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없으면 죽는 북부공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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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수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7.30 19:32
최근연재일 :
2024.09.0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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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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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27화. 반려후보 결정전의 시작

DUMMY

27화


3일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동안 카벨은 공녀의 명으로 인해 상당히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의외인 건 라셀 후작의 태도였다.


“그쪽은 방금 대공께서 가셨네.”

“차나 한잔 하지.”


명절 때 만난 데면데면한 친척어른처럼 미묘한 친의가 느껴졌다. 시기상으로 봤을 때 아무래도 성에 잠시 머물던 아셀과 직접 만난 듯 보였다.


분명 대공이 성내 불안감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아셀을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는데... 아무래 그 미친 대공이라도 팔은 안으로 굽는 듯 했다.


틀림없이 그 괴물이라면 관절이 하나 더 있거나 역으로 꺾일지도 모른다고 생각 했는데...


그 외에도 신경 쓰이는 건 있었다. 공녀였다. 뭘 하고 다니는지 매번 눈에 띄게 수척해 졌으니까.


여전히 자신에게 찬바람이 쌩쌩한 그녀에게 이유를 묻자...


“만들고 싶은 장식이 하나 생겼어요. 재료를 손에 넣으면 당신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도록 하죠.”


그 말과 서릿발 가득한 분위기를 남기고 공녀는 나가버렸다.


공녀가 만드는 장식이라면 마족이나 마물의 뼈와 가죽으로 만드는... 어?


‘설마 르네라는 마족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가끔 잘라내기 마을의 상황에 대해 알려주는 엔야에게 물어보니 어색하게 말을 돌렸다.


역시 맞잖아.


그런데 평소와는 조금 분위기가 다르다. 공녀가 저렇게 적극적인 사람이었던가?

아무래도 이번 건으로 공녀의 마음 깊은 곳에 변화가 찾아온 듯 했다.


3일 동안 마냥 쉰 것은 아니었다. 매번 같은 시간에 같은 행동을 하고 사라지는 대공 덕이었다.


“벤다.”


부웅-!!


대공은 마치 들으라는 듯 동작 하나하나를 소리 내 중얼거렸다.


어색하기 짝이 없었지만, 카벨은 어떤 이유에서건 대공이 가르침을 주려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이유를 묻진 못했다. 자칫하면 허공을 베는 오러 블레이드가 자신에게 향할 수도 있으니까.


게다가 매번 저렇게 중얼거리는 게 스스로도 짜증나는지, 매번 카벨의 몸 상태를 보곤 했다.


괜찮아 보이면 대련을 핑계 삼아 두들겨 팰 셈이겠지. 붕대를 두껍게 감아두길 잘했군.


마지막 날엔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대공에게 수건이라도 건네려 했지만...


“카악- 퉤!”


그 위에 걸쭉한 가래침을 내뱉고 돌아갔다.


요 며칠 가르침을 줘서 관계가 좀 괜찮아 졌나 했는데, 마음에 든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카벨은 부상으로 운신이 힘든 와중에도 오러의 수련에 매진할 수 있었다.


단시간에 큰 성취는 없었지만 조금씩 오러의 운용이 세련되어지고 다듬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


3일 뒤 카스토르 성의 정문. 유레하는 굳이 성문까지 배웅하기 위해 나왔다.


치료사들과 물약 덕분에 카벨의 몸은 꽤 호전 되었지만, 그녀의 딱딱한 잔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상처가 나았다고 함부로 활동하면 안 됩니다. 보이지 않아도 남아있는 게 상처에요. 반려후보 결정전 전까진 무리하지 마세요.”

“걱정해주는 건 좋은데 괜히 오해받기 전에 그만하시죠.”


손짓을 따라 유레하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곧 헛기침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리는 문지기와 사용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고집스런 시선은 그대로였다.


“제 사람이 되어주겠다고 했지 않습니까? 제 사람을 걱정한다는데 오해받을 일이 어디 있나요.”

“그거 대공 전하가 거절하면 없던 일...”

“될 거에요. 그러니 문제없어요.”


내가 문제 있어서 그럽니다. 차라리 사고치고 다니는 게 심장에 편할 것 같습니다.

카벨은 머리를 박아 욕망을 떨쳐내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몇 번이나 확답을 받은 유레하가 엔야에게 무언가를 넘겨받아 건네 왔다.


“요청했던 구속 마도구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검을 드리겠어요.”

“검이요...? 왜요?”

“쓰시던 것이 부서졌잖습니까.”


유레하가 내민 건 팔찌 하나와, 부가적인 장식은 없었지만 금속을 아낌없이 쓴 검이었다. 그중에 검은 특히 눈에 띄었다.


특이하게 옅은 금색을 띄는 일반 적인 롱소드 보다 짧고, 아밍소드 보단 긴 검신과 손잡이였다.

특화된 용도를 포기한 대신, 어떤 상황에서도 대응하기 위한 길이로 보였다.


부웅-


몇 번 휘둘러보자 크기에 비해 상당히 가볍게 움직였다. 게다가 빛이 닿을 때 마다 일반적인 금속이랑 다른 무늬가 요염하게 번쩍였다.


“황금색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 마법으로 색을 변형시켰습니다. 마음에 드는 것 같아 다행이군요.”


겨우 그 눈에 띄는 검에게서 벗어났나 싶었는데, 쓸데없는 배려라니...


애초에 약한 금속으로 만들다 보니 그 색이 나왔을 뿐이라곤 차마 말하진 못했다.


그랬다간 안쪽 그림자에서 느껴지는 오러의 주인이 대검을 들고 눈앞에 나타날 것 같았으니까.


게다가 색깔을 낸 게 꽤 만족스러운지, 뿌듯해 하는 그녀에게 홀려 타이밍을 놓치기도 했고.


“...일반적인 검은 아닌 것 같은데, 받아도 되는 겁니까?”

“북부의 운철을 제련해 설마석을 심으로 만든 검입니다.”


운철과 설마석이라는 말에 카벨은 휘두르는 것을 멈췄다.


운철. 즉 운석이라는 뜻인데, 검으로 만들 수 있는 운철은 한정되어 있다.

우연히 검색하다, 운철로 만든 무기의 강도는 현대의 스테인리스 강 정도라고 본 적이 있었다.


시대를 감안한다면 이 검의 가치는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게다가 설마석... 질 좋은 마석이 많이 나오는 북부에서도 아주 적은 확률로 나오는 특이한 새하얀 마석이었다.


마력 전도성이 무척이나 높고 손실이 없어, 마력을 사용하는 모든 자들이 꿈에서도 선망하는 물건이었다.


그걸 심으로 쓴 검이라니... 한 나라의 기사단장 정돈 되어야 들 수 있는 검이잖아?


두근거림도 잠시. 유레하는 굳이 붙이지 않아도 되는 설명을 덧붙였다.


“아버님이 과거에 쓰시던 검입니다. 안 쓰시는 것 같아 가져왔습니다. 성능은 보장할 수 있습니다.”

“...절 기어코 죽일 생각이시군요.”


씨발. 목숨을 보장을 보장해 달라고.


“괜찮아요. 검은 쓰지 않으면 녹슬 뿐입니다.”

“제가 그 녹이 될 거란 생각은 안 해 보셨...!!”


스윽-


검을 내밀자 유레하의 손이 가볍게 올려졌다. 오랜 수련으로 굳은살이 딱딱하게 박혔지만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손이었다.


자신 따위가 닿으면 안 되는 부류의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하지만 흔들림 없이 보내지는 그녀의 시선에 차마 떨치지 못했다.

이세계에서 받을 수 있는 치트의 최고는 역시 얼굴이지... 그런 생각이 다시 들었다.


“처음으로 제 사람이 되어준 분에게,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고 싶어요. 그러니 받아 주셔야합니다.”

“...하.”


억눌린 탄성에 그제야 안심한 듯 보였다. 최근 대공 부녀가 나란히 거리감을 상실한 것 같았다.


게다가 저렇게 얼굴로 밀어 붙이니 대 놓고 거절할 수도 없었다. 일부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게 더 질이 나빴다.


카벨은 마차를 수배해 놓았으니 타고 가라는 말을 끝으로 성에서 나올 수 있었다.

성의 풍수가 몸에 안 받는지, 갈 때마다 수명이 반으로 줄어드는 기분이 들었다.


“저건 또 뭐야.”


북쪽 성문으로 가자, 카벨의 탄식은 더 깊어졌다.


웅성웅성-


고급스러운 백색을 배경으로 마물의 머리뼈가 주렁주렁 달린 마차.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마차 주변에 모여 감탄하고 있었다.


확실히 ‘공녀가 준비한 마차’였다.


북부의 트렌드가 마물이나 마족의 뼈와 가죽이 골자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 극단적인 건 그 사람 밖에 없었다.


벨티오는 고급 스포츠카를 과시하듯 비스듬히 기대있다가, 허세 가득한 턱짓을 해왔다.


되게 마음에 들었나 보군... 아무래도 북부 사람들의 감각은 이해할 수가 없네.


“패트릭의 처음을 받아갈 남자가 도착했군.”

“미친...”


벌써 이름까지 지었나. 그건 그렇다 쳐도 저렴한 표현치고 되게 행복해 보여서 싫은데...


벨티오는 어디서 구했는지 잎사귀 하나를 문채, 선망에 가득 찬 사람들을 파파라치처럼 제지하며 다가왔다.


카벨은 ‘시선이 칼처럼 꽂힌다.’는 표현을 만든 자에게 가슴 깊이 공감했다. 정말 겪어보지 않고는 못 만드는 생생한 표현이었으니까.


+ +


이틀 뒤 정식으로 법안이 발표되었다. 사람들은 사기가 풀렸다는 사실에 한번 놀라고, 불행을 부르는 공녀가 거취를 완전히 잘라내기 마을로 옮겼다는 것에 환호했다.


-잘라내기 마을이라... 확실히 은색늑대수인인 공녀에게 잘 어울리는 곳이지.-

-소문으로는 유배를 간거라고 하더군.-


수도와 에선 더 이상 공녀를 전장으로 다시 보내라는 과격한 시위가 이어지지 않았다.

오해는 다소 있었지만 확실히 공국 곳곳은 안정되었다.


동시에 마을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잘라내기 마을’이라는 이름 대신 대공으로 부터 마을의 정식 이름이 내려왔다.


몇몇 검의 검신에 있는 손잡이를 뜻하는 ‘리카소’마을. 그것이 마을의 정식명칭이 되었다.


주민들도 더 이상 ‘죽은 자’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게 되었다. ‘이방인’이라는 새로운 신분이 주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공녀저하께서 행차 하십니다!”


그날 유레하가 수많은 물자와 마을을 보수하기 위한 기술자, 석공들과 함께 입성했다.


잘라내기... 아니 리카소 마을 사람들은 비로소 환호했다.


카벨의 약속을 믿지 못했던 건 아니지만, 입성한 병사와 물자를 보자 그 현실감이 한순간에 불어 닥쳤기 때문이다.


“정말... 정말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이빨 수집가가 해냈어! 진짜 해버렸다고!!”

“가족들을 더 이상 볼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사람들은 소리를 드높이며 환호했고, 남작과 연루되지 않았던 귀족출신들은 본가에서 보낸 편지를 받고 울음을 토했다.


이후는 발전의 연속이었다. 공국에서 지원한 물자와 인력으로 마을은 빠르게 전초기지로서의 모습을 만들어 갔다.


다행히 큰일을 한번 치룬 뒤인지 불운도 긴 쿨타음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덕분에 카벨은 마을회관의 방 하나를 빌려 오랜만에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아저씨 이렇게 하면 돼?”

“아...아아~ 그래 그거야. 오 아둔이여...”

“신음소리 이상해...”


매일 두 번씩 찾아오는 레나가 황금색 성력을 카벨의 허리에 불어넣으면서 미간을 지푸렸다.


그동안 카벨은 회복속도를 높일 겸해서 레나에게 기본적인 성력을 다루는 법을 가르쳤다.


성국에서 날뛸 때 꼬맹이에게 가르치려 개조한 해적판 성법이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이야...


솔직히 대공에게 레나에 대해 보고하면서도 찝찝했었다. 하지만 다행히 공녀에게 레나에 대한 모든 것을 맡기며 일은 일단락되었다.


성국에서 나중에 시비 걸릴 가능성은... 대공이 알아서 해주겠지. 레나 같이 귀중한 인재를 눈뜨고 뺏길 사람은 아니니까.


땡땡-


남작사건 땐 그리도 불길한 소리를 내던 찌그러진 마을의 종이, 번듯하게 수리되어 맑은 소리를 냈다.


비상상황을 알리던 소리가 식사시간을 알리는 알람 정도로 격이 떨어졌지만 좋은 일이겠지...


“아저씨 오늘은 같이 밥 먹으러 갈거지?”

“미안. 약속이 있어서. 모레는 꼭 같이 먹을게.”

“맨날 모레래... 진짜 마지막이야?”

“하하... 알았어. 그보다 약속 한 거 알지?”

“응! 모르는 사람 앞에서 함부로 성력 보여주지 말기!”


또래 여자아이들처럼 윤기가 도는 머리를 한껏 쓰다듬어주자, 레나가 헤실대며 방에서 나갔다.


역시 그 귀염성 없는 꼬맹이 말고, 레나가 성녀가 됐어야 했는데...


카벨은 뒤늦은 아쉬움을 삼키며 아직 성치 않은 몸을 일으켰다.


+


“으으음...”


벨티오는 망루에 주저앉아 깊은 신음성을 냈다.


삐익~


그의 머리 위엔 매 한마리가 그의 신음을 브금삼아 몸단장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벨티오는 눈앞의 검과, 매가 가져온 쪽지를 보며 한숨을 토했다.


이전에 보급용으로 받은 바프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진 검.

손잡이부터 무게 중심, 모든 것이 벨티오에게 맞춰져 있는 정성이 가득 담긴 검이었다.


무기나 물품에 이름을 붙일 정도로 애정이 깊은 벨티오는 바로 뽑아보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이 검을 뽑는다는 건 쪽지에 답을 보낼 결정을 했다는 뜻이니까.


“나는 북부의 기사다. 역시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인 위치를 고수해야...”

“중립은 개뿔. 전 부하 때문에 같이 그 깽판 쳐놓고 아직도 그 소리입니까?”


익숙한 목소리에 벨티오의 충혈 된 눈이 확 돌아갔다. 카벨이었다.


완전히 낫지 않았는지, 사다리를 엉금엉금 올라오는 그의 몸엔 붕대가 가득했다.


벨티오는 다급히 종이와 검을 품에 숨기고 머리의 매를 하늘로 냉큼 던져버렸다.


“삐, 삐익?!”


그 모습이 마치 엄한 짓을 하다 들킨 10대 같아, 카벨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아셀한테 다 들었습니다. 공녀님에게 충성서약을 명받았다면서요? ”

“아니 그건...!”

“햐~ 끈 없어서 지휘권 박탈당하고 칭얼대던 게 며칠 전인데... 횡재 했네요. 좋은 일 아닙니까?”

“그런 게 아니다. 나는... 명을 받지 않았다.”

“예?”

“...부탁을 하시더군. 고개까지 숙여 가시며.”


벨티오는 그 모습을 되새김질 하듯, 품에서 반쯤 튀어나온 검을 바라봤다.


아무리 북부에서 무시 받는다고 해도 공녀는 공왕가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명령이 아닌 그런 식으로 부탁을 해왔다는 건...


카벨은 역시 남작 건으로 인해 공녀가 바뀌기 시작했다는 생각을 하며 벨티오의 옆에 앉았다.


“저는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의외군. 그러면 이유는 모르겠지만 공녀님 곁에 있는 네놈과는 계속 부딪힐 텐데.”

“그건 좀 짜증나지만... 솔직히 그쪽만큼 우직하게 공녀님을 지킬 사람은 없을 것 같아서요.”


그 말에 벨티오는 괜스레 코를 문질렀다.


“별소리를 다 듣는 군. 내가 폴라리스 교단의 신자라는 걸 알고 하는 이야기인가?”

“압니다. 그리고 옳은 일에서 눈을 돌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도요.”

“그건...”

“복잡하게 생각하는 사람 아니잖아요? 그냥 당신이 본 공녀님의 행동이 옳았는지만 보십쇼.”

“너는 옳았다고 생각 하나?”“음... 제 기준에선 아슬아슬하게?”


고민하는 벨티오의 어깨를 두드린 카벨이 신음성을 내며 일어섰다.


벨티오는 사다리가 뒤틀리는 소리를 듣고, 뒤늦게 카벨을 돌아봤다.


“자, 잠깐!”

“뭡니까? 저 밥 먹으러 가야 합니다.”

“만약... 공녀님이 가는 길이 옳은 방향이 아니게 된다면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카벨은 생각해 본적 없다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 그리곤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땐 그쪽이 옳게 만들 거잖아요? 내가 그런 식으로 가스라이팅 당하면서 얼마나 귀찮았는데.”


태연한 말투에 벨티오는 입을 벌린 채 카벨이 내려가는 것을 바라봤다.


잠시 굳어있던 벨티오는 정신을 차리고 마을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그리곤 꼴사납게 숨겼던 검을 옷에서 빼냈다.


그러자 쪽지가 떨어지며 공녀의 유려한 글씨체가 드러났다.


-북극성의 기사에게-


벨티오의 입가가 살짝 휘어졌다. 그 호칭은 자신이 가장 걱정하는 교단의 신자라는 부분까지 포용하겠다는 유레하의 결심이었기 때문이다.


스릉-


검을 뽑자 청량한 소리와 함께 은빛의 검신이 드러났다. 그리고 검신 위엔 공녀가 직접 새겨 넣은 것으로 보이는 글귀가 있었다.


-새벽으로 인도하는 북부에서 가장 가까운 별.-


벨티오는 어느새 사람들 사이에 끼어 몰래 곡괭이를 집어 드는 공녀를 보며 깊게 허리를 숙였다.


+ + +


“황자 전하. 북부로 향할 준비를 끝마쳤습니다.”


아이븐 대륙 동부, 던전의 나라라는 이명을 가진 벨미노스 제국.


제 1황자는 산더미 같이 보물위에서 기지개를 피며 커다란 몸을 일으켰다.


그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존재들에게 뺏은 보물들을 맨발로 밟으며 창문으로 다가갔다.


그곳엔 퍼레이드 행렬처럼 화려한 마차행렬과 병사들이 정렬해 있었다.


“드디어. 내가 손에 넣지 못했던 유일한 걸 찾으러 가게 되었군.”


침대에서 멍투성이가 되어 절명한 나신 소녀의 탁한 눈에, 금발의 황자가 느긋하게 방을 가로지르는 모습이 비쳤다.


집사는 익숙하게 하인들을 시켜, 채 꽃이 피기도 전 지고만 시신을 치우라고 명하곤 황자에게 다가갔다.


“전하. 성국에서의 요청으로 호염의 소드마스터가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부디 가시는 동안 언동을...”

“그게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잖아? 어련히 잘 한다고.”

“하지만...”


집사장의 시선이 모든 매력을 집합해놓은 얼굴과 몸을 지나 배에 있는 흉터에 닿았다.

그 순간 쥐어지는 황자의 주먹에 다급히 고개를 들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미청년의 에메랄드 빛 눈동자가 구겨지는 미간에 사납게 가려지고 있었다.


“금색 검 든 미친새끼 건은 내 탓이 아니었어.”

“죄, 죄송합니다!”


혀를 찬 황자는 하인들이 준비해놓은 고급스런 옷을 입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미니어처 같이 황자를 기다리며 정렬해있는 병사들 사이로, 열기에 붉게 달아오른 풀 플레이트를 입은 기사가 보였다.


“호염의 소드마스터라...”


1 황자는 왠지 욱신거리는 배의 상처를 매만지며 가지런한 이빨을 드러냈다.


배의 상처를 낸 자에게 무형의 소드마스터라는 이명을 준 존재.


왠지 이 여행의 끝에 원하던 것 뿐 아니라 오래토록 기다려왔던 설욕도 함께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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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8화. 약속을 지킬 때이니라. 24.09.07 11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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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4화. 평생 벗지 말아야지. 24.09.03 16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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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6화. 대공의 호의 24.08.25 30 1 12쪽
26 25화. 건방진 놈 24.08.24 32 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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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8화. 그냥 쏠 걸. 24.08.17 35 2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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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1화. 물어 24.08.10 46 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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