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없으면 죽는 북부공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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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수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7.30 19:32
최근연재일 :
2024.09.0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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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1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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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2화. 그거 아닌데.

DUMMY

12화


귀족 출신의 대표라는 죽은 자들을 족친 후에도, 사기에 침식되지 않은 자들 마을 안에서 다수 발견되었다.


확인결과 앞선 놈들처럼 사람들을 선동하던 귀족 출신 놈들이었다.


문제는 거기서 상황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 우린 남작이 시켜서...!-


입을 연 놈들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분탕질로 촌장의 눈과 귀를 가린 사이, 발데크 남작이 죽은 자들을 어딘가로 팔 계획을 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안 티아고 촌장은 분개하며, 카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남작과의 관계는 주민들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묵인한 것.

주민들을 건드린 순간 남작이란 선택지는 더 이상 고려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침식을 풀 수 있게 됐으니, 마을을 보수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행정 경험이 있는 아셀은 촌장을 설득했다.


지체 없이 동의한 촌장의 지원 아래, 아셀이 사람들을 분류해 적재적소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첫날 그가 보여줬던 모습 덕분인지 사람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아셀을 따랐다.


그중 의외로 협조적이었던 것은 벨티오였다.


“혹시 모르니 경비대를 편성하는 게 좋겠군. 마침 전 부하들도 여기 있으니 내가 맡도록 하지.”


카벨의 감시와 호위를 위해 따라왔지만, 벨티오는 사기꾼들을 족친 이후 적극적으로 마을을 위해 행동했다.


말을 들어보니, 전장에서 사기에 침식된 부하들을 몰래 보살피러 이곳에 자주 왔었다고 했다.


귀족 출신 놈한테 화낼 때 왠지 마을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이유었군...


덕분에 벨티오는 이전보다 조금 부드러워졌다.


적어도 대화 중에 ‘외부인’, ‘바프의 때’ 같은 말을 안 쓰는 것만으로 장족의 발전 아닌가?


벨티오를 필두로 전투 경험이 있거나 건장한 이들은 모두 경비대로써 지정되었다. 다른 사람들도 각각 가지고 있는 재능에 따라 담당이 부여됐다.


“자네는 당분간 사기를 푸는 데만 집중하게. 마을을 정비하는 건 우리가 할 테니.”


티아고 촌장의 배려로 카벨은 사기를 푸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기를 푸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오러의 질을 일일이 바꿔야 하는 데다, 풀어야 하는 대상만 어림잡아 50명은 되었으니까.


위중한 사람들을 우선해 풀었지만, 지속되는 오러와 집중력의 소모는 카벨의 한계를 시험했다.


결국 카벨은 현실과 타협했다.


“침식에 사기까지 다 풀다간 내가 뒤질 것 같습니다. 그러니 딱 침식만 풀도록 합시다.”


사람들은 흔쾌히 동의했다. 가장 큰 문제는 몸과 마력을 좀먹는 사기로 얽힌 침식이었으니까.

침식만 풀리면, 시간은 걸리겠지만 사기는 개개인이 충분히 걸러낼 수 있기도 했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침식만 푸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카벨은 피자박스 접는 장인처럼, 오러와 정신력을 박박 긁어다 쓴 끝에...


“끅, 한계...”


덜썩-


“스, 슨상님요!”

“공녀님의 대리인 쓰러졌다고?! 손으로 쳐봐!”

“괜찮아! 아직 고쳐 쓸 수 있어!”


카벨은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서, 자신을 고장 난 자판기 취급하는 놈들의 얼굴을 잊지 않기로 했다.


+


“여기 있는 사람들의 사기를 다 푸는 건 하루 이틀로는 택도 없겠네...”


주워 온 잡동사니들이 정리되어 있는 레나의 집.

카벨의 한숨이 기절한 레나의 앞머리를 살짝 날렸다.


깨어나자마자 레나의 사기를 풀기 위해 찾아왔지만, 레나는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젖은 수건으로 상처를 닦아주자, 레나의 얼굴이 조금씩 찡그려졌다.

그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왠지 낮이 익단 말이지?’


카벨은 식은땀을 흘리는 레나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잔잔한 웃음을 흘렸다.


덜컥-


“어? 카벨씨...?”


그때 양손 가득 붕대와 약초 등을 든 아셀이 당황해 눈을 깜빡였다.

불안한 어린 시선이 카벨과 레나를 오갔다.


“레, 레나씨의 집엔 왜...”

“사기 풀어주러 왔지. 그러는 넌?”

“아. 레나씨가 저 때문에 다치셨으니 치료를....”

“네가 왜?”


아셀의 작은 볼이 불퉁 부풀었다. 말은 없었지만, 분한 감정이 카벨의 감각스킬에 잡혔다.


‘갑자기 왜 이런데 얘?’


레나에게 아셀이 품게 된 감정을 읽는 데까진 못 이른 카벨이 인상을 썼다.


그럴 수밖에. 아셀은 공작가의 장남이었고, 레나는 아마도 평민이다.

아무리 죽은 자가 되었더라도 현대 말로 ‘급’이 다른 존재들이지 않은가?


슬슬 레나를 자기 동생처럼 생각하기 시작한 카벨은 불만 가득한 아셀을 마주보다 턱짓했다.


“뭐... 이왕 치료하러 왔으니 해라.”


아셀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꼬리라도 있으면 홰홰 칠 것 같았다.


잠든 레나에게 온 신경이 집중된 부잣집 아들내미는 꽤 능숙하게 붕대와 약재를 갈며 말했다.


“남작이 이대로 넘어갈까요...?”


몰래 벌이고 있던 인신매매 건이 들통난 데다 사병들까지 죽였다.

그것들을 되새긴 아셀의 목소리엔 마력에 섞인 사기처럼, 불안감이 서려 있었다.


“발데크 남작은 많은 범죄 집단과도 연이 있는 사람입니다. 만약 작정하고 수를 쓰면 저희로선...”

“그래서 양산형 엘프가 위에 보고하겠다고 했잖냐?”

“야, 양산형... 아마 실패할 거예요. 이 마을과 주민분들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니까...”


서리 낀 한숨을 불안과 함께 허공으로 흐트러뜨리며 아셀은 설명했다.


사기가 침식되어 ‘죽은 자’로 분류된 자들은 신분과 직위를 잃는다.

마을 역시 공식적으론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즉 북부 법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과 사람들에 손을 뻗을 명분이 없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죽은 자에 대한 처우를 바꾸겠다고 하셨지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물자도 무기도 부족한 지금, 마을이 오랜 시간 버틸 수도 없고...”

“그건 그렇지. 여긴 성벽도 없으니까.”


물자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마을 방위 상태였다.


제대로 된 무기도 성벽도 없는 데다,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기본 시설도 없다.

사기의 침식으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 상태론 몬스터나 산적들이 쳐들어오면 마을은 버텨낼 수 없을 게 뻔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카벨은 여유로웠다.


“걱정 마. 주민들의 침식만 다 풀면, 몽땅 해결될 테니까. 이 속도라면 일주일 정도 걸리려나?”

“네??”


아셀이 반문하자 카벨이 씨익 웃으며 어딘가로 턱짓했다.


“여길 우리가 지킬 필요는 없어. 곧 남이 지키게 될 거니까.”


벌레가 파먹은 벽의 구멍 너머로 보이는 백색의 벽. 카벨은 카스토르 성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본격적인 계획은 마을 사람들의 사기를 모두 풀고, 반려후보로 인정받은 뒤 시작될 테니까.


파아아-


그렇게 두 남자가 이야기에 심취한 사이, 잠든 레나의 주변으로 새하얀 빛이 반짝이며 생채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 +


“빌어먹을!!”


쾅-!!


도마뱀 문양의 휘장으로 장식된 접견실. 암녹색 튜닉의 욕심만 그득해 보이는 퉁실퉁실한 중년의 남자가 책상을 내리쳤다.

생긴 것만 보면 녹색 고무공 같은 느낌이었다.


그 소리에 소파에 앉아 있던 더듬이 수염은, 다과를 집으려다 냉큼 손을 거두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이 리자렉 발데크의 일을 방해하다니...!”

“아, 아주 괘씸한 놈입죠! 감히 외부인 주제에 남작님의 위명도 몰라보고...! 맘 같아선 제가 그냥 캭!”


발데크 남작의 도마뱀을 닮은 눈동자가 더듬이 수염을 날카롭게 흘겼다. 녀석은 셀프로 자신의 입을 때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남작은 치와와 같은 이빨을 갈며 연신 책상을 내리쳤다.


‘글리포드 공작을 쥐고 흔들 좋은 기회였는데...!’


범죄 조직을 활용해 자금과 인맥을 마련해 온 발데크 남작에게, 재무장관 라셀 글리포드는 골치였다.


깐깐한 검수 때문에 지금까지 잘라내야 했던 사업이 도대체 몇 가지인가?


글리포드 공작에게 로비를 시도한 적도 있었다.

다만 공명정대한 성격을 고려하지 못한 탓에, 성과는커녕 목이 달아날 뻔했었다.


하지만 모든 이가 그렇듯 그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바로 가족이었다.


라셀 글리포드가 애처가이며 가족애가 깊다는 건 모든 북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큰아들이 사기에 침식됐다. 이건 발데크 남작에겐 기회였다.


“그걸 고작 외부인 놈 하나 때문에...!”


사업을 흙발로 짓밟은 외부인 마족뼈다귀를 곱씹으며 남작은 부르르 떨었다.


죽은 자들을 팔기 위해선, 아셀 글리포드를 이용해 재무장관 라셀을 방패로 삼아야만 했다.


이는 반드시 성공해야 했던 계획이었다.


그뿐인가?

갱단으로 주민들을 노동력으로 착취하는 것과, 사병들을 보내 귀족들과 연을 만드는 사업 수단 두 개가 모조리 사라졌다.


모든 것이 그 외부인 놈 하나 때문에.


남작의 모든 분노가 외부인에게 향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외부인 놈에 대한 정보는 아직 멀었나!!”

“그, 그게! 제대로 된 감시를 붙여 놓은 것도 아니라... 몇 가지 소문 정도 밖에 없습니다...!”


남작의 불똥을 튈까 두려워, 숨죽이고 있던 보좌관이 냉큼 문서를 내밀었다.


문서를 보던 남작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빨 수집가? 대공을 꼬신 자?? 뭐냐 이 멍청한 정보는!!”

“나, 남색이 있다는 것 같습니다! 보고에 따르면 옆에 잘생긴 쿼터엘프 기사를 끼고 다닌다고...!

“뭐라? 기사?! 잠깐. 그럼 죽은 놈들을 실험체로 팔려는 계획을 기사에게 들켰다는 거냐?!”


위험을 감수하고도 진행했던 것이라, 기사에게 들켰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사기에 침식된 자들은 공식적으론 존재하지 않는 자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물건처럼 파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그동안의 사업도 ‘선의로 마을을 외부로부터 보호’라는 명목으로 진행했는데, 이 일은 명목 자체가 글러 먹었으니까.


보좌관은 진노한 발데크 남작에게 덜덜 떨며 말을 이었다.


“드, 들리는 말론 외부인이 데려온 기사가 ‘재색의 촉’ 벨티오 칼리그로라고 합니다!”

“크윽! 하필이면 그 답답한 놈에게 들통나다니...!”


살에 파묻힌 손톱으로 퉁실한 턱을 긁던 남작은, 이내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입꼬리를 들썩였다.


“어쩔 수 없지. 다 같이 묻는 수밖에.”

“구, 군사를 움직일 생각이십니까?!”


길게 찢어진 암녹색 눈이 더듬이 수염을 훑었다. 녀석은 움츠렸던 자세를 바로 펴고 진땀을 흘렸다.


“멍청한 놈! 그랬다간 주변의 의심을 살 수 있다! 조용히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준비하는 사이 기사 놈이 보고라도 하면...”

“크흐흐... 기사단 쪽에 연줄이 있으니 문제없다.”


남작이 음흉하게 웃으며 페이퍼 나이프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마녀의 자비’에게 연락을 넣어라. 보수는 2배로 준다고 해! 의뢰내용은...”


이윽고 페이퍼 나이프가 문서의 특정 부분을 꿰뚫었다. ‘남색이 있다’라는 부분이었다.


“그 기사 놈을 납치하는 거다. 그러면 그 외부인 놈도 제 것을 지키려 나서겠지!”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가지런히 드러난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새어 나왔다.


“적어도 사랑하는 놈과 함께 묻어주마. 이 기회 마을 놈들에게도 주인이 누군지도 알려줘야겠지.”


사람은 누구나 약점이 있다. 발데크 남작은 변하지 않는 진실을 다시 새기며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별것 아니었던 오해는 그렇게 폭탄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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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39화. 오랜만이구나 제자아! (이 글은 여기까지 입니다. 감사합니다!) 24.09.08 10 1 16쪽
39 38화. 약속을 지킬 때이니라. 24.09.07 11 1 16쪽
38 37화. 도둑 24.09.06 13 1 13쪽
37 36화. 루팅의 프로 24.09.05 12 1 15쪽
36 35화. 쯧 24.09.04 14 1 12쪽
35 34화. 평생 벗지 말아야지. 24.09.03 16 1 13쪽
34 33화. 쪽 24.09.02 15 1 14쪽
33 32화. 발라내기 24.09.01 16 1 12쪽
32 31화. 샌드백 24.08.31 19 1 14쪽
31 30화. 제가 뭘 어떻게 하면 되나요. 24.08.29 25 2 13쪽
30 29화. 전령 24.08.28 30 1 15쪽
29 28화. 봉이다! 24.08.27 30 1 19쪽
28 27화. 반려후보 결정전의 시작 24.08.26 33 1 18쪽
27 26화. 대공의 호의 24.08.25 31 1 12쪽
26 25화. 건방진 놈 24.08.24 32 1 17쪽
25 24화. 후련할 것 같아서. 24.08.23 42 2 14쪽
24 23화. 선처하겠습니다. 24.08.22 35 2 19쪽
23 22화. 이놈이 먼저 끼어들었어! 24.08.21 33 1 16쪽
22 21화. 땜통 24.08.20 34 1 17쪽
21 20화. 공녀의 불씨 24.08.19 31 1 13쪽
20 19화. 정체가 뭐야? 24.08.18 32 2 17쪽
19 18화. 그냥 쏠 걸. 24.08.17 35 2 18쪽
18 17화. 중급마족 24.08.16 32 2 15쪽
17 16화. 너무 좋은데? 24.08.15 36 2 12쪽
16 15화. 미안해요. 24.08.14 36 2 15쪽
15 14화. 그게 뭔 좆같은 소리냐고!! 24.08.13 37 2 16쪽
14 13화. 빌어먹을 양산형 엘프 놈이...! 24.08.12 45 2 18쪽
» 12화. 그거 아닌데. 24.08.11 43 2 12쪽
12 11화. 물어 24.08.10 46 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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