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없으면 죽는 북부공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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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수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7.30 19:32
최근연재일 :
2024.09.0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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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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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7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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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18화. 그냥 쏠 걸.

DUMMY

18화


“으랴~ 으랴랴!”


쿠구구궁-


“됐어~ 제대로 자리 잡혔어 엔야언니...!”


녹색 빛을 머금은 나무줄기가 무너지기 직전인 폐가를 지탱하자, 레나가 방방 뛰었다.


“후후! 이 엔야에게 걸리면 일도 아니라구요! 다들 조금만 더 힘내면 새참타임이에요! 힘내요!!”

[우와아아아-!!]


작은 몸으로 활기차게 손을 휘두르자, 사람들은 환호했다.


잘라내기 마을에 남은 지 몇 시간. 이곳 주민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엔야는 완벽하게 마을에 스며들어 있었다.


아셀은 완벽하게 자리 잡은 나무를 확인하며 엔야에게 엄치를 치켜들었다.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엔야씨가 아니었다면 얼마나 시간이 걸렸을지...”

“에헤헤...”

“설마 엔야씨가 드루이드이실 줄이야! 숲의 힘은 적합한 혈통을 가진 분들만 다룰 수 있는 거잖아요!”

“에, 엔야는 그런 거 잘 몰라요오...?”


이 사람 거짓말 잘 못하는 구나... 눈치 빠른 아셀이 한순간에 엔야를 파악했다.


그래도 숨기려고 하니 애써 들출 건 없겠지...


엔야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눈을 피했다. 뒤늦게 자신이 편하고자 사람들에게 능력을 선보인 것이 실수라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으으... 보여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드루이드는 상당히 희소한 편에 드는 능력. 북부에서라면 그 손에 꼽을 정도로 수가 적다. 자칫하면 자신으로 인해 유레하의 정체가 들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몸에 맞지도 않은 인간사이즈 곡괭이로 언 땅을 파다 허리에 큰 깨달음을 얻었던 터.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못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옆에서 사람들의 잔심부름을 해주던 레나는 난감해 하며 아셀에게 속삭였다.


“비밀이었어? 나 다른 사람한테 자랑했는데...”

“걱정하지마세요 레나씨. 복잡한 건 신경 쓰지 못하는 사람인 것 같으니까.”


아셀이 시무룩한 레나를 달래자, 해맑게 웃으며 밀가루빵을 입에 물려주었다.


턱-


흡족하게 상황을 지켜보던 티아고 촌장은 엔야의 금색 머리에 투박한 갈색 손을 얹었다.


“설마 무단취식범 꼬마가 이렇게 도움 될 줄이야. 보답으로 저녁땐 고기를 잔뜩 먹여주겠네.”

“고, 고기!!”

“어이 꼬마! 여기 좀 도와줘!”


커다란 금색 눈동자가 욕망을 솔직하게 내비치며, 쪼르르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먹을 것만으로 딱 마침 필요했던 힘을 아낌없이 써주다니...


티아고 촌장은 몇 시간 만에 그녀의 노예기질을 다루는 방법을 파악하고 늙은 입꼬리를 비죽였다.


그때 멀리서 손을 흔드는 아낙네들을 본 레나의 목소리가 밝게 피었다.


“새참 왔어요! 일 끝났으면 다들 모여요~”

“새, 새참! 에이잇! 그래! 내가 대 드루이드 엔야다아!!”

[우와아아-!!]


자포자기 하고 내지른 초록색 힘에 건물 한채가 마른나무가지로 뚝딱 보수되었다.


숨기려는 것 아니었나...


아셀과 티아고 촌장은 엔야의 단순한 성격으로 보아, 그동안의 인생사가 그리 평탄하진 않을 것 같다고 예상했다.


+


“정말 침식이 풀릴 줄이야...! 이렇게 상쾌한 기분이 얼마만인지!”

“공녀님을 따른다는 건 조금 그렇지만... 죽는 것 보단 낫지! 안 그러냐!”

“당연하지! 그리고 애초에 공녀님에 대한 소문도 대부분 헛소문이라니까!”

“구라치시네. 침식 풀리기 전까진 은색늑대수인이 어쩌구 하면서 호들갑 떨던 놈이...”


잘라내기 마을은 며칠 째 떠들썩했다. 무엇보다 삶에 대한 희망으로 넘쳐 있었다. 카벨이 내심 걱정하던 이탈자들도 거의 없었다.


어차피 이미 ‘죽은 자’로 분류된 사람들니, 여기서 떠나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느니 차라리 여기서 새로운 기회를 잡자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석 테이블에 앉아있는 아셀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카벨과 티아고 촌장, 그리고 자신만 알고 있는, 이 마을의 위기 때문이었다.


“아, 아셀 공자님 식사라도 가져다 드릴까요?? 아님 피곤하실 텐데 어깨라도 주물러...”


굽신대는 엔야가 머리만한 나무잔과 함께 맞은편에 앉아 소근거렸다.


아셀은 비로소 미소를 띠우고 그녀를 반겼다.


“하하, 아셀이면 돼요. 죽은 자인 걸요.”

“저, 정말요?”

“정말 괜찮습니다. 편하게 대해주세요.”

“어휴~ 난 또 숨도 못 쉬고 나보다 한참 어린 꼬맹이한테 납작 엎드려 비위 맞춰줘야 하는 줄 알았지 뭐니 얘~”


자신과 비슷해 보이는 어린 모습과 달리, 털털하고 시원한 엔야에게 아셀은 어색하게 웃었다.


엔야는 맛있게도 나무잔의 내용물을 비우며 탄성을 내질렀다.


곡물 찌꺼기를 발효시킨 맛없는 증류주였지만 먹는 폼만으로 주변 사람을 군침 삼키게 만들 정도였다.


이윽고 손가락에 남은 스튜를 쪽쪽 빨던 엔야가 물어왔다.


“고민 있지? 누나가 들어줄까?”

“벼, 별로 고민 같은 것 없는데요!”

“얘. 내가 그 심란해지는 이마주름 맨날 보고 살아~ 인상 쓰다 커서 후회하지 말고 누나한테 말해.”

“아하하... 모시는 분이 그런가 보군요.”


엔야는 유레하의 모습을 떠올렸다. 잡 주름 하나 없이 추위가 매혹적으로 깎아놓은 미색...


예시가 좀 잘못된 것 같았지만 대충 손사래 치며 대답을 넘겼다.


“저기, 그럼... 이건 아는 사람 이야기인데요.”


100% 본인 이야기네.


우물쭈물 말을 꺼내는 아셀을 안주삼아 엔야는 새 술을 홀짝였다.


아셀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불행한 일로 가족과 떨어진 친구가 어떤 여자애의 위로와 도움을 받아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어느 날 여자애의 마을이 위험하다는 걸 알았는데, 어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게다가 도와주겠다던 높으신 분이 정말 이 버려진 마을을 구하러 올지도 미지수인 상황.


중간중간 슬슬 자신으로 주어가 바뀌었지만 엔야는 굳이 지적하지 않고 감상을 내비쳤다.


“나랑 비슷하네 아ㅅ... 아니 네 지인~”

“네...?”

“그렇잖아? 누나 같은 하플링은 아무리 커봐야 너나 레나 정도 밖에 못 크고, 힘도 약해 어린애 취급당하기 일쑤인걸?”


아셀은 뒤늦게 엔야가 자신과 같은 무력감을 평생 느끼고 살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작은 몸집과 타 종족에 비해 떨어지는 체력으로 대륙 곳곳에서 애물단지 취급 받은 하플링.

그러다 보니 작은 체구와 눈에 잘 띄지 않는 점을 활용해 범죄의 길로 쉽게 빠져드는 종족이었다.


이런 인식에다, 힘을 숭상하는 북부에서의 취급은 분명 가혹 할 테지.

그럼에도 이렇게 시종일관 밝고 힘차게 행동하다니...


아셀은 어쩌면 그녀에게서 답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저기! 그럼 엔야씨는...”

“누나.”

“...누나는 그런데도 어떻게 밝게 지낼 수 있는 건가요?”

“크으으~ 몇 년 만에 누나 소리람~! 좋아! 누나가 특별하게 알려줄게! 그건 말이야~”


엔야는 몸을 기울여 작게 속삭였다.


“못하는 건 못하는 대로 그냥 두는 거야.”

“예에?!”


맥이 탁 풀어지는 답에 절로 소년의 이마에 금이 갔다.


“그렇잖아~? 어차피 백날 해봤자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까, 빨리 포기해 버리는 게 심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이득이라는 거지~”

“그런 무책임한 대답이 어디 있...!!”


작은 손가락이 그의 입을 가로막았다. 엔야는 어느때보다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


“무책임한 게 아니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찾아왔을 때 모든 것을 쏟아 붓기 위해서라고?”


아셀은 카벨과의 수련으로 물집들이 잡힌 작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제가 도움이 될 상황이 올까요?”

“뭐래~ 사람들이 네 칭찬을 얼마나 하는데? 그 나이에 마을에 도움이 되는 게 쉬운 줄 아니?”

“하지만 카벨씨처럼은...”


아이고~ 제일 귀찮은 비교대상이네. 엔야가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아셀의 행정적인 능력은 재무장관 라셀의 아들 답게 어린 나이에도 뛰어났다.


적절히 사람들의 역할을 나눠 활용하고, 돌발적인 문제에 대응하는 임기응변.

사람들이 괜히 칭찬하는 게 아니다. 그가 없었으면 마을이 이정도로 빨리 보수되는 건 불가능했다.


‘아무리 귀족의 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애는 애니까.“


아셀의 능력은 장기적으로 유용했다. 그에 반해 카벨의 무력은 당장 일어난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둘 다 유용한 능력이지만, 한창 클 나이의 남자애에게 어떤 게 와 닿을지는 뻔했다.


게다가 들은 바론 지켜주고 싶은 여자애도 있었으니 그런 생각은 당연하지.


엔야는 막 피어나려는 어린 사랑의 향기에, 아셀을 힘껏 응원해 주고 싶었다.


“괜찮아 얘! 그 사람도 처음부터 강했겠어? 어렸을 땐 아셀보다 형편없었을걸?”

“서, 설마요!”

“아셀은 잘생겼고 그 사람은 좀... 그렇잖니? 분명 괴로운 유년시절을 보냈을 거야.”

“...카벨씨가 들으면 화낼 거에요.”


뒤늦게 땋은 금색 머리카락이 비쭉 섰다.


처음 만난 날, 얼굴 지적한 병사 집단을 몰살시켰던 걸 직접 봤었으니까.


엔야가 식은땀을 닦으며 말을 돌렸다.


“여, 여하튼! 중요한 건 우리 아셀리 반드시 나서야 하는 순간이 있을 거라는 거야!”

“그럴까요?”

“그러엄~ 이 ‘누나’가 보증할게! 그때를 위해서 잘생긴 얼굴도 피렴! 레나가 걱정하겠다.”

“그, 그러니까 제 이야기가 아니라 아는 사람의 이야기라니까요!”


푹 숙인 소년의 귀 끝이 붉게 달아올랐다.


엔야는 그것만으로 술안주가 되는지 연거푸 증류주를 머금었다.


‘응? 그런데 잠깐...?’


문득 마음에 걸리는 것이 떠올랐다.


이거 아셀 본인의 이야기지? 여자애의 마을이 위험하다고 했는데, 설마...


덜컹-!!


“다, 다들 나와 봐! 바깥에 용병들이 접근하고 있어!”


남작의 사병에게서 벗긴 장비를 입은 임시 경비대원이 안으로 들어와 소리쳤다.

아셀과과 엔야는 서로 바라보았다. 다른 색 다른 모양의 두 눈에서 동일한 불안함이 일렁였다.


두 사람은 병사를 따라 급조한 망루로 올라갔다. 그러자 눈보라 사이로 20여명은 될법한 무리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가장 취약한 상황에 제대로 대비도 안 된 상황. 그 절묘한 틈은 분명 벨티오의 납치가 시발점이었다.


역시 이렇게 되는 건가? 아셀의 굳게 쥔 작은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옆에 있던 엔야는 울먹이며 그런 아셀의 멱살을 잡고 마구 흔들었다.


“으아아! 역시 아셀 이야기잖아?! 지인의 이야기는 개뿔!”

“크헉! 자, 잠깐 엔야씨! 아픕니다!”

“누나라니까!! 그보다 어떻게 해?!”


아셀이 초조한 시선을 북쪽 숲으로 보냈다. 하지만 유르도, 벨티오도, 카벨도 보이지 않았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은 아셀이 경비대와 엔야에게 말했다.


“아저씨! 지금 당장 경비대 분들을 모아주세요! 그리고 촌장님도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 어어...!”

“그리고 엔야ㅆ... 아니 누나는 숲으로 간 카벨씨들을 찾아 마을 상황을 전해주세요!”

“아, 아셀은 어떻게 하고?!”


아셀은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려 애썼다. 두려움이 머릿속을 지배했지만, 아버지의 가르침이 조금씩 울렁이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발데크 남작의 일을 번번히 방해했던 아버지. 침식으로 마을에 도착한 자신에게 접근해왔던 죽음을 장사하는 남작의 병사들.


어린 아셀은 두려움 속에서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반드시 아셀이 나서야 하는 순간이 있을 거라는 거야!-


아셀은 그 말을 해주었던 사람의, 겁먹은 금색 눈동자를 바라봤다. 최대한 침착함을 가장한 채.


“괜찮아요. 저도 할 수 있는 게 있으니까요.”

“...아셀.”


달달 떨리는 물집 투성이의 손. 엔야는 차마 말리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후드를 쓴 엔야가 사람들 속으로 사라지자, 아셀이 자신의 떨리는 손을 감쌌다.


“저 하나만 희생한다면,...”


처음으로 흘러가기 시작한 잘라내기 마을의 죽어있던 시간. 그리고 지키고 싶은 사람.


이미 한번 죽었던 소년이 스스로를 걸어야 할 이유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


“젠장...!! 빌어먹을!!”


벨티오는 연신 스스로의 무력함을 따지듯 소리쳤다. 변장한 유레하의 경량화 마법으로 숲을 시원스레 가로질렀지만, 불이 붙은 분노는 꺼지지 않았다.


그는 등에 고정시킨 검은후드 여성을 흘겼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나란히 달리고 있던 변장한 유레하가 그를 다독였다.


“진정하세요. 카벨씨의 말 대로입니다.”

“중급 마족이다! 혼자 두고 오는 게 옳다는 말인가?!”

“...저도 화가 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인식 저해 때문에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벨티오는 그녀의 흥분한 목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미안하다. 너무 흥분했군. 하지만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아서 그랬다.”


벨티오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혀를 찼다.


밉살스러운 녀석이었지만 며칠간 갖가지 일에 같이 휘말린 사이였다. 그리고 납치된 자신을 구하기 위해 찾아와준 녀석이기도 했다.


‘응? 잠깐...’


그 일들 생각해보면 다 저 녀석 때문에 일어난 거 아닌가? 그리고 납치되어 이 망할 드레스를 입고 치욕을 당한 것도...


냉정해 지니 벨티오는 다른 의미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돌아오면 죽지 않을 정도로 한방 먹여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그의 시선이 옆을 달리는 여성을 향했다.


“너는 도대체 누구지.”


냉랭한 목소리에 여성이 조금 동요한 게 느껴졌다.


“싸우는 걸 보니 전장에서 활약한 자만이 하는 움직임이 보이더군. 마법도 기본마법 위주지만 꽤 숙달되어 있었고.”


유레하는 합당한 그의 의심에 침을 삼켰다. 속내를 파고드는 벨티오의 녹색 눈빛에 핑크색 드레스 프릴이 나부끼며 비쳤다.


“게다가 검을 다루는 능력도 견습 기사급. 마법과 검을 함께 다루는 자들은 북부에 몇 없지. 공녀님이라던가. 그렇다면...”


정체를 들킨 걸까?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그것도 하필 벨티오에게...


유레하도 벨티오에 대해선 알고 있었다.


규율과 명예, 옳은 길만을 추구하는 가장 모범이 되는 기사.

재색의 촉이라는 이명답게 그 실력도 확실해 따르는 자들도 많았다.


하지만 몰래 밖으로 나온 유레하에겐 가장 정체를 들키면 안 되는 자였다.


카벨과 처음 만났을 때 변복하고 나왔던 걸 들켰으니, 이번에 또 걸린다면 온갖 호들갑을 떨어대며 바로 대공에게 보고해 버릴 게 분명했다.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는 와중 벨티오의 붉게 칠한 입술이 열렸다.


“너는... 공녀님의 열렬한 추종자군!”

“......”


벨티오의 코가 다 꿰뚫어 봤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솟아올랐다.

헛다리에 무표정한 유레하의 입가가 반쯤 열렸다.


가끔 시녀들에게 벨티오가 고지식하지만 맹한 구석이 있어 귀엽다는 소리를 듣긴 했는데...


유레하는 굳이 바로잡지 않기로 했다.


“...예.”

“그렇군. 확실히 공녀님의 전투방식은 셈이 날 정도로 멋지니 이해한다. 내 부하 중 따라하는 녀석들도 곧잘 있었지.”


유레하의 얇은 얼음 장 같은 하늘색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벨티오는 공녀와 공녀를 동경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벨... 아니 기사님은 공녀님을 싫어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왜지?”


별스럽다는 듯 묻자 오히려 유레하가 당황했다.


“...은색늑대수인이지 않습니까. 기사님도 소문으로 듣기엔 폴라리스 교단의 신자라도 들었습니다.”


은색늑대와 은빛 까마귀. 그리고 시초신화를 신봉하는 단체. 폴라리스 교단

그 교단을 믿는 자들이 자신을 좋게 볼 리가 없었다.


실제로 시위하거나 암살을 시도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 교단을 믿는 사람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벨티오의 대답은 유레하의 좁은 우물을 깨버릴 정도로 강렬했다.


“은색늑대는 은색늑대고, 공녀님은 공녀님이다. 전장에서 내 눈으로 본 공녀님이 불행을 불러오는 사람일리 없다.”

“......”

“내가 본 공녀님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위험에 뛰어들고 노력하며, 부하들을 몰래 챙겨주는 분이다.”


그러더니 벨티오는 무언가 생각나 너털 웃었다.


“갑자기 막사 머리맡에 나타난 이상한 장식물이나 음식을 보고 처음엔 다들 놀라긴 하지만.”


별거 아닌 말. 하지만 유레하의 얼음 가면은 어느새 깨져있었다.


오롯이 혼자라고 생각 했었다.


북부를 위해서 꿋꿋한 척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악의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외형과 상관없이 인정해 주는 자들이 있었을 줄이야...


-전 당신의 삶이 나아가는 길이. 모두를 구할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카벨의 말이 불현 듯 떠올랐다.


생각해 보면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었던 카벨 덕분이었다.

그가 북부에 온 뒤로 조금씩이지만 그녀를 둘러싼 세상이 바뀌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좋습니다. 보여주려 노력해 보십쇼. 은색늑대수인이 아닌 공녀님이 어떤 사람인지를.-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


가볍게 받아들였던 이야기가 묵직하게 되새겨졌다. 유레하는 고립되어있던 작은 지면에서 살짝 발을 내딛었다.


단순히 상황에 순응하기만 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바뀌기 위해서.


“이제 곧 마을이다. 집중해라! 카벨의 말에 따르면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네.”


벨티오와 공녀는 빠르게 숲을 내달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저 멀리 마을이 보이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부스럭-


그때 갑자기 숲 한쪽이 일렁이더니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벨티오와 유레하가 빠르게 전투태세를 갖췄지만, 나타난 인물은 유레하에게 익숙한 인물이었다.


“헉, 헉...! 공ㄴ... 아니 두 분 다 무사히 오셨네요오! 찾으러 가던 길이었는데!!”

“엔야...?”

“아는 사람인가?”


벨티오는 익숙해 보이는 두 사람을 보고 시위를 매겼던 활을 내렸다. 하지만...


“푸훕! 아하하핳항하핰!! 콜록콜록!!!”


벨티오의 화려한 복장에 엔야가 저항 없이 터졌다.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삿대질 까지 더해 깔깔대기 시작했다.


‘그냥 쏠 걸 그랬군.’


벨티오는 당분간 계속 될 치욕을 예상하고, 짐짝처럼 매달린 검은 후드를 노려보았다.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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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39화. 오랜만이구나 제자아! (이 글은 여기까지 입니다. 감사합니다!) 24.09.08 11 1 16쪽
39 38화. 약속을 지킬 때이니라. 24.09.07 12 1 16쪽
38 37화. 도둑 24.09.06 13 1 13쪽
37 36화. 루팅의 프로 24.09.05 12 1 15쪽
36 35화. 쯧 24.09.04 15 1 12쪽
35 34화. 평생 벗지 말아야지. 24.09.03 16 1 13쪽
34 33화. 쪽 24.09.02 15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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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1화. 샌드백 24.08.31 20 1 14쪽
31 30화. 제가 뭘 어떻게 하면 되나요. 24.08.29 25 2 13쪽
30 29화. 전령 24.08.28 30 1 15쪽
29 28화. 봉이다! 24.08.27 31 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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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6화. 대공의 호의 24.08.25 31 1 12쪽
26 25화. 건방진 놈 24.08.24 32 1 17쪽
25 24화. 후련할 것 같아서. 24.08.23 42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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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2화. 이놈이 먼저 끼어들었어! 24.08.21 33 1 16쪽
22 21화. 땜통 24.08.20 35 1 17쪽
21 20화. 공녀의 불씨 24.08.19 32 1 13쪽
20 19화. 정체가 뭐야? 24.08.18 32 2 17쪽
» 18화. 그냥 쏠 걸. 24.08.17 36 2 18쪽
18 17화. 중급마족 24.08.16 33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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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5화. 미안해요. 24.08.14 37 2 15쪽
15 14화. 그게 뭔 좆같은 소리냐고!! 24.08.13 37 2 16쪽
14 13화. 빌어먹을 양산형 엘프 놈이...! 24.08.12 46 2 18쪽
13 12화. 그거 아닌데. 24.08.11 43 2 12쪽
12 11화. 물어 24.08.10 47 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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