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없으면 죽는 북부공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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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수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7.30 19:32
최근연재일 :
2024.09.0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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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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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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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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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28화. 봉이다!

DUMMY

28화


빡-!!


“아악!!”

“어쭈? 허리 올라가지? 다시 안 올라오게 반대로 접어줄까?”

“아, 아닙니다악!!”


잘라내기. 아니 리카소 마을의 새벽. 지난 2주간 항상 그랬듯 아셀의 비명소리와 카벨의 악다구니가 울려 퍼졌다.


그런데 2주 전과는 다소 양상이 달랐다.


처음 카벨에게 훈련시켜달라고 찾아왔을 땐, 상식적인 선에서 대충 굴렸다.


하지만 이젠 아주 애를 자근자근 패주고 있지 않은가? 없는 꼬투리도 잡아서.


물론 카벨이 이유 없이 이러는 건 아니다.


일은 카벨이 제의한 안건이 통과되고, ‘시찰’이란 명목으로 찾아온 라셀 후작에 의해 벌어졌다.


-아셀을 종자(스콰이어)로 받아주게나.-

-싫습니다. 전 기사도 아니고, 짐덩이 떠안는 건 이미 충분하거든요?-

-서리의 검은 북부 법상 명예 기사와 같네. 그리고 자네가 아들을 종자로 받아주면, 자네는 내 도움을 받기도 쉽고, 나는 자네가 성에 올 때마다 아들을 자주 볼 수 있어서 좋지 않은가?-

-아니, 공명정대는 어디다...!-

-크흠! 그러고 보니 대공전하께서 자네가 공녀님에게 이상한 짓 못하게, 정식으로 사람들을 붙이려 한다더군.-

-뭐... 뭐...!-

-하지만! 내가 자네 옆에 아들을 붙여 놓는 것으로 무마 시켰네! 다름 아닌! 응? 내가!-

-끅... 끄으윽!!-

-허허. 허허허허. 그럼 성에서 보세나~-


완벽하게 외통수에 몰려 결국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에 대한 애정이 애틋하다더니... 진짜 남작이 아셀을 이용했다면 북부 망했겠는데?


하지만 납득한다고 해도 화가 풀리는 건 아니다. 다행이 아셀은 카벨의 종자다. 그렇다.


“손목 힘주고! 인마! 허벅지! 다리!!!”

“악!! 아아악?!”


수련이라는 합리적 이유로 화를 풀 명분은 충분하다. 더욱이 카벨은 공녀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까지 작대기에 담고 있었다.


몇 시간 뒤 사람들이 눈치를 보며 나오고 나서야 둘은 수련을 끝내고 식사를 위해 마을회관에 도착했다.


“오늘 모험가 길드 가시기로 했죠? 준비 다 끝내놨습니다!”


아셀은 방금까지 쳐 맞으며 비명 지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씩씩하게 물었다.


레나 때린 놈이랑 결판 낼 때도, 대신 가슴 뚫릴 때도 그렇고 애가 의외로 강하단 말이야.


“그런데 카벨씨.”

“왜.”

“최근에 북부의 오러 운용법을 익히려 하시던 건 이제 안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다 끝내신...?”

“아 뭐... 그렇지.”

“대단해요! 아무리 공왕가 가전의 열화판이라고 해도, 새로 운용법을 익히는 게 쉽진 않으실텐데!”


카벨이 수련하고 있던 것이 병사나 기사들이 익히는 열화판 운용법이라 믿고 있던 아셀이 눈을 빛냈다.


물론 카벨이 수련하고 있던 건 그 가전인가 뭔가 하는 소드마스터 용 운용법 이었지만.


“그럼 나중에 제게도 알려주실...”

“안 돼.”


아셀의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하, 하지만 저 카벨씨의 종자잖아요! 오러 운용법도 안 알려 주시겠다는 건...”

“쓰읍. 그런 게 아냐 인마. 운용법은 알려 줄거야. 처음은 내 걸로.”

“북부 것이 아니라요?”

“그보다 얼른 먹고 준비해! 아직도 밥하나 먹는 게 그렇게 느려선.”

“앗. 벌써 다 드셨...! 네!!”


카벨은 부리나케 빵과 스튜를 쑤셔 넣는 아셀 앞에서 조심스레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도 제잔데 하자있는 걸 알려줄 순 없지.’


대공이 3일 동안 직접 시연해준 덕에 분석할 수 있었던 운용법은 뭔가 이상했다.


물론 대단한 운용법이긴 했지만, 사기를 이렇게 끌어 모으는 운용법을 저항력이 강한 대공가 말고 누가 쓸 수 있단 말인가.


또한 열화판을 다른 병사들이 수련에 쓸 정도면,북부인 대부분이 이 운용법을 쓰고 있다는 건데...


“은색늑대니 은빛 까마귀니 하는 것도 그렇고, 뭔가 의도적인 느낌이 든단 말이야...”

“네? 방금 뭐라고 하셨... 웁! 우왜애액!!”

“아 씨. 더럽게 진짜!! 여기 걸레!! 물이랑!!”


억지로 딱딱한 빵을 우겨넣다 기어코 쏟아내는 아셀 때문에, 깊어지려던 의문이 멈춰 섰다.


+ +


공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에스키라.

반려후보 결정전이 코앞으로 다가온 이곳은 축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 와중 마을에 있는 북부 유일의 모험가 길드. 험상궂은 용병들과 모험자들이 득시글거리는 가운데, 작은 미성이 낮게 새어나왔다.


“오폐수들뿐이네.”


마야는 생글생글 웃으며 모험가 길드 카운터에서 중얼거렸다. 속내를 모르는 길드 홀의 사내들은 누가 더 잘났느니 떠들며 그녀를 향해 헤벌쭉 웃음을 보냈다.


순간 카운터 아래서 검은 고양이 꼬리가 부풀었지만, 능숙하게 부끄러운 웃음과 호박색 시선을 보냈다.


“왕국에서 줄 하나 잘못 탔다가 이게 뭐람...”


길드 간부가 되기 위해 영업하고, 또 영업한 끝에 우연히 닿게 된 국왕의 사돈과의 커넥션.


그런데 하필 그 자식이 자신이 준 정보로 반역을 일으켰다. 새로운 왕이 추대되고 패배한 자들은 핏줄은 처형당하거나 실종되었다.


세상에 내가 반역도라니!!


하지만 그 대가로 돌아온 재물과 뒷배는 마야의 모든 시름과 걱정을 날려버릴 정도로 달콤했다.


그런데...


‘그런데 거기서 왜 제 1왕녀가 살아 돌아오고 지랄이냐고!’


동부에서 금색의 영웅과 그를 따르는 세력을 업고 돌아온 왕녀. 욕심 많고 능력 없는 것들이 떨어져 나가는 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물론 그 중엔 마야 역시 포함되어있었다. 다행히 관련이 깊지 않아 처형은 면했지만 북부로 좌천되었다.


‘말이 좌천이지 그냥 나가라는 거잖아!’


모험가 길드 1위 길드원에 빛나는 실적. 아름다움과 처세술. 차기 모험가 길드 간부? 아니 길드 마스터 자린 이미 맡아놓은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북부에서 그 유능함은 글자 하나 못 읽는 멍청이들에게 의뢰내용을 구두로 설명해 주는 데나 쓰이고 있었다.


인재가 귀한 북부에선 전투 능력에 두각을 보인자는 모두 병사로 고용 되었다. 대공이 직접 약속한 높은 급여와 복지. 그 좋은 걸 놔두고 모험가가 되는 병신이 어디 있을까?


그러다 보니 북부의 길드엔 병사가 되기 애매하거나, 범죄자, 혹은 문제가 있어 내쳐진 자들만이 모였다.


자연히 모험가 길드는 그런 이들의 쓰임새를 찾고 통제하는 거의 보모역할로 전락해 있었다.


그렇다고 포기한다? 마야의 사전에 그런 건 있을 수 없었다. 미소를 띠고 있던 그녀의 호박색 눈에 야욕이 이글거렸다.


“두고 봐라! 이 마야. 반드시 커다란 봉을 잡아 다시 날아오르고 말테니!”

“또 마음이 바깥으로 새어나왔군. 자네도 이제 그만하고 설렁설렁 하지?”


태평한 목소리에 날카로운 호박색 빛이 아래를 향했다. 그곳엔 육중한 근육질의 짧은 갈색머리 남자가 늘어지게 하품하고 있었다.


“지점장님? 체통을 지키세요. 업무시간입니다.”

“업무라~ 그래. 오늘의 업무는 뭐지? 어제 정리한 책 다시 정리하기? 쌓이기만 하는 의뢰 게시판보고 한숨 쉬기?”


마야의 이빨이 빠득빠득 갈렸지만 지점장이라 불린 사내는 코를 후비적댈 뿐이었다.


“다 부질없는 짓이야. 평화로운 게 제일이지. 자네도 적당히 남자 하나 잡아 등쳐먹으며 살아. 그런 거 잘하잖아?”

“...누차 말씀드렸지만 북부에 자리 잡을 생각 없다고 했을 텐데요? 그리고 누가 뭘 잘한다고요?”

“오! 지금까지 나왔던 코딱지 중 제일 ㅋ...”


쿵-!


“끄악! 내 발!!”


지점장이 찍힌 발을 잡고 요란 법석을 떨었다. 모험가들은 늘상 보던 광경에 헛웃음을 켰다.


마야 나름대로 유능하고 살가운 미모의 길드원을 가장하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북부에 좌천된 지 1년 만에 모두 벗겨진 가면이었다.


하지만 그것 나름대로 꽤 좋은지, 이곳의 모험가들은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한참 날뛰던 지점장이 부츠를 주무르며 눈을 흘겼다.


“아야야... 성깔 하곤. 그런다고 길드 살림살이가 나아질 것 같나?”

“지점장님이 나서주시면 다를지도 모르겠네요! 대륙에서도 꽤나 날린 모험가시잖아요!”


지점장은 싫은 얼굴로 혀를 낼름 거렸다.


“하. 일 없네. 모름지기 사람은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하는 거라고. 그리고 날린 게 아니라 휘말린 거야.”

“네네~ 그러시겠죠. 또 무슨 소드마스터니 어쩌니 하는 녀석 이야기겠죠?”

“뭐야. 안 믿나?

“소드마스터가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대륙에 10명이 채 되지 않는데, 그런 사람 중 하나랑 일했다는 게 말이 돼요?!”


소드마스터. 오러를 무기에 담는 것을 넘어, 오러를 형상화시킨 오러 블레이드를 다루는 자들.


마음만 먹으면 용의 가죽을 벨 수 있으며, 드워프의 성벽을 종이처럼 가를 수 있다는 자들이다.


그야 말로 종의 한계를 아득히 넘은 규격외의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소드마스터는 대륙에 10명이 채 되지 않는데, 대부분 대공처럼 국가나 기관에 소속되어 힘의 축이 되고 있다. 물론 얽매이지 않고 돌아다니는 자들도 있지만 소수다.


하지만 대륙의 인구가 얼마인가? 그 많은 사람 중에서 우연히 유랑하는 소드마스터를 만나 함께 활동했다고?


모험가들이 으레 하는 헛소리겠지.


지점장은 마야의 한심하다는 시선을 받으며 껄껄 웃었다.


“아~ 그래서 못 믿었군. 일단 말하자면 나와 함께 다닌 자는 소드마스터가 아니야.”

“드디어 정신도 놔버리셨나요? 소드마스터인데 소드마스터가 아니라니 그건 또 무슨 병신 같은 말이에요!”

“음... 정확히는 이명이라고 해야겠지. 성국 이데시아에서 만난 소드마스터가 직접 그 사람에게 지어줬거든.”


마야는 갸웃하며 머릿속에 축척된 정보들을 굴렸다. 그러자 곧 한 인물이 떠올랐다.


성국에서 호염의 소드마스터의 검을 받아낸 의문의 남자. 그자가 ‘무형의 소드마스터’라고 불린다는 것을.


“아! 그 사람! 아는 사이였나요?! 그럼 혹시 금색의 영웅과도...!”


마야의 눈이 욕망에 번쩍였다. 설마 이렇게 가까운 곳에 그런 인물과 연줄을 가진 자가 있었다니!


무형의 소드마스터라고 하면 솔직히 잘 알려진 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함께 다녔던 금색의 영웅이 더욱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 사이에선 금색의 영웅이 도금된 영웅이라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돌았다. 그가 영웅이 된 건 모두 무형의 소드마스터의 의도라는 말도.


“아이참 지점장님도~ 오늘 점심 뭐 드시고 싶으세요? 아님 저희 집에서 단 둘이 저녁이라도...”


마야는 능숙하게 몸을 베베 꼬며 고혹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걸 보는 표정은 가차 없었지만.


“뻔뻔하게도 바뀌는 군... 알려주거나 연결해줄 생각 없으니 괜히 살갑게 굴지 말게. 자넨 내 취향 아니니까.”


마야는 냅다 지점장의 손을 잡았다. 확실히 코딱지가 크긴 컸다. 자랑할 만했네.


“이름이라도! 아니면 출신? 좋아하는 게 뭔지는?”

“아 글쎄 안 된다니까! 알려지는 걸 싫어하는 양반이라, 뭐라도 떠들었다간 내 평화도 끝이야!”


지점장이 마야의 하얀 볼을 밀어내며 도리질 쳤다. 하지만 황금 동아줄의 끄트머리를 발견한 마야는 포기하지 않았다.


“쪼잔하게! 그 사람이 형편 좋게 북부에 있을 리 없잖아요! 생김세라도 말해줘요!”

“안된다면 안 되는 거야!”

“안 그러면 금색의 영웅한테 지점장 여기 있다고 편지 보낼 거예요! 아직 그 정도 힘은 있거든요?”

“아씨! 비겁하게...! 아, 알았다고!”


마야가 한번 물면 포기하지 않는다는 걸 충분히 아는 지점장이 결국 손을 들었다. 그녀의 말대로 그 사람이 북부에 있을 리 없을 테니까.


“먼저 말해두지만 이름이나 민감한 정보는 알려줄 수 없네. 생김새 정도만이야!”

“충분해요!”

“좋아.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눈의 남자. 그리고... 쌩 양아치처럼 생겼지.”


마야의 검은 눈썹이 갈고리처럼 아래로 휘어졌다.


“양아치...?”

“그래.”

“저 사람처럼 말인가요?”


마야가 막 문을 열고 들어온 2인조 중 앞에 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카운터 아래서 흘낏 본 지점장이 긍정했다.


“오오. 그래 딱 저 정도 쌍판이야. 생긴 게 어찌나 사납게 생겼는지. 맨 처음 만났을 땐 현상범인줄 알....알...”


벌떡-


지점장은 벌떡 일어나 그 남자를 바라봤다. 곧이어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 남자도 놀란 듯 사나운 눈을 치켜떴다. 처음 보는 지점장의 절망어린 표정에 마야는 둘을 번갈아 봤다.


잠시 후 반가운 목소리가 길드홀을 울렸다.


“오. 너 파울아냐? 네가 왜 여기 있...”

“전쟁이다!! 역병신이 나타났다!! 북부는 망할 거야!! 다들 도망쳐!! 또 개 같은 일이 북부에서 일어날 거라고!! 으아아악!!”


파울은 비명을 지르며 카운터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역병신은 맛좋은 먹잇감을 향해 다가왔다.


+


“또 어딜 말아먹으려고 여기 온 겁니까? 대장.”


길드 접견실. 지점장 파울은 혹이 난 정수리에 눈 주머니를 대고 한숨을 쉬었다. ‘죽으면 아직 오지 않은 거다!’라며 덤벼들었다가 생긴 혹이었다.


카벨은 맞은편에 앉아 거리낌 없이 웃었다.


“누가 들으면 매번 부수고 다니는 줄 알겠어.”

“아닙니까?!”


지난날이 떠오른 파울이 울컥했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했다. 인마대전 당시 대륙 중부 왕국에서 벌인 깽판과, 성국 성황의 안면에 니킥을 먹였던 일을. 게다가 동부에선 사교도 집단의 성수에 분뇨를...


물론 그 일들은 모두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같이 다녔던 ‘나름 일반인’ 파울에겐 매 순간이 살얼음 길이었다.


멸망과 전쟁, 토벌 등 규모가 다른 스케일은 트라우마를 만들기 충분했다. 그가 굳이 북부로 와 평화로움을 추구하게 된 계기도 그것 때문이었다.


“크흑! 겨우 얻은 평화인데. 또 여긴 어떻게 귀신 같이 알고...! 또 저한테 무슨 일을 시키려 하는 겁니까?!”

“야야 진정해. 널 만난 건 우연이고, 길드에 볼일이 있어서 온 것뿐이니까.”

“저, 정말입니까?!”

“네가 약속을 지켰으니까. 아니었다면 즐거운 옛 시절 다시 만끽할 수 있었을 텐데. 안 그래?”


서늘한 미소에 파울은 침을 삼켰다.


동부에서 공을 인정받아 모험가 길드 지점장 제의를 받은 날 파울은 카벨은 그가 나가는 대신 한 가지 약속을 제안 했었다.


그것은 최대한 ‘무형의 소드마스터’에 대한 이야기를 무마시켜 주는 것. 파울은 다시 지옥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아 부었다.


그 결과, 카벨에 대한 소문은 용병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뜬소문 정도로 격하될 수 있었다.


물론... 남부에서 또 무슨 일을 벌였는지 다시 이야기가 나오고 있긴 했다. 하지만 파울의 약속은 동부 이전까지의 소문을 잠재우는 것. 약속은 지켰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대장이 꼬맹이랑 같이 다니는 겁니까? 애가 잘생긴 걸로 봐서 아들은 아닐텐...”

“아니, 근데 이 새끼가.”

“악?!”


머리에 한방 얻어맞은 파울이 눈물을 글썽였다. 카벨은 귀찮은 혹을 보듯 아셀을 향해 시선을 흘겼다.


그래도 벨티오 보단 아셀이 훨씬 나았으니까. 게다가 나이에 비해 영특하고, 라셀 후작도 도움을주겠다 하니 도움이 될 일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혹을 떠안았다는 건 달라지지 않았지.


실시간으로 구겨지는 그의 험한 얼굴을 보며 파울은 혀를 찼다.


“또 무슨 같잖은 일에 휘말린 거요?”

“그런 거 아냐.”

“말 안 해도 훤합니다. 대장 운 없는 거랑 휘말리는 인력은 알아 주잖수?”

“......”


그리고 최대한 간략히 지금까지의 일들을 말해주었다. 평소라면 대충 말을 돌렸겠지만, 파울에겐 달랐다.


이세계로 회귀한 직후 만난 신뢰할 수 있는 동료중 하나. 게다가 그의 비밀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파울은 처음엔 놀란 듯 했지만 점점 초연해져갔다. ‘이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지.’라며 체념한 느낌이었다.


‘몇 년 동안 저렇게 티끌 하나 안 변하기도 쉽지 않은데...’


파울은 그렇게 적힌 면면을 하다 카벨의 한숨에 자세를 바로잡았다.


“일단 정보도 필요하지만, 그 전에 의뢰 좀 받아서 하려고 하는데 말이야.”

“정보 팔아먹는 거야 어려울 것 없는데, 국가 규모로 놀아놓고 길드의뢰요? 어떤 거?”

“전부 다.”

“...네?”


책장을 뒤지던 파울의 손이 멈칫했다. 잘못 들은 건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갸웃했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전부 다라고. 쌓였다며? 빼줄테니 내놔.”

“단어 참...!! 그보다 진짭니까?! 이거 쌓인 의뢰 양이 장난 아닌...”

“리카소 마을 사람들에게 일거리가 필요해서 그래요! 정식으로 등록되려면 필요한 일이니까요!”


아셀의 첨언에 파울의 머리가 팽팽 돌았다. 평화라는 이름의 불순물과 기름때가 벗겨지자 얼마 전에 들었던 새로운 칙령이 떠올랐다.


리카소 마을 사람들의 사기가 풀렸고 그들을 이방인으로 취급한다. 그리고 그 일을 벌인 게 카벨이라고 했으니까...?


후두둑-


파울이 들고 있던 의뢰지 묶음이 바닥에 떨어졌다.


‘위험해...! 아주 위험해!’


재능 넘치는 리카소 마을 이방인들. 그들이 배고픈 승냥이 떼처럼 일을 처리한다면, 빠르게 북부 소속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 많은 의뢰들이 한꺼번에 소진되면 일해야 하는데...? 게다가 그 많은 자금 처리는?? 내 평화??


파울은 넌더리를 치며 팔을 쓸었다.


“아, 안 그래도 바쁜데 그렇게 한꺼번에 소화할 순 없습니다! 지금도 담배 필 시간도 없을 정도로 스케줄에 쪼이는데...!”

“옷이나 제대로 입고 말하던가. 그게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의 차림이냐?”

“크, 크흠! 여하튼 안 됩니다! 그랬다간 꼼짝없이 다시 바쁘게 일해야 되잖...!”


덜컹-! 쿵-!


“크읍?!”

“그 일! 제가 담당하겠어요!!”


문틈 새로 기회를 엿보고 있던 마야가 냅다 안으로 뛰어 들었다. 그녀의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눈에 ‘얜 또 뭐야.’하는 얼굴의 카벨이 비쳤다.


문 자국이 찍힌 얼굴을 매만지던 파울은, 반색하며 양손으로 마야를 가리켰다.


‘봉이다...! 아주 큰 봉이야!“


중앙으로 태워다줄 커다란 날개가 카벨의 등에서 펄럭이는 것이 마야에겐 확실히 보였다.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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