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에서 돈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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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초이
작품등록일 :
2024.07.2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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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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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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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손해만 보고 돌아갈 수는 없지

DUMMY

마운은 술에 취한 채 말에 올라타 어디론가 향했다.


“천금장이 개봉에 있다고 했죠? 그리로 가게 되는 겁니까?”


수완은 앞에서 말을 끌고 있는 장평에게 물었다.


“글쎄?”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른다. 마운에게 물어보려 해도 늘 취해 있으니, 그 입에서 나오는 말 중 뭐가 진실이고 뭐가 헛소리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그저 가끔, 아주 짧은 순간 맨정신일 때 일러준 방향으로만 나아갈 뿐이다.


그런데도 장평은 조금의 불평도 하지 않았다. 그저 태평하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나아갔다.


“앞으로 뭐라 불러야겠습니까?”


수완이 물었다.


취직까지 하게 된 마당에 ‘저기요~’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장평아~’ 하기도 그렇다.


“장 부장 아니면 조화검이라 부르시게.”


수완은 두 가지 호칭 중에서 고민하다가 '조화검'으로 부르기로 했다. 어투도 그렇고, 자신을 소개할 때 자꾸만 장삼봉을 언급하는 것을 보면, 그쪽 분위기를 어지간히 풍기고 싶어 하는 눈치였기 때문이다.


‘직장인으로서 상사 비위 맞추는 건 업무의 일환이지.’


지난 세월 친구이자 상사였던 홍정직의 지론. 딱히 돈 드는 것도 아니니 그냥 기분 정도 맞춰주는 게 서로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수완도 그 생각에 동의했다. 효과는 확실했으니까.


“조화검 어른, 뭐 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말해보시게, 수완이.”


장평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제가 알기로는 무림의 고수라면 독이나 취기 정도는 내공심법으로 빼낼 수 있다고 들었는데, 아니었습니까?”

“그렇지. 참고로 이 몸께서는 그 독하다는 죽엽청을 다섯 병까지 마셔봤다네. 어떤가? 허허”

“역시 사내 중 사내이십니다.”


수완은 박수까지 쳐가며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시늉을 했다.


“하하하, 자네가 사람 볼 줄 아는구먼. 마음에 들어.”

“그렇다면 장주님께서는 어찌···?”


잠깐이나마 펴져있던 장평의 미간이 다시 팍 구겨졌다. 어찌나 깊게 주름이 파였던지 내천자가 훤히 드러났다.


“술이 아까우시다나...”

“네?”

“에휴~ 알다가도 모르실 분이야. 취하려고 마시는 건데, 아깝게 취기를 몰아낼 수는 없다고 하시네. 아주 가끔 술 때문에 손해를 보시곤 하지. 이번엔 꽤 비싼 술을 마신 셈이지.”

“...허”


수완은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괜찮아. 장주님 재물이야 차고 넘치니까. 그건 그렇고, 천금장에 들어왔으니 밥값은 해야겠지?”

“뭐든 시켜만 주십시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수완은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가장 기초가 되는 내공심법부터 알려주지.”


수완은 무공을 배우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비록 유도선수의 피가 한때 흘렀으나, 이미 요리사로써 완전히 모습을 바꾸었다. 한동안 천금장의 그늘에서 꿀이나 빨다가 전생에서처럼 객잔을 차려 큰 돈을 벌어 볼 요량이었다.


“??? 저는 요리사인데요?”

“그래서 뭐? 천금장까지 목숨은 붙여 돌아가야 할 것 아닌가.”

“그게 무슨 말씀인지...”


수완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냥 걸어서 돌아가는 게 아니었나?


“산적 놈들이 문제일세. 자네에게 크게 바라지도 않아. 그저 제 한 몸 도망칠 정도면 충분해. 장주님의 명이시기도 하고.”

“아...”


한번 털렸다고 다시 털리지 않으란 법 없다. 가진 게 없다면 노예로 팔아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 거였습니까. 비록 배움은 느리나 태도는 훌륭하다는 소리는 제법 듣는 편입니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그래. 배워두면 인생에 여러모로 쓸모가 많을 테니 열심히 하라고.”

“넵!”


수완은 포권을 취했다.


“내공심법을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 그저 숨 제대로 쉬는 방법을 배우는 게지.”

“앉아서 하는 겁니까?”

“아니. 걷게나.”


장평이 알려준 내공심법은 걸으면서 할 수 있는 ‘행공’이었다.

흔히 알려진 내공심법은 조용한 장소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하는 ‘운공’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어울리는 방식이 있는 법.


“가장 큰 이유는 자네의 내공을 쌓는다고 갈 길을 늦출 수 없음이지.”

“아... 그렇죠.”


그리고 숨은 이유가 있었으니, 그건 수완이 초보이기 때문이다.


내공심법을 수련하는 건 별로 특별하지 않았다. 그냥 단전 깊숙이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기를 반복하면 끝이다. 하지만 그게 참 어렵다. 집중력이 자꾸만 달아나 버리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따로 기별이 있을 때까지, 어떠한 말도 하지 말고, 계속해서 단전 깊숙이 숨을 보냈다 빼는 일에만 몰두하시게.”

“네.”


배움의 시작은 언제나 무조건적인 수용부터라고 생각했기에, 더는 무슨 뜻인지 묻지 않기로 했다.


입은 다물고 코끝에 스치는 바람을 느낀다. 들이쉬고 내쉬고. 발을 헛디디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주의력만 남기고 오직 숨을 잘 쉬는 것에만 집중한다. 수완은 순식간에 몰입했다.


사실 행공과 비슷한 것을 수도 없이 해봤다. 정확히 표현하면 '달릴 주, 주공' 이라고 불러야 하나? 10살 때부터 다리를 다치기 전까지 매일같이 뛰었다. 그렇게 한참을 뛰다 보면 기분이 상쾌해지면서 정신이 맑아진다.


행공도 이와 마찬가지, 맥락이 비슷했다. 아마 운공은 현대의 명상의 한 종류이지 않을까.


“수완이.”

“수완이.”

“깜짝이야!”


수완은 화들짝 놀라 큰 소리를 내었다.


“몰입이 제법인데? 하하하”


마운과 장평이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뭐가 말입니까?”

“처음부터 그 정도로 몰입하는 사람은 보질 못했어. 신기하군.”


장평이 말했다.


“그렇습니까? 조화검께서 워낙 잘 가르쳐 주셔서 그렇죠.”

“하하하 그런가. 진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소리 향기롭군.”

“진심입니다. 이젠 무공을 배울 차례입니까?”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친구가 뛰다 못해 날려고 하는구먼. 때가 되면 다 알려줄 터이니 조급하게 굴지 말게.”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부르신 겁니까?”

“오늘은 여기서 쉬어가려고.”


장평은 목청을 가다듬고는 하복부에 힘을 주어 외쳤다.


“이리 오너라~!”



7화. 손해만 보고 돌아갈 수는 없지


3층 높이로 쌓아 올린 대문과 화려한 금박으로 장식된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현판에 쓰인 글씨는 읽을 수 없었지만, 그 강렬한 필체에서는 위엄이 느껴졌다. 필시 대단한 인물의 집임이 틀림없었다.


“뉘신지요?”


문 앞에 서 있던 문지기는 관군도 아닌데도 검을 차고 있었다.


“개봉에 사는 천금장주 마운 어른께서 잠시 쉬어가고자 하네.”


마운은 뒷짐을 지고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고, 대신 장평이 문지기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천금장주? 잠시만... 아!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고맙소.”


천금장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듯, 문지기는 태도를 공손하게 바꾸었다.


대문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가니, 궁궐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위세 넘치는 건물들과 아름다운 조경이 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 수많은 건물들이 보였고, 고급스러운 나무들이 빽빽이 심어져 있었다.


‘대체 누구의 집이길래...’


숲 사이로 난 잘 포장된 길을 한 식경 정도 걸어 들어갔다. 그제야 금장식으로 도배된 작은 문이 나왔다. 아마 그 문을 지나야 본채로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본채를 지키던 문지기가 말했다.


“별채에서 기다려주시지요.”


“그러지요.”


수완 일행은 한참 동안 별채에서 기다렸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수완이 물었다.


“조화검 어른, 충분히 쉰 것 같은데, 어떤 일로 지체하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내가 말을 하지 않았군. 요즘 들어 건망증이 심해져서 큰일이야.”


장평은 자신의 머리를 세게 쥐어박았다.


“장주님께서 손해만 보고 그냥 돌아가실 수는 없다고 하시네. 자세한 건 나도 듣지 못했으니, 일단 지켜보게나”


‘절정의 무인이라더니, 삥이라도 뜯으려는 건가?’


그렇게 또 며칠이 흘렀다. 다행히 이 집 인심이 후해 배불리 먹고 편하게 쉴 수 있었지만,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상황에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조화검 어른, 제가 가서 말해볼까요?”

“어허! 아직 때가 아닌 게지. 필요하다 판단하시면 장주님께서 어련히 말씀하시겠나. 이 꽃 좀 보게. 아름답지 않은가?”

“···네, 그렇네요.”


마운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과 달리, 장평은 태평하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조경을 즐기고 있었다.


‘정말 눈치 없는 양반이로군.’


그렇게 또다시 닷새가 흘렀다. 그제야 웬 젊은이가 나타났다. 마운은 실망한 기색을 잠시 내비쳤지만, 곧 장사꾼답게 상냥한 얼굴로 바꾸었다.


“천금장주 마운이라 합니다.”

“남궁진명이오.”


‘남궁? 그렇다면 여기가 그 유명한 남궁세가란 말인가? 여긴 대체 왜 온 거지?’


“그 총명하시다는 이 공자시군요. 영광입니다. 개봉에서 작은 상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환갑이 넘어 보이는 마운은 상전을 대하듯 몸을 크게 쓰며 포권을 취했다.


“아~ 들어는 봤소. 천하의 금을 모조리 쓸어간다지. 댁에 정말로 그리 금이 많소?”


남궁진명은 조소를 머금었다.


그간의 대접과 말투로 보아, 남궁세가는 박대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하대하고 있었다. 장평에게 물어보니, 이는 사농공상(士農工商) 때문이라 했다.


게다가 이곳은 공자의 땅 중원, 그중에서도 명문 중의 명문인 남궁세가다. 아무리 천금장주가 재물이 많다고 해도 남궁세가 앞에서는 이름 없는 장사꾼에 불과했다.


그나마 만나주는 것도, 마운이 소림사와 함께 태산북두(泰山北斗)로 꼽히는 무당파의 직계 제자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하하, 그저 젊은 날의 포부였을 뿐입니다.”


마운은 대뜸 남궁진명의 손을 잡고는 뜬금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 공자, 중원 최고의 영약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소림의 대환단이나 공청석유가 아니겠소?”


마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 효능은 대단하죠. 하지만, 중원에 단 하나뿐이지 않소이까.”

“그렇죠. 최고이니 하나뿐인 게 당연하지 않소.”

“참으로 명석하고 합리적인 생각이십니다. 하나, 조금 생각을 비틀어 보십시오. 저 같은 필부는 물론이고, 남궁세가의 귀공자 역시 취할 수 없으니, 그건 영약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남궁진명은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게요.”


마운은 갑자기 남궁진명의 맥을 짚으며 서늘한 분위기를 풍겼다.


“뭐, 뭐 하는 것이요?”


허락 없이 맥을 짚는 행위는 내공의 양을 확인하는 행동으로 목을 친다 해도 할말이 없을 정도로 상당히 무례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바뀐 마운의 분위기에 남궁진명은 꼼짝하지 못했다.


“에게, 고작 이 정도?”

“이 사람이!!!”


마운의 허튼소리에 남궁진명의 얼굴이 시뻘게 졌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당황한 듯했다.


마운이 잡은 손을 더 꽉 쥐며 말했다.


“이 공자, 설마 미미한 내공에 만족하시는 거요? 내가 적어도 6분의 1갑자는 올려드릴 수 있소이다.”


남궁진명의 눈이 크게 떠졌다.


무림인을 자처하는 이상, 삼류 무인부터 생사경에 든 초월적 무인까지 내공 쌓는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자는 없다.


1갑자를 쌓는 데만 60년이 걸리는데, 10년을 아껴주겠다니. 아무리 개떡 같은 소리라도 무림인이라면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대, 대체 그 방법이 뭡니까?”


남궁진명은 진전까지의 무례함을 까맣게 잊고,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그러자 마운이 번뜩이는 안광을 내뿜으며 답했다.


“금자 백 냥만 융통해주시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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