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없으면 죽는 북부공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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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수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7.30 19:32
최근연재일 :
2024.09.0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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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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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13화. 빌어먹을 양산형 엘프 놈이...!

DUMMY

13화


수도에서 마족령 쪽으로 조금 떨어진 대도시 에스키라 마을.


그곳의 외각 허름한 술집 안으로 경비대 복장의 마른 남성이 들어갔다. 사기꾼이었던 데릭이었다.


앉아 있던 카벨과 벨티오가 손을 들자, 녀석은 후줄근한 복장을 뽐내며 맞은편에 앉았다.


“신수 좋아 보이네~ 사기꾼이 경비대가 되다니, 인생 역전 아니냐?”

“크~ 두 형님이 애써준 덕분입죠! 특히 벨티오 형님이 팍팍 밀어주셔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기사로서 범죄자를 옹호했다는 오점이 남았지.”

“거참. 합의했던 거 가지고 쪼잔하게... 그보다 정보는?”


데릭은 졸렬한 눈매로 주변을 돌아보곤 상체를 숙였다. 이윽고 품에서 몇 장의 종이들이 딸려 나왔다.


“발데크 남작이 용병들을 모집한다고 합니다요.”

“역시 마을에 뭔가 할 생각인가?”


종업원이 가져온 에일 잔들을 각각 앞에 분배하자 데릭은 시원스럽게도 들이키며 고개를 저었다.


“크하~ 그런데 그게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뭐가?”

“남작령에서 온 상인에게 들었는데, 용병들이 막사를 짓고 장기체류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픽 쑤시면 바로 나가떨어질 마을을 두고 뭐 하러? 돈이 썩어나나?”

“음... 어쩌면 곧 있을 침공을 준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카벨은 벨티오에게 들었던 주기적인 마족령에서의 침입을 떠올렸다.


발데크 남작령은 잘라내기 마을만큼은 아니지만, 전선에 가까운 곳이었다..


곧 성역에서 사기가 대량으로 흘러나와 침입이 이뤄진다고 하면, 용병들의 움직임은 납득이 됐다.


하지만, 카벨은 찜찜함을 지우지 못하고 벨티오에게 어깨를 툭 쳤다.


“그래도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 그쪽 부하들 좀 데려와 경비 좀 세우죠.”

“그러려고 했지만, 사건보고 이후 상관들이 나의 지휘권 일부를 박탈해 버렸다.”


아셀이 남작에게 여기저기 연줄이 있다고 하던데, 범죄 집단에만 있는 게 아닌 건가?


“그럼... 하극상 한번 시원하게 합시다. 이왕 오점 하나 생긴 거 몇 개 더 생긴다고 달라질 것도...”


스릉-


“쓰읍! 에헤이!!”


가까스로 그의 검을 봉한 카벨은 턱을 괴고 에일을 홀짝였다.


그러던 중 데릭이 주섬주섬 집어넣는 딸려 나온 종이가 눈에 띄었다.


‘모험가 길드’의 의뢰발주서였다.


그러고 보니 북부에도 모험가 길드가 있는 건 알지만, 모험가나 용병은 별로 본 적 없단 말이지...


데릭은 눈치 빠르게 카벨의 시선을 읽고 비열한 웃음을 흘렸다.


“형님도 관심 있습니까? 소개해 드릴깝쇼? 일거리는 엄청나게 쌓여있거든요.”

“모험가 길드에 의뢰가 없으면 없지 일거리가 쌓여있다고?”


카벨이 어리둥절해하자 데릭은 그가 북부인이 아니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게 북부는 좀 다릅니다요. 북부에선 인재가 중요해서, 힘 좀 쓰고 능력 있으면 공국의 병사로 들어가는 게 더 안정적이란 말입죠! 봉급도 세고!”

“과연... 그래서 모험가나 용병은 적다?”

“적다기보단... 거의 없고, 있더라도 병사에 뽑히지 못한 반푼이들밖에 없습죠. 범죄자던가.”


일거리가 쌓여있는 모험가 길드라... 카벨은 왠지 유용하게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설사 남작이 용병들로 수작을 부리더라도, 놈들의 질은 생각보다 떨어질 거라는 기대도.


+


마을로 돌아가기 위해 마부 거리로 가는 길. 카벨은 벨티오에게 들으라는 듯 연신 툴툴거렸다.


“자기만 믿으라며 있는 척은 다 하다, 남작이 벌이려던 사건보고도 짤렸지~”

“.....”

“지휘권까지 박탈당해 병력도 못 데려온다고 하지~ 북부의 기사가 못 하는 게 너무 많지 않나?”

“시끄럽다!”

“어휴~ 미안합니다. 긁혔어요?”


성의라곤 개똥만큼도 없는 사과에 벨티오가 부득 부득 이를 갈았다.


하지만 이번엔 스스로도 잘한 게 없다고 생각 했는지 검 손잡이 위로 주먹을 쥘 뿐이었다.


“전 부하들의 목숨이 걸린 만큼, 나도 월권이든 권력남용이든 할 생각이다! 하지만 지휘권이 정지됐으니 어쩔 수 없지 않나!”

“아니이~ 그럼 사비라도 털어서 뇌물이라도 주던가, 병사 몇 명 포섭해 보던가 시도는 해보던가.”

“네놈이 내 사비를 입에 담는 건가?”


벨티오가 홀쭉한 주머니를 들고 서늘한 살기를 보내왔다.

이번만큼은 카벨도 할 말이 없는지 겸연쩍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차라리 네가 공녀님을 움직여 대공전하께 병력을 차출해 달라고 간청드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겸사겸사 남작이 벌이고 있는 것도 말하면...”

“어이구. 대공께서 참 옳다구나 하고 도와주시겠습니다. 그것까지 포함해 제가 고통 받는 걸 즐겼으면 즐겼지.”

“확실히. 네놈이 고통받다, 잘린 목이 애들 장난감으로 한껏 차이고 나면 뒷수습 할 관계긴 하지.”

“구체적입니다? 그쪽이 그렇게 생각한 겁니까?”


벨티오가 헛기침으로 말을 돌렸다.


이곳에 온 지 며칠째지만, 대공에게 미운 털이 콱 박힌 카벨이다.


아무리 공녀에게 약한 딸바보 대공이라고 해도, 바보라는 뜻은 아니다.

아마 카벨이 부탁했다는 것쯤은 간파하겠지.


‘만에 하나 대공전하께서 이야기를 들어줬다고 해도 상황은 별로 호전되지 않겠지.’


잘라내기 마을의 죽은 자들은 존재하지 않는 이들이다. 북부의 법상 이들을 상대로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발데크 남작은 반 공왕파와 뿌리 깊게 관련된 귀족이다.


아무리 극악한 일을 벌이려 했다 해도 현장에서 잡히지 않은 이상 남작을 몰아세우는 건 힘들었다.


분명 영악하게 반 공왕파들을 축출하려 한다며 선동해, 대공과 공녀를 몰아세울 게 분명했다.


낭패한 몰골로 벨티오가 잿빛 머리칼을 휘저었다.


“쉽지 않군. 지휘권이라도 돌려받을 수 있다면, 처음으로 권력 남용이라도 했을 텐데.”

“연줄 같은 거라도 박박 긁어보라고요! 그러다 마을 쑥대밭 되면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전 부하들도 있다면서!”

“그, 그건...!”

“아니이~ 저번에 데릭을 보호하던 부하들 있잖습니까? 개인적인 친분 들먹이거나 협박해서 마을로 이동하게 하는 게 뭐 어렵...”


멈칫-


카벨이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부르르 떨자, 벨티오는 불안해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곧 벨티오의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씨발 섹스!!”


쾅-!!


별안간 터져 나온 본능적인 외침. 벨티오는 황급히 카벨의 머리를 바닥에 처박아버렸다.


“크, 크흠!! 다들 미안하군. 동행자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가? 벨티오는 낑낑거리는 카벨에게 눈을 부라리며 주변에 고개를 숙였다.


축 늘어져 있다 정신을 차린 카벨이씩씩 댔다.


“쓰읍!! 생긴 것답지 않게 힘만 무식하기는...!”

“네가 상스러운 소리를 하니까 그러지 않나!”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반사적으로 그만...”

“...좋은 생각?”


좋은 생각이라고 말한 것치곤 복잡하게 일렁이는 표정에, 벨티오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역시나 벨티오의 불안감은 적중했다.


“공녀님을 납치합시다.”


‘거기서 공녀가 왜 나와?’, ‘누굴 납치한다고?’ 경악과 물음이 뒤섞인 복합적인 표정이 벨티오에게 순차적으로 떠 올랐다.


바로 반응이 온 벨티오의 안면이 구겨졌다.

하지만 지금까지 카벨이란 인간을 겪어 왔던 탓에 소리죽여 항의했다.


‘반역이라도 저지를 셈인가!’

‘일단 들어 보십쇼. 대공전하가 공녀님을 끼고 살지 못해 안달이라는 건 아시죠?’

‘뭐... 북부인이라면 모르는 게 이상하지.’


원하던 답에 카벨은 사특한 웃음을 남발했다.


‘그럼 납치된 공녀님의 흔적이 남작령에서 끊겼다면 어떻게 하실 것 같습니까?’

‘그야 전 병력이라도 움직여서 남작령에... 아!!’


벨티오가 탄성을 터뜨렸다.


확실히 그렇게 되서 대공 직속의 병사들이 남작령에 버티고 있게 된다면, 남작도 옴짝달싹 못 할 것이 분명했다


공녀 납치라는 합당한 명분도 있으니까.


‘하지만 공녀님을 납치한다는 건 아무래도...’

‘진짜 납치하는 건 아니니, 나중에 공녀님에겐 제가 계획을 전하고 부탁드리죠.’

‘...좋다. 그러면 나는 부하들에게 남작령의 동향을 계속 살펴보라고 하지.’

‘추가로 공녀님의 상황도 확인해 주십쇼. 또 암살이니 뭐니 일어나면 골치 아파지니까.’


두 남자는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구체적인 계획이 결정된 이상 남작의 헛짓거리는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남은 건 그동안 공녀에게 별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의 가장 큰 문제는...


“아! 공ㄴ... 아니 유르님! 마차에 자리 났어요오!”

“다행이군요. 마을 아이들에게 줄 선물도 잘 챙겨주세요.”


...정작 그 공녀가 멋대로 움직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남작에게 한 방 먹일 생각에 들뜬 두 남자의 뒤로, 두 여성을 태운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


잘라내기 마을 인근 눈 덮인 산기슭. 고요함만이 내려앉은 이곳에, 눈 위에 우뚝 선 돌들이 세워져 있었다.


뽀드득-


새벽에 내린 눈 위로 가죽으로 감싼 작은 발이 내딛어졌다. 그 뒤로 조금 닳았지만 깔끔한 느낌의 부츠가 뒤따랐다. 레나와 아셀이었다.


여유로워 보이는 레나와 달리 아셀은 이런 산행이 익숙하지 않은지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허억, 허억... 다 왔나요?”

“거의. 힘들면 여기서 숨 돌리고 있어도 돼.”

“머, 멀쩡합니다! 전 개의치 마시고... 우욱...!”


강한 체하다 기어코 나무를 부여잡고 요란한 소리를 내는 아셀의 등을 레나가 두드렸다.


잠시 후 둘은 다른 돌들보다 작은 돌 앞에 섰다. 레나가 익숙하게 눈을 털어내자 삐뚤빼뚤하게 새겨진 이름들이 새겨져 있는 것이 보였다.


레나는 그물망에서 예쁜 돌과 당근 하나를 꺼내 돌 앞에 내려놓았다.

그 작은 몸에 채 담을 수 없는 아련함이 소녀의 추위에 붉어진 얼굴 위로 떠 올랐다.


아셀은 안타까워하며 최대한 정중하게 그 뒤를 지켰다.


레나는 가냘픈 웃음을 짓고 묘비를 바라보고 기도하는 것처럼 양손을 포갰다.


“이건... 묘비인가요?”

“응. 레나랑 같이 있어 줬던 사람들.”

“가족이신가요?”


돌에 새겨진 이름들을 하나하나 매만지던 레나가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어. 어렸을 때부터 계속 같이 도망치면서 있어 줬던 사람들이야.”

“도망이요? 뭐 때문에요?”

“잘 몰라. 나쁜 사람들이 쫓아오고 있다고 그랬어.”

“.....”

“레나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 사라지나 봐...”


괴로운 기억을 꺼낸 것처럼 레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당황한 아셀은 그녀의 주먹 쥔 손을 잡고 말했다.


“그, 그럴 리 없어요! 레나씨 곁엔 카벨씨도 있고... 그리고 저도 있잖아요!”

“하지만...”

“저는 끝까지 죽지 않겠다고 약속할게요!”


서투른 속마음을 내뱉은 아셀의 얼굴이 뒤늦게 달아올랐다. 그런 아셀을 보면 레나가 이내 작게 웃음 지었다.


‘돌을 옮긴 것도, 이름을 새긴 것도 레나씨가 했겠지? 그것도 혼자 힘으로...’


아셀은 눈앞의 작은 어깨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국민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본다.’라는 가문의 가훈이 비로소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북부의 장례 풍습은 기본적으로 풍장이다.


얼어붙은 땅을 파기 힘들기 때문에 토장은 무리고, 불을 피울 나무를 구하는 것도 사치였기에 화장도 불가능하니까.


귀족들이라면 마법이나 돈을 통해 화장이나 토장이 가능하지만, 일반인들은 보통 낭떠러지에 시체를 던져 넣는 게 고작이었다.


그나마 죽은 이의 유품을 가져와 땅에 묻고, 직접 가져온 돌에 이름을 새겨 세워주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레나는 이곳에 버려져 가족도 없는 상태니 이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저 작은 몸으로.


‘내가 레나씨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을까?’


15살짜리 소년은 귀족이라는 허울을 벗겨내자 남은 무력한 손을 보며 침음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레나에게 도움받기만 했다는 사실에 아셀의 마음속이 간질거렸다.


그때. 아셀은 문득 카벨을 떠올렸다.


+


“불안해...”


그날 잘라내기 마을회관. 사기를 푸는 데도 익숙해진 카벨은, 끊임없이 침식을 풀며 주변을 흘낏거렸다.


카벨은 기본적으로 운이 좋지 않았다.


산길에선 반드시 도적 떼와 마주치고, 진탕 마신 뒤 필름이 끊긴 다음 날엔 반드시 질 나쁜 녀석들에게 묶여 깨어났다.


북부에 도착한 뒤 지금까지 일어난 일만 봐도, 그의 액운은 충분히 공신력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며칠’이나 아무 일이 없다는 것은 카벨의 불안함을 증폭시켰다.


‘저번에 이랬을 땐 성국에서 소드마스터가 갑자기 들이받았었는데...’


카벨은 이따금 대공의 오러가 목에 닿은 것 같은 섬뜩함에 몸을 떨었다.


그러자 옆에서 바닥 보수를 하고 있던 벨티오가 카벨을 툭 쳤다.


“그만 부산떨고 주민들의 침식이나 계속 풀어라. 아직 절반 이상이나 남지 않았나?”

“하고 있는 거 안 보여요? 것보다 공녀님은 진짜 성안에서 별일 없는 것 맞습니까?”

“몇 번이나 틀림없다고 하지 않았나! 내 부하들의 정보력을 무시하는 건가?”


카벨은 옆에 놓인 ‘이상 없음.’, ‘완전 괜찮음.’ 이라고 쓰인 형식적인 보고서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어딜 보고 정보력을 신뢰하라는 건지...


벨티오의 말에 따르면 사기가 쌓인 공녀는 요양을 위해 거의 방 안에서 안 나온다니, 지금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불안함은 여전했다.


‘저번에 사기를 풀어둔 게 특히 걸린단 말이야...’


카벨은 지난번 반려후보로 세우겠다며 대공에게 공녀가 들이받은 것이 떠올라 몸을 떨었다.

처음 병약한 이미지와 완전히 다르게, 반절 정도 사기를 풀자마자 그렇게 급발진할 줄은...


대공의 피는 어디 가지 않는다는 건가? 설마 또 뭔가 벌이진 않겠지?


벨티오는 또 다시 손톱을 물어뜯는 카벨을 한참 보더니 피식 웃었다.


“하긴. 공녀님이 무사 귀환의 증표를 줄 정도니, 걱정하는 충심은 이해한다.”

“충심은 개뿔. 나 좋자고 하는 겁니다. 그보다 무사 귀환의 증표가 뭡니까?”

“엉? 몰랐나?”


벨티오는 서리의 검 호패에 단 공녀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매듭에 대해 말했다.


북부인들은 상대에게 안전을 기원하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건네주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일부는 마력을 불어 넣기도 한다고.


솔직히 공녀의 부탁을 받아 왔다는 말을 이후 캐묻지 않았던 것도, 머리카락 매듭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왠지 조용하더라니 그런 이유가 있었군...


“그럼 나는 순찰 시간이 돼서 이만 가지.”

“...병력도 못 끌어오고, 위에 밉보며 개털됐으면 그거라도 잘해야지.”

“다 들린다! 너야말로 꾸물대지 말고 공녀님에게 출발해라. 가는 김에 대공전하 눈에 띄었으면 좋겠군!”


소름 돋는 한마디에 카벨은 멀어지는 벨티오의 뒤에 침을 뱉었다.


그리고 잠시 뒤. 예상외의 사건이 카벨을 찾아왔다.


“흐아아앙! 카벨혀엉!”


울며 회관으로 들어온 아이가 카벨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렸다.


요 며칠 레나와 놀아주다 보니 가까워진 아이들 중 한 명이었다.


“사내놈이 질질 짜기는... 그런데 손에 그거 뭐야?”


뒤늦게 카벨의 시야에 소년의 손에 들려있는 괴상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소년은 넘어져 팔꿈치가 다 까지면서도 손에 붙은 것처럼 그 덩어리를 놓지 않고 있었다.


‘이건...?!’


중부 인마전쟁 때 마족들이 사용한 것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주술 도구를 본 적이 있었다.


마물의 가죽과 뼈로 만들어진 괴기스러운 이형의 물건. 보는 것만으로 불길한 형태다.


곧이어 날선 감각스킬이 스파이더 센서처럼 요란하게 경고음을 내기 시작했다.


험악한 얼굴을 소년에게 들이밀자, 위압 당한 소년은 덜덜 떨었다.


“너 이거 어디서 났어?!”

“저, 저쪽에 이상한 사람이 붙잡고... 우왁?!”

“뭐해 인마! 안내해!”


소년을 짐짝처럼 옆구리에 낀 카벨이 마을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마족령에 가까운 곳인 만큼 마족놈들의 농간을 주의해야 했는데!


소년을 내비게이션 삼아 도착하자마자 들었던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곳에 일어나는 상황은 카벨이 짐작했던 것과 전혀 다른 양상이었다.


“어... 으아...!”


그곳엔 또 다른 희생양이 된 소녀가, 묘한 위압감을 뿜는 갈색후드의 여성에게 무한 쓰담쓰담을 받으며 굳어있었다.


그럼에도 여성은 주술도구로 추정되는 물건을 계속 들이밀고 있었다.


소녀는 위압감과 계속 쥐어주려는 주술도구 같은 것에 인지부조화를 느끼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결국 분위기에 압도당해 울먹이며 이형의 물체를 잡으려던 순간...


“오, 오빠아아...!”


카벨을 발견하자 절망에 빠졌던 소녀의 표정이 밝게 펴졌다. 그러곤 냉큼 카벨의 뒤로 숨었다.


“아...!”


그러자 로브 녀석은 안타까운 소리를 내며 두 아이들을 번갈아 보았다.

곧이어 카벨에게 시기와 질투 어린 시선이 따갑게 보내졌다.


카벨은 황금색 검을 뽑아 들고 눈을 부라렸다.


“야! 너 내가 심시티 중인 마을에서 뭔 헛짓저리...”


그때 카벨의 감각 스킬에 익숙한 사기 덩어리가 느껴졌다.


“잠깐. 설마, 공녀ㄴ...”


툭-


“으아아...!”


익숙한 소리에 뒤를 보자 커다란 고기를 떨어뜨린 금발의 하플링 여성이 보였다. 공녀의 시종인 엔야였다.


눈앞에 있는 게 공녀 듀오라는 걸 확신한 카벨의 입꼬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빌어먹을 양산형 엘프 놈이... 믿으라매!!’


소리 없는 아우성과 함께 불운에 대해 경고하던 연합장 에아린의 밝은 미소가 순간 스치고 지나갔다.


예상보다 공녀는 첫 만남 때만큼이나 발걸음이 가벼운 여자였다.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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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4화. 평생 벗지 말아야지. 24.09.03 16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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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9화. 정체가 뭐야? 24.08.18 32 2 17쪽
19 18화. 그냥 쏠 걸. 24.08.17 35 2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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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6화. 너무 좋은데? 24.08.15 36 2 12쪽
16 15화. 미안해요. 24.08.14 37 2 15쪽
15 14화. 그게 뭔 좆같은 소리냐고!! 24.08.13 37 2 16쪽
» 13화. 빌어먹을 양산형 엘프 놈이...! 24.08.12 46 2 18쪽
13 12화. 그거 아닌데. 24.08.11 43 2 12쪽
12 11화. 물어 24.08.10 47 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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