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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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희
그림/삽화
윤종희
작품등록일 :
2024.07.23 08:31
최근연재일 :
2024.09.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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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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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 함박도에서 꿈을 꾸다

DUMMY

“윤서야....... 너는 내가 아는 이들 중에서 유일하게 날 사람으로 대한 가족이다. 도와주겠다. 이 섬을 뜨거라!”



제삿날에는 언제나 외톨이였던 그를 윤서가 잡아끌어 남들과 함께 재배(再拜)를 하게 했다. 다른 친척들의 따가운 시선도 윤서가 막아주었다. 그래서 강화목사는 윤서를 특별히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폭풍우가 아직 거셉니다. 배가 뜰 수 있겠습니까?


“잠잠해지면 바로 떠야 한다. 화적들도 문제지만 아무리 임금의 일이라고 해도 세자의 죽음은 너희들에게 어떤 화가 미칠 줄 모른다. 일단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야.”


“알겠습니다. 오라버니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그런데 동서는 어디 아픈 게야? 왜 이렇게 흐느적거리느냐?”


“걱정 마세요. 형님....... 술병입니다. 강화도의 경치에 취한 것뿐입니다.”


“세자의 죽음으로 유배소(流配所)를 관리하는 유사(留司)들이 너희들을 찾고 있다고 한다. 어서 정신 차리고 자리를 떠야 할 것이다.”



폐세자는 자결했다고 해도 또 어떤 구실을 붙여 윤서와 막란을 못살게 굴지 모른다. 어명을 받고 강화도에 들어왔지만 교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최이척은 임금과 모종의 암투를 벌이고 있다. 폐세자의 자결은 두 놈들에게 어떻게 이용될 줄 모른다. 그리고 화적들은 일을 저질렀다. 일단 강화를 나가야겠다.


폭풍우가 잠잠해졌다. 그래도 비는 계속 내린다. 강화목사가 마련해준 조그마한 고깃배에 올라탄다.



“남동풍이 거세니 한양 쪽으로 가는 것은 무리일 것이야. 북쪽 오십 리 거리에 함박도라는 무인도가 있다. 일단 그 곳에 숨어 있거라.”


“오라버니 고맙습니다.”


“너에게 도움 줄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다행이다.”


“형님 안녕히 계세요.”


“여기가 잠잠해지면 내 너희들을 찾을 것이야. 그때까지 윤서 잘 부탁하네.”


“형님 만수무강 하세요.”


“윤서를 잘 부탁하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막란과 윤서의 행선지를 불지 않아 많은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윤서의 사촌오빠 강화목사는 이날 이후로 다시는 볼 수 없었다.




*




폭풍우가 거치자 타는 햇빛으로 살이 녹아내리는 듯하다. 뱃길로 오 십리라 한나절이면 올 줄 알았는데, 하루가 지나도 함박도인지 함지박인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서방님. 해와 별만 있으면 방향은 문제없다 하지 않았습니까?”


“장마라 해와 별이 숨어 있어 방향잡기가 어렵습니다.”


“햇볕이 이렇게 쨍쨍한데 뭐가 숨어 있다고 그러십니까?”


“사실 제 전문은 별자리입니다. 밤에는 구름 때문에 별이 보이지 않아 방향잡기가 어렵습니다.”


“해가 더 쉽지 않아요? 해가 뜨는 쪽이 동쪽이고 지는 쪽이 서쪽이잖습니까?”


“그게.......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아니 뭐가 어렵습니까? 아침에 해가 뜨는 쪽이 동이니까 왼편이 바로 북쪽 아닙니까? 도대체 서방님은 어떻게 방향을 잡으셔서 이렇게 같은 자리만 주구장창 돌고 있습니까?”


“.......”


“모르면 모른다고 하세요. 서방님이 다 아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모릅니다. 밤에 북극성만 보여도 이렇게 고생을 안 했을 것인데.......”



강화목사가 가리키는 손가락 방향대로 배를 향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 방향이 헷갈렸다. 밤에는 구름이 잔뜩 있어 북극성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윤서가 해를 보고 방향을 잡아 이틀 만에 겨우 무인도 함박도에 도착한다.


함박도는 함지박처럼 생겼다 하여 그 이름이 유래됐다. 사방이 조그맣게 절벽으로 되어 있고 가운데가 봉분처럼 숲으로 덮여있는 자그마한 섬이다. 그래도 물이 빠지면 인근의 우도와 갯벌로 연결되어 있다.


막란과 윤서가 섬에 도착하자 사방에서 이들을 알아보고 숨어있던 사람들이 뛰쳐나온다. 화적들이다. 명나라 남경으로 가려다 폭풍우에 배가 난파되어 겨우 이곳으로 피신 온 것이라 한다.



“막란아 어떻게 된 거여?”


“막란아 너 양반 됐다며? 그런데 여기 왠일이냐?”


“아씨 뭔 일 있는 거 아닙니까?”


“막란이 얘 또 누구 죽였어요?”



사방에서 사람들 숫자만큼 질문 공세가 쏟아진다. 바다 위에서 이틀을 헤매서 기진맥진해 심신이 내려앉는다. 덴년이가 막아선다.



“그만들 해라! 아씨 얼굴 보면 몰라! 어쩔 수 없이 여기로 내뺀 거 아니겄냐!”



화적들도 몰골이 말이 아니다. 그동안 세곡을 버리지 않고 비상식량으로 남겨 둔 것으로 겨우 버티고 있었지만 그 것도 닷새 정도의 양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막란과 윤서가 가져 온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


낮에는 고기를 잡으려 해도 우도 사람이 드러난 갯벌로 걸어와 여기까지 수렵을 하기 때문에, 몸을 숨겨야 해서 뜻대로 고기를 잡지 못한다고 한다. 밤에 수렵을 해야 하는데 횃불을 놓을 수 없으니 잡는 양이 턱 없이 부족하다.


일단 숲으로 덮여진 곳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 다행히 활엽수가 섬 전체를 감싸고 있어 완벽히 은폐가 되었다.


화적들이 타고 온 배는 완전히 난파되어 파도에 휩쓸려 갔기 때문에 스스로 섬을 빠져나갈 수단이 없다. 우도는 큰 섬이라 해도 고깃배들이 작아 화적들 모두 타고 나갈 커다란 배는 없다.


상황이 잠잠해지면 찾겠다고 한 강화 목사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동안 스스로 먹거리를 해결해야 한다.




*




윤서는 밤이 되어서야 겨우 일어났다. 아니 배고파서 더 잘 수가 없었다. 가져 온 것은 아이들을 위해 내 놓았다. 배고픔이야 견딜 수 있지만 산채 식구들 때문에 걱정이다. 관군들 두 명을 죽이고 관할지에서 이탈해 세곡을 걷는 배까지 탈취하였으니 잡히면 모두 죽은 목숨이다. 막란은 아직까지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



“아씨 일어나셨습니까?”



꺽쇠였다. 아직도 윤서에게 존대를 한다. 많이 불편해도 말을 높여야 꺽쇠의 마음이 편하다고 해서 어쩔 수 없다. 막란은 그냥 두라 하여 깨우지 않는다.



“이거 좀 드세요. 해파리 말린 거 밖에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버님은 뭐라도 자셨습니까?”


“저야 굶는 게 이골이 났으니까 괜찮습니다.”



윤서가 반을 찢어 꺽쇠에게 내밀지만, 나중에 막란이 주라며 옆에 가만히 놓아둔다.



“아씨.......”


“말씀 하세요 아버님.”


“우린 운명이 정해진 사람들입니다.”


“.......”


“하지만 아씨는 운명을 만들 분이십니다.”


“저와 서방님은 산채 식구들하고 남은 인생 같이 할 생각입니다. 다른 마음이 없습니다.”


“각자....... 갈 길을 가야합니다. 아씨께서 우리들을 위한다면 제 말을 따라야 합니다.”


“저 때문에 힘들게 하지 않겠습니다. 함께 살게 해 주세요. 저희도 쫒기는 몸입니다.”


“막란은 놔두고 아씨는 돌아가세요.”


“막란 서방님은 제 지아빕니다. 어찌 서방을 내치라 하십니까?”


“막란을 위해서도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서방님은 양반이 되셨습니다. 왜 그걸 인정 못하십니까?”


“껍데기만 갈아입는다고 속까지 변하는 건 아닙니다. 태생은 어찌해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아버님은 태생대로 사세요. 서방님은 누구도 저한테 빼앗아갈 순 없습니다.”



윤서는 화가 났다. 막란은 누가 뭐래도 그녀의 서방이다. 앞으로 닥칠 일은 노력하여 고치면 된다. 하지만 벌어진 일을 엎어버리라는 것은 싫다. 막란이가 가끔 철없는 짓을 해서 속상한 일이 있더라도 그가 좋다. 절대 놓지 않을 거다.



“제 마음을 아셨으니 다시는 그런 말씀 마세요. 애 낳고 막란 서방님과 알콩달콩 폼 나게 잘 살 겁니다.”



윤서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설득하려 왔다 호되게 말만 듣고 꺽쇠는 일어선다.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 않다. 얼굴이 이쁜 윤서가 막란을 죽자 사자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도.......



“누가 왔다 갔습니까?”



꺽쇠가 돌아가자 막란이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주무세요....... 아직 한 밤중입니다.”


“분명 싸움 하는 거 같았는데....... 꿈 꿨나?”


“꿈입니다. 서방님은 칼싸움하는 거 잘 꾸잖아요.”


“말싸움하는 거 같았는데....... 어느 늙은 놈하고 젊은 년하고 대판 싸우는 꿈이었는데.......”


“서방님은....... 저하고 사시는 거 어떠십니까?”


“가끔 지랄하는 거 빼면 다 좋습니다.”


“만약에 누가 우리 사이를 갈라놓으려 한다면 어쩌시겠습니까?”


“하늘이 두 쪽 나도 붙어있을 겁니다. 울릉도 호박엿 처럼요.”


“정말입니까?”


“한 입 갖고 두 말 안하는 성격입니다.”


“.......이리와 보세요. 안아 보게요.”


“싫습니다....... 무섭습니다.”



눈치를 보며 막란이 윤서에게 안긴다. 윤서 품으로 막란을 안기가 버겁다. 막란은 언제나 따뜻하다. 아니 오늘은 덥다. 삼복더위라는 걸 잊었다. 며칠을 씻지 않아 시큼한 몸 냄새가 지독하다. 누구 냄새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싫지는 않다.




*




섬 안의 나무껍질은 다 벗겨 먹은 듯하다. 여기에 갇혀 지낸지도 달포(한 달 정도)가 지났다. 어른들이야 어떻게 견뎌 낸 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이 몸 상태가 심각하다. 제대로 된 식사 한 번 하지 못해 얼굴은 마른버짐이 생기고 손등은 거북등처럼 갈라졌다. 손발톱은 빠지기 시작한다.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우도에 들어가 노략질이라도 해 옵시다.”


“안 돼! 아직은 우리가 여기 들어와 있다는 것이 탄로 나지 않은 마당에 위험한 짓은 할 수 없네.”



꺽쇠는 안전을 택했다. 굶어도 죽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발각되는 날에는 관군들에게 둘러싸여 목숨이 위태롭게 되는 것이다. 힘들어도 윤서의 사촌오빠인 강화 목사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며칠 후....... 드디어 일이 터졌다. 덕팔의 아내 막심이가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 우도로 들어갔다가 사람들에게 발각된 것이다. 화적들 때문에 섬들이 전부 수배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우도는 덕물도와 가까워 특히 관군들이 상주하며 상황을 예의 주시한 곳이다.


물때가 맞지 않아 갯벌은 바닷물로 덮여 관군들이 아직은 막심이를 잡아놓고 무인도 함박도로는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화적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관군들과 싸울 준비를 한다. 바닷물이 나가 갯벌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는데.......


모지리 아들 바우가 배 한 척을 끌고 온다. 모지리가 죽은 날, 막란이가 그를 덕물도로 피신시켜 숨어 살고 있었는데, 화적들의 소식을 뒤늦게 접하고, 강화목사 도움으로 배를 마련하여 끌고 온 것이다.


관군들이 막심이를 이끌고 함박도를 쳐들어온다. 봉화를 올려 다른 섬들과 육지에 화적들의 출몰을 알린다. 덕팔은 혼자라도 남아 막심이를 구하려 한다. 하지만 구하기에는 늦었다. 꺽쇠가 덕팔과 그의 자식들을 강제로 배에 태운다. 일촉즉발로 관군들의 칼과 창에서 배가 멀어진다.


덕팔의 어린 자식들이 ‘어미’를 부른다. 막심은 멀어지는 자식들을 향해 어미를 잊으라며 소리를 지른다. 덕팔에게도 잘 살라며 목청껏 소리를 지른다.


화적들은 덕팔의 아내 막심이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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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저는 몰라요 24.09.14 12 0 12쪽
67 여인의 귀처럼 생긴 꽃은 24.09.13 8 1 11쪽
66 머리에 아주까리 기름을 바르면 24.09.12 10 1 12쪽
65 임금의 욕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 24.09.11 10 1 12쪽
64 64.화적과 의병의 차이 24.09.10 9 1 11쪽
63 개시(개똥) 누이 막심이 24.09.09 13 1 11쪽
62 짱돌만으로도 전쟁을 이길 수 있습니다 24.09.08 15 1 12쪽
61 망원경에서 보이는 것 24.09.07 11 1 13쪽
60 전쟁은 그런 것이다 24.09.06 15 1 12쪽
59 백정과 오랑캐 24.09.05 13 1 13쪽
58 #58.소금을 배에 옮겨라! 24.09.04 13 1 12쪽
57 王八! 24.09.03 14 0 12쪽
56 내 정체가 궁금하다 했습니까 24.09.02 1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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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아홉 개의 돛을 가진 배가 필요 합니다 24.08.31 13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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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구천 구백 구십 구 칸 24.08.26 16 1 11쪽
48 황주(荒酒)로 데워 만든 온주(溫酒)입니다 24.08.25 1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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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세상의 반이 사라진다는 것 24.08.22 1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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