자. 여기 사람들을 다 스타즈로 만들어버리자고! 알겠지?!”

“넵!”

“우오오! 파이팅!”

“파이팅!”


씩씩하게 파이팅을 외치는 멤버들을 보고 김해성이 웃었다.


방금 한 말은 상투적 표현이 아니다. 이번 투어가 끝나면 블루문은 단순한 무대 경험 그 이상을 얻게 될 테니까.


“블루문, 올라갑니다.”


행사 스텝이 외친 스탠바이에 다시 분주해졌다.


“다녀오겠습니다!”

“송아, 기타 챙기고.”

“네!”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다.

딱 한 명. 멤버들과 김해성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말없이 사라진 로드 매니저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


한편 딸기 축제 행사장은 무대보다도 다른 곳이 더 북적였다. 방송국 카메라를 보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뭐야? 저기 카메라가 왜 저렇게 많아? TBC네?”

“미쳤다, 문희아야!”

“뭐야? 걸시속 촬영이야?!”

“문희아 예쁘다!”


잠깐 이동하는 중에도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걸시속 자체도 유명하지만, 고정 호스트인 문희아의 인기가 뜨거웠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지자 스태프들이 급하게 장위준 피디를 찾았다.


“선배님! 딸기 축제는 충분히 찍은 것 같은데 철수할까요?”

“이 정도면 약속한 분량은 다 채운 것 같습니다. 사람들 더 많아지기 전에 장소 옮기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양평군과 사전에 계약한 촬영 분량을 채웠으니, 이제 슬슬 철수하자는 뜻이었다. 그러나 장위준 피디는 철수하기는커녕 무대 쪽을 가리켰다.


“뭘 벌써 철수해? 조금 있으면 축하 공연도 있다는데 그것까지는 찍고 가야지. 군민들과 하나 되는 축제의 흥겨운 현장! 이런 타이틀로 샷 하나 건져야 할 것 아니야? 주최 측이랑 이야기 끝났으니까 막내는 빨리 거치 달고, 너희는 주변 사람들 통제해. 빨리 움직여!”

“네···.”


말도 안 되는 어거지였지만 장위준 피디의 명령이니 별수 없었다. 스탭들이 다시 분주히 돌아다니자 출연진들도 상황을 눈치챘다.


“뭐야? 여기서 뽑을 거 다 뽑은 거 아니야? 더 찍어? 왜지?”

“그러게. 더 건질 장면이 없을 텐데.”


의아해하던 출연진들이, 행사 일정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오늘 축하 공연으로 핫칠링이 나온다네. 핫칠링이 나오면 찍긴 찍어야지. 걔네가 요즘 대센데.”

“핫칠링은 노래만 내면 차트 1등이에요. 나도 신곡 벌써 외웠잖아. 쿨 하지만 뜨거워~ 으으음~”

“어휴 못 들어주겠네.”


웃고 떠들던 출연진들이 멀뚱히 서 있던 문희아를 불렀다.


“희아가 핫칠링이랑 같은 소속사지? 많이 친한가?”

“혹시 희아 네가 장 피디한테 부탁한 거야? 같은 소속사니까 더 챙겨달라고?”


다른 출연진의 질문에 문희아가 고개를 저었다.


“네? 그럴 리가요. 회사만 같지 만나본 적도 없는걸요. 아이돌이랑 배우는 사용하는 건물도 다르고요···.”


같은 O&D 엔터라지만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을 무엇하러 챙기겠는가. 아니, 애초에 문희아는 O&D 엔터에 그 어떤 소속감도 느끼지 못했다.


다행히 문희아가 더 곤란해지기 전에 대화주제가 바뀌었다. 일정표를 자세히 살펴본 다른 출연진이 이상한 점을 지적했다.


“어 잠깐? 핫칠링은 7시 넘어서 하는 저녁 공연에 나온다는데요? 지금은 정온데 뭐야?”

“뭐야? 설마 핫칠링 하나 담자고 7시간을 버티자고 할 리는 없고. 뭘 더 찍겠다는 거지?”

“그러게. 좀 유명한 가수는 다 밤에 오네. 낮 공연은 보자···. 시민 합창단이랑 학생들 공연에, 응? 블루문? 이런 아이돌도 있나?”


모두가 의아해하는 데 장위준 피디가 출연진들에게 다가왔다. 중견 배우가 물어보았다.


“장 피디님. 무슨 이유로 추가 촬영을 하는 겁니까? 찍을 게 더 있어요?”

“기왕 온 거 공연무대 한두 개 정도는 담아가려고요. 한 삼십 분? 가볍게 찍는 겁니다. 카메라 거치된 좌석에 앉아주세요.”


장위준 피디가 출연진을 좌석으로 안내했다. 빈약한 라인업 때문인가. 낮 공연의 좌석은 거의 텅텅 비다시피 했다.


“이것도 PPL에 포함되나?”

“뭐 어떻게 보면 그렇긴 한데···. 억지로 리액션 하실 필요는 없고요. 그냥 편하게 보시면 됩니다. 공연이 마음에 안 들면 대놓고 별로라고 하셔도 돼요. 편집하면 되니까.”


공연도 계약에 포함된 거냐고 물어보는 출연진들에게 장위준 피디가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걸시속은 전국 곳곳의 시장을 돌아다니는 만큼 지자체와 협업하는 경우가 많았다. 애초에 딸기 축제에 온 것도 홍보 차원에서였고 말이다.


계약 때문에 평상시엔 좋아하는 척이라도 해달라는 양반이, 오늘은 편하게 보고 솔직하게 평해달란다. 출연진들이 숙덕거렸다.


“뭐지? 오늘 장 피디 좀 이상한데?”

“그래서 이게 PPL이라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알아야 적절하게 연기를 해주지.”

“뭐 어때. 편하게 보라니까 난 편하게 보련다.”


걸시속 출연진들이 자리에 앉으니 구경꾼들도 덩달아 좌석을 채웠다. 무대는 안 보고 문희아를 찍느라 바쁘긴 했지만. 어쨌거나 빈자리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출연진들이 다시 떠들었다.


“장 피디가 왜 공연을 보자고 했는지 알겠네. 사람들이 우리 따라서 앉은 것 봐.”

“주최 측에서 사람 좀 끌어달라고 했나 봅니다.”

“얼마나 재미없는 공연이길래 우리를 미끼로 자리를 채우나 그래? 이거 앉아 있는 게 고문이겠구만.”

“빨리 시작해서 빨리 끝나면 좋겠네요···.”


문희아도 벌써 지친 얼굴이 되어 중얼거렸다. 예정에 없던 추가 촬영도 별로였는데, 그마저도 계속해서 자신을 찍는 구경꾼들의 카메라를 의식해야 했으니 말이다.


다행히 공연은 일찍 시작했다. 무대 위로 예쁘장한 4인조가 오르더니 씩씩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블루문입니다! 저희가 딸기 축제로 양평에 처음 오게 됐는데 맛있는 것도 많고 경치도 좋아서 정말 감탄했어요!”


정성껏 준비한 멘트였으나 호응은 미미했다. 예의상 들리는 박수 소리가 전부랄까. 관객 대부분은 무대보다도 뒷줄의 걸시속의 연예인들을 구경하느라 바빴다. 몇몇은 관람은커녕 객석 사이를 돌아다니며 부산스럽게 움직이기까지 했다.


출연진들이 한마디씩 평을 했다.


“이야 진짜 처음 보는 얼굴이네.”

“신인인가? 아이돌들은 따라다니는 팬이 있던데, 저 친구들은 반응이 아주 썰렁하네. 안쓰럽게 시리.”

“그래도 다들 외모는 괜찮네요.”

“가운데 친구는 배우 해도 되겠는데?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저 얼굴로 팬이 없을 수 있나?”

“실력이 개판인가 보지. 난 잘 테니까 끝나면 깨워줘.”


그렇게 약간의 오해 속에서, 공연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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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 명예로운 죽음 +3 24.08.18 122 8 17쪽
29 29. 역공 +3 24.08.17 127 8 18쪽
28 28. 역공 +2 24.08.16 125 8 14쪽
27 27. 오디션 +2 24.08.15 121 7 16쪽
26 26. 오디션 +2 24.08.14 127 7 21쪽
25 25. 오디션 +2 24.08.13 128 8 16쪽
24 24. 변곡점 +2 24.08.12 130 8 16쪽
23 23. 변곡점 +2 24.08.11 132 11 14쪽
22 22. 연기만큼은 +2 24.08.10 137 9 14쪽
21 21. 연기만큼은 +2 24.08.09 149 9 15쪽
20 20. 새로운 퀘스트 +2 24.08.08 152 10 16쪽
19 19. 새로운 퀘스트 +2 24.08.07 155 8 14쪽
18 18. 새로운 퀘스트 +2 24.08.06 159 9 17쪽
17 17. 위기를 기회로 +2 24.08.05 157 11 17쪽
16 16. 위기를 기회로 +2 24.08.04 155 10 15쪽
» 15. 위기를 기회로 +3 24.08.03 155 9 21쪽
14 14. 뜻밖의 인맥 +3 24.08.02 165 10 21쪽
13 13. 뜻밖의 인맥 +3 24.08.01 165 10 19쪽
12 12. 뜻밖의 인맥 +3 24.07.31 174 9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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