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RESET : 인류 영속에 대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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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나무
작품등록일 :
2024.07.24 16:35
최근연재일 :
2024.09.1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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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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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사도

DUMMY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 겨우 찾아낸 것은 컵라면 하나였다.


‘유통 기한 26년 12월’


벌써 유통기한을 한참 넘긴 것이었지만 잠시 망설이다가 물을 부었다.


3분을 기다리는 동안 택호는 오만가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연결되지 않는 전화기를 내려다보며 시골에 계신 부모님 생각, 끝내지 못한 프로젝트에 대한 미련.

그러다 바득바득 우겨 아이들과 함께 조기 유학을 떠난 아내에 대한 원망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때 보내지 않았으면...


소주 한 잔을 들이키고 라면 한 젓가락을 안주로 먹었다.


“큭... 흑흑...”


갑자기 밀려오는 외로움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자신의 곁에 지킬 사람도, 지켜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 이렇게 아픈 일이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소주 두 잔을 연신 들이키고 소파에 등을 기댄 채로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잠이 들고 말았다.


거실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에 택호는 잠이 깨었다.

잠을 깨고 나니 다시 현실의 막막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 막막함 뒤에 생리적인 현상으로 배가 고파졌다.

그 동안 프로젝트로 인해 삼시세끼를 회사에서 해결하다보니 집에는 생수 외에는 먹고 마실 것이 전혀 없었다.


어제 라면이 마지막이었으니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가야했다.


「배급 포인트 350」


휴대폰의 문자로 전송된 배급 포인트를 확인하고 주섬주섬 대충 옷을 챙겨 입고 나섰다.


아파트 앞 사거리의 마트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었다.

맨 뒤로 향해 줄을 서려고 가던 중 경찰 두 명이 차에 뭔가를 가득 싣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뭐지?’


의아함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것과 동시에 경찰들이 차를 운전해 멀어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트 안에서는 소동이 발생하고 있었다.

줄을 서서 배급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안내하거나 통제할 사람들이 바로 그 경찰들이라는 것을 뒤늦게야 알았다.


“비켜!”


“악! 밀지마!”


그나마 질서를 유지하고 있던 사람들이 무너진 것은 한순간이었다.

수십명의 사람들이 마트 안으로 뛰어들며 전쟁터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서로가 많은 것을, 더 나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아비규환 같은 싸움을 시작했다.


“어디 X만한 새끼가...”


정육코너의 앞에서 덩치 큰 남자와 보통 체구의 남자가 실랑이를 시작했으나 단 1분도 되지 않아 덩치 큰 남자가 승리하여 카트를 빼앗아 돌아서고 있었다.


“안돼!”


택호가 큰 소리로 외쳤으나 싸움에서 진 보통 체구의 남자가 정육 코너에 있던 칼을 들어 승자의 등에 꽂아 넣었다.


“으악!”


덩치 큰 남자가 쓰러지자 바로 카트를 뺏어들고 도망치는 남자.


싸움은 마트 안과 밖을 가리지 않고 점차 커지고 있었다.


서로의 것을 뺏고 뺏기며 벌어진 싸움 가운데 바로 옆에서 피를 뿌리며 사람들이 쓰러져 나갔으나 신경 쓰는 이들은 없었다.

오직 사람들은 자신들의 탐욕에 충실했다.


지옥도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마트 안에서 택호는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며칠 후 있을 혜성 타격 계획이 성공한다면...

만약 지구에 아무런 일도 없이 지나간다면...


그때 사람들은 이러한 일들을 겪고도 다시 옛날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한때 다정했던 이웃들 간에 지금 벌어진 일들을 용서하며 치유해 나갈 수 있을까?


차라리 혜성에 의해 멸망해 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폭력적인 상황으로 변하기 시작한 각 종 시위와 종교 단체들의 무분별한 집회가 전 국가를 휩쓸기 시작했고 많은 곳에서 폭도로 변한 사람들의 약탈과 방화, 폭력사태가 벌어졌다.

이 모든 것들은 비상계엄령 하에서 금지 되었으나 지금 경찰 병력만으로는 이미 감당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각 종 생필품을 관리하는 곳에는 경찰들이 배치되었으나 어떤 곳은 오히려 경찰들이 절도의 주체가 되기도 했고 대부분의 국가관리 체계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어제 저녁 대민질서유지에 투입하라는 국방부의 지시로 거점지역으로 이동을 시작하였으나 외곽 도로의 한 차선을 꽉 매운 차량들로 인해 도로로 진입하지 못한 채 벌써 두 시간째 발이 묶여있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차량들의 이동 방향은 산 속 깊은 곳으로 향하고 있었고 도대체 저기로 간다고 해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이 0.0001%도 더 높아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단 1cm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었다.


사람들은 지금 있는 곳보다 높은 산들이 있는 곳이 생존에 좀 더 유리하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마 지진이나 해일 발생 시 높은 곳으로 대피하라는 상식이 무의식적으로 발동하여 이성을 마비시켰기 때문이리라.


“군단장님입니다.”


무전병이 무전기를 내밀었다.


“단결! 연대장입니다.”


- 야! 이 새끼야! 지금 도대체 어디야!


무전기 너머로 신경질적인 욕설이 날아왔다.


“작전 지역 1시간 거리에 있습니다만 민간 차량들로 발이 묶여 있습니다.”


윤석주도 답답하다는 듯이 답했다.


-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빨리 이동해! 지금 그 지역에서 사망자만 200명이 넘어! 먼저 출동한 우리 애들과 경찰들도 20명이 넘게 상했어!


“아...”


- 야! 윤석주! 정신 차리고 무조건 빨리 이동해! 알겠어!


“예. 알겠습니다.”


무전기를 집어던진 윤석주는 잠시 생각하다가 선탑 차량에서 내려 뒤를 보고 소리 질렀다.


“개척해!”


명령이 떨어지자 마자 대열의 중간 지점에서 완전 무장한 일개 소대 병력이 일제히 도로 방향으로 뛰어가 진입로를 막고 있는 차량들을 위협해 사람들을 모두 내리게 했다.


“뭡니까?”


“왜 내리라는 겁니까?”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내려서 군인들에게 따졌다.

그러나 굳은 얼굴로 총을 들이대는 군인들의 위압감에 짐을 챙겨 멀찌감치 떨어졌다.


‘쿠와왕!’


곧 이어 행렬의 뒷부분에서 구난전차 한 대가 굉음을 내며 돌진했다.


‘콰직! 콰콰쾅!’


구난전차는 왔다갔다하며 20m정도의 폭으로 도로를 막고 있는 차량들과 중앙분리대를 도로 밖으로 밀어버렸다.

일부 차량들은 맞은 편 능선으로 추락하기도 했으며 사람들의 비명은 전차의 거친 소리에 잠겨 버렸다.


몇 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었던 도로 막힘이 구난 전차의 20분의 기동만으로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이동!”


차량에 탑승한 윤 석주가 무전기에 대고 소리 지르자 일제히 연대병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서진 차량에서 내려진 사람들의 울음소리를 뒤로 하며 윤 석주는 어쩐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부하들이 마징가Z를 쇠돌이에게 선물한 박사의 말처럼 이 세상 사람들의 구원자가 될지 아니면 모두 파괴하는 악마가 될지 가늠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행렬의 마지막에 따라오던 두 대의 트럭이 멈춰서 사람들을 태웠다.





“야!”


“네! 상병 이한영!”


이한영은 옆자리의 김수호 병장이 어깨를 툭 치며 부르자 깜짝 놀라며 반응했다.


“새끼 놀라기는...”


“아 잠시 뭘 생각하는 중이었습니다.”


김수호가 담배에 불을 붙여 건넸다.

이미 버스 안은 화생방을 떠올릴 만큼 자욱한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넌 왜 안 갔냐?”


분대장 김수호가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물었다.

김수호가 이런 질문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대국민 담화가 방송된 이후 사흘 동안 부대원의 절반 가까이가 사라져 버렸다.

간부들도 딱히 부대원들을 통제할 방법이 없어 손을 놓은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었고 일부였지만 간부들도 탈영한 인원이 꽤 되었다.

그나마 방송 이전에 총기를 포함한 전체 무기들을 한 군데 모아둔 덕에 무장한 채 탈영한 병력은 극소수였다.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그러는 분대장님은 왜 안가셨습니까?”


“우리 집 제주도야 임마! 나가봤자 집 근처에는 가지도 못해. 그리고...”


김수호가 담배꽁초를 바닥에 버리고 전투화로 야무지게 비비며 잠시 말을 멈췄다.


“우리 군바리들은 할 일을 해야지. 아까 연대장님 말처럼. 그래도 너희 집은 대구잖아. 가려고 마음먹으면 갈수 있을 텐데...”


대구. 그렇지...겨우 200km 정도긴 하지.


“에혀~ 아까 보셨잖습니까. 이 산속에도 차들이 밀려와 저 지경인데.”


“이 새끼! 천리행군도 한 새끼가 빠져가지고. 걸어서라도 가야지.”


김수호가 타박하듯이 말했다.


“그럼 분대장님은 헤엄쳐서라도 가시지 그러셨습니까?”


이한영이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뭐? 이 새끼 이거...”


어이없다는 듯 큰소리로 김수호가 웃었다.


“아이 분대장님 잠 좀 잡시다.”


앞자리에 앉은 김석환 일병이었다.


“아니! 이 새끼가 하늘같은 분대장한테 말하는 꼬라지봐라. 야! 이한영! 이 새끼 상병달기 전까지 군기 확실히 잡아놔!”


김수호가 앞좌석을 발로 뻥 차며 소리치자 이 한영은 ‘아직 석 달이나 남았는데요.’라고 말하려다 크게 ‘알겠습니다.’라는 말로 대신했다.

분대장은 간절한 바램같은 것을 대화에 넣은 듯 했다.


석 달 후... 과연 그 날이 자신들에게 올까?


“분대장님 그런데 저기 최병장 말입니다.”


이한영은 자신의 통로 왼쪽 세 번째 앞좌석에 앉아 콧노래를 부르며 총기를 점검하고 있는 최훈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최훈석은 자신의 분대원 세 명이 탈영해 다른 대대에서 오늘 아침에 새로 배속된 인원으로 사실 이전부터 연대 내에서 소문난 골통이었다.

구타와 가혹 행위등으로 군기교육대를 두 번이나 갔다 왔으며 휴가 중 민간인들을 두들겨 패 사단 영창을 갔다 온 한마디로 종잡을 수가 없는 인간이었다.


“그래 저 새끼!”


“괜찮겠습니까?”


이한영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김수호가 잠시 최훈석의 좌석을 말없이 노려보다가 말을 이었다.


“명심해! 아마 우리가 작전 들어가면 제일 먼저 저 새끼부터 쏴 버려야 할지도 몰라 그러니까 이게 아니다 싶으면 가차 없이 쏴버려. 절대 망설이지 말고...”


언제 들었는지 앞자리의 김석환도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애들한테도 꼭 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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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지상으로 가는 열쇠 24.09.03 13 0 12쪽
29 그들? 24.09.02 13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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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추방자들. 1 24.08.23 1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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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지상에서의 일은 지상에 묻어 둔다. 1 24.08.21 17 0 9쪽
20 선민 2 24.08.20 14 0 15쪽
19 선민 1 24.08.19 16 0 11쪽
18 PICKER 24.08.16 17 0 11쪽
17 여장부 24.08.14 20 0 12쪽
16 친구들 24.08.13 22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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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AFTER RESET 24.08.11 23 1 9쪽
13 그 날이 오다. 2 24.08.09 23 1 11쪽
12 그 날이 오다. 1 24.08.09 23 1 11쪽
11 누구나 악마가 되어간다. 2 24.08.07 21 1 14쪽
10 누구나 악마가 되어간다. 1 24.08.06 23 1 11쪽
» 정의의 사도 24.08.05 23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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